인류 동맹1
갑작스럽게 유니콘 홍보실의 전화를 받은 광해는 동생들과 함께 유니콘 본사로 향했다.
"기획안입니다."
홍보실 직원은 다짜고짜 서류철을 건넸다. 프린트한 지 오래 안 된 듯 종이가 약간 따뜻했다. 광해는 빠르게 훑어 요점을 파악한 후 천천히 읽으며 서류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유니콘은 인터넷뿐 아니라 TV나 영화 매체까지 다 삼키려는 건가?'
동생들이 광해 눈치를 봤다. 출발할 때 아무 의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꽤 괜찮아 보이는 제안에 다들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지금 가격 협상이 거의 끝났습니다. 광고주와 협상한 가격에 기초해 금액이 정해질 겁니다."
우선 국기에 넣는 도안. 국기에 도안을 넣을 수 있는데, 거기에 특정 기업의 로고나 특정 제품 상표를 넣을 생각이다. 계약이 끝나 도안이 바뀌더라도 NPC에겐 똑같이 보여서 유저만 주의하면 혼란이 생길 일도 없다.
다음은 길드 문양. 투구 혹은 갑옷에 새겨질 이 문양도 돈을 받고 팔 수 있다. 물론, 안 팔고 직접 디자인한 문양을 넣어도 상관없다.
국기에 넣는 도안은 두 가지 형식으로 지급한다. 일부는 국왕인 광해에게 직접 현금으로 주고 일부는 WORLD 국가 세금으로 들어간다. 국왕 유저와 국가 모두 이득을 얻는 방식인데, 그 비율은 국가마다 다르다. 반형운이나 광해는 개인이 얻는 자금 비율이 더 높을 것이고, 허수아비 국왕을 둔 국가들은 국가 비율이 높을 게 자명했다.
길드 자금은 길드장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다만, 자금 사용처가 모든 길드원에게 통보되기에 함부로 쓰다간 길드가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길드 문양으로 받는 광고료는 전부 길드 자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스폰서 붙습니다."
광해나 김연 그리고 동해 등은 팔뚝과 등, 가슴, 배 등 부위에 광고를 부착할 수 있다. 물론 광고 문구 같은 건 안 되고, 운동선수 유니폼에 광고 들어가듯이 로고나 상표만 가능했다.
"특별히 두 분의 해동청과 유니콘에겐 우리 회사가 광고를 넣을 작정입니다. 광고료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책정하겠습니다."
"역시 글로벌 회사는 달라도 다르네요. 이렇게 완벽한 기획안이라니. 언제부터 준비하신 건가요?"
"사실 석 달 전에 이미 구상이 끝났고 광고주들과 협상이 좀 길었습니다."
광해의 칭찬에 홍보팀 직원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광해의 이어지는 말에 얼굴이 살짝 굳었다.
"생각해두신 금액도 있겠지만, 언제 망할지 모르던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진 거 아시죠? 해동청이 5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실 테니, 이런 부분을 최대한 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광고는 인기가 높은 광해와 김연 그리고 동해에게만 들어왔다. 성필은 즐기자 길드 길드장이기에 길드 광고 계약 건 때문에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건 현성이었다.
"토템의 모양을 특정 제품과 비슷하게 꾸밀 예정입니다. 당연히 광고료를 지급합니다."
광고는 현성이 아닌 토템을 대상으로 했다. 최근 숙련도 향상으로 네 토템 중 하나만 만지면 게임 시간으로 2시간 모든 스탯이 조금씩 올랐다. 어찌 보면 노출도가 가장 높아 광고료가 기대됐지만, 토템에 밀린 현성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금액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에서 협의를 봤다. 계약서는 이미 만들어졌고 금액만 적어넣으면 되는 셈이다. 다 끝나자 광해는 동생들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나 근처 볼일 있으니까 먼저 돌아가."
동생들을 보낸 광해는 전화기를 꺼내 문자를 보냈다.
[유니콘 회사 근처인데, 점심 뭐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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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뿔 코뿔소가 집채만 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코뿔소가 눈 똥을 먹으려고 달려들던 멧돼지들이 뒷발에 차여 멀리 날아갔다.
일반 우르크는 유저와 덩치가 비슷했다. 그러나 코뿔소를 달래는 우르크의 덩치는 3미터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코뿔소 앞에 서니 꼬마로 보였다.
"이번에도 저걸 막지 못하면 큰일이다."
네크로 일행이 배를 타고 대륙으로 돌아가는 사이, 철혈팔기는 도시 5개와 마을 24개를 잃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 죽인 우르크 숫자가 10만도 안 되었다. 코뿔소로 성벽을 파괴한 후 쭉 밀고 들어가서 시청을 점령했다. 일대일로 붙으면 유저가 우세지만, 집단전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우르크가 압도적이었다.
현재 해법은 코뿔소를 막아서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우르크만 부활한다고 했지, 우르크 군대의 모든 것이 부활한다고 하진 않았다. 거대한 코뿔소를 몇 마리나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죽이다 보면 끝날 날이 올 것이다.
나팔 소리가 뿌 울렸다. 뿔 나팔은 길이가 20센티 정도에 신비한 갈색이었다. 소리가 울리자마자 코뿔소가 뒤뚱거리며 앞으로 달렸다.
자세도 우스꽝스럽고 초반 속도도 형편없었지만, 꾸준히 가속도가 붙으며 계속 빨라졌다. 보통 어느 정도 속도가 되면 그 속도를 유지하는데, 코뿔소는 한계를 모르는 듯 속도를 꾸준히 높였다.
전설 방패를 든 성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성기사는 두 가지를 해내야 한다. 하나는 철벽의 것과 마찬가지로 저지 옵션이 붙은 방패로 코뿔소를 멈춰 세워야 한다. 단, 그냥 멈춰 세우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튕겨나지 말아야 한다.
다음 성기사 궁극기 파멸신을 펼쳐 코뿔소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 무작위로 공격하지만, 파멸신의 공격에도 규칙이 있었다.
첫 공격은 반드시 자신을 소환한 성기사를 향한다. 같은 상대를 연속해서 공격하지 않는다.
성기사는 파멸신의 공격을 버텨낸 후, 코뿔소를 공격한 파멸신의 다음 타깃이 되어줘야 한다. 만약 성기사가 죽어버리면 코뿔소를 한 대 때린 파멸신은 다른 타깃을 찾는다. 그리고 그다음에 코뿔소를 공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템 모두 물리 저항, 생명력, 회복력 그리고 방어력에 맞췄다. 신발은 접지력 향상 옵션이 붙었고 갑옷과 투구 그리고 장갑에는 체중 증가 옵션이 붙었다. 그랜드 마스터 대장장이가 강화했고 지금 17개 버프를 한몸에 받았다.
저공비행 하는 탈것에서 뛰어내린 성기사는 방패를 몸에 바싹 붙였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음의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코뿔소와 충돌했다.
"파멸신."
허리띠에서 붉은빛과 푸른빛이 반짝였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마나를 생명력으로 전환하는 옵션이 붙었다. 빠른 치유 패시브로 생명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마나에는 안 먹혔는지 푸른 막대기가 천천히 움직였다.
철퇴를 들고 나타난 파멸신은 곧바로 성기사를 때렸다. 상대가 유저나 웬만한 몹이라면 방패를 움직여 블록 확률을 높였다. 그러나 파멸신 상대로는 그저 방패에 몸을 바싹 붙여 방어력을 최대로 한 후 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괜히 방패를 움직이다가 빈틈이 노려져 비명횡사할 수 있다.
피통이 쭉 내려가다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번엔 마나 물약에도 빠른 치유 패시브가 먹혀서 마나도 순식간에 찼다. 그러나 기뻐할 겨를도 없이, 코뿔소 앞다리를 철퇴로 부숴버린 파멸신은 다시 성기사를 공격했다.
이번엔 공격이 두 개 들어왔다. 파멸신의 공격과 우르크 저격수의 공격이 거의 동시에 성기사의 방패를 두드렸다. 묵직하기 울리는 철퇴와 날카롭게 파고드는 화살이 성기사를 휘청이게 했다. 목걸이에 붙은 행운 옵션 덕분인지 이번에도 피통과 마나통이 순식간에 찼다.
그렇게 일곱 번을 버텨내니 코뿔소가 죽어버렸다. 코뿔소가 죽자 성기사 유저는 방패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성기사가 빨리 죽어야 파멸신이 사라진다. 아군 진영과 더 가까운 곳이기에 성기사가 오래 살아봤자 아군 피해만 늘어난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대기실로 떠나는 성기사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코뿔소를 죽이는 임무를 완성했으니 곧 통장에 10만 위안이 꽂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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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네크로와 진돗개는 드래곤 산맥에 있었다. 진돗개의 드레이크에 함께 타고 알테르 화산 근처로 달렸다. 가끔 몹이 막아서도 가능하면 무시했다.
방랑자가 백 명이 넘는 숙영지. 더 큰 숙영지가 있는지 모르지만, 네크로가 아는 범위에서는 이 숙영지가 최대 규모였다.
"저기 보이지?"
신체 비율은 곰에 가깝지만, 털 대신 비늘로 덮인 전사에게 진돗개가 다가갔다.
"내 용병이 되어라."
"거절한다."
"용혈이 있다."
전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전에 네크로가 땅 누가 잘 파는지 물어봤을 때 혼전에서 끝까지 멀쩡하게 남은 드래곤 피를 이은 전사였다.
"질문이 있다. 용혈을 마시면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는가?"
"꼭 마법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드래곤 피에 잠재한 능력이 최소 하나는 발현한다. 그게 무엇일지는 네 운에 달렸다."
이름 없는 전사는 고민했다. 용혈은 한 번만 마실 수 있다. 용혈을 마시고도 마법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이름을 받지 못한다. 전사의 부족은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이름을 받을 수 있고, 성인식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마법을 익혀야 한다.
"좋다. 계약하자."
진돗개와 이름 없는 전사는 용병 계약을 맺었다.
- 드래곤 산맥 최강의 전사를 용병으로 얻었습니다.
- 이름 없는 전사는 부족으로 돌아가 이름을 받으려 합니다.
- 이름을 받기 전에는 드래곤 산맥을 떠날 수 없습니다.
- 이름을 얻으면 유저에게 자신의 스킬을 가르쳐줄지도 모릅니다.
진돗개는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용혈을 꺼내 건넸다. 탐욕스러운 눈빛들이 용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러나 전사의 실력이 뛰어난지 누구도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단순한 언쟁으로 싸우는 건 손속에 사정을 두지만, 상대의 물건을 탐내면 목숨 걸고 싸운다. 덤벼든 자들은 모두 전사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용혈을 마신 전사는 '거인의 힘' 마법을 얻었습니다.
- 전사와 함께 비늘곰 부족에 가서 성인식을 치르십시오.
- 공헌에 따라 특별한 스킬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진돗개가 사정을 설명하자 네크로는 바로 현피를 호출했다. 진돗개 대신 현피가 길드 사무와 국정 운영을 돌봐야 했다. 진돗개는 전사와 함께 숙영지를 떠났고, 네크로는 텔레포트 스킬로 소금성에 돌아갔다.
- 국가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국왕 네크로가 편성하는 인류 수호군에 지원하십시오.
- 퀘스트 보상은 국가 공적치입니다.
- 우르크를 해치우면 바로 공적치를 받습니다.
- 전투에 참여하고 승리한 공적치는 전쟁이 끝난 후 일괄 정산합니다.
미리 언질을 줬기에 하루 만에 2만 명에 육박하는 지원자가 몰렸다. 네크로는 철벽과 함께 2만에 가까운 유저를 데리고 철혈팔기의 수도로 향했다. 그 무리엔 우자르와 다미안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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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만리장성은 우릴 버렸어."
호치택이 중요한 일이라며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당일 약속을 취소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뒤늦게 그날 호치택이 네크로와 만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새끼. 독립하자고 내 옆구리 찌르던 놈이, 왜 갑자기 생각 바뀌었어?"
"지금 상황엔 만리장성에 계속 붙어있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요."
"내가 도시 몇 개 점령하고 귀순하겠다고 하니까 거절했잖아. 아마 네크로를 허수아비 만들려는 계획인 것 같아."
배용수는 호치택으로부터 예전에 언질을 받았다. 레전드 골드를 현실에서도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을 때가 오면, 한국 시장 관리를 배용수에게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모양새를 보니 배용수 자신은 버려진 것 같았다.
"형님은 무슨 생각입니까?"
"역천이 내건 조건이 꽤 괜찮은데. 네크로가 만리장성 밑으로 들어가면 역천도 위태하다고 봐야지."
"그럼 네크로한테 가는 건 어떻습니까?"
"네크로 밑으로 들어갔다가 네크로가 만리장성 밑에 들어가면 꼴이 우습잖아."
만리장성은 가미카제를 상대하랴 철혈팔기와 은근히 힘겨루랴 여러모로 바빴다. 그래서 대한제국 길드와 배용수에게 신경을 덜 썼다. 거기에 역천의 은근한 이간질과 유혹에 배용수가 흔들렸다.
그런데 역천 밑으로 들어가자니 망할 것 같고, 네크로 세력에 소속하자니 언젠가 다시 만리장성 밑으로 들어가면 홀대받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나마 몸값이 될 때 빨리 서식처를 정해야지, 시간이 흘러 유저 격차가 줄어들면 찬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언젠가부터 숫자만 늘고 정예 유저는 슬슬 역천이나 네크로 쪽으로 유실됐다.
고민에 이마 주름이 펴질 줄 몰랐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한 사람은 배용수 형이었다.
[내 제안 어떻게 생각해?]
"형. 쪽팔리게 길드 문양을 형네 장난감 상표로 하라고? 그리고 돈도 겨우 그게 뭐야."
[가족끼리 좀 도우면서 살아야지.]
"이 사안은 내가 좀 더 고민할게."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배용수가 툴툴거렸다.
"역천이 소개해준 회사는 10배나 준다는데. 가족은 가족이고 사업은 사업이지. 저런 마인드로 어떻게 100위권을 유지하는지 몰라."
"역천 쪽으로 가면 매달 광고료 1억이 들어와. 대신 보스몹 레이드를 달마다 해야 하고, 공성전 수성전도 활발히 벌여야 해. 그리고 역천 따까리 노릇 해야겠지."
"네크로 쪽으로 들어가면 매달 광고료 1천이야. 성격 지랄 같은 형이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노출 많이 해달라고 나를 귀찮게 할 게 뻔하고. 대신 도시랑 마을을 마음껏 점령해도 되고 따까리 노릇도 필요 없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배용수가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야. 너라면 어딜 갈 거야?"
"글쎄요. 장단점이 비슷해서 결정하기 어렵네요."
"역천 밑에 실무 보는 최 비서랑 네가 술 한 번 먹어 봐."
배용수 방에서 나온 조세영은 다급히 문자를 적어 발송했다.
[배용수 역천 쪽으로 가려는 것 같습니다.]
바로 답장이 왔다.
[곧 연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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