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2
에르제베트와 싸울 때 죽은 NPC 군대를 모두 살리는 데 어마어마한 골드를 소모했다. 숫자만 채워주는 주민 NPC는 알아서 부활했고 소금성 안에서 죽었기에 용병 길드의 용병들도 모조리 부활했다.
'국가 인구 40%가 수도에 몰렸어. 소금성이 무너지면 큰일이다.'
문제는 노예가 아닌 평민이어서 강제로 다른 도시나 마을로 보낼 수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국가로 가도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현피. 파열의 협곡으로 가서 좋은 재료를 많이 구해. 모든 도시와 마을에 토템을 결합해야 해."
현피가 만든 토템은 마을이나 도시와 함께 성장했다. 마을이나 도시가 함락되면 토템은 사라진다. 황혼의 결정이나 밤의 결정을 재료로 쓰면 등급 높은 토템이 된다. 소금성에 결합한 토템이 바로 황혼의 결정 네 개를 소모해 만든 거였다.
오우거 성기사 바미가 있기에 안전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탈것 중에서도 속도가 빠른 편인 벼락새가 있기에 불리하면 도망쳐도 된다.
"돗개야. 붉은 코 코볼트들에게 식량 넉넉하게 줘. 음식이 남으면 새끼를 더 빨리 낳는대. 연소탄과 광물을 당분간 전략적으로 휘둘러야겠어. 역천의 광산이 곧 바닥을 보인다니 드워프 왕국과 손잡으면 당분간 큰소리칠 수 있어."
"그리고 드워프 왕국으로부터 사들일 금속 목록이야. 에르제베트 잡고 진영기 많이 얻었어. 당분간 난 타이탄 늘리고 레벨 올려주는 데 집중할 거야."
"알았어. 근데 그 덩치 큰 드레이크가 준 알 있잖아. 그거 성질 너무 더러워서 탈것으로 못 쓴다는데?"
"다미안에게 줘. 지금 다미안이라면 길들일 수 있을 거야."
에르제베트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자 다미안이 강해졌다. 하약스는 원래 이름을 찾으며 빅토르라는 이름을 버렸다. 주인 잃은 이름은 유일한 피의 주술사인 다미안을 찾았고, 다미안의 심장에 깃들었다.
암흑 드레이크를 피의 저주로 부화하면 다미안에게 복종한다. 잘하면 탈것이 될지도 모른다.
"철벽이랑 동해는?"
"수성전에서 친해진 화염 마법사랑 같이 사냥터 돌아다녀."
"너도 숙련도 올려야 하는데."
"매일 수련장을 이용해. 난 스킬 쿨타임이 길어서 실전보단 수련장이 더 나아."
"그래. 네가 좀 고생해라. 내가 어떻게든 누구도 우릴 넘보지 못하게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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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과는 얘기가 끝났다. 초인동맹은 아마 어떤 딜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단순한 강함은 철혈팔기만 못하고 머릿수로는 만리장성에 뒤처졌다. 비록 중국 서버와 다른 서버의 세력을 받아들였지만, 네크로보다도 끈끈하지 못했다. 세금을 받고 지켜주는 거래 관계일 뿐이었다.
"원한다면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로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이광해 씨가 원하는 바가 아닌 걸 알지만, 우리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려드리고 싶군요."
호치택은 배용수와 한 약속을 깼다. 원래는 배용수가 앉아야 할 자리를 광해가 차지했다. 광해는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 책임자에게 방 예약을 언제 했는지 넌지시 물었고, 사흘 전에 이미 정해진 장소임을 알고 쾌재를 불렀다. 반형운에게 문자를 보내 대한제국과 만리장성의 사이를 이간질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약자입니다."
광해는 미리 준비한 대사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목표는 하나, 생존입니다. 대륙 제패 따위는 염두에 둔 적도 없습니다. 상대의 강함뿐 아니라 신용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굳건한 약속도 큰 이득 앞에서는 깨지기 마련이죠."
"원하는 바가 있습니까?"
"생존이요. 솔직히 당신들이 철혈팔기랑 초인동맹과 손잡고 우릴 적대하면 내겐 승산이 1%도 없습니다. 개인의 강함은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 의미가 바래죠."
호치택은 내심 당황했다. 광해가 압박을 못 이겨 이미 국가는 포기했고 돈이나 더 벌려고 스샷을 올렸다고 생각했다. 비록 생존이 목표라고 말문을 뗐지만, 그건 몸값을 부풀리려고 판을 까는 거로 생각했다.
돈은 철혈팔기와 초인동맹보다 적은 만리장성이었다. 적당한 돈을 주고 나머지는 정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입찰권 같은 거로 때우려 했는데, 광해는 국가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
'나라 망해도 자긴 먹고 산다는 말이 협박이었구나. 날 망하게 하면 네 적에게 간다는 뜻이었어. 무슨 이유로 이 한국 청년은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으려 하는 건가? 이번 고비를 넘겨도 더 큰 산이 앞을 가로막을 게 뻔한데도.'
"미안합니다. 솔직히 저희 내부에서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단지 우리가 기사단 소환하는 아이템이나 광산 탄광을 얼마나 원하는지 직접 말씀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생존 외에 더 원하는 건 없으신지요? 원하는 바를 최대한 들어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없습니다. 생존이 절실할 뿐입니다."
호치택은 미칠 것 같았다.
광해는 지금 킹메이커다. 광해의 광산과 탄광이 흘러가는 나라가 대륙을 제패한다.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은 처음부터 대륙 제패를 목표로 판을 짰다. 초인동맹이 지금 생각을 바꿔 광해와 손잡고 대륙을 제패하려 하면 야마토 꼴이 난다. 그저 대륙 한 귀퉁이에 만족할 목적으로 세력을 키웠기에, 갑자기 목표를 바꾸면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진행 내내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역천 길드 역시 대단하다지만, 머릿수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만리장성이 배틀넷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한국 유저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야마토를 흡수한 가미카제만 아니라면 과감히 광해와 손잡고 철혈팔기와 목숨 걸고 싸웠을 것이다.
'우리가 네크로와 손잡으면 철혈팔기와 가미카제가 연합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일이었으면 지금처럼 짜증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철혈팔기가 네크로와 손잡는다 해도 우린 가미카제와 연합할 수 없다.'
만리장성의 뒤를 봐주는 건 정부 고위인사였다. 정적들의 견제만 아니라면 철혈팔기와 초인동맹 핵심 유저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을지도 모르는 권세가였다.
그리고 수십 명 가족이 옛날 일본군 손에 목숨을 잃었다.
'철혈팔기와 연합하지 못하게 막기만 하면 된다. 가미카제랑 손잡으면 초인동맹까지 끌어들여 가미카제와 네크로를 동시에 해치우면 된다.'
가미카제를 상대한다고 하면 지금보다 훨씬 큰 폭으로 지원해줄 가능성이 크다.
'반형운 정보가 맞았어. 만리장성은 손잡을 상대가 아니야.'
호치택은 실수했다. 상대가 반형운 정도만 됐어도 방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레전드에서 도시 숫자 2위에 마을 숫자 1위의 세력을 일궜음에도 내심 무시했다.
그래서 포장을 덜 했다. 아이템과 광산 구매가 아닌 다른 대안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광해는 아무런 내색도 안 하고 호치택과 대화를 나눴다. 호치택은 자기 속마음이 들킨 것도 모르고 정보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광해 상대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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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나 아침을 푸짐하게 먹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자꾸 먹을 게 당겼다. 배가 조금 꺼진 후 머리를 감았다. 동해가 약속장소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반갑습니다. 나는 나카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역천 길드와 사이가 어떻습니까?"
'일본인은 직설적인 화법을 안 쓴다며?'
인터넷으로 일본인 성격을 알아본 광해는 푹 찌르고 들어오는 나카타의 질문에 당황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네크로와 가미카제 그리고 역천의 연합. 초인동맹의 중립. 이게 우리가 그리는 시나리오입니다. 관련 비용은 전부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반형운과 사이가 틀어진 가미카제이기에 화해가 필요했다. 게다가 초인동맹이 중립하게 하는 비용도 자신들이 부담한다고 했다.
'레전드의 비전이 이 정도인가?'
최소 수천억은 되는 금액인데도 스스럼없었다.
'제길.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아?'
광해는 지금 자신이 국가 규모의 적을 상대로 싸우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전에도 머리로는 알았지만, 나카타와 마주한 지금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신 있습니까?"
"친자 확인을 해도 100% 일치하진 않죠. 수학적으로는 0.01% 정도 남의 자식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계약 사항에 관해서는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습니다."
"초인동맹과 접촉한 적 있습니까?"
"역천과 초인동맹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비용은 우리가 전적으로 부담합니다."
가미카제 역시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만리장성이 자신들을 노리는 건 이미 알았다. 야마토가 중국 쪽에 정보망을 구축했는데 그걸 가미카제가 고대로 흡수했다.
만리장성은 가미카제와 철혈팔기의 연합을 걱정했지만, 가미카제는 철혈팔기와 손잡는 것에 회의를 품었다. 철혈팔기는 내부 계파가 꽤 복잡했는데, 다른 계파가 권력을 잡으면 기존 계파가 했던 약속을 어길 가능성이 무척 컸다.
'가미카제에 뭔가 판을 뒤집을만한 아이템이 있다.'
대륙섬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얻었을 가능성이 컸다. 실패하면 대륙에 자리 잡기 힘든 상황인데도 나카타는 무척 침착했다. 네크로와 역천과 연합하면 해볼 만하다는 뉘앙스를 무의식적으로 내비쳤다.
조금은 불편했던 점심 식사를 끝내고 호텔로 갔다. 베이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커피 못 마십니다."
광해는 커피 한 모금만 마셔도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얼마를 원합니까? 우리가 모두 사겠습니다."
'어린 새끼가 싸가지 하고는.'
"뭘 산다는 말입니까?"
"탄광, 광산, 아이템. 우리가 모두 사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세력이 어디죠? 거기에 10% 붙이겠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경매장에 올릴게요."
"아니. 돈 외의 다른 것들이 필요해서 게시글 올린 거 아니었나요? 원하는 걸 얘기하면 다 들어드릴게요. 경매장은 마지막 1초에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르잖아요."
초패왕 생각이 틀렸다. 베이가 사고 치면 책임자가 나와 수습하려는 속셈이 아니고 그냥 베이가 책임자였다. 누구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를 자신이 있기에 나이가 어린 베이를 보낸 거였다. 서른 갓 넘은 광해를 상대할 위치가 아니라는 생각에 해외여행 가고 싶었던 베이가 당첨됐다.
"다 팔면 우리 국가 보호해 줍니까?"
"네? 다 팔면 엄청난 부자가 되실 텐데. 세계 여행도 하고 그러셔야죠."
'말이 안 통하는 애새끼군.'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지만, 정신 연령을 따지자면 베이가 광해를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버릇없다고 뭇매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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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우리 정분나겠습니다."
반형운의 농담에 광해는 몸서리쳤다. 성필이나 현성이 이 말을 했다면 농담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너무 잘생긴 반형운이 하니 왠지 속이 울렁였다.
"만리장성은 손잡을 생각이 전혀 없더군요. 가미카제는 손에 무슨 패를 쥐었는지 우리와 힘을 합치면 철혈팔기와 만리장성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더군요."
"오만입니다. 가미카제 간부들은 자기 것만 보고 남을 살피지 않습니다. 정보 수집과 분석은 아마추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세력들도 대륙섬에서 얻은 게 있는데 야마토가 발굴한 유품들까지 보유하고 나니 기고만장한 거죠."
"철혈팔기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다른 세력은 적당히 원하는데 놈들은 내 모든 걸 다 돈으로 사겠다고 하더군요."
"만리장성과 철혈팔기를 배제하면 남은 세력이 모두 손잡아야 하는데요. 초인동맹이 과연 여론의 질타를 무릅쓰고 가미카제랑 손잡을지 의문입니다."
"초인동맹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신중함으로 보건대 정보를 수집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중함뿐 아니라 결단력과 실행력도 장난 아니죠. 수십만 명을 둔 세력이 마을 하나 점령하지 않는 걸 보면 군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걸 건 싸움에서는 이런 사람이 맞은편이 아닌 곁에 서주면 정말 든든하죠."
"그리고 지금 저들이 무시하는 게 있는데, 저는 드워프 왕국의 노말과 매직 아이템을 독점했습니다. 그리고 세라프를 통해 식량을 사들이는 건 우리 셋이 독점했고요."
"초인동맹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것 같습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니깐요. 반형운 씨도 다른 서버 세력을 받아들일 생각 없습니까?"
"아니요. 나는 대한제국을 흡수할 계획입니다. 배용수 그 친구는 모자란 부분이 꽤 있는데, 따르는 사람은 많더군요. 배용수만 설득하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제 좋은 소스 주셔서 적당한 기회에 써먹을 생각입니다. 왕의 혈통이 없어서 어디든 빌붙어야 하는 신세거든요. 광해 씨가 지금 위태해 보여서 선택지가 좁습니다. 설득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북미 세력은 국가를 안 세운답니까?"
"내가 동북부로 옮겨가길 기다리는 겁니다. 북부와 동북부는 우르크가 득실대니깐요. 혼자서 감당하기엔 엄청 부담되죠."
광해는 속으로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최저의 대가로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제게 괜찮은 시나리오가 생겼습니다. 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저랑 비슷한 생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맹을 맺지 않아도 아군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도 있죠."
"하하. 기분이 상쾌합니다."
반형운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게임에 접속했다. 바로 생방송 광고를 올린 후 해동청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해동청은 몹을 잡으며 놀게 하고 제이크와 함께 낚시에 열중했다.
마치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해맑게 웃으면서 낚시에 몰두하는 네크로 때문에 각 세력은 머리를 아프게 굴렸다. 누구랑 손잡은 게 아닌지, 좋은 가격으로 아이템을 팔아치운 건 아닌지.
그러나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광해의 얼굴은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냥 다 팔아치우고 게임 접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고 들어왔다.
경쟁자가 많아서 비싸게 팔아먹기 딱 좋은 기회였다. 달걀을 들고 어느 바위를 깰지 머리 깨지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며칠 푹 쉬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말
곧 3탄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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