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웜 레이드6
"비수 없는가?"
조각상은 그레이트 웜을 꾹 누르고 네크로에게 질문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궁한 네크로는 침묵을 지켰다.
"다들 도망가라."
조각상의 말에 드워프 대장로가 질문했다.
"아예 방법이 없습니까?"
"이놈은 지금 내 힘에 적응했다. 진정한 신이라면 계속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난 임시 신이다. 드워프의 신이 직접 만든 비수를 희생하면 이놈을 죽일 수 있지."
'오판이구나. 비수는 마지막 일격 용도로 쓰이는 거구나. 도둑 유저나 도둑 용병이 없어도 쓸모 있는 아이템이었어. 내가 작은 이득에 눈이 멀었구나.'
"계속 누르고 계시면 저희가 방법 찾겠습니다."
"이놈은 계속 변이 중이다. 난 발전 없이 그대로인데 이놈은 점점 강해진다."
"혹시 다른 신의 힘을 품은 존재가 공격하면 그레이트 웜을 죽일 수 있습니까?"
네크로는 간절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럼."
"얼마나 잡아둘 수 있습니까?"
"반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
해동청이 레벨4로 등장하려면 68시간이나 걸린다. 현실 시간으로.
"저놈이 풀려난 후 시간 끌어줄 수 있습니까?"
"이놈이 풀려나고 10분 정도면 내가 파괴되겠지."
미스릴 조각상은 포기.
"대장로님, 혹시 뭐 방법 떠오르는 거 없습니까?"
"이것도 신의 뜻이겠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제이크. 그레이트 웜 약점."
"내가 엿볼 상대가 아니다."
제이크도 끝. 다시 대장로에게 질문했다.
"도룡노로 다시 용암에 담가서 시간 벌 수 없을까요?"
"힘들 거야. 아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쇠뇌가 박히지 않을지도 몰라."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웜의 머리에 뿔이 솟아났다. 그리고 등에도 뿔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돌기들이 솟았다. 미스릴 조각상이어서 땀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점점 힘겨워하는 게 느껴졌다.
엉덩이에서도 꼬리가 삐져나왔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짧고 가는 꼬리지만, 허리 쪽을 누르는 조각상의 오른손을 점점 강하게 때렸다.
'내 아이템 중에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까?'
아무리 봐도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왕관의 스킬 '왕실 기사단'도 죽음의 군단과 비슷한 스킬이다.
성큼성큼 다가간 네크로는 드워프의 보물을 들고 그레이트 웜을 몇 대 때렸다. 그러나 접촉만으로 뚝뚝 떨어지는 생명력 때문에 바로 물러서야 했다. 용암에 담그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접근해도 괜찮았는데, 그새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이것도 아닌가? 비수는 드워프의 신이 직접 만들었고 드워프의 보물은 드워프들이 만든 거랬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레이트 웜이 점점 흉악하게 변했다. 네크로는 스탯을 살폈다. 신앙이 겨우 5여서 무릎을 꿇어도 기도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알드로시여, 제발 기적 좀 내려주소서."
신앙 스탯이 10이라면 무릎을 꿇으면 기도문이 생긴다. 이젠 성기사인 네크로가 기도문을 정확히 읽으면 기적이 생긴다. 그게 아니라면 에르제베트 때처럼 신이 알아서 기적을 내려줘도 된다.
그레이트 웜의 반항이 점점 심해지고 미스릴 조각상은 점점 버티기 힘들어했다. 무릎과 손 하나씩만 쓰던 처음과 달리 손발 모두 동원했다.
둘러보니 드워프들은 여전히 느긋했다. 모든 걸 신에게 맡긴다는 게 말뿐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고 신에게 맡긴다. 엄청 건전한 종교잖아.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네크로에게 기적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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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네크로 형 대박이네. 수도만 남기고 남은 도시와 마을을 모조리 점령하라고 그랬거든. 그러면 모든 일이 풀릴 거라고."
광신도 진돗개 때문에 네크로는 제갈량이 되었다.
수도만 남은 야마토 길드는 몰락이 뻔했다. 진돗개가 수도를 공격하면 그걸 빌미로 유저들을 단합할 텐데, 다른 도시와 마을은 순식간에 빼앗아가고 수도는 그냥 놔뒀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결속력이 사라졌다. 마나 동결 NPC를 얻는 과정에 너무 큰 희생을 했다. 도시를 양보하고 마을을 포기한 것에 관해 세력 구성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괜히 정보가 샐까 봐 극도로 조심한 건데, 그것 때문에 민심을 다 잃었다.
야마토 길드는 마지막 뒤집기를 시도했다. 수도를 버리고 대륙섬과 가까운 곳에 가서 도시 하나 점령했다. 네크로가 퀘스트 완성하면 대륙섬에 광산과 탄광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길드의 모든 힘을 대륙섬에 쏟아붓기로 했다.
덕분에 진돗개는 야마토 수도에 거의 무혈입성했다. 애국심에 몸 바쳐 수도를 수비한 NPC 몇천을 해치우고 도시를 점령했다.
"근데 돗형, 야마토는 왜 이렇게 된 거야? 분명히 우리보다 강했고 돈도 많았잖아."
"나도 예전에 네크로 형한테서 들은 건데. 와씨, 지금 생각하니까 또 소름 돋는다."
"뭔데, 좀 말해줘 봐."
"네크로 형이 그랬어. 야마토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라고. 용이 되려고 꿈꾸는 잉어인데, 실패하면 죽음이야. 힘 다 빠져서 어부한테 잡힐 거라고 그랬어."
"피형, 돗형 말 알아들었어?"
"나도 그때 함께 들었거든. 쉽게 말하자면 이인자의 비애야."
셋은 야마토 수도였던 도시의 성인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성인 주점이라고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고,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몸매의 남성과 여성들이 천을 무척 아낀 옷을 입고 춤을 췄다. 당연히 남자를 볼지 여자를 볼지 선택할 수 있었고, 셋은 바니걸들이 흐느적거리는 동쪽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은 세력이 딱 둘이야. 가미카제랑 야마토. 가미카제는 황태자고 야마토는 서자나 마찬가지야. 대륙 진출만 봐도 가미카제가 먼저 진출했고 야마토는 포탈이 뚫린 후에야 대륙에 진출했어."
"여기 또 얘기가 있는데, 야마토는 원래 이인자 자리에 만족하려 했어. 모든 면에서 가미카제에게 밀리니까. 일본 애들은 안 되겠다 싶으면 허리 숙이는 거 잘하잖아. 근데 가미카제가 왕의 혈통 관련 에픽 퀘스트 하다가 그만 실패했어. 그게 야마토의 야심을 부추긴 거야."
진돗개가 이세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풀었다.
"야마토는 반항을 시작한 순간 호랑이 등에 올라탄 셈이야. 등에서 내려오면 호랑이한테 먹혀. 그래서 야마토는 서부에 수도 만들고 동부에 가서 고구려와 싸우려 했어. 가미카제를 몰락하게 하면 가미카제로 가던 지원 대부분이 야마토로 넘어갈 거거든. 일본인이 왕인 야마토가 고구려 세력에 합류한 가미카제보단 명분이 더 세지."
현피가 진돗개의 말을 이어받았다.
"여기서부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얘기야. 먼저 야마토는 대륙에 진출하려는 꿈이 짓밟혔어. 역천이 야마토 배를 모두 가라앉혔거든. 항해일지를 참조해 대륙으로 가면 희망의 등대 혹은 대륙 북부밖에 도착할 수 없어. 포탈로 그냥 와도 되지만, 대륙에 가서 세력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배를 끌고 왔는데 그게 허망하게 끝난 거지."
"그다음 서부에서 수도 하나만 차지하고 동부에 가서 고구려랑 싸운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확장했어. 후에야 알려졌지만, 역천이 빙하시대 스킬을 써서 중서부의 우르크들이 쫄쫄 굶게 생겼던 거야. 왜 우릴 공격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성이 공격 목표가 되어 우르크들이 엄청 몰려왔어. 우리도 몇 번 전투 참여해서 수비 도왔잖아. 그러고 나서 우르크가 줄어든 성과 마을을 마구 점령했어."
"근데 중서부가 음식이 귀해진 게 역천 스킬 때문이라는 게 알려졌지. 그래서 야마토는 급하게 우리한테 도시 좀 가져가 달라고 한 거야. 우린 탄광이 있어서 도시로 들어가는 투자가 다른 길드 절반도 안 되거든. 게다가 네크로 형이 어떻게 노예 문서 얻어와서 우리 인구가 그때 600만이었나 그랬을 거야."
"그리고 우르크에게도 도시 3개를 내줬지. 그리고 그 후에 우리한테 하나를 떠넘기다시피 했고. 그것 때문에 일본에서 엄청 욕먹었어."
"그리고 길드원 10만을 드래곤 산맥에 보내 삽질했지. 이것도 후에 알려진 거지만, 마나 동결 NPC를 얻으려고 간 건데, 가미카제에서 방해할까 봐 일부러 연막탄을 친 거래."
"형, 아무리 연막탄이라고 해도 10만이나 보내는 건 미친 짓 아냐?"
"연막탄 겸, 전투 훈련도 하라고 보낸 거래. 마나 동결 NPC만 찾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렇게 마나 동결 NPC를 얻은 다음 만리장성과 협상했대. 근데 협상이 잘 안 풀려서 바로 공격하지 않았는데, 철혈팔기가 갑자기 고구려 공격한다고 나선 거야. 급하게 협상한 후, 바로 수도 무너뜨리고 쉽게 고구려 먹어치우려고 했지."
"고구려 수도에서 드래곤들에게 개박살 났지."
"일본 유저가 왕인 국가여서 일본에서 꽤 인기 있는 길드였는데, 거듭되는 실패로 욕을 엄청 먹었어. 차라리 가미카제 길드 밑으로 들어가라는 여론이 형성됐지. 그래서 가장 강력한 혐한 카드를 꺼낸 거야. 우리 혹은 고구려를 해치워서 여론을 돌리려고 했지. 여론이라는 걸 무시 못 하는 게, 이번 우리랑 야마토 싸울 때 다른 서버 유저들이 수십만 명이 지원 왔잖아. 일본 유저들이 야마토 도우러 온 게 몇만 안 된다더라."
"돗형, 형 얘기대로라면 내 형이 이걸 다 예측했다는 거 아냐?"
"그렇지. 야마토가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이미 여기까지 다 계산한 게 아닐까 생각해."
"돗개야, 그건 좀 오바다."
"야마토가 도시 양도한다고 했을 때 네크로 형이 넙죽 받았다니까. 그리고 야마토가 우릴 공격하려고 한다고 내가 말하니까 역습해서 야마토를 아예 밀어버리자고 했어. 지금 우리 길드 지지율이 역천을 추월했어. 네크로 형이 야마토 밀어버리면 우리가 한국 유저들 지지를 엄청 받을 거라고 했는데 말한 대로 됐잖아."
"형은 어릴 때부터 뭔가 좀 남달랐어. 축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야 이 광신도들아, 니들하곤 말이 안 통해."
"동해야, 이런 불신자와 말 섞지 말자."
"근데, 지금 네크로 형 뭐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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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활성화."
- 신앙 스탯 5 소모합니다. 강신 스킬 활성했습니다.
"강신 설명."
네크로는 몸을 점점 크게 들썩이는 그레이트 웜을 차분하게 바라봤다. 임시 신의 신성력에 적응했으나 인간의 신인 바알드로의 힘에는 반드시 데미지를 입는다. 스킬 설명을 다 들은 네크로는 안심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쿨타임이 30일이고 스킬 후유증으로 게임 시간 24시간 엄청난 디버프를 받는 걸 제외하면 다 좋은 거였다.
"강신."
그레이트 웜을 상대하는 임시 필드는 바닥엔 단단한 검은 바위가 깔렸고 하늘은 그저 새까만 공간이었다. 그 새까만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와 네크로를 찬란하게 빛냈다.
'아우 멀미.'
네크로의 몸이 점점 커졌다. 그레이트 웜과 미스릴 조각상이 비슷한 크기였는데, 네크로는 둘보다 머리 두 개 정도 더 크게 변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신성을 탐하면 마가 되는 법이지."
네크로는 통제력을 잃고 일인칭 시점으로 관찰하기만 했다. 강림한 신이 네크로의 입을 빌려 그레이트 웜에게 판결을 내렸다.
"과욕은 멸망의 지름길이다. 힘만 취하고 신성을 버렸다면 드래곤이 되었을 텐데. 참 안타깝구나."
미스릴 조각상이 그레이트 웜의 힘에 밀려 멀리 튕겼다. 그러나 그레이트 웜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다시 바닥에 누웠다. 네크로의 크기에 맞춰 어마어마하게 커진 드워프의 보물이 그레이트 웜의 머리를 힘껏 때렸다.
'피통 움직였다.'
네크로는 멀미가 너무 심해 눈 감고 눕고 싶지만, 신에게 통제권을 빼앗겨 아무것도 못 했다. 자꾸 치미는 욕지기를 참으며 전투를 구경해야 했다.
"억울하다고? 억울할 거 없다. 너는 신성을 얻을 자격이 처음부터 없었다. 신성을 얻은 후 신성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려는 노력도 없었다. 신의 파편에 휘둘려 광산이나 탄광을 삼키기나 하고. 강한 자들을 몰래 사냥하기나 하고."
배변장에서 유저들이 찾아낸 에픽 및 레전드 아이템의 출처가 밝혀졌다.
"힘만 얻고 격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파멸밖에 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멍청한 것도 죄야. 특히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얻었을 때는 죽을죄가 되기도 해."
망치로 힘껏 내려치자 그레이트 웜의 몸이 전기 고문받는 사람보다 더 격렬하게 떨렸다. 지진이 사라지고 태풍이 망치 머리를 감쌌다.
"봐라. 신성을 얻고도 겨우 자연재해 하나 버티지 못하다니."
지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풍도 옮겨갔다. 신은 네크로의 손을 태풍에 밀어 넣었다. 엄청 강한 태풍이건만, 네크로는 따뜻한 욕조에 손 넣은 것처럼 편한 느낌만 받았다.
"시간이 얼마 없구나. 서둘러야겠다."
양손 망치인 드워프의 보물을 한 손으로 잡은 바알드로는, 엄청 빠른 속도로 그레이트 웜을 두들겨 팼다. 마지막 1%의 피는 정말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내려갔다.
-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 바알드로가 네크로 성기사의 행적에 아주 만족합니다.
- 떠나기 전에 신앙 스탯 3을 선물했습니다.
- 대륙을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전설 급 이벤트 퀘스트 완성으로 한 달에 걸쳐 명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퀘스트를 완성했기에 보상을 강화합니다.
- 드워프 일족이 신을 다시 영접했습니다. 대륙섬은 드워프 왕국이 됩니다. 대부분 드워프는 드워프 왕국에서 생활합니다.
- 대장로가 드워프 왕이 되었습니다.
- 미스릴 조각상에 깃든 임시 신이 드워프 신이 되었습니다.
- 당신의 도움 덕분에 신이 된 드워프 신 타루그가 감사를 표하려 합니다.
- 전대 드워프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레이트 웜을 처단했기에 갓 신이 된 타루그의 권능이 한결 강해졌습니다.
네크로의 망치 드워프의 보물이 손을 떠나 타루그의 손에 넘어갔다. 바알드로가 떠나면서 네크로의 몸이 천천히 작아졌다. 멀미가 서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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