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흔적을 찾아서1
"동료가 필요한가?"
숙영지엔 셋밖에 없었다.
눈알 하나 없는 늑대 인간. 머리가 잘려도 바로 안 죽는 늑대 인간이 어떻게 애꾸눈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눈알이 뽑혀도 재생하는 게 늑대 인간이었다.
"우르크?"
하나는 놀랍게도 우르크였다.
"인간이군. 난 황실에 적대하는 세력이다. 그러니 우리끼리 싸울 필요 없다."
중앙섬에도 황실에 적대하는 세력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그 우르크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륙 상황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드워프 맞는가?"
왼팔이 잘린 드워프. 드워프는 전부 왼손잡이였다. 맥주는 오른손으로 마시고 망치는 왼손에 들었다.
"마법 드워프다. 이단이라고 팔 잘리고 쫓겨났다."
숙영지에서는 거짓말을 못 한다. 유저가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
"신의 흔적을 찾고 있다."
진돗개가 대표로 나섰다. NPC를 상대하는 건 레전드를 가장 많이 공부한 진돗개가 적격이었다.
"난 우르크의 신도 믿지 않는다."
우르크가 바로 거절을 표했다.
"난 내 눈알을 재생할 방법을 찾고 있다. 신의 흔적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군."
"난 마법을 사용하는 드워프. 내게 신은 필요 없어."
"다른 숙영지 정보가 혹시 있는가? 드래곤 산맥을 잘 아는 동료가 필요한데."
"서북쪽으로 30리 가면 숙영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깊은 밤이지만, 게임에서 잘 필요도 없고 시야가 방해받지도 않았다. 스킬이나 게임 설정으로 시야가 방해받지만 않으면, 아무리 어두워도 앞이 보이는 레전드 세상.
"이벤트 몹이다. 트롤."
철벽이 천벌에 이은 도발로 몹을 잡아뒀다. 키가 4미터 정도 되는 몹의 정체는 트롤이었다. 상대하기 정말 귀찮은 몹이고,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는 특성 때문에 잡기 힘든 몹이다.
그러나 네크로 일행에겐 쉬운 몹이었다. 컨트롤이 뛰어난 네크로와 진돗개가 있고, 공격 타이밍을 정확히 재는 동해가 있었다. 동해는 전투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네크로나 진돗개가 기회를 만들어줬을 때 거의 놓치지 않았다.
"이교도 심판."
트롤은 아주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네크로가 맨손으로 트롤의 두 팔을 뒤로 당긴 후 발로 허리를 밀었다.
"투심권."
투심권이 회피율이 엄청나게 떨어진 트롤 심장에 꽂혔다. 심장이 정통으로 맞은 트롤은 경직 상태에 빠졌다. 미처 경직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진돗개의 참수 스킬이 터졌다. 재생능력이 뛰어난 대신 방어력은 평범한 트롤은 바로 목이 잘렸다.
"야, 트롤 민첩 엄청나. 빨리 처리해."
리자드 주술사는 수백 마리 리자드를 다 처리할 때까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잡아뒀던 네크로가 앓는 소리를 냈다. 보통 머리를 떼면 민첩이 떨어지는데, 트롤은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오빠, 머리 두고 도망치고 그래요?"
철벽은 20세, 한창 궁금한 게 많은 나이였다.
"머리도 재생하는 놈이야.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머리 버리고 도망쳐."
진돗개와 현피가 트롤 머리를 공격하고 철벽과 동해는 네크로를 도와 몸뚱이를 잡아뒀다. 철벽은 트롤이 도망 못 치게 잡아두는 데 주력했고 동해는 심장을 때리며 트롤의 피통을 깎아냈다.
"와, 몹 하나 잡는 데 6분이나 걸렸어."
투라칸 잡을 때 30분 이상 걸렸었다. 그런데 그땐 너무 긴박한 상황이어서 다시 돌이켜보면 전투 기간이 짧았던 것 같았다. 트롤은 어려운 상대가 아니어서 6분밖에 안 걸렸는데도 어렵게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오, 제이크 칼 들었어."
"심장 부위야. 갑옷 아니면 목걸인데."
트롤로부터 레어 목걸이를 얻었다.
이름 : 트롤의 심장
분류 : 목걸이
등급 : 희귀
능력 : 생명력 회복 속도 증가
특별 : 체력 수치에 따라 회복 속도가 변화
"철벽이 써. 그래도 옵션이 좋아서 감정 스크롤 값은 했어."
인간 도시에선 구할 수 없고, 드워프가 가끔 판매하는 감정 스크롤이다.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레어 이상의 템을 은행에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반투명한 붉은 색 목걸이를 착용한 철벽이 새물새물 기쁘게 웃었다. 겨우 레어지만, 디자인은 유니크는 물론 네크로의 에픽 목걸이보다도 훨씬 이뻤다.
'아직 애야. 내가 아버지 몫까지 다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철벽의 기분이 무척 업됐고, 덩달아 일행도 얼굴에 미소가 꽃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찾은 숙영지는 열이 넘는 방랑자들이 있었다.
"신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다. 합류하고 싶은 자는 자기 재주를 밝혀라."
대부분 신의 흔적 따위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는 숲의 전사다. 너희는 어떤 신의 흔적을 찾는 것인가?"
활 세 개를 멘 사냥꾼이었다. 아주 작은 단궁과 크기가 사람 키보다 큰 장궁, 그리고 장궁보다는 작지만 활대가 금속으로 보이는 강궁까지 등에 멨다. 화살집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이 최소 유니크로 보였다.
"인간이 섬기는 잊힌 신의 흔적을 찾는다."
숲의 전사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을 표했다.
"개부리 부족의 게륵이다. 특기는 무구 수리와 강화다. 우리 부족은 신 대신 자연을 믿는다. 난 신의 품이 그립다."
"늑대 인간인가?"
"아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종족, 발톱과 송곳니를 버린 대신 정교한 손을 얻었지."
얼핏 늑대 인간과 비슷했지만, 덩치가 작고 손가락이 길었다.
"우리는 고기를 익혀 먹는다. 그래서 털도 늑대 인간보다 적다."
"오빠, 나 쟤 마음에 들어."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쉽게 뺏길 정도로 귀엽긴 했다. 손가락이 긴 손도 징그럽지 않게 통통하고 귀여웠다.
"우리 일행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
게륵은 네크로를 쳐다보다가 제이크를 보았다. 티 나게 한숨을 쉰 게륵은 눈길을 진돗개로 옮겼다.
"아, 자존심 상해. 쟤 지금 꿩 대신 닭이라는 거지?"
파티 채널로 진돗개의 불평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기준이 뭐야?"
"명성 같아."
"그럼 네크로 형은 희망의 등대에 갓 왔을 때부터 제이크가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명성 높았다는 거야? 그럼 우리는? 우리도 지금 명성이 엄청 높잖아."
"기준이 단순하진 않겠지."
"진돗개야,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냐. 대화 좀 더 해볼게."
채널을 교체한 진돗개가 게륵에게 말을 걸었다.
"수리랑 강화. 그 외에 무슨 재주가 있는데?"
"다 아는 것도 말해야 해?"
"응. 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우리가 모를 수도 있거든."
"냄새 엄청 잘 맡고 땅밑에 숨긴 음식 잘 찾아내. 귀가 밝아서 은신한 상대도 잘 발견하고. 그리고 아이템 감정도 할 수 있어."
"괜찮은 것 같아. 방금 말한 건 아마 종족 특성인 것 같고, 아이템 수리랑 강화는 게륵만의 스킬일 가능성이 커."
파티 채널에서는 동의하는 분위기로 갔다.
"이래서 이름 잘 지어야 해. 이름이 진돗개니까 개처럼 생긴 용병이 생기잖아."
진돗개의 푸념에 모두 배를 그러안고 웃었다.
진돗개와 게륵이 용병 계약을 맺었다. 네크로에 이어 진돗개도 용병의 선택을 받았다. 숙영지에 머물던 자들도 힘찬 박수로 둘을 축하했다. 현피가 엄청 강해 보이는 오우거 전사에게 한참 질척거렸지만, 오우거 전사는 현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한 현피를 억지로 끌고 숙영지를 떠났다. 게륵은 작은 망치와 이상한 공구 하나 들고 언데드들의 장비를 일일이 수리했다. 원래 설정이 그런지 게임이어서 편의성을 추구해서인지, 게륵은 걸으면서 언데드가 착용한 아이템을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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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추워?"
부들부들 떠는 게륵에게 제이크가 시비 걸었다. 은신술이 게륵에게 들킨 이후 둘의 사이는 급격히 악화하었다. 덕분에 제이크의 은신술 숙련도가 쑥쑥 올랐고, 게륵의 은신 탐지 스킬도 쭉쭉 나아졌다.
"우린 익힌 고기를 먹어 털이 짧다고. 당연히 춥지."
"추운 건 지방층 두께랑 상관있어. 털이 짧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럼 여름에 왜 털갈이하는 건데? 털 길이도 분명히 상관있다고."
"애들 대화 수준이 너무 높아."
제이크는 곧 13세가 되고 게륵은 지금 3살이다. 대화만 들으면 상식이 어마어마한 전문가였다. 현실은 속 좁은 두 꼬마지만.
"아직 투라칸이 부활할 시기는 아니지?"
"게임 시간 반년이니까 좀 더 있어야 부활해."
현실 시간으로 열흘, 게임 시간으로 한 달을 꼬박 투자해서 파열의 협곡에 도착했다. 게륵의 합류로 빠른 길을 찾아내는 바람에 진도를 훨씬 앞당겼다. 제이크는 방향을 잘 찾지만 길은 게륵이 더 잘 찾았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이유는 은신술뿐이 아니었다.
"우리가 왔다."
"오오, 투라칸에게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혀 쫓아낸 용사들이 왔구나."
부활의 여지 없이 죽인 게 아니어서 NPC들에겐 투라칸이 상처를 입고 도망친 것으로 기억되었다. 구룩 부족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추위가 덜해졌다. 게륵은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 감탄했고, 제이크는 그런 게륵을 촌놈이라고 골려댔다.
"잊힌 신의 흔적을 찾으라고 하는데, 가장 먼저 이곳이 생각났습니다."
이번 대화는 네크로가 이끌었다. 진돗개보다 네크로의 명성이 훨씬 높았다. 생소한 NPC를 상대하는 덴 진돗개가 낫지만, 안면이 있는 이들을 상대할 때는 명성이 높은 네크로가 더 많은 정보를 끌어냈다.
"난 원래 전사였네. 부상으로 다신 칼을 들 수 없어서 신에게 끊임없이 기도했지. 내 정성이 갸륵했는지 신께서 내게 자신의 종이 되라고 허락하셨네."
"내가 신의 종이 될 때 신의 품을 아주 잠깐 느꼈지. 그때 느낀 다섯 기운이 있는데, 그중에 둘이 이 근처였어."
파티 채널에서는 이미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배를 들었다.
"하나는 파열의 협곡 깊은 곳이고 하나는 저기 보이는 불새의 봉우리라네."
온통 눈으로 덮인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검은 땅을 드러낸 곳이었다.
"저긴 레오칸의 본거지야. 곰 주제에 불의 기운을 사용하고 투라칸과는 앙숙이지. 레오칸은 아무 조짐도 없이 나타났다네. 수명도 수백 살이나 되고. 아마 신의 흔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네."
"두 곳 가운데 가망이 큰 곳은 어딜까요?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신의 이름이 너무 오래 잊혔습니다."
그웩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불새의 봉우리가 더 어렵긴 하지만, 신의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네. 자네들 혹시 나를 받아줄 수 있는가?"
그웩의 뜬금없는 요청에 다들 깜짝 놀랐다. 유저들뿐 아니라 함께 그룩 부족에서 수십 년 생활한 NPC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께선 내가 그대들을 도와 신의 흔적을 찾아내길 바라네. 그러나 난 여길 떠나서 죽으면 영원히 세상을 떠나야 하네. 죽어도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누군가의 용병이 되어야 하지."
"여기 신을 섬기는 성기사가 있습니다."
"자격이 부족하네."
"마법사도 괜찮으시다면."
"마법사는 안돼."
마법사는 거의 망나니 취급이었다.
"무인은 괜찮겠죠?"
"아슬아슬하게 기준을 만족하네. 이것도 신의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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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유저와 세 명의 용병, 그리고 수천 마리 언데드가 불새의 봉우리를 향해 움직였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불새의 봉우리였지만, 레오칸이 나타난 후 불새는 전부 쫓겨났다. 불마저 태워버리는 불을 얻은 레오칸에게 불새들은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냉기를 다루는 투라칸의 약점이 물인데, 정작 불을 다루는 레오칸은 물이 약점이 아니라니. 뭔가 이상해."
불새를 다 쫓아낸 레오칸은 홀로 봉우리 하나를 영역으로 삼았다. 그리고 후계자를 죽인 투라칸을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투라칸의 영역에서는 레오칸이 밀리고 레오칸의 영역에서는 투라칸이 밀렸다.
"그래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근데 불을 다루는 곰이 왜 동면을 한대?"
한 달에 한 번, 반나절씩 레오칸은 동면을 했다. 그 시간에 맞춰 투라칸이 파열의 협곡에 가서 밤의 결정을 찾고, 레오칸이 깨어나서 투라칸의 소굴까지 달려갈 시간을 계산해 정확히 30분 만에 퇴각했다.
"레오칸의 무력은 투라칸보다 훨씬 강해. 그게 아니면 늑대를 백만 마리 이상 거느리는 투라칸이 레오칸을 가만뒀을 리 없지."
"불을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 냉기를 다루는 투라칸 제외하면 나머진 레오칸에게 접근도 어려울 거잖아."
"지난번 우리가 투라칸 잡았을 때, 레오칸이 투라칸의 새끼들을 많이 죽였을까?"
듣고만 있던 그웩이 끼어들었다.
"투라칸이 크게 다치자 드래곤이 개입했어. 투라칸의 암컷과 새끼들은 절반 정도만 죽었다네."
어느새 불새의 봉우리 밑에 도착한 일행은 레오칸이 수면에 들기를 기다렸다. 동면이라고 하기엔 불새의 봉우리는 열기가 장난 아니었고, 잠자는 기간도 겨우 반나절에 불과했다.
"오늘 작전의 핵심은 제이크와 게륵이야."
네크로의 말에 두 꼬마는 콧대를 높이 세웠다.
"둘이 신의 흔적을 최대한 빠르게 찾아내야 해. 찾아내고 우리한테 알려줘. 레오칸이 깨기 전에 찾아내면 가장 좋은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최대한 레오칸을 잡아둘 테니까 딴생각 말고 신의 흔적 찾는 데 몰두해."
동해와 진돗개의 와이번 그리고 현피의 그리핀은 데려오지 못했다. 마구간처럼 사용하는 와이번의 막사와 그리핀 막사에 맡겨뒀는데, 역천이 접근 제한을 걸어버리는 바람에 막사를 출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행 모두 뚜벅이가 되었고, 게임 시간으로 한 달에 한 번 오는 기회라 서둘러 출발했다.
일행은 불새의 봉우리 밑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불새의 봉우리엔 레오칸만 살고, 봉우리 근처엔 서식하는 몹이 없었다.
"레오칸이 잠들었다. 시작하자."
제이크와 게륵이 다정하게 손잡고 달렸다. 일행도 주변을 유심히 살피면서 천천히 봉우리에 올랐다. 현실 시간으로 4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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