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레벨 퀘스트
역천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신의 수호를 받는 우르그르를 빙하시대 범위에 넣을지 말지 결정할 수 없었다.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게임이 아니어서, 신과 관련한 일은 벌어지고 나서야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돈을 아무리 써도 알아낼 수 없는 정보다.
'빙하시대가 실패해도 나랑 상관없다. 걱정되는 건 신이 내게 반격할 수 있다는 점이지.'
어마어마한 투자 제안이 들어왔다. 고려신문 따위는 구멍가게로 보는 거물이 역천 길드에 관심을 보였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줄이다. 가미카제가 언젠간 수작을 부릴 거다.'
중요한 담판이 아니었다면 수도를 무조건 포함했겠지만, 혹시 빙하시대를 펼치다가 신의 반격을 받아 투자가 무산될까 봐 걱정됐다.
'욕심을 버리면 길이 보일 텐데. 욕심을 버리면 사람이 아니지.'
역천은 길드와 국가 사무를 끝내고 로그아웃했다.
"이광해 씨. 잠깐 얼굴 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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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우르크 군대는 여전히 80만이었다. 성급한 판단이긴 하지만, 우르크는 80만 이상의 군대를 운용하는 게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다.
"역천에서는 지금 바로 빙하시대 스킬을 써주십시오."
철혈팔기의 요청에 역천은 결심을 내렸다.
'우르크가 해결되면 첫 타깃은 가미카제고 다음은 네크로다. 수도를 배제한다.'
네크로를 만나 넌지시 수도를 포함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러나 네크로라고 별수 없었다.
네크로는 대도서관에 용혈의 용도를 묻고 쿨타임이 돌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신과 관련한 질문은 사서도 말을 아꼈다.
신의 반격을 걱정한다는 역천의 말에 네크로는 고개를 저었다.
"약한 종족의 신만 강하게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나 우르크의 신은 직접 개입하는 게 힘듭니다. 우르크가 직접 반격하면 모를까."
'우르크가 약해지더라도 수도를 함락하는 건 힘들다. 우르크 수도를 함락하고 싶은 건 철혈팔기랑 만리장성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간섭이 있어 만리장성과 철혈팔기는 가미카제를 상대하는 문제에서 발을 뺄 수 없다. 하루빨리 우르크를 해결하고 가미카제를 대륙에서 쫓아내야 만리장성이나 철혈팔기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더구나 만리장성은 가미카제의 도시와 마을을 빼앗아 국가를 확장해야 한다.
'가미카제를 해결한 다음은 네크로다. 철혈팔기는 네크로를 얕보는 것 같은데, 몰래 감춰둔 아이템이 몇 개는 있을 게 뻔하다. 그때 상황을 봐가면서 방관할지 싸움에 끼어들지 고민하면 된다.'
가미카제나 중국 길드들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가미카제는 정치색이나 민족 색을 벗을 수 없고, 중국 길드들은 정부 눈치를 봐야 한다.
'이럴 땐 한국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기도 하고.'
마음을 정한 역천은 우르그르 북쪽에 빙하시대를 펼치기로 했다. 비록 기온 하강으로 역천의 나라 역시 생산량이 떨어지겠지만, 그 부분은 세라프와 네크로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엄동설한, 만리동토."
두 스킬을 펼치고 기온을 점검했다. 온도가 낮을수록 빙하시대 마법은 범위가 넓어진다. 지금은 너무 넓어도 안 되는 상황이어서 전보다 조금 높은 온도에서 빙하시대를 펼쳐야 한다.
"빙하시대."
- 우르크의 신 우르그르의 수호가 발동합니다.
가슴이 덜컹했다. 신과 관련한 일이라 메시지가 바로 뜨지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메시지를 기다렸다.
- 빙하시대의 지속 기간이 60%로 줄어듭니다.
- 빙하시대의 악영향이 30% 줄어듭니다.
- 바람의 방향이 반대로 바뀝니다.
차가운 북풍이 남으로 불었는데,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버렸다.
- 우르크 정예 200만이 수도에서 출발합니다.
- 사령관은 영웅급 우르크 카쿤타입니다.
- 영웅급 우르크는 신화 등급 아이템을 드랍합니다.
역천은 황급히 최 비서에게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 저 200만의 우르크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역천의 운명은 물론 대륙의 정세가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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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린 이만 철수하겠습니다."
80만 우르크의 공격을 정말 어렵게 막아냈다. 철혈팔기가 에픽 아이템에 내장한 스킬을 두 개나 펼쳐서 겨우 막아냈다.
에픽 무기인 홍영창에 내장한 스킬은 '천군만마'. 천 기의 기마병을 소환해 돌진하는데, 네크로의 철갑 기사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말 위에서 활도 쏘고 단창도 던지는 고등급 기마병은 단체 스킬 '황룡탐혈'까지 있었다.
황룡탐혈 스킬로 적 수뇌부까지 길을 뚫은 덕분에 쉽게 이겼다. 우르크는 우두머리를 처리하면 버프 몇 개가 사라져서 상대하기 훨씬 쉬워졌다.
에픽 방패인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내장한 스킬은 역천에게 준 에픽 갑옷의 얼음성 스킬과 비슷했다. '강철 장벽' 스킬로 불러온 성벽은 우르크의 공격을 2시간이나 버텨줬다. 원래는 수도를 방어할 때 쓰려고 아꼈던 스킬인데, 빙하시대 마법을 펼친 후 200만 우르크가 북쪽으로 출발했다는 말에 당장 쓰기로 했다.
"멀리 안 나갑니다.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철혈팔기 간부의 말에 네크로는 웃는 얼굴에 침 뱉고 싶어졌다.
포탈로 돌아가자마자 야금야금 진행하던 확장에 불을 붙였다. 초인동맹이나 철혈팔기와 국경을 접하는 건 자제했다. 게임 설정에 따라 두 국가가 국경을 접하면 군사 비용이 30% 증가한다. 국경에 군사를 파견하지 않는다고 해도 30% 금액을 더 요구하기에, 각 세력은 이 부분에서 서로 조심했다.
북으로 확장이 힘든 대신, 동쪽으로는 원 없이 했다. 대륙섬의 드워프는 영구 동맹이기에 국경을 접해도 비용 증가가 미미하다. 대신 교역이 수월해져서 상업 발전 속도가 상승해 세수가 늘어난다.
[반형운입니다. 혹시 쿨타임이 돌아왔습니까?]
"네. 중요한 일인가요? 저도 쓸 일이 있어서요."
[정말 중요합니다. 2백만 우르크가 우릴 공격하려는 줄 알았는데, 하얀 뿔 산맥으로 향했습니다.]
북부와 북동부를 나누는 기준이 하얀 뿔 산맥이다. 햐안 뿔 산을 빼면 높은 산도 많지 않아서 북부와 북동부를 갈라놓지는 못했다.
"그 이유를 알아봐 드리면 될까요?"
[네.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후 네크로는 고민에 잠겼다. 대도서관 사서에게는 추종자 제작과 추종자 강화 스킬 숙련도를 빨리 올리는 방법을 질문하려 했다. 현피가 토템을 설치한 후 시간만 흘러도 숙련도가 자동으로 오르는 걸 보고, 혹시 추종자 관련 스킬도 따로 숙련도 오르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확실한 정보가 아니면 큰일인데.'
네크로는 우르크가 하얀 뿔 산맥으로 향한 게 얼음의 정령왕과 관련 있다고 추측했다. 엘라투르사가 북부에서 난동 한 번 더 부린 일로 얼음의 정령왕이 엘라투르사에게 잡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건 추측일 뿐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역천은 얼음의 정령왕이 냉기를 흡수한다는 걸 알지만, 얼음의 정령왕이 드래곤에게 패해 얼음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고민 끝에 일단 추론을 말하기로 했다.
"반형운 씨. 하얀 뿔 산에 드래곤 있는 건 아시죠?"
[물론입니다. 철혈팔기의 확장을 멈춘 고마운 분 아니겠습니까.]
"얼음 속성의 드래곤이어서 얼음의 정령왕을 잡아두고 있는 건 아시나요?"
[이해했습니다. 그런 이유였군요. 우르크가 얼음의 정령왕을 구출해서 빙하시대의 냉기를 다 흡수하면 다시 전쟁이 일어나겠군요. 저는 일단 일거리를 만들 작정입니다. 이광해 씨도 뭔가 핑곗거리를 만드시는 게 좋습니다.]
얼음의 정령왕을 구해 빙하시대를 해결하면 우르크는 다시 철혈팔기를 공격할 것이다. 철혈팔기가 도움을 요청할 때 거절할 수 있도록 역천은 뭔가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네크로에게도 일거리 만들라고 넌지시 조언했다.
"아, 제가 지금 99레벨에 숙련도 다 채웠거든요. 100레벨 퀘스트 하느라 당분간 바빠질 예정입니다."
[저는 길드 정예를 이끌고 동부 산맥 너머에 있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러 출발하겠습니다.]
대륙의 북동부에는 동부 산맥이 있었다. 동부 산맥 너머는 사막 드워프를 비롯한 몇몇 종족만 사는 사막 지형이었다. 점령할 도시나 마을도 없고 딱히 자원이 발견된 것도 아니어서 누구도 탐내지 않았다.
어차피 대륙만 해도 발굴해야 할 콘텐츠가 넘쳐나기에 현시점에서 찬밥일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마친 네크로는 대도서관에 가서 사서를 찾았다.
"추종자 소환과 추종자 제작의 숙련도를 높일 방법이 궁금하다."
"추종자 제작은 두 가지 방식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추종자를 제작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는 추종자를 최고 레벨까지 키우는 겁니다. 최고 레벨이 된 추종자를 보유하면 제작 숙련도가 적지만 지속하여 오릅니다. 다만, 늘 가까이 두셔야 합니다."
추종자를 만들어 만렙 키운 후 늘 소환하고 다니라는 뜻이었다.
"추종자 강화 역시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추종자를 소환해서 함께 전투하는 겁니다. 전투 과정에 추종자 강화 숙련도가 오릅니다. 전투가 끝난 후 추종자를 역소환해서 휴식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 추종자는 받은 피해에서 회복합니다. 이 회복 과정에도 추종자 강화 숙련도가 오릅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직업이라면 홈페이지나 레전드 게시판에 정보가 있지만, 네크로만 키우는 직업이어서 도움말도 변변치 않았다.
"그리고 추종자 규모가 클수록 숙련도 상승 폭이 큽니다."
'돌이나 나무 골렘도 넉넉히 만들라는 뜻이군. 어차피 마나야 남아도니까 상관없겠지.'
우크 던전에 나무는 몰라도 돌은 넉넉했다. 마나가 허락하는 대로 돌 골렘을 만들기로 했다.
'대도서관 일찍 만들었으면 지금쯤 100레벨 찍었을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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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뿔 산맥.
180만에 달하는 우르크 정예가 드래곤 레어로 돌격했다. 검은색 표범, 갈색 곰, 은색 늑대 등이 레어 앞에서 우르크 군대를 상대로 용감히 싸웠다.
잠에서 깬 엘라투르사는 숫자가 너무 많은 걸 확인하고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몸속의 마나를 빠르게 돌려 육체를 계속 깨웠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후에야 밖으로 나갔다.
"죽어라!"
피어를 섞어서 내지른 말에 가까운 우르크가 우르르 쓰러졌다. 그러나 대부분 우르크는 조금 약해졌을 뿐 죽지 않았다.
우르크들은 우르그르를 외치며 드래곤에게 무작정 덤볐다. 브레스도 뿜고 마법도 펼치면서 우르크들과 싸우던 엘라투르사는 기온이 약간 오른 걸 확인했다.
"집사. 얼음의 정령왕이 그래도 있는지 확인해라."
혀로 몸에 난 상처를 핥던 검은 표범의 모습이 쓱 사라졌다. 잠시 후 돌아온 표범이 보고를 올렸다.
"사라졌습니다."
화가 난 엘라투르사는 바닥을 뒹굴었다. 3천에 달하는 우르크가 엘라투르사의 뒹굴뒹굴에 목숨을 잃었다.
바로 날개를 펼쳐 얼음의 정령왕을 되찾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백만이 넘는 우르크가 레어에 들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꾹 차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으며 엘라투르사는 우르크를 학살했다.
20만 우르크가 수도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기에 우르크도 물러섬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엘라투르사도 지쳤다. 아무리 맞아도 피통은 안 움직였다. 그저 죽이는 속도가 느려졌을 뿐이었다. 최대한 몸을 깨웠지만, 급하게 깨웠기에 평소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다.
180만 우르크를 희생해서 얼음의 정령왕을 빼낸 카쿤타는 20만 부하를 데리고 밤에도 쉬지 않고 달렸다. 정보를 얻은 역천과 역천의 귀띔을 받은 프리덤은 모른 척 그냥 지나 보냈다.
우르크가 역천 공격하러 간 줄 알고 기뻐하던 철혈팔기도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간 잃었던 도시와 마을을 전부 되찾고 오히려 우르크 도시 몇 개를 더 빼앗았다. 우르크가 역천과 싸우는 사이에 수도 함락까지 꿈꿨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얼음의 정령왕을 풀어서 빙하시대를 해결한 우르크들은 군대 80만 움직여 철혈팔기가 갓 점령한 성을 공격했다.
만약 철혈팔기가 잃었던 도시를 회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우르크는 빙하시대를 사용한 역천을 공격했을 것이다. 우르크 수도를 함락해 빨리 지금 사태를 끝내려는 철혈팔기의 욕심이 화를 자초했다.
"역천 길드는 극동지역 사막을 탐사하러 갔다고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이미 사흘 전에 출발했습니다."
"네크로는?"
"100레벨 퀘스트 한다고 사라졌습니다."
"가미카제랑 프리덤은?"
"가미카제는 병력 20만 보내겠답니다. 대신 NPC가 사용할 아이템과 음식은 우리더러 책임져 달라고 합니다. 유저는 아이템 공짜로 수리해 달라고 합니다."
"수락해. 프리덤은?"
"드래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국고를 다 털어 드래곤의 분노를 달랬기에 여력이 정말 없습니다."
"돈을 줘. 돈을 줘서라도 지원을 받아내. 그리고 네크로 쪽도 최대한 지원해달라고 해."
"NPC 주술사 둘 다 쿨타임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려지다시피 네크로쪽에는 쓸만한 유저가 얼마 없습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아. 네크로가 못 오니까 최대한 많이 보내 달라고 해. 초인동맹 수뇌부엔 선물 좀 보내."
"근데 드래곤은 왜 역천 안 공격하고 프리덤을 공격했을까?"
"모니카에 뭔가 있는 게 아닐까요?"
북부의 최대 도시이자 교통 요충지인 모니카. 프리덤의 수도인 모니카가 엘라투르사의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드래곤이 보이자마자 푸른 깃발을 내걸어 협상을 진행했다. 엘라투르사가 원하는 금액을 맞춰준 프리덤은 알거지가 돼버렸다.
"우리가 모니카에서 하다가 막힌 에픽 퀘스트 있잖아. 어쩌면 그걸 끝내면 드래곤을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보부에 말해서 알아보게 하겠습니다."
"대도서관까지는 아니어도 도서관이라도 지으라고 해."
'미친. 그게 뭐 지으라고 말하면 지어지는 건가?'
도서관 지으려면 정치, 경제, 문화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네크로는 초반부터 다미안에게 국정을 맡겼고 도서관을 지으려 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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