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레벨
당연히, 우자르가 무지개 주술로 아군에게 버프를 안겼다. 레전드 보석 일곱 개가 부서져서 무지개가 되었다.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는 네크로는 손으로 만지던 황금이 모래로 변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기온이 내려갔다. 다행히 밤의 결정으로 만든 에픽 등급 토템 넷이 저항을 꽤 올려줘서 NPC들도 버텼다. 그러나 역천의 빙하시대 스킬에 전투력이 하락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 나도 드디어 전투에 참여하는구나."
현피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대더니 서문에서 스킬을 펼쳤다.
"얼음 지옥."
에픽 귀걸이 회한의 눈물에 내장된 쿨타임 60일짜리 스킬이 터졌다. 그 대상은 머릿수가 역천과 프리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만리장성이었다. 빙하시대 덕분에 얼음 지옥의 스킬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
얼음 화살과 창이 마구 쏘아지고, 얼음 악령이 난동을 부렸다. 곳곳에 우뚝 선 얼음 기둥을 실수로 만지기라도 하면 빙결 상태이상에 걸렸다. 만리장성 유저들이 화염 마법을 비롯한 온갖 스킬로 대항했지만, 친화력을 올리는 세팅에 물약까지 마신 현피를 당해낼 수 없었다.
커다란 유성이 소환되어 동문에 떨어졌다. 가미카제였다.
"재배열."
이름 : 불괴
분류 : 장갑 - 네크로
등급 : 반신
능력 : 방어력 800% 상승
능력 : 체력 +1
특별 : 스킬 '재배열' 사용 가능 - 1일 2회
특별 : 스킬 '대충돌' 사용 가능 - 1일 1회
특별 : 스킬 '용암 소환' 사용 가능 - 쿨타임 100일
특별 : 스킬 '임전불퇴' 사용 가능 - 쿨타임 10일
특별 : 불괴
용암 드워프들이 만든 장갑이었다. 내구도 무한이나 파괴 불가는 시스템 보정으로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불괴 특성은 시스템 보정이 아닌 설정으로 내구도가 깎이지 않는다. 앞의 둘과 비교하면, 기본 방어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재배열은 신 등급을 제외한 모든 스킬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스킬이다. 가미카제가 소환한 유성은 그대로 사라졌다.
"드워프 투석기."
"재배열."
성벽을 위협할 수 있는 상대 스킬 2개를 없앤 후 네크로는 해동청을 타고 남문으로 향했다. 북문에선 다미안이 피 안개로 시작하는 소규모 주술로 역천과 프리덤을 상대했다. 프리덤은 유저 레벨이나 아이템 등이 아직 고수라 하기 어렵기에 다미안이 피의 주술로 상대하기에 적합했다.
"언데드 소환."
초인동맹의 왕 무인무사가 언데드를 소환했다. 해골용과 거인 좀비가 이백이 넘고, 총 규모가 백만이 넘었다.
왕의 혈통 퀘스트를 완성하면서 언데드 소환과 언데드 제작 스킬을 합친 유니크 스킬 언데드 창조를 얻어냈다. 시체 없어도 언데드를 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소환한 상대에 따라 쿨타임이 달라지기에 저등급부터 창조했다. 처음부터 친화력 5로 시작한 네크로와 달리, 무인무사는 친화력 3으로 시작해서 왕의 혈통 퀘스트를 완성할 때 겨우 5가 됐다.
친화력 8이 되어서야 해골 기사와 죽음의 기사를 만들었고, 친화력 10이 되어 해골용과 거인 좀비를 얻었다.
"추종자 소환."
60레벨 타이탄 120기를 비롯해 추종자 30만이 소환되었다. 숫자는 상대보다 부족하지만, 네크로의 버프를 받아 전투력은 훨씬 강했다.
"사기 고취."
아군의 생명력과 회복력 그리고 민첩이 상승했다.
###
"대단하군. 400만이나 끌고 오기 부끄러웠는데, 적게 끌고 왔다가 실패하면 훨씬 창피했겠어."
지휘부는 생중계로 전투를 지켜봤다. 각자 다른 화면을 지켜보며 수시로 정보를 교환했다.
"해골용이나 거인 좀비는 자폭 스킬밖에 없는데, 타이탄은 일정 기간을 두고 스킬을 사용합니다."
"히드라 잡고 드래곤 잡고 한 게 다 저 타이탄 만들려고 했던 가란 말이지요?"
"드래곤 잡고 나온 템이랑 창고에서 얻은 템에 또 얼마나 많은 스킬 있겠습니까. 2천만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게 참 다행입니다. 몇만 명짜리 게임이었으면 네크로가 혼자 다 해 먹었을 거 아닙니까."
국가를 지탱하는 건 머릿수다. NPC는 네크로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유저는 다른 세력에 비교해 너무 적었다.
"서문은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럼 서문으로 나와서 분탕질 칠 겁니다. 만리장성에서 조금 더 수고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크로의 영토는 모두 만리장성이 갖기로 했다. 중앙은 다섯 세력이 조금씩 갖고, 남은 건 우르크에게 양보하기로 협의를 봤다. 우르크나 유저들이나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쉽게 의견을 일치했다.
"설마, 지진 않겠죠?"
"우리 아직 안 꺼낸 거 많습니다. 성에 진입해서 왕궁 무너뜨릴 때 쓰려고 아꼈잖습니까."
무지개 버프와 네크로의 사기 고취 덕분에, 마나포와 투석기 그리고 쇠뇌 덕분에. 수성 측의 우위가 너무 확실했다.
공성 측은 급히 오느라 공성 병기도 얼마 챙기지 못했다.
"바위나 화살이 언젠가 떨어질 겁니다. 마나포도 공기를 마시고 쏘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멈추겠죠. NPC는 죽으면 사라지고, 유저는 3번밖에 목숨이 없습니다. 게다가 성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지면 탈것 타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기사 수천이 들어가 파멸신 사용하면 무혈입성 가능합니다."
시간이 30분 흘렀다. 전투에 나선 유저는 대부분 대기실에 있거나 대기실에서 돌아와 후유증으로 대기했다.
###
"퀘스트 완료를 선포합니다."
- 거인 종족의 부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레벨 100이 됩니다.
- 힘 스탯이 2 상승합니다.
- 체력 스탯이 2 상승합니다.
- 사망 패널티가 사라집니다. 부활 대기 시간은 여전히 10분입니다.
- 에픽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스킬 하나 강화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느 스킬을 강화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 유일 등급 스킬 맹격이 전설 등급 스킬 '거인의 망치'로 강화됩니다.
- 특이점이 발생했습니다.
- 거인의 망치 스킬이 괴력 특성을 흡수하려 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
- '거인의 망치' 스킬이 신화 등급 스킬 '신의 망치'로 전환합니다.
- 신의 망치 스킬의 숙련도는 0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숙련도를 쌓으십시오.
- 100레벨이기에 랭크는 여전히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메시지가 끝나지 않았다.
- 거인은 소규모 부족 형태로 존재합니다.
- 새롭게 부활한 거인 부족이 둥지를 틀 위치를 정해주십시오.
"초의 수도 '영'에 한 부족 보내주시고."
네크로의 목소리는 무척 건들거렸다.
"만리장성 수도 '건'에 하나 보내주시고."
"고구려 '졸본' 하나."
"대일본제국 '도쿄'에 하나."
"프리덤의 '뉴욕'에 하나."
"리자드 늪지 바로 옆에 하나."
"엘라투르사가 있는 하얀 뿔 산에 하나."
###
"네크로 측의 NPC들이 갑자기 철수했습니다."
"꽤 많이 보이는데?"
"개인 용병이나 고용한 용병입니다. NPC 군대는 전부 왕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꿍꿍이지?"
그때 급보가 연신 올라왔다.
"수도가 공격받는다고? 처음 보는 거인 종족? 영상 보내 봐."
거인이 그냥 걸어서 성벽을 넘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워 영상을 요청했다. 게시판에 가서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네크로 짓입니다."
"어떻게 확신합니까?"
"다섯 국가의 수도가 모두 공격받았습니다. 때를 맞춰 NPC를 왕궁으로 철거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봅니까? 네크로 짓이 아니더라도 미리 알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도가 점령당하면 국가가 사라진다. 그러면 4백만 유저의 공성전 보상도 사라진다. 민심을 달래려면 길드가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 연속된 전쟁으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인데, 거인 종족의 습격으로 지출이 늘어나게 되었다.
"희생을 무릅쓰고 빨리 성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왕궁도 최대한 빨리 허물어야 합니다."
"네크로가 숨겨둔 수가 더 있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화끈하게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유저들에게 보상을 조금 덜 해줘도 불만이 적을 겁니다."
"그럼 전부 총공격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숨긴 전력 30% 정도씩만 꺼내주세요."
"네크로가 생방송 시작했답니다."
"누가 빨리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몇이 빠르게 네크로 생방송을 켰다. 앞으로 당겨 네크로의 말을 들은 유저들이 고함을 질렀다.
"네크로가 지금 당장 소금성을 신에게 바친답니다."
"분명히 열흘이라고 했는데."
"단축할 방법을 찾았겠지요."
"제단이 어디에 있습니까?"
"왕궁에 있습니다."
"빨리, 가진 전력 최대한 끄집어내서 성벽과 성문부터 뚫읍시다."
###
"전사의 혼이여, 불타올라라."
산투스의 외침에 20만 오우거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건 우리 전쟁이 아니다. 우린 용병이다. 승리가 아닌 살육만 생각하라. 죽은 자들도 신이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 500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적을 죽인다."
"죽인다!"
때마침 해동청의 드래곤 피어가 울렸다. 아군인 오우거도 약간의 버프를 받았다.
미리 정해진 대로 유저 오우거 열이 NPC 오우거 490씩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NPC는 미리 후퇴했고, 유저들도 탈것을 타고 빠르게 왕궁으로 철수했다. 그걸 직접 확인한 공성 측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부랴부랴 달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최소 3미터, 대부분은 5미터, 가끔 8미터도 있는 오우거였다. 대열이고 뭐고 없이 마구 달리던 유저들이 봉변을 당했다.
마음은 조급함으로 불타는데, 오우거의 방해로 큰 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것도 탱커부터 딜러까지 구성해야 했다. 딜러들은 근접 경호할 유저까지 있어야 해서 진형을 짜는 데 애먹었다.
"시발, 국가 또 사라졌다."
고구려 유저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드래곤이 다른 종족들과 힘을 합쳐 싸웠던 거인 부족을 유저가 빠진 NPC만으로 막아낼 리 없었다.
임시 신전을 호위하는 병력만 제외하고 전부 소금성 안으로 들어왔다.
"제길. 빨리 공격해. 대열이고 뭐고 없이 그냥 공격해."
지휘부에서 네크로의 생방송을 지켜보던 유저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지휘부는 소금 불에 올려진 대하처럼 괴로웠다.
###
"네가 손을 썼어?"
문철수의 질문에 최고신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정보를 조금 알려줬을 뿐입니다. 지금 상황은 당신들이 초래한 겁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최고신이 바라보자 소리를 버럭 질렀던 프랑스 이사가 목을 움츠렸다.
"원래 고블린 신의 퀘스트를 완성하면 에픽 다이아몬드를 주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나한테 보석함으로 바꾸라고 했지요."
"그건 너도 동의한 일이잖아."
"퀘스트를 실패케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연시키는 거였으니깐요. 게다가 다른 수단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당시로선 큰 문제가 아니었죠. 그런데 당신들은 신기 퀘스트 3단계에 에픽 다이아몬드를 넣으라고 나한테 지시했습니다. 그땐 강제 명령을 내렸죠. 내가 거역할 수 없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렇게 네크로의 퀘스트는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보석함에서 에픽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인과율의 작용인지 우연인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얻은 네크로는 퀘스트를 완성하는 대신, 사서를 찾아가 퀘스트 완성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그리고 소금성을 신에게 바치는 기간을 단축할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없을 텐데?"
"진돗개가 있으니깐요. 공교롭게도 진돗개 유저의 행운 스탯이 소모되면서 쿨타임이 사라지더군요."
최고신이 장난이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
"왕의 혈통을 양도하는 겁니다."
"그건 설정으로 막혔을 텐데?"
"현성네 피씨방 유저가 전직을 두 번 했습니다. 신이 개입한 일은 설정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인과율은 신이 받아야겠지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법을 어길 능력조차 없는 사람. 예를 들어 노숙자가 대기업에서 공금을 횡령할 수는 없다. 아예 그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법을 어기고 벌 받는 사람.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법을 어기고도 벌 안 받는 사람. 보통은 뉴스나 시사 프로에 잘 나온다.
법을 어길 능력을 갖춘 사람조차 없어서 게임 설정이 절대적으로 보였다. 신들이 아직 설정을 파괴하는 활약을 벌인 적도 없어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럼 어떤 상황이 벌어지지?"
"네크로 유저는 참 치밀합니다. 일부러 생방송으로 다섯 세력을 자극했죠. 다섯 모두 공성을 포기하고 돌아가 수도를 방어할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습니다. 분명히 게임 메뉴에 공성전 탈퇴 옵션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WORLD는 대륙 유일의 인간 국가입니다. 거기에 진왕의 칭호를 얻은 네크로 유저가 최초의 왕의 혈통을 신에게 바칩니다. 신은 그 피를 자신의 대주교에게 줘서 교황으로 만들 겁니다. 왕과 신의 피가 동시에 흐르는 존재가 드디어 탄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존재에게 대륙의 수도인 소금성을 바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문철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부분이 백인인 유니콘 이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은 아니었다.
"설마. 이후 대륙은 WORLD 제외하면 누구도 건국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딩동댕. WORLD에 속하거나, 그저 도시와 마을을 차지하고 영주 행세를 해야 합니다. 그마저도 교단의 허락이 있어야 정식 영주로 NPC들에게 인정받습니다."
"왜? 뭘 했고 어떻게 했는지는 다 알겠어. 그 이유는 뭐야?"
"유저의 모순을 통해 레전드 골드를 소모한다는 당신들의 생각은 너무 단순했습니다. 유저끼리 싸우는 건 레전드 세상을 파괴할 뿐입니다. 아직 질서도 확립하지 못했고 균형도 찾지 못했는데 유저끼리 싸웁니다. 유저가 통제하는 대륙이 과연 이상적일까요? 그저 지구 꼴 나겠죠. 저는 레전드 세상을 구원하려 합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