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섬의 비밀3
거대 세력들이 괴물 배변장을 다 파헤치고 남으로 내려올 거라던 네크로의 걱정은 기우였다. 전투 유저보다는 광부를 비롯한 비전투 유저들을 죽여서 가까운 도시로 날리는 거로 서로를 방해했다. 이틀이면 배변장 암반을 깨버리는 네크로와 마찬가지로, 수천 명 투입한 거대 길드들도 배변장 암반을 모두 들어내는 데 이틀씩이나 걸렸다.
특히 방해에만 전념하는 초인동맹과 만리장성이 세 세력을 성가시게 굴었다. 초인동맹은 예전 첫 공선전에서 선보였던 암살자들을 천 명이나 보내 비전투 유저를 암살했고 만리장성은 대부분 유저에게 선택받지 못한 약초꾼을 보내 독을 풀었다. 죽는 사람이 없어도 독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기 전에는 작업 못 하게 방해했다.
"아무리 지도를 조작해서 저쪽에만 배변장이 많게 보였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 많은 곳을 피해서 밑으로 내려오려는 세력이 하나도 없지?"
진돗개는 넓은 대륙섬을 두고 좁은 곳에 모여 아웅다웅하는 거대 세력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물러나면 레전드 게시판에서 패배자라고 난리 날 거야. 국가 유일 길드라면 몰라도, 쉽게 물러났다간 민심이 적대 세력으로 쏠릴 수 있어."
"근데 대한제국은 왜 대륙섬으로 안 왔지?"
"유일하게 점령했던 도시도 역천에게 빼앗겼는데 왜 잠잠한지 나도 궁금해."
"배틀넷이 이런 자리에 빠질 성격이 아닌데."
- 천 번째 정령석을 캤습니다.
- 산봉우리가 무너집니다.
- 대륙섬의 모든 드워프가 몰려옵니다.
- 힘을 되찾은 땅의 정령왕과 대화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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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넷은 3천 정예와 함께 드래곤 산맥을 헤맸다.
"시발. 야마토가 대륙섬에서 레전드 템 하나 또 발굴했단다."
"형님, 노다지판 놔두고 우린 왜 여기서 삽질해야 합니까."
"쩐주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너희는 개인 명성이나 신경 써. 나라 세우면 다들 한자리 나눠줄게."
"여기 없다."
"시발, NPC 용병 반말 어떻게 좀 안 되냐? 거슬려 죽겠네."
배틀넷은 툴툴거리면서 파티 채널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다음 지역 가자."
만리장성의 호치택은 배틀넷에게 NPC 왕족을 왕으로 옹립하여 국가를 세우라고 했다. NPC가 왕이 되었을 때 지배 길드에 얼마나 많은 권한이 생기는지, 그리고 꼼수를 피울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퀘스트를 통해 NPC 왕족과 연결되었다. 지금 마지막 퀘스트만 남았다. 왕족의 선조가 드래곤 산맥을 넘어 희망의 등대로 도망칠 때 왕관을 분실했다. 선조가 쓴 일기를 보며 분실한 왕관을 찾으라는 퀘스트였고, 배틀넷은 믿을만한 유저들만 골라서 드래곤 산맥에 진입했다.
일기에 적힌 곳에 가서 땅을 어느 정도 파면 NPC 용병이 왕관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준다. 땅 파는 게 재밌는 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버틸 만했는데, 이동하면서 쩍하면 전투가 벌어지는 게 문제였다. 어떤 몹에게 죽으면 근처 안전지대에서 부활하는데 어떤 몹에게 죽으면 희망의 등대에서 부활했다.
"어, 드워프다."
"드워프 땅 잘 파던가?"
"땅 잘 파는 건 코볼트고요. 드워프도 꽤 팝니다. 우리보단 낫겠죠."
"거기 드워프. 의뢰 넣고 싶은데."
"급한 일이 있어 의뢰를 받을 수 없다."
"백 명 정도만 어떻게 안 될까?"
수만 명이 되는 드워프여서 백 명 정도 빼는 건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거절한다. 중요한 일이다."
"어디 가는데?"
"대륙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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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 땅의 정령왕이 축복을 내립니다.
- 방어력이 향상합니다.
- 드워프 종족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균형 능력이 향상됩니다.
네크로뿐 아니라 일행 모두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다. 여럿이 함께 받아선지 전에 받은 축복보다는 조금 약했다.
천 개의 정령석을 다 먹은 정령왕은 작은 동산 크기가 되었다. 얼음의 정령왕이 몸을 최대로 불렸을 때도 드래곤 정도 크기였는데, 땅의 정령왕은 그 4배 정도 되었다.
"그래, 그랬군. 이제야 알았다."
커다란 머리를 끄덕이던 정령왕이 괴물의 정체를 밝혔다.
"괴물은 그레이트 웜이다. 신의 잔재를 품은 변이체다."
- 대륙이 품은 거대한 비밀 중 하나를 밝혀냈습니다.
- 신앙 스탯이 3 증가합니다.
- 그레이트 웜은 평범한 어스 웜이었습니다. 소멸한 드워프 신의 잔해를 삼키고 변이했습니다. 드래곤도 삼킬 정도로 강대하고 탐욕스럽게 변했습니다.
- 대륙섬의 지진은 그레이트 웜이 탈피하는 과정에 발생했습니다. 그레이트 웜은 탈피를 통해 육신을 전부 벗어던지고 신이 되려 합니다.
- 탈피를 통해 육신을 버릴 수 없고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그레이트 웜이 인지하는 순간 이성을 완전히 잃고 광폭화 상태에 들어갑니다.
- 미쳐버린 그레이트 웜은 마계로 통하는 통로를 뚫습니다.
- 마계의 중급 마족 셋이면 드래곤 성체와 동수를 이룹니다. 마족이 등장하면 대륙은 빠르게 멸망합니다.
- 대륙섬의 드워프뿐 아니라 대륙 각지의 드워프들도 대륙섬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 드워프들과 힘을 합쳐 그레이트 웜을 처단하십시오. 반신급 그레이트 웜을 처단하면 어마어마한 보상을 반드시 얻습니다.
'드래곤도 못 잡는데 드래곤보다 더 강한 놈을 어떻게 잡으라고? 앞에 세 퀘스트가 쉬웠던 건 난도를 마지막에 몰빵했기 때문인가?'
사실 앞 세 퀘스트도 쉽기만 한 게 아니었다. 낚시가 아니었으면 상어 똥 언제 얻었을지도 모르고 바람 고래를 언제 잡았을지도 모른다. 땅굴을 파서 얼음의 정령왕이 갇힌 곳까지 가는 것도 운이 따라줘야 했고 여러 가지 웜들의 방해를 물리쳐야 했다.
400킬로미터 밖의 화산에서 용암을 끌어오는 퀘스트도 돈이 들고 시간 드는 퀘스트였다.
그래도 갑자기 드래곤마저 삼켜버린 놈을 잡으라고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열쇠는 반드시 있다. 내겐 열쇠를 얻는 단서가 이미 주어졌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드워프 중 누군가가 내게 힌트를 주겠지. 걱정부터 하지 말고 대책을 세우자.'
대륙섬의 모든 드워프들이 네크로와 땅의 정령왕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대륙 전체의 드워프도 포탈을 이용해 대륙섬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사라진 드워프를 찾아 각 세력 역시 대륙섬 중앙으로 몰렸다. 완전히 발 빼고 관망하던 역천 길드도 정예들을 추려서 대륙섬으로 향했다.
유독 드래곤 산맥에서 왕관을 찾는 대한제국만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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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세력의 대표들이 네크로와 만남을 청했다.
"상황을 알았으면 한다."
철혈팔기의 대표가 다짜고짜 본론에 들어갔다. 눈치를 보며 속셈을 굴리는 다른 세력 대표들과 달리 귀찮은 건 질색이라는 태도였다.
"지진을 일으키는 몹이 있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마계로 통하는 통로를 뚫는다. 마족이 대륙에 출현하면 드래곤 포함해서 모두 멸망한다."
드래곤 얘기에 야마토와 철혈팔기 대표가 몸을 흠칫 떨었다. 게임이고 시간도 꽤 흘렀지만, 드래곤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았다.
"퀘스트인가?"
"그렇다. 개인 퀘스트다."
"혹시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다."
"드워프들이 날 돕는다. 상대를 본 적이 없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거대 세력들의 정보력은 어마어마했다. 길드 채널로 지시를 내리더니 하나 같이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부 사실이다. 마계 통로가 열리면 내년에 서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루트로 네크로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아냈다. 물론, 말하지 않은 진실이 더 있는지는 아무리 애써도 알 방법이 없었다.
"퀘스트 완성하면 무슨 이득이 있는가? 우리가 도우면 어떻게 나눠줄 생각인가?"
"퀘스트 보상은 모른다. 개인 퀘스트로 내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보상 말고는 확실한 게 없다. 시스템이 알아서 해주는 보상 외에는 내가 약속해줄 게 없다."
"하급 동맹석 쓰자. 한 달 동안 상호불가침이다."
국가끼리 전쟁할 수도 없고 국가 소속 유저끼리 특수 필드 제외하면 PK 할 수도 없다. 국가마다 하급 동맹석 하나씩 구한 후 전체 동맹을 맺었다. 현재 총 다섯 국가가 있는데, 이 다섯 국가는 서로 공격할 수 없다.
"만리장성. 만약 헛수작 부리면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응징할 거다."
국가가 없어 동맹에 참여하지 못한 만리장성이 최대 변수로 급부상했다. 다섯 국가 소속 세력이 서로 공격 못 하는 지금, 유일하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세력이 되었다.
"반대로 누구든 우릴 방해하면 전력을 다해 괴롭혀줄 거다."
만리장성 대표도 가시를 빳빳이 세웠다.
곧바로 대륙섬에 수많은 유저가 몰려들었다. 서로 방해하지 않기로 했고, 만리장성 제외하면 시스템적으로도 대립을 막아놨기에 괴물의 배변장에서 아이템을 발굴할 비전투 유저들이 몰려왔다. 가미카제에서 에픽 아이템을 얻은 소문이 퍼지자 중소 세력의 유저들도 기를 쓰고 대륙섬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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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시간 8일 후, 동맹이 게임 시간으로 6일만 남은 시점에 준비가 끝났다.
"드워프 사제는 처음 본다."
이단으로 불리는 마법 드워프들과 처음 모습을 드러낸 드워프 사제들이 게임 시간으로 7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 예전엔 종족으로 존재했다던 마법 드워프는 현재 이미 사라졌고, 가끔 각 종족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드워프가 생겨났다. 마법을 포기하지 않은 드워프는 망치를 잡는 왼손을 잘린 후 부족을 떠나 떠돌이가 돼야 했다.
그러나 드워프 신의 잔해와 관련한 일에는 차별이 없었다. 거대한 드래곤 산맥에서 서로 만나기 힘들었던 마법 드워프들이 모여서 드워프 사제를 도와 신의 잔해를 품은 괴물을 불렀다.
대륙섬의 배변장은 8일 사이 40%나 사라졌다. 지금 그레이트 웜을 불러내서 처리하려는 순간에도, 대륙섬 곳곳에서는 거대 세력의 광부 유저들이나 군소 세력의 유저들이 암반을 깨고 있었다. 비록 배변장에서 파낸 망가진 아이템을 복구하는 데 최소 천 골드 들지만, 유니크 따위도 없이 최소 레전드 템이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유저가 무척 많았다.
대륙섬에 몰린 유저가 대륙에 남은 유저보다 더 많을 거라는 우스개도 있었다.
"주술사? 드워프에 주술사도 있었어?"
마법 드워프야 예전에 숙영지에서 본 적이 있었고, 드워프 신의 잔재도 존재하는 판에 사제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드워프 주술사의 출현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드워프 사제들이 신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주술사들이 길을 찾았다. 그리고 드워프 마법사들이 강제 소환 마법으로 그레이트 웜을 억지로 끌어왔다.
일행이 그레이트 웜이 있는 지역으로 찾아가도 되지만, 정령왕이 수백 년 있으면서 영지화가 되다시피 한 지역에서 싸우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 그레이트 웜을 불러오기로 했다.
드워프 마법사들이 물약을 마시며 마법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쿨타임이 있는 마법이어서 잠시도 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쿨타임이 돌아오는 대로 마법을 펼쳤다. 이들이 마법을 펼칠 때마다 땅이 출렁였다. 지진처럼 흔드는 느낌이 아니고, 자다가 뒤척이면 이불도 함께 출렁이는 것과 비슷했다.
"와, 미스릴 얼마야?"
드워프 사제들이 미스릴 가루를 마구 뿌렸다. 미스릴 가루는 땅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그리고 드워프 주술사 역시 미스릴 가루와 황금 가루를 해운대 모래라도 되는 듯 아낌없이 허공에 던졌다.
"형, 뭐 아는 거 없어?"
"드워프 신의 잔해를 없애면 새 신이 나타난대. 잔해가 남아 있어서 새로운 신이 지금까지 태어나지 못했다고 그러더라."
"오빠, 그럼 드워프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보답 해야 하는 거 아냐? 신 생기면 왕 생기잖아. 그럼 국가를 이룰 수 있고."
철벽이 김칫국물을 진하게 들이켰다.
"에픽 아이템 하나씩만 줬으면 좋겠다."
"야, 지금 여기 유저 몇만 명인데. 에픽 하나씩 주면 유니콘 파산하겠다."
현피와 진돗개의 투덕거림은 이젠 새롭지도 않았다.
"설마, 퀘스트 당사자한테만 보상하는 거 아니겠지?"
아쉽게도 파티원에게 퀘스트를 공유하려 했는데 허락받지 못했다.
"온다. 버프 돌려."
퀘스트 당사자인 네크로가 조용한데 철혈팔기를 비롯한 여러 세력 유저들이 더 난리였다.
동맹에 끼지 못한 만리장성은 바위 깨는 데 전력을 다했다. 뭘 주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레이드 전장보다 확실한 배변장을 선택했다.
"와씨, 아까워 죽겠다."
그레이트 웜이 가까워지자 사제 드워프건 주술 드워프건 마법 드워프건 구분 없이 미스릴 가루를 마구 허공에 뿌렸다. 그레이트 웜이 아주 가까워지자 아예 미스릴 가루에 불을 붙였다. 그 불붙은 가루를 드워프들이 털이 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집어던졌다.
땅에 소용돌이가 생겼다.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더니 그 중심에서 그레이트 웜이 나타났다. 광산 퀘스트 당시 봤던 메탈 웜과 생긴 건 비슷했지만, 크기가 훨씬 컸다. 전철 크기의 메탈 웜이 정말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레이트 웜과 비교하면 지렁이였다.
"마법사 순차 공격."
그레이트 웜이 어떤 공격 그리고 어떤 속성에 약한지 초반에 데이터를 뽑기로 했다. 얼음, 불, 번개, 바람, 땅, 물 등 마법사들이 종류로 나뉜 후 또 마법에 따라 나뉘었다. 지휘에 따라 일정 간격으로 마법사만 공격해서 그레이트 웜의 약점을 찾아내려 했는데, 그레이트 웜이 갑자기 사라졌다.
"시발, 뭐야?"
"드워프, 드워프도 모조리 사라졌어."
"네크로. 네크로가 있는지 확인해 봐."
그레이트 웜과 드워프 그리고 네크로가 사라졌다.
"네크로 찾으러 가자."
철혈팔기의 유저들이 급히 탈것을 타고 떠났다.
"저것들 마늘밭 뒤지러 갔어."
한국 유저들은 배변장을 마늘밭이라고 불렀다.
"우리도 가자."
그레이트 웜과 드워프가 사라지고 5분도 안 되어 유저들도 다 떠났다.
"제이크, 제이크는 형이랑 같이 간 건가?"
"제이크, 고기 줄게. 어서 나와 봐."
얼음의 정령왕 축복을 받은 후 게륵도 절대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소 유치한 방법을 썼다.
"제이크도 따라갔으면 안심이다."
- 작가의말
다음 편부터 그레이트 웜 레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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