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흔적을 찾아서5
"용암 드워프? 그 화산만 찾아다니는 미친놈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안 보인다고. 네크로 일행이 이틀 동안 전력을 조금 추스르고 다시 드래곤 산맥에 진입한 후, 열흘이 되어서야 겨우 드워프를 발견했다.
"용암에도 녹지 않는 금속으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무구를 만들겠다는데, 용암에도 안 녹는 금속을 무슨 수로 다룬단 말인가. 그런 금속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어디에 가면 용암 드워프를 만날 수 있습니까?"
"만투라 화산에서 몇 달 전에 용암 드워프의 종적이 발견되었지. 성질이 무척 더러워서 드래곤도 용암 드워프랑 척지기 싫어하네. 용암 드워프가 만든 도룡노는 드래곤 세 마리나 잡은 적 있지."
"도룡노요?"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드래곤 세 마리 잡은 후 도룡노로 바뀌었네. 줄을 묶은 화살을 발사하는 대형 쇠뇌인데, 거기에 적중하면 드래곤은 하늘을 날 수 없다네. 바닥에 내려온 드래곤은 숫자만 넉넉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
드워프와 작별하고 만투라 화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만나는 몹들은 강화 좀비와 해골 마법사로 변했다. 가끔 보스급이 나오면 리치나 듀라한이 되었다. 해골 기사나 죽음의 기사는 넉넉히 준비한 시약이 무안하게, 적당한 몹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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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빠진 드워프들이 맥주 마시지. 우린 무조건 독한 럼주야."
'미친놈들.'
용암 드워프는 진짜 미친놈들이었다. 친밀도를 올리려고 어렵게 준비한 맥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길에서 만난 드워프들은 석 잔이면 조상의 치부까지 다 털어놓았는데, 용암 드워프들은 맥주를 술 취급하지 않았다.
"저긴 뭐 하는 겁니까?"
"용암에 있는 금속 알갱이를 모으는 거야. 용암에 녹지 않고 버텨낸 진정한 금속이지. 그 금속들을 모아서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무구를 만드는 게 우리 일족의 염원이야."
"이것처럼 말입니까?"
네크로에겐 파괴 불가 속성이 붙은 아이템이 두 개나 있었다.
"아니. 이건 파괴만 안 되는 거고. 우린 아예 내구도가 안 깎이는 걸 말하는 거야."
세상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굳세어서 내구도 자체가 깎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리력, 원소 공격, 속성 공격 등 모든 것에 타격을 받지 않는 무구. 만약 그게 방어구라면 그야말로 무적이 아닐 수 없었다.
"드래곤 산맥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안내해줄 용감한 드워프가 필요합니다."
"거긴 우리도 장비 도움 없이는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곳이야. 정 가고 싶으면 우선 자네들과 길잡이가 사용할 장비 재료부터 모아오게."
-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용암에 사는 화염 지렁이, 플레어 웜을 사냥하면 일정 확률로 용암석을 떨굽니다. 용암석을 섞어 물품을 제작하면 용암의 열기에도 버텨낼 수 있습니다.
- 용암석 10개를 구하십시오.
"자, 일단 정보부터 모으자. 용암석 구매할 수 있으면 괜히 몹 잡으며 고생할 필요 없잖아. 칭찬에 약하니까 용감하다는 말 많이 해주고."
용암 드워프는 10만이 넘는 일족이 늘 함께 움직였다. 다행히 게임이라 모든 드워프와 대화할 필요는 없었다. 대화가 통할만 한 드워프는 머리 위에 이름을 띄우고 다녔다. 이름을 띄우지 않은 드워프는 말을 걸어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낚시로 잡아야 해요."
"낚시로 용암에서 끌어 올린 후 뚜드려패야 해."
철벽과 진돗개가 비슷한 정보를 물어왔다. 일행은 잡화점 비슷한 곳에 가서 낚싯대를 알아봤다. 가격이 장난 아니었고, 낚싯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제이크밖에 없었다.
"낚시도 감각계에 속하나 보다."
낚싯대를 사고 미끼도 사고 나루터로 갔다. 용암 드워프들이 만든 용암에 뜨는 배를 타고 몇 분 거리의 꽤 큼직한 섬에 내렸다. 그래도 외곽이라고 용암의 열기가 덜해서 참을 만했다.
"이거 생방송 해야 하는데."
"하자. 바로 생방송 열어."
용암 낚시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시청자가 빠르게 몰려왔다. 제이크는 낚싯대를 정비한 후 미끼를 바늘에 걸었다. 용암에서 사는 염어라는 붉은 물고기가 플레어 웜을 낚는 미끼였다.
"지렁이를 미끼로 물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미끼로 지렁이를 낚는구나."
제이크가 훌륭한 캐스팅을 선보였다. 얌전하던 염어는 용암에 들어가자마자 살아났다. 낚싯바늘을 벗어나려고 격렬하게 펄떡였다. 제이크는 적절한 컨트롤로 염어가 바늘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와, 온다."
염어의 남다른 몸부림이 플레어 웜의 주의를 끌었다. 딴에는 안 들키려고 용암 밑으로 천천히 접근했지만, 다른 곳과 다른 용암의 움직임에 유저와 시청자들은 쉽게 발견했다. 염어도 플레어 웜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몸부림이 한 층 심해졌다.
"도와줘?"
플레어 웜의 앙탈에 힘겹게 버티는 제이크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질문했다.
"낚시는 기술이다."
릴을 풀었다 감았다 반복하고 챔질과 적절한 휘저음으로 제이크는 플레어 웜을 낚싯바늘로 제대로 꿰었다. 고개를 돌려 멀리 도망가려던 플레어 웜은 제이크의 화려한 컨트롤에 머리가 섬 쪽으로 돌려지면서 조금씩 끌려왔다.
"갈고리 준비."
섬과 가까운 얕은 용암에 오자 더는 끌어당길 수 없었다. 진돗개가 자루가 긴 갈고리를 들고 대기했다. 플레어 웜의 움직임이 조금 얌전해진 순간, 갈고리로 머리 부위를 콱 찍어서 섬으로 끌어올렸다.
"신의 불, 도발, 이교도 심판."
"투심권, 상태이상 엄청 잘 들어가."
"제길, 나 쓸모없어졌어."
진돗개는 참수 스킬로 플레어 웜을 두 동강 냈다. 그런데 플레어 웜이 둘이 되어 각자 싸웠다.
"갈고리로 한 마리 찍어서 끌고 다녀."
네크로가 기지를 발휘했다. 진돗개는 갈고리로 플레어 웜 하나를 찍고 섬 여기저기 달렸다. 그 사이 현피와 동해의 활약으로 철벽이 잡아둔 플레어 웜을 쉽게 해치웠다.
"잘했어. 진돗개 덕분에 한 마리 낚아서 용암석 2개 얻었어."
새옹지마라고. 플레어 웜을 늘려서 헛짓거리했나 싶었는데, 둘 다 용암석 하나씩 드랍했다. 진돗개도 갈고리로 플레어 웜을 끌고 다니는 놀이가 꽤 재밌었는지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 게륵은 빨리 아이템 수리해. 뜨거운 놈이라서 내구도가 팍팍 깎여. 게륵 수리가 끝난 후 두 번째 낚시 시작한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었다. 네크로 일행은 이틀 동안 낚시에만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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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쁘다."
이름 : 용암의 결정
분류 : 팔찌
등급 : 이벤트
능력 : 용암이 주는 피해 99% 감소
특별 : 수리 불가
네크로가 예전에 얻었던 환술 가면과 마찬가지로, 특정 상황에만 사용할 수 있는 이벤트 아이템이었다. 평소에는 얼굴이나 팔목 부위에 아이템을 착용할 수 없었다.
여덟이 하나씩 착용하고 길잡이가 하나 착용했다. 남은 하나는 만약을 대비하여 네크로가 보관했다.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원하는가, 아니면 돌아가지만 안전한 길을 원하는가?"
"빠른 길을 원합니다."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빠른 길보다 돌아가는 길이 한 달은 더 걸린다. 게임 시간이긴 하지만, 실패를 염두에 둬야 하는 일행은 느긋하게 안전한 길을 고를 수 없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은 배였다. 배를 타고 나루터에서 출발해 용암 폭포까지 갔다.
"절벽을 타고 밑에 내려가서 한동안 걸으면 배가 있어. 다들 조심해서 내려오게."
길잡이는 곡괭이 비슷하게 생긴 도구로 절벽을 탁탁 찍으면서 순식간에 내려갔다. 폭포의 용암이 사방으로 마구 튀고, 자칫 실족하면 용암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코스였다.
"아까 용암에 손을 담가봤잖아. 피해가 크지 않았어. 떨어져도 빨리 뭍으로 올라오면 살 수 있어. 그러니 떨지 말고 침착하게 내려가자."
"형, 밧줄로 허리를 묶고 함께 내려가면 어떨까? 한 사람이 추락해도 남은 사람이 버텨주지 않을까?"
"못 버티면 다 용암에 떨어져. 그리고 우리랑 달리 밧줄은 열기를 못 버티고 타버리거나 끊어질 거야. 우리야 팔찌 덕분에 더위를 제대로 못 느낀다고 하지만, 여긴 온도가 장난 아닌 곳이라고."
네크로가 가장 먼저 내려갔고 제이크와 게륵도 빠르게 내려갔다. 노익장 그웩이 네 번째로 내려갔고 진돗개도 조금 위기가 있었지만 안전하게 내려갔다.
철벽이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며 겨우 내려갔다. 동해는 답공보로 현피까지 도와주면서 어렵지 않게 절벽을 내려왔다.
"동해 도움받으면 다들 쉽게 내려왔을 텐데."
"현피형이니까 괜찮았지, 돗형이랑 철벽은 갑옷 무게 때문에 나도 못 도와."
강기슭이라고 하기 무엇하지만, 용암이 흐르는 강을 따라 한참 걸으니 주인 없는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여긴 용암이 고이는 곳이야. 배를 열 개 정도 띄우면 한두 개는 이곳에 도착하지. 배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안 그럼 아까보다 더 험하고 높은 절벽을 타야 했어."
배를 타고 조금 에둘렀다. 아까보다 훨씬 큰 용암 폭포가 있었는데, 다행히 아까처럼 폭포 빼고는 갈 길이 없는 게 아니었다. 폭포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완만한 샛길이 나왔고, 꽤 에둘렀지만 배 덕분에 느리지 않게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낭만을 아는 모험가들이야."
배가 멈춘 곳에는 용암 드워프와 수십 명의 모험가가 있었다. 팔찌를 하나씩 찬 모험가들은 별의별 종족이 다 있었다.
"숙영지에서 마음이 맞는 놈들끼리 팀을 짜서 도전하는 거야. 검은 용암에 사는 화염 지렁이는 정말 훌륭한 무구를 품고 있거든."
네크로 일행까지 합치면 60명이 넘는 사람을 모두 태울 정도로 커다란 배가 부두에 나타났다. 정말 공교롭게도 보름에 한 번 운행하는 배가 네크로 일행의 도착에 맞춰서 부두로 정박했다.
"이건 성공하라는 신의 계시가 틀림없어."
"우리 낚싯대 몇 개 있지?"
"두 개."
인벤토리가 없는 모험가들은 모두 낚싯대 두세 개씩 등에 메고 있었다. 갈고리도 셋 당 하나씩 들었다.
"내가 낚싯대 강화할 수 있다."
"도착해서 상황 보면서 결정하자. 강화 실패하면 낚싯대 사라지잖아."
게륵이 시무룩해서 망치와 이상하게 생긴 공구를 주머니에 넣었다. 제이크가 낚시로 크게 활약하는 데 본인은 아무 보탬도 되지 않아 기가 죽었는데, 어렵게 생긴 활약 기회마저 뒤로 미뤄졌다.
뱃전에 살짝 금이 가서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따로 선택 여지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배에 탑승했다. 작은 배와 달리 큰 배는 엄청 느리게 움직였다.
"용암 파도다. 다들 꽉 잡아. 용암에 떨어지면 죽는다."
배를 타고 지루한 닷새를 보냈다. 일행이 심심하다고 투덜댄 벌인지, 붉은 용암이 아닌 검은 용암이 2미터 높이로 솟은 채 배를 덮쳐왔다. 그제야 뱃전에 금이 간 이유를 알게 됐다. 전투도 없이 아주 평온하게 움직였는데 왜 배에 손상이 생겼나 했더니, 목적지에 가까워진 후 짧은 간격으로 덮치는 파도 때문이었다.
버티지 못하고 용암에 떨어진 모함가가 셋이나 있었다. 용암 드워프들이 갈고리로 재빨리 건져냈지만, 둘은 이미 재가 되었고 하나만 겨우 살아남았다.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보기만 해도 역겨운 즙을 먹게 한 후 치유 주술로 회복을 도왔다.
"우린 저항 수치가 높아서 괜찮아. 저들은 팔찌 도움밖에 없지만, 우린 자체 저항이 높은 편이야."
겁에 질린 철벽과 동해를 다독였다. 현피도 눈알이 자꾸 움직이는 걸 보니 겁먹었으면서도 아닌 척 연기하는 거로 보였다. 광전사 스킬을 사용하면 용암에서 헤엄쳐도 되는 진돗개는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였다.
"보름 후에 다시 온다. 그때까지 다들 살아있기 바란다."
승객이 전부 하선하자, 드워프 선장이 작별 인사를 했다. 출발점에 가서 승객을 싣고 이곳까지 오는 데 보름 걸렸다. 퀘스트 완성 여부와 상관없이 최소 보름은 이곳에 묶여있게 되었다.
"급할 게 없어. 일단 정보부터 모으고, 다른 모험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NPC는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본능처럼 알고 있거든."
모험가들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길잡이 용암 드워프들은 친절하긴 한데 영양가 있는 정보가 없었다. 이곳에 상주하는 용암 드워프 장사치들만 유용한 정보를 조금씩 뱉어냈다.
"황금 염어를 미끼로 화염 지렁이를 낚아야 해. 화염 지렁이 중에도 대물이 하나 있는데, 그 대물이 주는 무구를 착용하면 용암을 마음껏 가르고 다닐 수 있어. 아무래도 그 아이템 얻어서 용암 바닥을 수색해야 하는 퀘스트인 것 같아."
게륵이 낚싯대를 강화하는 사이, 다른 모험가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황금 염어를 미끼로 사용했지만, 제이크가 낚시할 때처럼 자주 물지 않았다.
"저기 용암이 가장 고요한 곳에 대물이 산대."
넘실대는 용암 호수에서 유독 잠잠한 곳이 있었다.
"저기까지 낚싯바늘 보내려면 저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겠는데?"
봉우리처럼 솟은 곳을 오른 후, 90도 경사의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낚싯대를 드리워야 대물을 낚을 수 있었다.
"형, 저기 싸움 났어."
지금까지 잡았던 플레어 웜이 왜소하게 보일 만큼 커다란 놈이 끌려왔다. 문제는 두 모험가의 낚싯줄이 엉켰고 둘 다 바늘을 플레어 웜 입술에 걸었다. 서로 자기들 거라고 다투던 두 모험가 집단이 급기야 낚싯대를 버리고 무기를 잡았다.
곁눈질하니 용암 드워프들은 재밌는 구경 났다는 듯 느긋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제길. 난도가 급상승했어."
열기 때문에 언데드를 전부 마을에 대기 상태로 두고 왔다. 비록 일행도 전투에 자신 있지만, 상대도 드래곤 산맥을 혼자 혹은 몇으로 헤집고 다니는 모험가였다. 죽어도 부활하는 일행과 달리, 저들은 한 번의 죽음도 겪지 않은 강자였다.
"그냥 저들끼리 싸워서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현피의 소원대로 플레어 웜을 두고 다투던 두 모험가 무리는 서로 싸우다 다른 모험가 무리에 목숨을 잃었다. 13명으로 머릿수가 가장 많은 모험가 무리가 뭍으로 올린 플레어 웜을 사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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