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레이드
오아시스의 즐기자 길드 하우스는 궁전처럼 화려했다. 백 명이 넘는 각 길드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신기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광산과 탄광 여러 개를 보상으로 받았다. 네크로 개인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였다.
"형편이 어려운 길드 위주로 연소탄을 지원하겠습니다. 개인 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이기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건 어렵습니다."
광산과 탄광은 사실 어마어마한 보상이다. 신급 퀘스트에 걸맞은 보상을 해야 하지만, 보상이 너무 과해서 다른 세력을 압도해도 안 된다.
만약 철혈팔기나 초인동맹이 퀘스트를 완성했다면 다른 보상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막을 알 길 없는 다른 세력들은 신기 퀘스트를 네크로에게 빼앗긴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네크로는 탄광과 광산 보상을 제대로 써먹었다.
코볼트는 국가 광산으로 보내고 네크로의 개인 광산과 탄광은 유저한테만 개방했다. 코볼트들 밥 먹여주는 돈이 국가에서 나갔다. 국가에서 생산한 연소탄은 자국 세력에 팔았고, 네크로가 생산한 연소탄은 세라프에게 판매했다.
덕분에 네크로의 수익이 확 늘었다. 국가 소유의 연소탄으로 약소 세력들을 지원하며 인심을 샀고, 은근히 드레이크와 가깝게 지내는 세력들을 배척했다.
게다가 국가 소유 광산에서 캐낸 금속으로 무구를 만들어 군대를 무장하니 세금 지출이 확 줄었다. 그렇게 줄어든 지출을 고급 시설 건립에 투입했다.
"아니. 넉 달도 안 남은 시한부 국가인데 다들 왜 저리 신났을까?"
"그러게 말이야. 진짜 강대 세력들과 싸우려는 건가? 지금부터 외교를 열심히 해서 소속 길드들의 권익을 지켜줘야 할 거 아냐."
드레이크 편에 선 길드들은 회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어차피 도움이 되는 정책은 전부 약소 길드 차지였다. 반대하자니 민심이 무섭고, 가만히 있자니 배가 아팠다.
예전엔 큰 길드 작은 길드 할 것 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도왔는데, 지금은 대놓고 약소 길드만 키워줬다.
"네크로 편에 선 자들은 왜 불만이 없을까? 같은 한국인이라서 그런 걸까?"
"저놈들은 탄광이나 광산 하나씩 얻었잖아. 길드원들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골드도 나눠준다던데."
네크로 편에 선 길드 중 구성원이 천 넘는 길드는 몇 없었다. 대부분 5백에서 8백 사이를 유지했다. 5백 이하 길드는 대부분 네크로 길드에서 합병했다.
"자, 정책 부분은 여기까지 하고. 곧 진행할 늪지 히드라 레이드에 관해 상의하겠습니다."
각 세력에서 유저 얼마씩 투입할지. 음식이나 소모 아이템을 얼마씩 준비할지. 그 외에도 상의할 일이 태산 같았다.
네크로가 대충 몇십 명 혹은 몇백 명을 끌고 가서 해치워도 된다. 극단적으론 네크로와 해동청 둘이 가서 두드려도 50% 정도 승산이 있다.
굳이 이런 식으로 번잡하게 하는 건, 단합을 끌어올리고 협동 전투 연습을 하려는 것이었다. 단기전에야 네크로가 혼자서 전황을 비틀 수도 있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단합이 중요했다.
"전리품은 내부 경매로 처리합니다. 전리품을 낙찰받은 길드는 남은 전리품 분배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길드당 낙찰은 한 번만 가능합니다. 낙찰받은 아이템 재거래는 금지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있어 입찰에 성공하면 분배에서 빠진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다 함께 즐겨야죠."
"좋은 제도 같습니다. 여유 있으면 마음에 드는 아이템 하나 골라갈 수 있고, 여유 없는 길드는 전리품 분배에서 좀 더 이득을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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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 레이드는 일체 잡음도 없이 깔끔하게 끝났다. 대도서관 사서한테서 히드라 정보를 낱낱이 모았기에 모든 상황에 대비해 넘치게 준비했다.
마을 하나 점령하고 힘겹게 키우는 소형 길드들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중형 및 대형 길드들도 보스몹 레이드를 배울 좋은 기회였다.
히드라가 드랍한 에픽 템과 레전드 템은 대형 길드들이 가져갔다. 낙찰금으로 내놓은 골드까지 전리품으로 쳐서 중형 및 소형 길드에 나눠줬다. 단순히 수학적으로 보면, 히드라를 레이드하고 얻은 전리품은 중소형 길드들이 나눈 셈이 되었다.
"남한은 다를 줄 알았는데, 북한처럼 공산주의로 가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우리 동유럽 시민들은 공산주의 폐해를 많이 입었죠."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겁니다. 공산주의는 불합리한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어차피 백일 정도면 망할 나랍니다. 망하고 나서 우리 처지가 어떻게 될지 중요합니다."
북유럽식으로 디자인한 드레이크의 길드 하우스에서 유럽 유저들이 모여 다과회를 즐겼다. 물론, 그저 차 맛이나 품평하자고 모인 건 아니었다.
우르그르에서 방해한 일만 봐도 네크로가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드러났다. 그런데도 일부 유저는 네크로가 몸값을 높이려고 일부러 쇼했을 거라고 해석하며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네크로는 확실히 다른 세력들과 싸울 생각입니다."
유럽 유저들은 6서버와 마찬가지로 참담했다. 아예 왕의 혈통을 얻은 유저가 만리장성의 허수아비 왕이 된 6서버보단 낫지만, 왕의 혈통을 얻은 산투스가 오우거가 되어버렸다. 오우거가 길드장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오우거가 인간 국가의 왕이 될 수는 없다.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북미 길드가 세운 프리덤으로 가자니 이미 WORLD에서 닦아놓은 기반이 아까웠다.
그때 초인동맹이 접근했다. 초인동맹도 많은 세력을 포용한 국가였다. 세금 혜택과 귀족 작위를 비롯한 괜찮은 조건을 내걸었다.
대화해보니 일반적인 중국인 이미지와 달리 합리적이었다. 공수표를 남발하지도 않고 안 되는 건 왜 안 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WORLD는 두 대현자 NPC 덕분에 국가 운영이 합리적이지만, 국왕인 네크로가 기타 세력에 꽤 무관심했다. 그저 정책이나 세금으로 도움을 주고 끝이었다. 오죽했으면 드레이크는 네크로가 실존 인물이 아닌 어마어마한 인공지능을 지닌 NPC가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리고 우리 살길은 이 드레이크가 이미 해결했습니다."
드레이크의 호언장담에 유저들 모두 조용해졌다.
"여기 사람들만 알아야 합니다. 누설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렴요."
"초인동맹, 철혈팔기, 만리장성, 역천. 네 세력이 번갈아 소금성을 수도로 삼기로 했답니다."
"무슨 뜻입니까?"
"소금성을 함락한 후 한 국가가 소금성을 수도로 합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세력이 소금성을 함락해 수도로 삼습니다. 이런 식으로 네 세력이 돌아가면서 혜택을 받는 것이지요."
"그게 우리 살길과는 무슨 상관입니까?"
"만리장성이 수도를 빼앗기고 다시 국가 세웠을 때, 몇 개 도시와 마을이 WORLD로 귀순했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소금성에 내려진 신의 가호 덕을 보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초인동맹이 우리를 확실하게 보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른 도시와 마을은 몰라도 우리 도시와 마을은 침략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초인동맹에 귀순하자는 거 아닙니까. 원래랑 뭐가 다르단 겁니까?"
"우린 소금성에 귀순합니다."
"음. 그러니까. 어느 국가가 소금성을 차지하면 해당 국가에 소속되자는 말입니까?"
"정답입니다."
"네 국가에 번갈아 소속되면서 소금성의 혜택을 늘 받는다는 말씀이군요. 근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늘 국가를 바꾸는 세력을 누가 곱게 보겠습니까?"
"혜택으로 얻는 수익 일부를 네 국가에 돌리면 됩니다. 철혈팔기는 고위급 유저들한테 골드로 로비하면 됩니다. 남은 세 세력도 국가 혹은 개인에게 적당히 로비하면 눈감아 줄 겁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게 뭡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국가가 공격받을 때 아무것도 안 하면 됩니다."
"길드원들을 설득할 자신 없는데요. 우리 스위스인들은 외적에 맞서 싸우는 걸 자랑으로 여깁니다."
"일단 전쟁 전까지만 비밀 지켜주세요. 그때 가서 설득에 실패하면 네크로 편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니면 지금부터 네크로 편에 가셔도 됩니다. 단, 제 말을 누설하기 전에 거듭 고민하세요. 일곱 국가 중에 가장 강한 네 세력과 척지고 살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럼 이 얘기는 잠시 묻어두죠. 다들 비밀은 지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일단락되나 싶었는데, 누군가 폭탄을 던졌다.
"네크로가 드래곤 레이드를 진행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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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도시 13개를 함락한 기세를 몰아 가미카제는 추가로 4개 도시를 더 점령했다. 그리고 소강상태가 되었다. 만리장성이 차지한 도시가 몇 안 되어 반응이 빨랐다. 몇 갈래로 나뉘어 만리장성 병력을 찢어놓은 후 한두 개 도시를 점령하는 방식은 이젠 안 먹혔다.
"인간을 믿을 수 있어야지."
우르크 황제의 스킬 후유증은 네크로보다 길었다. 다행히 드래곤 때와 달리 '신의 전사' 스킬을 펼치고 큰 타격을 받지 않았기에 전투력만 하락했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보다, 믿었을 때 얻을 걸 생각해. 인간을 믿지 말고 이익을 믿어."
켄신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길드 채널로 다른 유저가 알려주는 대사를 그대로 외웠다. 인간은 아니지만, 대륙을 지배했던 거대 제국의 황제. 드래곤을 잡은 대단한 전사와 마주하고 국가의 운명을 담판하는 경험은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휑한 벌판에서 덩치는 무식하게 크지만 얼굴이 아파 보이는 우르크와 작은 덩치의 도둑 유저가 마주 섰다. 왕의 혈통을 복용한 유저기에 우르크 황제도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에 응해줬다.
"그러니까 만리장성이라는 국가를 소멸하면 인간 사이에 큰 분란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는 말이지?"
"만리장성은 코끼리야. 개집에 넣으면 뒤척일 수밖에 없어. 비좁으니까. 그럼 개집이 무너질 거고, 코끼리는 사람이 머무는 집을 빼앗으려 하겠지."
만리장성을 완전히 쫓아내서 다른 곳으로 가게 할 작정이다. 현재 가장 큰 가능성은 만리장성이 프리덤을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끼리 동맹을 맺으려면 아직도 두 달하고 보름 걸린다."
현실 시간으로 25일 뒤면 다시 국가끼리 동맹을 맺을 수 있다. 그 전에 만리장성을 아예 쫓아내야 한다. 서로 싸우는 상황에선 셋이 균형을 잘 잡지만, 서로 견제하며 협력할 땐 숫자가 많고 실력이 근접할수록 좋다.
가미카제는 만리장성을 약화하여 남은 세 세력의 틈을 벌리려는 계획이다. 역천과 동맹이 확실한 프리덤과 만리장성이 싸우면 금상첨화다.
셋이 아니라 둘만 손잡아도 가미카제는 필패다. 네크로는 당분간 대륙의 모든 분쟁에서 배제되었다. 그래서 가미카제는 우르크와 협력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만리장성을 처리한 후, 대당성세를 공격해서 우릴 돕는다는 건 무슨 뜻이지?"
"너희는 고구려와 대당성세의 국경선을 따라 대당성세의 성만 공격한다. 고구려가 빼앗으면 그냥 주면 된다. 그렇게 대당성세의 땅을 계속 빼앗아 고구려에 넘긴다. 그럼 둘 사이가 나빠질 것이다. 대당성세는 우리에게 땅을 빼앗기는 걸 더 싫어할 것이다. 위엔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고구려와 프리덤이 있다. 그러나 자기 땅이 계속 고구려 것이 된다면 마음이 바뀔 것이다."
"바알드로의 가호로 수도를 되찾을 수 없다. 내 개인 창고가 수도에 있다. 우린 식량이 부족해 마음껏 싸울 수 없다."
"여기, 여기, 여기. 세 성의 창고를 식량으로 가득 채웠다. 너희가 공격하면 우린 수비하지 않는다. 식량을 얻은 후 대당성세를 공격해라. 세 도시를 우리가 다시 가져다가 창고를 채울 것이다."
"인간은 참 하찮으면서도 두려운 존재군."
차가운 바람이 우르크와 인간 사이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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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즐기자 길드 하우스에서 회의가 열렸다. 지난번보다 회의에 참석한 길드가 확연히 줄었다. 시차 때문에 접속하지 못한 유저도 있지만, 시차 문제가 없는 유럽 길드도 대거 빠졌다.
"이번 드래곤 레이드는 모든 세력이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세력이 아닌 개인 무력을 기준으로 뽑았습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뽑힌 유저에겐 거부권이 있습니다. 꽤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레이드입니다. 거부해도 아무 불이익이 없을 겁니다."
"분배는 어떻게 합니까?"
"두 가지 방식입니다. 그저 몸만 가서 레이드에 참가하는 유저에겐 정해진 금액을 보상합니다. 그 금액에 상당한 물건을 요구해도 됩니다. 드래곤 창고에 있는 물건이라면 말이죠. 즐기자 길드와 함께 레이드에 투자하는 분들은 비율에 따라 전리품을 나눕니다. 다시 말하지만, 실패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 즐기자 길드도 실패를 무릅쓰고 강행하는 레이드입니다. 히드라처럼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언제까지 정하면 됩니까?"
"내일까지 결정해 통보하면 됩니다. 그리고 투자에 참여할 분들은 조용히 찾아오십시오.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 눈먼 투자를 하려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준비에 드는 금액이 무척 어마어마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미리 소식을 접한 유럽 길드들은 일부러 회의에서 빠졌다. 자신들을 배제하고도 네크로가 드래곤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는지 지켜보려는 심보였다.
그러나 드레이크 세력의 예상과 달리, 네크로는 유저가 열 안 되어도 레이드를 진행한다는 태도였다.
드레이크 세력이 미리 드래곤 레이드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네크로는 드래곤 레이드에 대한 정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오아시스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후, 레전드 게시판은 물론 각 포털 사이트 뉴스에도 드래곤 레이드 소식이 메인을 장식했다.
'에픽 다이아몬드. 제발 얻어내야 하는데.'
대도서관 사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에픽 다이아몬드를 보유할 가능성이 가장 큰 드래곤을 지목했다.
'파르투티어라. 성격은 괜찮았던 거 같은데.'
용암에서 치료하는 대신 변이 드래곤 사체를 던져줬던 불의 드래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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