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동맹
3만 명의 합격술을 익힌 무인과 5만 명의 비전투 유저, 그리고 20만이 넘는 NPC로 구성한 군대는 주둔지를 만들어 주둔했다. 주둔지가 사라진 후 로그인한 유저는 시스템이 알아서 해당 부대에 보내준다.
일부 유저는 근처 사냥터로 향했고, 일부는 로그아웃했다. 대부분 유저는 공성전을 생중계로 구경했다.
NPC들은 물을 긷고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었다. 상인 유저 인벤토리에 음식이 넉넉하지만, NPC는 설정에 따라 주둔군이 해야 할 일에 충실했다.
공성전이 시작하자마자 만리장성이 수도로 삼은 장안성의 정면 성벽이 무너졌다. 야마토가 선보인 적 있는 유성 소환 스킬이었다. 유저나 일반 NPC 마법사가 사용하는 열화 버전이 아니라 오리지날 대마법이었다.
2/3 무너진 남쪽 성벽을 넘어 가미카제 유저들이 돌격했다. 성을 포위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 꼼수를 막으려고 공성 측의 피로도는 수성 측보다 3배 빠르게 쌓였다.
"이상하네? 가미카제의 선두에서 돌격하는 유저는 대부분이 전사로 보여."
그 의문이 풀리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보초를 서던 NPC들이 경보를 울렸다. 3천 규모의 기마병이 어느새 나타나 주둔지를 향해 돌진했다.
"멍청한 것들. 여기 무인이 몇만인데."
생중계를 보며 휴식하던 유저들이 빠르게 모였다. 2만3천 정도 되는 무인이 모여 방벽을 형성했다. 기마병과 무인이 정면충돌했다.
날카로운 창과 단단한 방패가 부딪쳤다. 무인이 수비에 장점을 갖춘 직업은 아니지만, 2만이 넘는 숫자가 뭉치니 방패병 못지않은 저지력을 보였다. 수백 명 무인을 죽인 기마병은 기동력을 잃고 무인 무리에 포위당했다.
"당했다. 빨리 해치워라."
조호이산지계에 걸렸다. 가장 강한 무인을 기마병으로 유인한 다음, 탈것을 탄 성기사들이 공중으로 들어왔다.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일정 간격으로 주둔지를 강습했다.
가미카제는 성기사를 수도 공격이 아닌 주둔지 습격에 분배했다.
수백의 파멸신이 나타났다. 아이템을 제대로 맞췄는지 50%가 넘은 성기사가 살아남았다. 파멸신은 소환된 후 첫 공격은 늘 자신을 부른 성기사에게 할당했다. 그걸 버텨내는 성기사가 무척 드물었는데, 가미카제에서 해법을 발견한 듯했다.
무인들은 기마병을 빠르게 해치운 후 파멸신을 부른 성기사를 하나씩 죽였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성기사들이 한데 뭉쳐있지 않아 무인들도 분산해야 했다.
파멸신을 사용한 성기사 주변에는 최소 열 명의 성기사가 버텼다. 무인들이 수백씩 뭉쳐서 최대한 빠르게 죽이긴 했지만, 파멸신에게 죽은 무인도 적지 않았다. 성기사가 죽고도 2분이나 날뛴 파멸신에게 많은 유저와 NPC가 사망했다.
"재수 없으려니. 채찍 든 놈이 둘이나 있어."
사거리가 가장 긴 채찍을 든 파멸신이 둘이나 있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줬다. 창과 활도 많이 죽였지만, 채찍을 든 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인원 점검한다. 파티 별로 명단 확인해."
그러나 가미카제의 습격은 끝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변장술과 은신술로 주둔지에 들어온 가미카제 도둑들이 공성 병기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침입한 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잡아 죽였지만, 공성 병기도 30% 가까운 손실을 보았다.
"시발. 그냥 성으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아.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것들이 욕심은 많아서."
주둔지에 남은 유저들이 수뇌부를 욕했다. 주둔지가 습격당하고 큰 피해를 받았다는 말에 수뇌부는 유저들에게 주둔지 주변을 수색하라고 명령했다. 쉬지도 못하고 주둔지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이미 깔끔하게 철수한 가미카제 유저를 발견할 리가 없었다.
한편.
장안성 전투는 무척 치열했다. 가미카제는 시청을 점령하려고 병력을 고밀도로 투입했다. 연합군은 시청을 방어하면서 가미카제의 임시 신전을 점령하는 데 정예를 투입했다. 빨리 수도 방어를 끝내고 40만 유저가 빠진 일본 영토를 짓밟고 싶었다.
그리고 전투는 연합군의 소원대로 빠르게 끝났다. 기마병과 성기사가 빠진 가미카제는 수비에서 크게 손해 봤다. 임시 신전을 점령당한 가미카제의 유저들은 점령한 지 얼마 안 되는, 만리장성과 철혈팔기 사이에 있는 마을로 강제 이동되었다.
"놈들이 소녕위로 향했습니다."
마을로 강제 이동된 가미카제 유저들은 부활한 유저들을 기다려 함께 철혈팔기의 도시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해할 수 없군."
###
역천은 우르크 도시를 공격하는 유저들을 잠자코 지켜봤다.
고구려는 미련하게도 일직선으로 확장하며 우르크와 접촉면을 늘였다. 네크로가 연결을 단절해 안에 가둔 우르크를 약화한 것과 달리, 고구려는 적진 깊숙이 파고들었다.
덕분에 북미 세력이 안전하게 확장했다. 유저의 숫자나 능력이나 부족한 면이 있었는데, 역천의 도움으로 꽤 빠른 확장을 보였다.
'오만의 대가를 곧 받아내마.'
역천의 전술은 우르크의 대반격 때 철혈팔기가 취했던 전략과 같았다. 일직선으로 우르크 마을과 도시 가운데로 파고들어 접촉면을 늘인 후 우르크를 최대한 많이 죽였다.
철혈팔기는 초반에 우르크를 하나라도 더 죽이는 데 집중하며 도시와 마을을 꽤 많이 잃었다. 그리고 우르크 숫자가 줄어든 다음 잃었던 도시를 빠르게 회복하고 확장까지 했다.
역천의 방법 역시 초반은 확장이 느리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도시와 마을 점령 속도가 빨라졌다. 프리덤 길드도 도시와 마을을 많이 점령하며 북미와 유럽 유저를 대량으로 흡수했다. 이젠 오히려 프리덤이 역천의 부담을 덜어줬다.
지금 공격하는 도시를 점령하면 우르크 제국이 차지했던 70% 영토가 인간 손에 들어간다. 그러면 우르크 황제가 움직일 것이다. 대륙의 모든 우르크는 다시 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뭉칠 것이고, 그 첫 목표는 당연히 대륙 중앙 교통 요충지를 차지한 철혈팔기가 세운 대당성세다.
'누가 네크로에게 정보를 줬을까?'
유니콘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요즘 유니콘 운영팀 직원과 자주 만난다는데, 연애가 아니고 비즈니스였나?'
초인동맹의 초패왕이 흘린 정보지만, 역천이 거기까지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
우르크는 중부가 가장 강했다. 그다음이 동남부와 서남부였다. 인간 역사를 보면 북방의 황폐한 땅이 전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레전드 설정에는 가장 약한 우르크들이 척박한 북부 땅으로 밀려났다.
'제대로 된 우르크 정예는 얼마나 강할까?'
우르크 제국의 수도는 대륙 중부에서 동쪽에 치우쳤다. 가장 가까운 나라도 철혈팔기의 대당성세다. 게다가 생산력이 부족한 우르크는 대륙 중앙의 숲을 반드시 장악해야 한다.
'드래곤도 잡은 우르크라. 네크로가 잡은 장난감 같은 드래곤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을 잡았잖아. 솔직히 모든 전력을 기울여도 드래곤 잡을 자신 없는데.'
드래곤 피어 하나면 끝이다. 일정 수준 이하 유저는 바로 사망이고, 수도나 가까운 도시 신전에서 부활한다. 끊임없이 부활해서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도 안 된다.
역천은 뒷짐을 지고 구경만 했다. 시청을 정리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페가수스를 타고 도시로 들어갔다. 시청에 들어가 도시 점령을 마치자 모든 유저에게 공지가 떨어졌다.
- 우르크 제국이 부활합니다.
- 우르크 황제는 8백만 정예가 있습니다.
- 우르크 황제의 군대는 유저와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활합니다. 부활 지점은 우르크의 수도 우르그르입니다.
- 수도 우르그르는 우르크의 신 우르그르의 가호를 받습니다.
- 현존하는 인간 왕국 WORLD, 초, 대당성세, 대일본제국, 고구려, FreeDom, 만리장성은 강제로 동맹이 맺어집니다. 강대한 우르크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단합해야 합니다.
- 국가에 소속하지 않은 유저들도 자동으로 인간 진영에 편입됩니다. 지금부터 유저 간 PK는 전면 금지입니다.
허탈했다. 역천은 철혈팔기에 한 방 먹여주려고 쿨타임을 계산해 요즘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유저끼리 하는 적대 행위를 시스템이 금지했다.
물론, 빙하시대는 타깃형 마법이 아닌 범위형 마법이다. 철혈팔기의 중심에 가서 빙하시대를 사용해 해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온 레전드 게임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역천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다.
허탈하기는 가미카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르크 황제가 철혈팔기를 공격할 때 빈집을 털어보려 했다. 역천의 약속을 믿고 40만이나 되는 전투 유저를 과감히 적진 복판에 떨궜다.
물론, 역천에게 속았다 해도 대안이 있었다. 점령한 마을은 현실 시간으로 8시간 후면 포기할 수 있다. 마을을 포기하고 공성전에 패배하면 다시 자기 도시 혹은 마을로 돌아간다.
게다가 주둔지를 습격해 공성 병기도 꽤 파괴했으니 가미카제로는 해볼 만한 모험이었다. 실패해도 기껏해야 도시 한두 개 빼앗기는 대신, 성공하면 철혈팔기에 개망신 줄 수 있다.
가미카제로선 대각선 위치에 있는 초인동맹이 중국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되는 게 최선이었다. 마침 초인동맹 간부 중 야마토가 심은 사람도 있어서 초인동맹이 강해질수록 가미카제는 유리하다. 초인동맹이 강해진다는 건 가까이 있는 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약해진다는 말과 다름없다.
안타깝기는 초인동맹도 마찬가지였다. 두루미와 조개의 싸움을 즐겁게 바라보며 언제 자신의 어부 신분을 드러낼까 고민 중인데, 갑자기 인류 동맹이 맺어졌다.
동맹석 4개를 소모해 게임 시간으로 1년짜리 동맹을 맺은 만리장성과 철혈팔기 역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기쁜 세력은 네크로였고 그다음으론 가미카제였다. 세 번째로 기쁜 건 북미 세력 프리덤이었다. 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무나 기침해도 화들짝 놀랄 판인데 시스템이 안전을 보장해줬다.
###
대륙 회의가 열렸다. 네크로 길드 대표로 네크로와 진돗개가 참가했다.
"네크로 길드에서 드워프 아이템 독점권을 풀었으면 합니다."
즐기자 길드라고 몇 번 시정했는데, 상대는 막무가내였다. 즐기자가 발음이 어려운 것도 있고, 계속 네크로로 불러와서 바꾸는 것도 힘들었다.
"좋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풀겠습니다."
"지금 세 길드가 세라프 식량을 독점하는데, 이것도 풀어줬으면 합니다."
"역천입니다. 우린 곡물 생산량이 부족해 세라프 식량이 필요합니다."
"초인동맹의 서북부도 풍요하진 않죠."
"알겠습니다. 네크로 길드는 풀겠습니다."
조금 더 실랑이질해서 역천과 초인동맹도 구매양은 줄이기로 했다.
"어제 우르크의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다들 확인했을 겁니다."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의 60만 유저가 지키는 성을 40분 만에 함락했다. 상대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왔으면 덜 억울하겠는데, 우르크 군대의 규모는 40만이었다.
"각 세력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가미카제입니다. 우리는 여력이 없습니다."
가미카제는 급하게 점령한 고구려의 도시와 마을도 추슬러야 하고,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소모한 자원도 복구해야 한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돈은 물론 시간도 꽤 필요하다.
"역천입니다. 동북부에서 우르크를 최대한 많이 죽이겠습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동북부와 북부는 우르크가 아직도 많은 편이었다.
"프리덤입니다. 우리는 수비도 벅찹니다."
약해서 큰 도움도 안 되는 프리덤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려면 반년 정도 걸린다.
"초인동맹은 지원하겠습니다."
모두의 눈이 네크로에게 향했다.
"지금 바다에 있습니다. 대륙으로 돌아가려면 며칠 걸립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합니다."
철혈팔기의 대표 유저가 이를 부득 갈았다.
"동북부를 어느 정도 정리하면 수비를 돕겠습니다."
"프리덤도 마찬가집니다. 안정되면 최대한 병력을 짜내겠습니다."
"돌아가는 즉시 병력을 구성하겠습니다. 사망하면 끝인 NPC는 좀 그렇고, 유저를 최대한 모아보겠습니다."
"인류 동맹이기에 다른 성에서 죽어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주술사 NPC 꼭 데려왔으면 합니다."
가미카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가미카제를 책망할 수 없었다. 침략자인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는데, 둘 다 생깠다.
빼앗은 가미카제의 도시를 포기해서 돌려달라는 요청도 무시했다.
"가미카제는 어쩔 작정입니까?"
"대규모 전쟁을 지탱할 상황이 아닙니다. 특수 아이템을 갖춘 유저만 투입하겠습니다."
영상 회의가 끝났다. 진돗개는 바로 로그아웃했고 네크로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러나 평소완 달리 낚시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철혈팔기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우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장벽과 같은 존재다.'
철혈팔기가 무너지면 우르크 군대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철혈팔기가 너무 쉽게 버티는 것도 안 된다.
"대륙 지도."
마을은 여전히 네크로가 1위였다. 도시는 철혈팔기가 1위를 먹었다. 초인동맹은 분명히 여력이 있을 텐데 확장을 자제했다.
'확장할 시기다. 그러나 철혈팔기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확장만 하면 저들에게 명분을 준다. 명분을 잃으면 내 편이 줄어든다.'
'나, 철벽, 우자르, 다미안.'
진돗개는 길드와 국가를 관리해야 한다. 국왕의 인장을 맡기면 작위는 없어도 현자 NPC들을 감독할 권리가 생긴다. 정 중요한 일은 네크로가 포탈 타고 돌아가서 처리해도 된다.
'동맹 길드 중에서 도시를 점령한 세력 위주로 차출해야겠다. 백작이 되려면 국가 공적치도 필요하니깐.'
국가 퀘스트를 만들어 국가 공적치를 보상으로 주면 된다. 중앙섬에서부터 명성을 관리한 북미 유저들은 전투에만 열중한 대부분 한국 유저보다 명성이 오히려 높았다. 백작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국가 공적치뿐이었다.
'고비 하나 넘겼을 뿐, 가시밭길이 끝난 건 아니겠지.'
이 사태에 당황한 건 유저뿐이 아니었다. 우르크의 대반격 때 유니콘이 개입한 반동으로 우르크 병력이 8백만으로 늘었다.
- 작가의말
올해는 감기로 고생입니다. 1월에 감기로 보름 정도 고생, 2월에도 열흘 정도 고생. 지금 3일째 감기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물 자주 마셔주는 게 좋다네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