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 발견1
애완견 크기의 전갈이 폴짝 뛰어올랐다. 작지 않은 몸을 허공에서 멈추고 꼬리를 바르르 떤다. 곧 딱총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전갈 꼬리가 네크로에게 쏘아졌다.
은신을 간파하는 스킬이 없는 네크로는 전갈이 뛰어오르기 전까지 전혀 접근을 몰랐다. 그저 전갈이 뛰어오른 순간에 감지하고 반응했다.
"사장님, 나이스 샷."
네크로가 휘두른 지팡이는 정확히 전갈 머리를 터뜨렸다. 단지 공격에 그치지 않고, 네크로를 찌르려던 꼬리의 독침도 지팡이에 막혔다. 의도적으로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전갈을 상대하는 타이밍을 제대로 익혔다는 방증이다.
'퀘스트 템이면 좀 드랍률 올려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계산에 밝고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네크로지만, 사교성이 부족하고 뭐나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이 깊이 박혔다. 그래서 진돗개로부터 드랍률 30% 향상의 레어 목걸이를 빌릴 생각은 애초에 떠올리지 못했다.
원래부터 아이템 드랍률이 극악인 황무지다. 그래서 백 마리에 가까운 언데드를 이끌고 학살했는데도 수집퀘를 쉽게 완성하지 못했다.
'내가 슬슬 미쳐가는 것 같다.'
혼자서 싸우고 품평하고 칭찬하고 비판하고. 네크로는 혼자 놀이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줬다. 조금 먼 곳에 듀라한의 지휘를 받는 언데드들이 알아서 사냥했다.
지그시 언데드 부하들이 사냥하는 곳을 바라보았으나, 퀘스트 아이템 특유의 후광이 보이지 않았다.
'뻐드렁니 39개, 전갈 독주머니 7개, 도마뱀 꼬리 19개.'
전갈 독주머니가 유독 안 나왔다. 전갈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비율만 따져봐도 독주머니가 적다. 직접 죽이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해서 듀라한을 사령관으로 임명해 언데드들을 떼놓고 혼자 전갈을 사냥했다.
'덕분에 컨트롤 늘어서 좋긴 한데.'
전갈이 모습을 드러내고 공격하는 건 정말 짧은 순간이다. 현실이었으면 반격은커녕 피하기도 힘들었을 공격을 게임에서는 수월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공격에 당해봤자 두꺼운 피통과 장난 아닌 회복력으로 독 데미지가 다 사라질 때까지 너끈하게 버텼다.
'둘.'
전갈은 협공할 정도로 머리 좋은 몹은 아니다. 지금 두 전갈은 협공이 아니라, 동시에 따로따로 공격하는 거였다. 물론 당하는 처지에서는 협공이나 마찬가지지만.
지팡이 중간을 잡고 좀 더 굵은 쪽으로 전갈 대가리를 터뜨렸다. 지팡이로 미약한 감촉이 손에 전해지자마자 허리를 비틀어 지팡이를 돌렸다. 좀 더 얇은 쪽이 남은 전갈 대가리를 터뜨렸지만, 전갈 꼬리도 네크로 몸에 박혔다.
"앗, 따거."
영웅본색 명대사를 의도치 않게 뱉어버린 네크로는, 급히 살에 박힌 전갈 꼬리를 뽑았다. 네크로를 찌르고 장렬히 산화한 전갈의 사체 밑에 밝게 빛나는 전갈 독주머니가 나타났다.
'설마? 전갈한테 찔려야 독주머니를 주는 건가?'
전갈은 뼈가 없기에 좀비밖에 만들지 못한다. 전갈 내장을 파낸 후 세 마리 사체를 모아놓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나자 좀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소형으로 분류되는 전갈은 세 마리를 합쳐야 좀비나 해골 전사 한 마리 나왔다. 흡혈 좀비나 해골 궁수 만들려면 사체 열 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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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스트레스 심해?"
식사 도중 동해가 갑자기 물어왔다.
"뭔 소리야?"
"나 어제 로그아웃하고 자다가, 형 욕하는 소리에 깼어."
정확히는 어제 아니고 오늘 새벽이다. 전갈한테 찔릴 때마다 욕하긴 했다.
"아냐. 수집퀘 하는데, 독주머니 얻으려면 전갈한테 찔려야 해. 찔린 후 죽이면 높은 확률로 주거든. 너무 아파서 욕이 나온 거야."
"형. 내 다리도 괜찮아졌고 어머니 아버지도 가게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 그러니 그냥 형만 생각하고 혼자 잘살 궁리나 해."
광해의 해명이 통하지 않았다.
"너 지금부터 공부해서 고등학교 졸업장 대학 졸업장 다 따도 소용없어. 사회는 색안경을 끼고 너를 깔아뭉갤 거야. 형도 널 평생 돌보려는 게 아니야. 네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지."
동해도 이젠 사회에 스며들어야 하는 만큼, 세상의 민낯을 알아야 한다.
"형. 혹시 빚졌다고 생각해?"
가슴에 뭔가 덜컥거렸다.
"그런 거 아냐."
"형이 입양아라지만,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형이 자꾸 자신을 희생하려 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게 가슴이 아파."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내가 능력 되니까 돕는 거지. 먹고 살기 힘들면 나부터 챙겼을 거야."
광해는 애써 부정했다.
"형. 본인은 몰라도 주변 사람은 다 알아. 특히 난 맨날 집에만 있어서 만나는 사람 몇 없잖아. 그래서 가족에 대해 잘 알아. 특히 형에 대해서 말이야."
광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동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양 당시에 이미 세상을 알 정도로 영특했던 광해다. 자괴감 비슷한 감정 때문에 줄곧 과묵하게 자랐다.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광해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가족 모두 광해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형은 말이야. 강박증 같은 뭔가가 있어. 가족을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가족을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더 괴롭게 살자 같은 자학 경향이 있어."
젓가락을 내려놓은 동해가 지팡이를 짚고 옷장으로 향했다. 큰 방을 동해에게 주고 작은 방은 가상현실 기기로 꽉 차서, 광해 옷장은 거실에 안치했다. 옷장에 걸린 옷은 몇 벌 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옷 다 합쳐도 형이 내게 사준 패딩 하나보다 쌀 거야. 자기는 맨날 버스로 출근하고 걸어서 퇴근하면서 나한텐 좋은 차도 사주고. 매일 라면에 신 김치로 때우면서 아버지 대출 갚아주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안 그러는 게 더 괴롭거든."
"형만 좋으면 다야? 나랑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 형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 그런데 직접 말하면 형이 우울할까 봐 말도 못 하고."
"그리고 말이야. 내가 초등학교 졸업한 방학에 다리 다쳤잖아."
동해는 날이라도 잡았는지, 매섭게 나왔다.
"그러고 나서 형이 갑자기 공부하겠다며 축구부 그만뒀어. 감독님이 막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형이 프로가 돼서 국대도 가능한 인재라고 침을 튀겼지."
"그건 오바다. 프로들 하는 거 봐. 난 그냥 아마추어 레벨에서 조금 잘했던 거야."
변명하는 광해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무조건이라고 말 못 하겠어. 열심히 공부해 지금도 잘되긴 했지. 그러나 형은 축구 무척 좋아했잖아. 내가 다리 다치니까 형도 축구 그만둔 거잖아. 아무 조짐도 없다가 갑자기 축구 그만뒀잖아. 그리고 병신 같게도, 난 그때 형이 축구 그만둔 걸 기뻐했어. 그걸로 위안을 얻었단 말이야."
동해 눈에서 급기야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구나. 나도 행복하고 즐거워야 내 가족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건데. 생각이 짧아서 미안하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형 아니었으면 우리 집 이 정도도 못 살았어. 형이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하니까 우리 모두 희망 갖고 살았던 거야. 형이 없었으면 적어도 난 절망으로 지금까지 살지 못했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슬퍼할 형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어. 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가족을 위하는 것까진 좋은데, 자신을 학대하진 마."
말을 마친 동해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꼭 닫았지만, 서러운 비명이 문을 뚫고 새어 나왔다.
불의의 사고로 가장 빛나야 할 나이에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고 살았던 동해다. 그 아픔의 시간이 끝나가는 희망찬 현시점에, 뭐가 저리도 슬플까?
진짜로 내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았을까?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건가?
머리가 복잡해진 광해는 식사 대충 끝내고 정리와 설거지도 대충 하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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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 꽉 차서 오늘은 시간 안 됩니다. 삼 일 뒤에 선생님 스케줄이 비는데, 예약하시겠습니까?"
동해가 수술받았던 병원으로 찾아가니 상담 스케줄이 찼다는 말만 들었다. 걷는 사이 뜨겁던 머리가 어느 정도 식은 광해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병원 앞에 서 있는데, 귀에 확 꽂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치병 어린이 돕기 모금입니다. 아픈 아이들을 고통에서 건져내는 착한 일이에요. 사랑을 베풀어서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보태주세요."
환한 미소를 지은 여자가 고등학생, 기껏해야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을 막고 기부를 부탁했다. 남자가 주변 눈치를 보며 돈지갑을 꺼내더니, 5만 원 지폐를 여자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픈 아이들을 대신해서 제가 감사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기부한 남자는 쑥스럽게 웃었고, 곁에 커플로 보이는 여자가 엄지를 빼들었다. 남자는 부끄러운지 여자에게 '영화 시간 늦겠다'라고 말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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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드릴게요."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혜연은 깜짝 놀랐다. 누가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가을이라 사람을 나른하게 하는 따뜻함 속에 약간의 찬 기운이 숨어있었다. 방심한 자들의 품을 파고들어 환절기 감기라는 지독한 악몽을 선사하는 악마의 기운이다. 모금에 열중하다 보니 땀이 조금 났고, 갑자기 한기가 몸을 덮쳤다.
"이걸로 몸 덥히세요."
'약 같은 거 탄 건 아니겠지?'
뜻밖의 친절에 의심부터 떠올렸지만, 바로 자신을 책망했다.
'인터넷 뉴스 너무 봤어. 착한 분이실 거야.'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혼자서 많이도 준비하셨네요."
약간의 울림이 있어 사람을 편하게 하는 목소리다. 오관이 단정하지만, 사람을 확 끌어들이는 매력은 없는 얼굴. 키는 큰 편이고 몸도 건장해 보였다.
"원래 셋이 함께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들이 생겼다고 해서요. 그래도 결심한 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왔어요."
"이걸 혼자 다 옮기셨어요?"
"아는 오빠가 도와주긴 했는데, 자긴 창피해서 모금까진 못 돕겠다고 떠났어요."
따뜻한 커피에 몸이 풀렸는지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손발이 찬 편이죠?"
"어떻게 아셨어요?"
"군대 있을 때 수족냉증인가 앓는 후임이 있었는데 증상이 비슷했어요. 아직 따뜻하다 방심하지 마시고 얇은 옷 한 벌 더 껴입으세요."
"참 친절한 분이시네요. 조언 고맙습니다."
"이 일은 왜 하시게 된 겁니까?"
힘세서인지 일하는 요령을 알아서인지, 정리가 순식간에 끝났다. 혜연이 뜨거운 커피를 채 절반도 마시기 전이었다.
"남 도우면 뿌듯하고 보람 느껴져서요. 그리고 적은 돈이라도 성금을 받으면 세상에 좋은 사람 참 많구나 느껴져서 마음도 따뜻해지고요."
"성금 거절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불러도 못 들은 체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안 돕는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죠. 그저 잠깐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실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고 하잖아요. 세상이 각박해진 거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여유.'
별거 아닌 다섯 글자가 가슴에 깊이 박혀서 아프게 찔렀다. 물건들을 잘 정리해서 여자의 차에 실어준 후 손을 흔들어 작별했다. 마음은 여전히 괴롭지만, 두서없던 머리는 말끔하게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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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즐거운 사냥, 준비됐습니까?"
네크로가 신나게 외치자 진돗개가 슬금슬금 동해에게 다가갔다.
"넌 괜찮아?"
"네? 뭐가요?"
동해가 화들짝 놀라면서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점심 같이 먹었을 거 아냐. 넌 식중독 안 걸렸어?"
괜히 찔렸던 동해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얼굴을 폈다.
"나 몰래 좋은 거 혼자 먹다가 탈 났나 보죠."
"뻐드렁니 리젠이 24시간 맞지?"
"맞는데, 형 갑자기 왜 이렇게 신났어? 로그인도 2시간 늦게 하더니."
"그럴 일 있어. 우리 길드 뭐야. 즐기자 아냐. 일단 사냥부터 즐기자. 뻐드렁니 잡아서 리치 만드는 거야."
수집 퀘스트는 전갈 독주머니 23개만 더 모으면 된다. 일단 셋이 함께 사냥을 끝낸 후 파티 탈퇴하고 혼자 사냥할 생각이다. 독주머니 드랍률을 높이는 비결도 알아냈으니 주사 맞는 고통 수십 번만 참아내면 된다.
사방 아무리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 같지만, 셋은 버려진 사원이 있는 방향으로 곧게 전진했다. 겁 없이 덤비는 멧돼지나 도마뱀 그리고 전갈은 전사와 무인이 잽싸게 해치웠다.
"이 게임의 전투는 결국 타이밍이야. VR 게임일 때도 그랬는데, 네가 미리 반응하면 몹도 거기에 대처해. 그러니까 공격이든 수비든 회피든 타이밍이 중요해."
진돗개가 동해를 잡고 타이밍 재는 법을 가르쳤다. 타고난 리듬으로 싸우는 네크로와 달리, 진돗개는 자신만의 이론이 꽤 많았다. 길드 채널로 대화하기에 거리에 상관없이 둘의 대화가 귀에 잘 들렸다.
"보스몹 바뀌었어."
일반 몹을 잡으며 기다려낸 보스몹은, AI와 유니콘 한국 지사 개발팀의 철야 작업으로 외모가 많이 바뀌었다. 모든 보스몹의 항문이라는 기관을 사라지게 했고, 인과율에 따라 대부분 보스몹의 겉모습이 바뀌었다.
"설마, 어제 똥침 놓은 거 버그라고 그새 업데이트한 건가?"
항문을 없앤 건 임시방편이다. 유니콘은 똥침을 통해 비정상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버그'를 해결한 후, 다시 보스몹들의 항문을 돌려줄 예정이다. 최종 목표가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현실이기에, 항문이라는 기관을 영구 박탈하는 건 보스몹들의 몹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다.
"진짜, 똥꼬가 사라졌어."
"그거 아니면 잡기 힘든데. 어제 보여준 전투력이라면 우리가 다 죽을 수도 있어."
"듀라한이 있잖아."
네크로 가슴까지 오는 키, 머리를 붙이면 목까지 온다. 오른손에 잡힌 머리에서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까짓거, 해보자."
승률 계산하는 공식들이 떠올랐지만, 네크로는 애써 지웠다. 결과와 상관없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머리보단 가슴을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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