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웜 레이드
'임시 필드다.'
예전에 들개왕 잡고 늑대왕 레어 세트 얻던 곳과 마찬가지로, 결이 달랐다. 강철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검은 바위가 난잡하게 뿌려진 지형이었다.
드워프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부족끼리 뭉쳐서 전투를 준비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제이크를 확인하고 마음이 한결 놓였다.
두꺼운 가죽으로 눈을 가린 붉은 털 드워프들이 마나포를 설치했다. 네크로는 모르지만, 이들은 중앙섬 피의 장벽 도시 밑에 있던 드워프였다.
드워프 중에서도 가장 용맹하다는 용암 드워프들이 도룡노를 설치했다. 드래곤 세 마리나 잡은 어마어마한 레전드 등급의 대형 병기였다.
그 외에도 각자 특징이 뚜렷한 드워프들이 미리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대형 무기를 꺼냈다.
"푸른 수염 부족 염산 투석기 발사."
그레이트 웜은 지금 껍질 한 겹 벗느라고 드워프나 네크로를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다만, 두꺼운 껍질을 벗어 버리는데도 그레이트 웜이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웃겼다.
껍질을 반쯤 벗고 버둥거리는 그레이트 웜의 머리와 등을 양배추를 닮은 무언가가 타격했다. 그레이트 웜의 몸에 닿자마자 빠르게 시들더니 액체로 변해버렸다.
"염산은 소용없음."
그 뒤로도 물, 불, 얼음, 번개 등 다양한 속성 공격이 이어졌다. 제작 종족으로만 알았던 드워프가 이토록 다양한 속성 공격을 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의 굴레."
손발이 없어서 몸부림으로 껍질을 조금씩 벗기던 그레이트 웜이 갑자기 멈췄다. 물리 공격과 속성 공격 심지어 드래곤을 세 마리나 잡은 도룡노의 공격도 무시했는데, 신성 공격에 색다르게 반응했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항문처럼 생긴 그레이트 웜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어디까지 입이고 어디부터 목구멍인지 헷갈렸지만, 뱀 기준으로 보면 입 부위에는 이빨이 전혀 없었다. 목구멍이라고 볼 수 있는 부위부터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나 있었다. 나사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난 이빨이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이어졌다.
드래곤 피어처럼 굉장한 공격을 예상했는데, 목감기에 심하게 걸려 목소리가 안 나오는 환자가 억지로 짜내는 미약하면서도 애처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스릴 밧줄을 준비해."
신의 금속으로도 불리는 미스릴이었다. 신성 공격에 반응하는 걸 보고 바로 미스릴 밧줄로 신성 속박진을 준비했다.
'혼자 보는 게 아깝구나.'
예전에 해적들이 쓰던 작살 발사기를 닮았지만, 그것보다 천 배 이상 정교한 발사기들이 바위에 고정되었다. 딱히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주먹구구로 배치한 것 같았는데, 발사하고 보니 둘씩 짝을 맞춰 갈고리가 그레이트 웜 위에서 맞물렸다. 졸지에 두 발사기에서 발사한 밧줄이 서로 연결되어 그레이트 웜을 속박했다.
"고정 작업을 한다."
발사기를 고정한 바위를 땅에 고정하고, 그것도 모자라게 여겨졌는지 주변 바위들과도 얽어맸다. 바위끼리 묶은 밧줄은 나무껍질을 꼬아 만든 것으로 보였다. 언제 봤던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2차 속박."
처음에 쏜 밧줄은 무척 굵었다. 미스릴 함량이 얼만지 모르지만, 저 밧줄 한 토막만 가져다 팔아도 수천 골드는 쉽게 받을 것 같았다.
2차로 발사한 밧줄은 무척 가늘었다. 먼저 발사한 굵은 밧줄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가늘었다. 게다가 굵은 밧줄처럼 일대일로 엮이는 게 아니라, 거미줄처럼 여럿이 엉겼다.
"3차 속박."
지휘하는 드워프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실렸다. 그레이트 웜이 미스릴 밧줄에 비비적거리며 껍질 벗는 속도가 빨라졌다.
3차는 작살 발사기와 비슷했다. 미스릴 작살들이 그레이트 웜의 몸에 박혔고, 껍질을 벗으려는 거센 몸부림에도 뽑히지 않았다.
"공격."
마법과 주술 그리고 '기계'를 통한 여러 속성 공격들이 그레이트 웜의 몸에 떨어졌다. 처음과 달리 그레이트 웜은 다양한 속성 공격에 고통을 호소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몸부림이 고통 때문이라는 건 확실했다.
'속성 공격이 미스릴 밧줄을 통해 가해지면 데미지를 주는구나.'
드워프들의 공격은 그레이트 웜이 아닌 미스릴 밧줄을 목표로 펼쳐졌고, 미스릴 밧줄은 그런 공격들을 그레이트 웜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땅 두꺼비 출동."
흰자위 빼고 다 검은 드워프들이 도끼를 들고 달려갔다.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공격한다."
드워프 지휘관이 네크로의 차례가 임박했음을 알려줬다.
'헐, 통짜 미스릴 도끼라니.'
드워프들의 부유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땅 두꺼비로 불린 검은 드워프들의 도끼질은 데미지를 야금야금 입혔다. 미스릴 밧줄을 통해 들어오는 공격과 도끼질에 꿈틀대던 그레이트 웜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푸스스.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화생방 훈련이 생각났다. 그리고 결과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땅 두꺼비들은 그레이트 웜이 방출한 기체에 하나둘 쓰러졌다.
검은 바위 드워프들이 작은 발사기를 발사해서 갈고리로 땅 두꺼비들의 옷이나 팔다리를 걸었다. 끌려 나온 땅 두꺼비는 드워프 주술사들이 해독했다.
"지금이야."
빠르게 달려간 네크로는 드워프의 보물로 그레이트 웜을 두드렸다. 전철이 모형으로 보일 정도 크기인 그레이트 웜이 반 바퀴도 말고 딱 1/36 바퀴만 돌아도 네크로를 깔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덩치가 큰 만큼 구르는 게 쉽지 않은지, 아니면 미스릴 밧줄이 함부로 못 움직이게 방해했는지 그레이트 웜은 네크로 쪽으로 단 1도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푸스스.
그레이트 웜이 독을 뿜어냄과 동시에 네크로의 몸에 발사기 갈고리가 몇 개 걸렸다. 사정없이 채는 힘에 네크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질질 끌려가면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통제력을 잃은 네크로는 드워프 주술사가 입에 넣어주는 개구리 똥처럼 생긴 푸른 물체를 거부하지 못했다. 다행히 살아있는 것처럼 목구멍을 빠르게 넘어가는 바람에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땅 두꺼비."
그새 회복한 땅 두꺼비들이 도끼를 들고 용감하게 달려갔다. 급냉각으로 얼린 그레이트 웜의 표면이 도끼의 두드림에 깡깡 소리를 냈다.
"미스릴 밧줄 보충."
네크로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새 끊어진 밧줄이 있는지 지휘관이 미스릴 밧줄을 더 쏠 것을 주문했다. 네크로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끊어진 미스릴 밧줄을 슬쩍할 생각을 떠올렸다.
땅 두꺼비들이 다시 갈고리에 끌려 나오고, 독이 가시기 바쁘게 네크로가 달려갔다. 급가열로 그레이트 웜의 표피를 따끈하게 데웠다.
"네크로, 바로 철수한다."
의문이 떠올랐지만, 네크로는 지휘에 복종했다.
"저기 가서 태풍을 일단 버리게."
미스릴 밧줄이 끊어질 것을 걱정했는지, 태풍을 없애라고 주문했다. 네크로는 적당히 멀리 가서 바닥을 두드려 태풍을 떠나보냈다.
"잠시 쉬게나."
네크로가 얼리고 지지고 반복하자 그레이트 웜이 또 껍질을 벗었다. 첫 껍질도 1/8가량 못 벗고 남아있었는데 또 껍질을 버리려 했다.
"어설프게나마 신성을 얻은 존재여서 부조리나 큰 결함을 용납하지 못한다네. 자기 껍질의 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계속 벗어던지고 있지. 우리 목표는 많은 껍질을 벗으려다가 그레이트 웜이 기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걸세."
안타깝게도, 드워프들은 끊어진 미스릴 밧줄을 회수했다. 어떻게든 이어서 바로 사용하거나 아예 작은 용광로에 넣어 녹인 후 실을 뽑아서 밧줄을 꼬았다.
그레이트 웜이 새 껍질을 반쯤 벗었을 때, 땅 두꺼비가 출동했다. 얼리고 덥히고 태풍 버리고. 얼리고 덥히고 태풍 버리고.
[형, 너무 걱정돼서 전화했어. 형 지금 끼니 두 개 거른 거 알아?]
"열 시간?"
[열두 시간이야. 얼마나 더 걸릴 거 같아?]
"모르겠어. 아직 피통이 움직이지 않았어."
긴장한 상태를 쭉 유지했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개미굴 헤매면서 극심한 정신적 피로를 느꼈던 때와 완전 딴판이었다.
"재봉사 출동."
껍질 네 개 벗을 때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드워프들이 전봇대 크기의 바늘을 들고 접근해서 그레이트 웜이 벗다 만 껍질들을 서로 기워 맸다.
껍질이 여러 겹 되니 그레이트 웜이 껍질 벗는 속도가 느려졌다.
"자넨 하루 정도 쉬어도 되네. 껍질 벗는 속도가 느려졌으니."
"그럼 반나절만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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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하자마자 음식부터 찾았다. 그러나 허겁지겁 음식 찾던 모습과는 달리, 광해는 엄청 느리게 꼭꼭 씹어먹었다.
"나 네 시간 뒤에 로그인해야 해. 혹시 내가 못 깨면 누가 깨워줘."
"형, 우리 형 알려준 곳에서 아이템 하나 얻었어. 잘하면 에픽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잘됐네. 지금 가미카제 빼고 누가 또 에픽 얻었어?"
"철혈팔기도 하나 얻었다는 소문이 있어. 야마토는 레전드만 벌써 아홉 개 얻었다고 소문이 돌아."
"대한제국은?"
"아무 소식도 없어. 드래곤 산맥에서 봤다는 유저도 있는데, 왜 대륙섬에 안 오는지 전혀 모르겠어."
"대한제국이 20만 유저 데리고 수도를 확 덮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는데?"
"다미안이 있어 우린 괜찮을 거야."
음식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 광해는 바로 잠들었다. 눈 감자마자 코를 고는 광해 때문에 다들 숨소리마저 죽이고 슬그머니 나갔다. 네 시간 푹 자고 일어난 광해는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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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올빼미 부리
분류 : 비수 - 도둑
등급 : 신화
능력 : 관통 특성
능력 : 회복 저해
특별 : 스킬 '그림자 이동' 사용 가능 - 쿨타임 8시간
특별 : 스킬 '몰래 찌르기' 사용 가능 - 쿨타임 8시간
특별 : 스킬 '칼날비' 사용 가능 - 쿨타임 8시간
특별 : 내구도 무한
특별 : 퀘스트 완성 후 소멸
"땅 두꺼비."
검은 드워프들이 도끼로 그레이트 웜을 괴롭혔다. 네크로가 그레이트 웜의 방어력을 꽤 낮췄기에 데미지가 더 잘 들어갔다. 그럼에도 그레이트 웜의 피통은 그대로였다. 그레이트 웜이 독을 배출하자 쓰러진 드워프를 익숙하게 끌어냈다.
"제이크."
"그림자 이동."
제이크가 그레이트 웜의 몸 위에 올라갔다.
"몰래 찌르기."
관통 특성의 비수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그레이트 웜의 등에 쑥 박혀 칼날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제이크는 비수 손잡이를 꼭 잡고 스킬 명을 외쳤다.
"칼날비."
안타깝지만, 내구도만 무한이고 공격력은 무한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내구도 100으로 계산해서 데미지를 입혔다. 제이크는 비수를 뽑아낸 후 미스릴 밧줄을 타고 네크로 곁으로 무사히 복귀했다.
파괴 불가와 내구도 무한의 차이가 여기 있었다. 수리비 안 드는 건 똑같지만, 파괴 불가는 칼날비를 비롯한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 무기 내구도를 희생하여 상대 무기를 파괴하는 스킬도 파괴 불가 무기로는 사용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레이트 웜의 방어력과 저항이 떨어진다. 생명력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 거다."
제이크의 공격에 그레이트 웜의 피통은 4%만 움직였다. 게임 시간으로 하루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계속 4%라면 현실 시간으로도 8일 걸린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데미지가 늘면서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재벌 집 후계자로 태어나서 명문고 명문대 해외 유학 루트를 타는 느낌이었다. 정해진 대로 걸으면 성공이 보장된 길. 가시밭길과는 거리가 먼, 팔차선 포장도로를 혼자 달리는 상황이었다. 방해자는커녕 경쟁적수도 없는 셈인데, 자꾸 뭔가 불안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정신 똑바로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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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자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대머리가 손글씨로 쓴 보고서를 올렸다. 야마토 길드장은 보고서를 몇 번이나 훑었다.
"네크로 세력이 갑자기 철수한 이유를 역천도 모른단 말이지?"
네크로 길드에 첩자 넣기 정말 힘들었다. 네크로 길드는 회사 분위기였다. 회사 취직하는 것처럼 길드 가입해서 할 일 하고 챙길 걸 챙기면 끝이었다. 그러다 더 좋은 길드가 생기거나 마음에 안 들어 탈퇴하면 바로 승낙해줬다.
그래서 야마토는 역천 길드에 첩자를 심었다. 역천을 통해 네크로 길드의 정보를 얻어냈는데, 갑자기 네크로 세력이 전부 철수한 이유를 역천도 몰랐다.
"참 공교롭군. 우리가 소금성을 공격할지 잠깐 상의한 후에 바로 철수하다니."
"동맹석 효과가 사라지니까 도망간 거 아닐까요?"
그레이트 웜과 네크로 그리고 드워프가 사라지고 이틀 지난 지금, 동맹이 사라진 대륙섬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걸 다르게 생각하면, 대륙섬에서 공격받을까 봐 걱정된 게 아니라 도시가 공격받을까 봐 걱정해서 철수한 걸 수도 있지."
"마나 동결 NPC는 아직인가?"
"모든 물품은 다 갖췄습니다. 찾아내기만 하면 아군으로 들일 수 있습니다."
"마나 동결 NPC를 얻으면 고구려와 싸우고 그게 아니면 네크로와 싸운다. 여론이 점점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른다. 뒤집으려면 한국 길드가 세운 국가를 멸망해야 해."
"그런데 네크로도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역천보다 훨씬 귀찮습니다."
"그래. 예전에 조선을 일본에 합병했을 때도 그랬다지. 좀 가진 놈들보다 가진 게 없는 놈들이 그렇게 성가시게 굴었다더라. 우리 조부가 그러셨지. 조센징처럼 건방진 민족은 본 적이 없다고. 강자를 따르는 게 수치가 아닌데, 조센징은 약한 주제에 끝까지 바락바락 대들지."
"초인동맹을 공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직 경험이 부족하군. 우리가 네크로를 치면 초인동맹은 모른 척 할 거야. 그러나 우리가 초인동맹을 치면 네크로는 초인동맹 편을 들어줘야 해. 초인동맹이 먼저 약속 깨는 건 괜찮지만, 네크로가 먼저 약속 깨는 건 안 돼."
세력이 약한 네크로는 초인동맹이 먼저 동맹 약속을 깨기 전까지 동맹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이른 시일 안에 작전 계획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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