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비

우르그르 공성전

식량을 넉넉히 구매한 초인동맹이 30만 유저를 보내왔다. 네크로도 기록적인 15만 유저를 이끌고 우르그르 공성전에 참여했다.

가미카제는 무려 40만 유저를 끌고 왔고 역천 역시 35만 유저를 거느렸다. 프리덤도 15만 유저가 참여했다.

'가미카제는 모르는구나.'

역천이 알아낸 정보로 보면, 동맹이 깨지더라도 철혈팔기는 가미카제를 공격할 것이다.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이 각자 가미카제와 싸우면서 소모할 계획을 세웠다.

그 정보를 모르는 가미카제는 수도를 함락해 인간 국가끼리 서로 공격 못 하는 지금 상황을 타파하고 만리장성을 공격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철혈팔기와 가미카제는 합쳐서 60만 유저를 동원했다. 네크로가 보기엔 딱 적당한 숫자였다. 더 동원하면 가미카제가 둘의 적극성을 의심하면서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지 고민할 만도 했다. 적게 동원하면 수도 함락하기 싫은 티가 보여서 다른 세력들이 그걸 빌미로 동맹군에서 탈퇴할 수 있다.

'난 운이 정말 좋은 놈이야.'

든든한 자금줄 없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도 없이, 강한 무력 집단도 없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행운의 여신이 네크로를 특별히 이뻐해 주지 않으면 힘들었다.

"자, 다시 확인합니다. 먼저 네크로 길드."

"즐기자 길드입니다. 진돗개 유저가 길드장이고요."

"알았으니 빨리 시작합니다."

"즐기자 길드는 남문을 파괴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남문을 파괴한 후 성안에 들어가서 후속 부대가 진입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합니다. 그다음 가미카제의 국왕 켄신, 고구려의 백작 쪼꼬미를 비롯한 도둑 유저들이 우르크 황궁에 침투합니다. 목표는 우르그르의 신기를 훔치는 것입니다."

"다음, 역천 길드."

"즐기자 길드가 남문을 공략할 때 역천 길드는 북문을 공략합니다. 역할은 즐기자 길드와 마찬가집니다."

"철혈팔기는 서문을 맡습니다. 역할은 마찬가지고, 다른 문이 먼저 열리면 기마병을 파견해 수도 안에서 소탕 작전을 벌일 것입니다. 그럼 초인동맹."

"초인동맹은 동문을 맡습니다. 동문을 파괴하거나 성벽을 점령하고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남은 부분은 네크로나 역천 길드와 마찬가집니다."

"가미카제."

"성문이 열린 쪽을 지원합니다. 수도 안의 거점을 점령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만리장성."

"황궁 점령을 책임집니다."

"자, 명심할 게 있습니다. 신기를 훔쳐내기 전에는 최대한 뭉쳐서 다닙니다. 신기를 훔치는 데 성공하면 수도 점령을 목표로 모든 거점을 다 점령한 후 마지막에 황궁을 점령합니다. 만약 신기 훔치는 데 실패하면 거점을 무시하고 모두 몰려가 황궁을 공략합니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우르크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회의가 끝나자 각자 탈것을 타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탈것이 없는 네크로를 배려해 남문에서 회의를 열었기에 네크로는 그대로 남았다.

"철벽. 준비됐지?"

철벽이 에픽 방패를 흔들며 으스댔다.

"오빠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해줄게."

전투의 시작은 늘 그렇듯 투석기였다. 바위가 다 떨어지거나 투석기 대부분이 파괴되어 투석 공격이 뜸해진 후에 유저가 움직인다.

"탄타라 툰타."

유니크 등급 보석 일곱 개가 가루가 되어 무지개를 만들었다. 주술을 마친 우자르가 쓰러졌다. 소금성의 4배 크기가 되는 우르그르를 포위한 모든 유저에게 버프를 주느라 무리했다. 네크로에게서 얼음 럼주를 받아 한 잔 마시고 얼굴이 조금 나아졌다.

우자르의 주술이 신호가 되어 유저들이 돌격했다. 성기사와 방패를 든 전사들이 앞장섰다. 대형 쇠뇌가 쏘아내는 화살인지 창인지 구분 안 가는 대형 살이 유저를 덮쳤다. 일부는 방패에 막혔지만, 대부분 살이 성공적으로 유저를 꿰뚫었다.

살에 관통당한 유저는 대부분 즉사했고, 10분을 기다려 우르그르 성 동북부에 생성된 임시 신전에서 부활했다.

오랜만에 사다리가 등장했다. 성기사들의 엄중한 보호로 성벽 가까이 도착한 상인 유저들은 사다리를 꺼내놓고 줄행랑을 놓았다. 돈 좀 번 유저는 탈것을 타고 안전하게 물러났지만, 가난한 상인 유저는 도망치다가 성벽에서 날아온 공격에 허무하게 죽었다. 정면보다 뒤에서 공격하면 데미지에 보너스가 붙었다.

"지금이다. 우리 차례야."

해동청이 있다면 성문에 쉽게 접근했을 텐데, 유니콘은 철벽과 얀 외엔 아무도 태우려 하지 않았다. 성문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철벽의 보호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늦게 출발했다.

사다리들이 성벽에 붙으면서 시선을 분산했기에 성문으로 달리는 네크로와 철벽은 많은 공격을 받지 않았다. 철벽은 에픽 방패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네크로에게 단 하나의 공격도 닿지 않게 확실히 보호했다.

"훼멸."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던 견고한 성문에 금이 갔다. 빠르게 확인하니 쿨타임이 10일이었다. 게임 시간 10일이니 그렇게 긴 건 아니지만, 파괴력이 가장 강한 스킬로도 성문을 부수지 못했다는 게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지옥불."

스킬을 최대한 아끼려고 했는데 성문 내구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아직 마법이나 주술로 강화하지 않은 유저들의 도시와 달리 우르그르 성벽은 주술과 마법을 덕지덕지 발랐다. 오히려 한방에 금을 낸 네크로의 공격에 놀라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끝까지 해보자 이거네? 절대영도."

나무로 된 문이어서 지옥불을 선택했는데 실수였다. 금까지 갔으니 지옥불에 재가 되겠거니 했는데 살짝 그을리기만 했다.

절대영도로 꽁꽁 얼린 성문을 망치로 두드렸다. 수십 번 두드려서 진공 스킬이 터졌다. 그러나 성문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형, 비켜."

진돗개가 망나니의 유품 대신 유니크 등급 공성 망치를 들고 접근했다.

"타고난 전사."

퀘스트를 완성하고 얻은 2개의 유니크 스킬 중 하나. 신의 은총과 마찬가지로 지속형 액티브 스킬이었다. 기력을 지속해 소모하지만, 대신 진돗개는 스탯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버프를 받았다.

"세 개의 심장."

또 하나의 유니크 스킬. 생명력과 기력이 3배로 늘고 회복력도 3배 된다.

"광전사."

광전사 스킬을 펼치면 이미 사용한 스킬도 무효가 된다. 그러나 타고난 전사 덕분에 그럴 일이 없었다.

"파멸의 돌풍."

망치 머리가 네크로 몸통만 한 공성 망치가 진돗개를 중심으로 회전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망치 머리가 어디 있는지 보였는데, 잠깐 지나자 진돗개와 함께 팽이로 변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간 팽이가 된 진돗개의 허리 부근에서 빨간빛과 파란빛이 잠깐씩 반짝거렸다. 기력이 부족할 때면 생명력을 끌어다 스킬을 유지하기에 공격하는 주제에 피통이 줄어들었다.

"와, 졌다."

위험한 상황이 되자 진돗개의 신형이 멈췄다. 파멸의 돌풍 스킬이 자체로 회피율을 어마어마하게 올려주고, 광전사 스킬이 데미지 감소 특성이 있기에 꽤 버텼는데 성문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드레이크, 성문."

동해와 진돗개의 드레이크가 공중에서 갑자기 날개를 접더니 성문을 향해 떨어졌다. 예전에 에르제베트를 처음 상대할 때 드레이크가 몇 번 보여준 스킬이었다.

성문을 두 번 공격한 드레이크들은 우르크의 공격에 역소환되었다.

"유니콘."

전장에 소환된 유니콘은 굳이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보석을 붙여 만든 것처럼 반짝이는 뿔에 푸른 멍울을 맺었다. 푸른 빛이 성문에 쏘아지자 더 많은 실금이 생겼다. 그러나 유니콘 역시 두 번째 공격을 못 이어갔다. 우르크들의 집중 공격에 바로 역소환되었다.

"열흘 후에 돌아온대."

철벽이 눈물을 글썽였다.

"역시 대규모 전투에선 다 필요 없고 맷집이야."

진돗개가 스킬 없이 망치로 성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타고난 전사 덕분에 광전사 스킬을 계속 펼칠 수 있었다. 대신 공격력은 예전에 시간제한이 있을 때보다 약해졌다.

"오빠들. 우리 안에 들어가면 마구간에 가서 코뿔소를 훔쳐요."

철벽은 철혈팔기의 성벽을 한방에 무너뜨리던 코뿔소에 처음부터 꽂혔다. 직접 코뿔소의 돌격을 막은 적도 있었는데, 유니크 방패가 깨지고 철벽은 성벽까지 튕겼다.

"일단 문이나 깨고 얘기하자."

"내가 한다."

게륵. 드래곤 산맥 최강의 전사가 나타났다. 예전의 귀엽던 게륵과 달리 온몸이 흉측한 비늘로 덮여있고 덩치도 키가 3미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컸다.

"단호한 단죄."

철벽이 쓰던 유니크 철퇴를 높이 치켜든 게륵이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성문을 때렸다. 쩌적 소리와 함께 실금 숫자가 빠르게 늘었다. 이번에도 실팬가 했는데, 성문 밑부분부터 푸스스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래를 얼려서 쌓은 성벽이 날이 따뜻해지자 무너지는 것처럼, 나무로 만든 성문이 톱밥보다 더 고운 나뭇가루를 날리며 철저히 부서졌다.

"현피야, 지휘부에 남문 부쉈다고 알려."

길드 채널로 정보를 받은 현피가 곁에 있는 철혈팔기 길드원에게 말했다. 철혈팔기 길드원이 바로 길드 채널로 수뇌부에 전황을 보고했다.

"제길, 나도 나서서 활약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현피의 귀에는 얼음을 깎아 만든듯한 아름다운 귀걸이가 달려있었다. 얼음 왕국을 부활하며 받은 에픽템 '회한의 눈물'인데, 주술사인 현피 몫이 되었다.

마법사나 주술사는 스킬을 펼칠 때 자기 기운 1에 대자연의 기운 9를 소모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같은 친화력이어도 마법사나 주술사의 위력이 훨씬 높았다.

성기사는 5:5 비율로 기운이 나뉜다. 친화력 10인 성기사는 실질적으로 2배의 위력을 낸다. 이때 친화력 10인 마법사나 주술사는 10배의 위력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귀걸이는 유일한 마법 캐릭인 현피 몫이 되었다. 아직 이동 토템을 못 만든 현피가 전장에 동원된 까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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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 길드는 성문을 뚫은 후 안으로 들어가 기마병이 들어올 수 있게 공간을 확보했다. 일부 유저는 성벽을 점령하러 올라갔다. 밖에서도 계속 사다리를 통해 성벽에 오르려고 시도했다. 최대한 적을 정신없이 만들어서 조직력을 상실케 해야 한다.

철혈팔기의 3만 기마병이 남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따라 달렸다. 남은 세 문도 여전히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실패에 대비해 성벽 내구도를 더 깎아 다음 공성전에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쪼꼬미는 켄신에게 경쟁심을 불태웠다. 켄신이 올린 동영상들을 봤는데, 같은 도둑 유저인 쪼꼬미로서도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스킬에 의지하는 쪼꼬미와 달리, 켄신은 스킬이 아닌 '기술'을 다양하게 운용했다. 기술의 사용은 컨트롤 능력과 관계가 크다. 그래서 쪼꼬미는 은근히 켄신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다.

'신기를 훔쳐내면 내가 최강 도둑 유저다.'

같은 편이지만 서로 보이지 않았다. 황궁 보물 창고까지 무사히 도착한 쪼꼬미는 문에 달린 커다란 자물쇠에 낙담했다.

'자물쇠 따기 스킬 안 익혔는데.'

그때 미세한 딸깍 소리가 울리더니 자물쇠가 열렸다.

'시발 새끼. 도대체 얼마나 게임 폐인인 거야? 스킬을 기술로 익히려면 하루에 한 시간도 안 자야겠지?'

놀란 건 켄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멍청해 보였는데, 숨긴 재주가 있었구나.'

문을 딴 제이크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오는 켄신과 쪼꼬미의 미약한 기척이 느껴졌다.

목표한 지점으로 가던 제이크는 발걸음을 멈췄다. 쪼꼬미와 켄신이 앞으로 나간 다음 쇠꼬챙이를 꺼냈다.

에픽 등급의 상자는 열기 무척 힘들었다. 제이크는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정말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쇠꼬챙이를 움직였다.

상자 잠금쇠가 열리는 딸깍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그러나 신기를 놓아둔 곳에 근접한 둘은 작은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할까?"

쪼꼬미가 파티 채널로 말을 걸었다.

"자신 있는 사람 나서는 거지."

"그럼 내가 할게."

쪼꼬미가 나서자 켄신은 멀리 물러섰다. 쪼꼬미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쪼꼬미가 실패하더라도 들키지 않고 숨어있다가 2차 시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시발. 실패하면 역천 지랄하겠지?'

레전드 등급의 소모용 암호 해독 아이템. 레전드에선 소모용 아이템도 등급이 높으면 가격이 장난 아니었다.

'일단 부착만 잘하자. 그다음은 내 책임이 아니야.'

2분을 소모해서 아이템을 신기를 담은 수정 상자에 부착했다.

'암호 해독.'

아이템에 불이 들어오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암호 해독 아이템 부착 완료."

쪼꼬미는 평소와 다르게 바로 보고했다. 잡은 물고기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평소에는 무척 엇나갔던 쪼꼬미였다. 시키는 일을 해도 곱게 하는 법이 없이 늘 뺀질거리며 최 비서를 애먹였다.

그러나 이런 책임 소지가 갈리는 일에는 칼같이 보고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 영리함을 보였다.

"암호 해독 성공."

비싼 아이템이어서 실망케 하지 않았다. 레전드 장갑을 벗고 미스릴 실로 짠 특수 장갑을 낀 쪼꼬미는 조심스럽게 신기에 손을 갖다 댔다. 흥분으로 손끝이 떨려서 심호흡하며 평온을 찾으려 노력했다.

'바로 은행 가서 귀속해버릴까?'

귀속 비용이 어림잡아 억은 넘을 것이다. 그러나 에픽보다 등급 하나 높은 신기 아이템을 보유하면 발언권이 얼마나 커질지 상상만 해도 벅찼다.

조심스럽게 신기를 잡은 후 쪼꼬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키가 1미터 되는 우르크가 쪼꼬미의 목에 침을 꽂았다.

"실패. 신기 꺼내는 도중 기습당함."

보고를 마친 쪼꼬미가 다시 감각을 회복했을 때는 대기실이었다.

"검색, 켄신 TV."

채널이 수십 개 떴다.

"구독자 수 정렬."

가장 높은 곳에는 시마켄 TV가 있었고 두 번째가 켄신 TV였다. 쪼꼬미는 켄신 TV를 클릭했다. NPC나 다름없는 우르크가 상대여서 켄신은 황궁 창고에 들어간 다음부터 생방송 했다. 쪼꼬미가 실패하는 과정도 모두 생방송으로 공개됐다.

'뻘짓 안 해서 다행이야.'

[베이킹소다]

1등이 그분이군요

[글쇠]

소나무 같은 분이시죠.

[Miguel35..]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