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가 재물을 품으면 죄다
메탈 웜의 공격은 묵직했다. 반면 일행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언데드를 제물 삼아 던져주며 일행은 고양이 만난 쥐처럼 쫓겨 다녔다.
- 이럴 줄 알았다.
- 꼴 좋다.
- 사필귀정. ^^
- 꼴뚜기 뛰어봤자 한철이지.
- 이날만 기다렸다.
- 꼬시다.
"시발, 채팅창에 꼴 좋다는 비아냥이 대부분이야."
네크로와 더불어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진돗개가 이를 갈았다. 파티 채널은 바로 곁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서 진돗개의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재밌고 신기해서 생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진 네크로 일행이 언제 자빠지나 지켜보겠다는 심보로 생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채팅창은 지금 혼돈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응원하는 사람들과 저주하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상욕을 퍼부으며 싸웠다.
"제이크, 약점."
"심장."
"위치."
네크로도 속으로부터 화가 울컥 치솟았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실패하고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저렇게 많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네크로도 누군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거나 빌어본 적이 없다. 타인에겐 지독할 정도로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거의 품어본 적 없었다. 가끔 화가 치솟아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적은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순간적인 충동의 감정이었다.
"방법 찾았다."
확신에 찬, 결의가 충만한 목소리가 파티 채널로 울렸다. 그리핀을 타고 마법을 난사하던 현피의 어깨가 느슨해졌다. 긴장으로 꽉 굳었던 몸이 풀렸다.
동해는 소리 없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늘 믿음직스럽고 의지가 되는 형이었다. 동해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형은 또 해냈다.
진돗개의 화가 잔뜩 담긴 눈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들보다 채팅창을 자주 그리고 세심히 살피는 진돗개다. 채널 페이지의 댓글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읽어보곤 했다. 채팅창의 비아냥들이 누구보다 아프게 다가왔던 만큼, 네크로의 말은 천국을 약속하는 신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진돗개, 메탈 웜 머리 위에 볼록한 부분 있지. 거기에 검을 꽂고 몸을 고정한 후 '독 안개' 사용한다. 남은 사람들은 진돗개가 버틸 수 있게 최대한 메탈 웜에게 상태이상 준다."
때마침 해골 기사가 '어둠의 장막' 저주를 사용했다. 겨우 정상이 되었다가 다시 시야가 작아지자 메탈 웜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털었다. 앙탈이 멈추는 순간 진돗개가 동해 도움을 받아 메탈 웜 머리 위에 안착했다.
관통 속성이 있는 레어 창을 꺼내 메탈 웜 머리에 콱 박은 진돗개는, 허리와 허벅지에 힘을 주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버텼다. 웬만한 몸부림에도 버틸 자신이 생기자 레전드 템에 내장된 주술 '독 안개'를 펼쳤다.
"신의 분노, 이교도 심판, 천벌, 도발."
"영광일섬."
철벽이 매크로처럼 성기사 스킬을 퍼부었고 동해도 쿨타임 24시간짜리 궁극기를 써버렸다. 상태이상이 잘 먹히진 않지만, 네크로도 지팡이를 들고 근접해서 메탈 웜을 두드렸다.
"으하하. 잘 녹아. 엄청 잘 녹아."
독 안개가 메탈 웜의 금속 표피를 아이스크림인 양 살살 녹여버렸다. 레어 창을 계속 안으로 박아넣으면서 진돗개가 메탈 웜의 심장을 감싼 뼈에 점점 접근했다.
독 안개 스킬은 안타깝게도 심장을 감싼 뼈를 채 녹이지 못하고 끝났다. 생방송은 다섯 명의 시야와 인공위성 시야까지 총 6개 시점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다. 보통은 인공위성 시야가 80% 이상 차지하는데, 지금은 진돗개 시야가 90%를 웃돌았다.
"우리를 막을 수 있는 몹은, 아직 레전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올곧은 용기를 든 손에 힘을 꽉 주고 진돗개가 잇새로 자신의 각오를 뱉어냈다. 게임으로 돈을 벌면서 독기가 많이 빠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막으면 벤다. 참수."
큰 소리로 스킬명을 외치며 양손검을 힘껏 휘둘렀다. 뼈와 함께 심장도 두 토막이 났다. 심장이 파괴되자 메탈 웜은 꿈틀거림도 없이 그대로 멈췄다.
"응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시청자 여러분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연한 척 멋진 멘트로 마무리했지만, 진돗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저 게임으로 돈 많이 벌어 장가갈 생각만 했는데, 예상치 못한 조롱에 감정이 상상 이상으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형, 뭐 안 만들어요?"
"너무 커서 엄두가 안 나. 비수로 저걸 언제 다 해체하냐. 게다가 시약도 준비 안 했고."
죽음의 기사 혹은 해골 기사를 만들 수 있는데, 저 거대한 사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게 엄청 부담됐다. 제이크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미처 시약을 준비하지 못했다. 아공간이 생겨서 예전보다 훨씬 넉넉하게 물건을 담을 수 있지만, 드래곤 산맥 탐사는 일반 사냥터로 가는 것보다 준비 물품이 훨씬 다양하고 많았다.
- 희망의 도시 시청에 '말썽꾸러기 광산'이 즐기자 길드 소유로 등록되었습니다. 월 1700골드의 세금이 발생합니다.
'한 달이 게임에선 석 달이니, 현실 한 달에 세금으로만 6백만 원 이상 나가는구나.'
점령석과 길드석을 꽂고 퀘스트까지 해결하자 광산이 정식으로 등록되었다.
"즐기자 길드에서 길드원을 받습니다. 상인 유저, 광부 유저, 대장장이 유저를 우선하여 받습니다. 광부 유저는 광산에서 일할 수 있고, 대장장이 유저는 길드에서 대장간에 취직시켜드립니다. 상인 유저들은 광산에서 광석을 사서 도시에 가서 길드에 판매하는 형식을 취할 겁니다. 상인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그리핀 역참을 설치할 겁니다."
현피가 그리핀을 타고 도시로 날아갔다. 왕족을 모시는 마법사들을 찾아가 그리핀 역참 설치를 신청했고, 서류를 준비한 후 시청에 가서 도장을 찍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자 수염이 허연 마법사 둘이 현피와 함께 광산으로 날아갔다.
"현성네 피씨방. 그리핀 역참 위치를 정하시오."
채팅창에 현피를 조롱하는 댓글이 잔뜩 올라왔다. 현피는 일부러 채팅창에 눈길도 안 줬다. 네크로가 광산 입구에서 적당한 위치를 지정했다.
두 마법사가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더니 손에 든 두루마리를 쫙 찢었다. 하나는 그리핀 막사가 되었고 하나는 그리핀의 이륙을 돕는 발사대가 되었다.
"내일이면 그리핀 열 마리 배치할 걸세. 그럼 이만 작별하겠네, 현성네 피씨방."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생방송을 끝냈다. 화면 송출을 멈추자 현피는 바닥에 누워 말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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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옵이랑 펨 해체
작성자 : 돈통에 핀 꽃
옵이랑 펨 해체. 마담 길드의 독주 시대가 왔다. 대항마는 없음. 길드 레벨 6되고 하루 만에 마담 길드 800명 채웠다. 서버 최초 천 명 길드가 탄생함.
└ 지금 마담 길드 붉은 초원이랑 남부 항구 공격하려고 준비 중.
└ 암닭이 울면 나라 망한다는데, 내일부터 유니콘 주가 떡락하겠구나.
└ 물리적 차이가 없는 게임에서 증명됨. 남자는 열등한 종족임. 현실에서도 여자가 대통령하고 회장하고 다해야 함.
└ 잠깐, 그럼 마담 길드가 나라 세운다는 뜻 아냐?
└ 고추 없는 나라가 생기는 거지. 잘하면 중앙섬에서 남성 유저 다 쫓아내겠다.
└ 남자들은 마을이나 전전하며 60레벨에 마스터 랭크까지 버티고 대륙으로 가는 게 답이다.
└ 헐, 중앙섬이 드디어 헬조선 되는 건가?
└ 우리 된장김치들이 드디어 헬조선을 게임에 이식했습니다.
OB와 PM은 반형운의 뜻에 따라 길드를 해체했다. 그리고 WM도 반형운이 시키는 대로 피의 장벽과 남부 항구를 점령한 후 국가를 세우는 계획을 착실히 실행했다. 모든 게 생각대로 잘 풀리고 있음에도, 반형운의 이마 주름살은 펴지지 않았다.
"즐기자 길드 동향은?"
"상인 유저 80명에 대장장이 220명 정도, 그리고 광부 유저 30명 정도 영입했습니다. 전투 직업이나 기타 직업은 영입하지 않았습니다."
"추정 수익은?"
"확실한 수치가 없어서 추측이긴 합니다만, 실제랑 차이가 얼마 없을 겁니다. 월 7억 정도 순이익이 예상됩니다."
"그 광물을 사가는 골드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 도시의 재정이야 뻔하고, 귀족이나 왕족들 사치품도 그냥 골드로 바뀌지 않을 거 아냐."
"알아보고 있습니다. NPC들 사이엔 드워프나 세라프 종족과 거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드워프는 아이템 만드는 종족이지? 세라프는 뭐 하는 놈들이지?"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드워프도 다른 게임을 참조해서 아이템 만드는 종족으로 유추할 뿐, 뭐 하는 종족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월 7억 순이익이라. 연간 84억인데 세금도 많이 안 내. 레전드 골드를 환전하는 건 일정액 수수료만 내면 되잖아."
레전드는 전체적으로 골드를 사는 금액이 골드를 파는 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레전드 골드를 환전하는 건 수익이 아니라는 주장이 먹혔고, 세금이 아닌 수수료를 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대신, 레전드 골드를 구매하는 건 투자나 소비로 쳐주지 않는다. 레전드 골드를 구매하는 것으로 세금을 덜 내는 꼼수는 아예 막아버렸다.
"우리도 광산 찾아낼 수 없어?"
"어렵습니다. 드래곤 산맥을 탐사하는 일 자체가 물약이나 아이템 소모가 엄청난 일입니다. 즐기자 길드는 소수정예니까 소모도 적고 생방송 인기가 높아 투자 비용을 쉽게 회수합니다. 그리고 광산을 지키는 군대를 네크로의 제작 언데드로 대체했기에 유지비용도 엄청 적게 듭니다."
"제길. 누가 봐도 훨씬 많은 정보를 장악하고 다른 유저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모양새 아니냐고. 그런데 아직도 배후가 드러나지 않았다니. 이젠 나조차도 배후 따위는 없고 그냥 여기까지 운으로 온 게 아닌지 생각돼."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광산 발견은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배후가 없이 단순히 운으로 이룬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반형운과 최 비서의 관점이 바뀌었다. 음모론을 주장하던 반형운이 모든 걸 우연으로 치부하려 하고, 그냥 운이 좋은 게 아니냐고 주장하던 최 비서가 음모론을 펼쳤다.
"저 광산을 사려면 얼마 필요하지?"
"최소 270억에서 최대 400억까지 봅니다. 광산 자체의 가치는 3천억 이상입니다."
"저런 대물이 갑자기 생겨났는데 왜 도시 물가는 안정적이지? 우리가 생필품 가지고 왔을 땐 가격이 폭락했잖아."
반형운은 왠지 하늘이 자신에게만 박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생필품은 소비자가 희망의 등대 주민입니다. 길드 연합이 대륙에 상륙할 땐 인구가 지금의 2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엄청 기울었죠. 그러나 광석은 소비 시장이 희망의 등대가 아닙니다. 드워프랑 세라프라는 종족들이 광물을 구매해가는데, 이들의 경제 규모가 국가 단위일지도 모릅니다."
"예상외로 레전드의 경제 구조가 탄탄할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드워프나 세라프 같은 종족들이 설정으로 존재하면서 레전드 경제 규모를 불리고 균형을 이룰지도 모릅니다. 마법이든 기타 수단이든 사용해서 대륙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최 비서 말에 일리가 있어. 어쩜 대륙은 사실 일일생활권이야. 대륙 서북쪽 마을에 생필품이 다 떨어지면, 어떤 종족이 대륙 동남쪽에 여유 있는 마을 물건을 그곳으로 가져갈지도 몰라."
중앙섬은 고립되어 경제법칙이 어느 정도 먹혔다. 다만 그 규모가 너무 작아서 돈벌이로 이용할 정도에 못 미쳤다. 희망의 등대만 해도 지금 경제 규모가 중앙섬보다 크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들이 대륙의 경제를 보호하고 있었다.
"계획을 짜. 네크로 손에서 광산을 빼앗아낼 방법을. 무력은 배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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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면서 레벨업 하다니, 눈물이 나는구나."
상인 유저가 눈물을 글썽였다.
무릇 상인이라면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천이 귀해지면 마누라가 입던 피 묻은 속곳도 내다 파는 게 상인이라는 족속이다. 하지만 레전드 세상의 상인은 달랐다.
접속하자마자 파티 맺고 시장에 들러 각자 다른 품목을 구매했다. 함께 포탈 타고 다른 마을에 가서 구매한 물건을 팔았다. 물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갔다. 그러면 서로 품목을 바꿔 판 물건을 구매해서 다른 마을로 갔다.
그렇게 판 물건을 사서 다시 팔면서 경험치를 얻었다. 비록 장사마다 이윤을 남기지만, 포탈비를 까면 결국 손해.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고 스킬 숙련도를 올리려고 실질적으로 손해 보면서 상인을 키웠다.
좀 쉽게 레벨업 하는 상인은 길드 소속이었다. 길드에서 물품을 대량으로 살 때 무조건 상인 유저를 통했다. 상인 유저는 일반 유저보다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도둑의 '소매치기' 스킬에도 인벤토리의 물건을 도둑맞지 않았다.
그렇게 중앙섬에서 현질로 골드 사가면서 60레벨 만들어 대륙으로 진출해도 딱히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60레벨 이상에 스킬 숙련도가 숙련 이상인 상인이 득실거려 레벨업이 더 힘들기만 했다. 오죽하면 사냥 경험치를 얼마 받지 못함에도, 큰 인벤토리를 활용해 사냥팀에 짐꾼으로 끼는 상인 유저가 점점 늘었다.
이들이 손해 보면서까지 상인 캐릭을 키우는 이유는, 이후 국가 대항전이 생기면 군수품 장사를 할 생각 때문이었다. 유저들이 국가를 세우고 난세가 되면 유저뿐 아니라 NPC 상대로도 장사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엄청난 금액을 만지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때 그리핀을 타고 상인 유저 한 명이 도착했다.
"가격 협상.","가격 협상."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둘의 숙련도에 따라 시스템이 공정하게 가격을 정했다. 가격이 정해지고 광석이 순식간에 구매한 상인 유저 인벤토리로 넘어갔다.
구매한 상인 유저가 인벤토리의 광석을 전부 쏟아내자, 대장장이 유저가 담아갔다.
- 작가의말
진돗개의 중2 갬성. 쓰면서 손발이 떨리더군요. 봉인한 흑염룡이 날뛰는 바람에.
광산 가치가 3천억이라고 한 건, 실제로 3천억 어치의 광물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광산의 전략적 가치를 포함한 가격입니다. 돈이 있어도 파는 놈이 없어서 못 사는 광물을 마음껏 캐낼 수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이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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