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웜 레이드2
'대박이다. 이런 식으로 뺑이 돌리는구나.'
입구로 조각상이 옮겨진 후 드워프들이 급하게 밧줄로 거미줄을 쳤다. 소환을 끝낸 드워프 주술사와 사제 그리고 마법사들이 덩치 큰 드워프들에게 업혀서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골짜기 위에서 드워프들이 바닥에 연신 마름쇠 따위나 마법 함정을 던졌다.
골짜기 반대편의 미스릴 조각상을 감지한 그레이트 웜이 몸을 압축했다. 미스릴 조각상을 파괴하려던 때보다 훨씬 압축이 심했다. 평소 몸길이의 1/5 정도 수준으로 압축된 몸이 갑자기 쭉 늘어났다.
'저게 가능해?'
머리와 꼬리가 뒤바뀌었다. 꼬리가 입구 쪽이었는데 압축했다가 늘어난 후 머리가 입구 쪽으로 가고 꼬리는 머리가 있던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레이트 웜도 쉽게 해낸 일은 아닌지 10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덕분에 골짜기에 장애물과 함정이 늘었다.
"왜 그레이트 웜이 골짜기에 완전히 들어온 후 공격합니까?"
"그레이트 웜이 골짜기 위로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골짜기에 완전히 들어오면 골짜기 위로 절대 안 올라온다네."
빨리 공격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던 네크로는, 속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안전하게 그레이트 웜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단 하나의 고리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적인 계획이 파탄 날 수 있는데 침착을 유지하지 못했다.
"네크로, 출발하게."
어느새 반투명해진 망치로 그레이트 웜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게임 시간으로 하루에 약 12% 생명력을 깎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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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와 대화(야마토)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확신은 금물이지만, 네크로가 승산이 큽니다."
"네크로가 대화보다 강하다는 분석이 믿을 만 한가?"
"변수 몇이 있긴 하지만, 모든 변수가 네크로에게 나쁘게 작용해도 여전히 승산이 큽니다."
초인동맹 수뇌부는 일곱으로 구성되었다. 늙은이들의 고루하고 편협한 생각이 요즘 빠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20대 청년 2명도 수뇌부에 들였다.
"대화가 고구려를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마나 동결을 쓸 수 있다면 대화가 신풍(가미카제)을 누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레전드 최강 국가는 만장일치로 고구려가 꼽혔다. 광산이 있고 빙하시대 마법이 있고 마나포가 있고 항공모함 크기의 전함까지 있었다. 이번에 얻은 레전드와 에픽 아이템의 옵션으로 전투력은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지만, 국가 세력은 하루 이틀에 변하는 게 아니었다.
야마토가 마나 동결 NPC를 다시 보유해서 고구려를 공격하면,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은 한 손 거들 가능성이 크다. 만약 마나 동결 NPC를 여럿 보유한다면, 고구려는 멸망까지 고려해야 한다.
"고구려 다음으로 탄탄한 국가가 네크로다."
즐기자 길드나 WORLD 왕국은 대부분 사람에게 네크로 길드와 네크로 왕국으로 통했다.
"그렇습니다. 피혁 관련 사업에 국가가 지원하는 세금의 양을 보면 전체 세금액이 유추됩니다. 고구려보다 세금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고구려는 전쟁 상황 및 군사에 많은 투자를 한 탓에 영토가 크고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네크로와 비슷했다.
"그건 아니야. 탄광 덕분에 네크로가 세금이 많아 보이는 거야."
네크로는 당분간 국가 소속 모든 마을에 연소탄을 공짜로 공급한다고 했다. 덕분에 도시와 마을들이 더 많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었고, 바치는 세금도 점점 늘었다.
"그럼 네크로의 호황도 오래가진 않겠네요. 탄광이 거의 고갈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붉은 코 코볼트는 전문가였다. 게다가 번식도 멈추지 않아 이미 2만 마리에 육박했다. 탄광 하나 거덜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약 대화랑 네크로가 싸우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둘이 싸울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주면 되지. 예를 들어 수도를 서북부로 옮긴 후, 서남부의 도시를 포기하는 거야."
"정상 상황이라면 네크로가 차지해야겠네요?"
"근데 대화는 그게 자기들이 양보한 성이라고 내놓으라고 할 수 있지."
"그 성 주변은 전부 네크로의 마을과 도시고요."
"둘이 싸우면 네크로가 이긴다."
"전투력만 따지면 대화가 낫습니다. 종합 실력은 네크로가 우위지만, 확신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이름이 문제지. 이름이. 독일 길드가 이름을 나치라고 짓고, 길드장이 히틀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유럽이 문명화된 건 근래 일이죠. 게임에서 DNA 깊은 곳에 숨은 폭력성이 표출된다면 아마 그 길드의 모든 유저가 게임을 접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야. 신풍과 대화.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이 생각나게 하는 이름은 다른 서버의 유저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어. 아마 대화랑 네크로가 싸우면 중국 유저들이 네크로 편에 서서 싸울 거야. 한국 유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둘이 싸워서 우리에게 이득 되는 건 없습니다. 고구려랑 싸우면 방해꾼인 만리장성이 사라져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크로가 우리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설마요. 그 정도 그릇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 비슷한 또래라고 인정하기 싫어하는군.'
"우리 목적에 들어맞으면 아니더라도 그런 그릇 만들어야지."
게임 이름 초패왕은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마음으로는 인정하기 싫지만,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참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그럴 실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랑 다른 것 같다. 우린 직접 20개 정도 도시를 점령했고 60개 정도는 다른 서버 세력에 판매할 생각이다. 군사는 우리가 책임지는 조건으로 길드들이 마음 놓고 경제만 발전하게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 데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모두 우리 세력이 되는 거지."
"네크로는 아마 우리보다 비율을 더 적게 생각할 거다. 우린 25%를 유지할 생각인데, 네크로는 아마 10% 정도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식이면 국가가 다른 세력에 휘둘릴 건데요."
"예전엔 탄광이 있었으니 발언권을 쉽게 확보했을 거야. 탄광이 곧 고갈된다고 하니 네크로가 무리해서 성 몇 개 더 점령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지 지켜봐야지. 만약 네크로가 우리처럼 여러 서버 세력을 취합할 생각이라면 우군이다."
미국은 동맹 국가들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강요했고 소련은 공산주의를 강요했다. 자신들과 비슷한 사회 체제와 경제 체제 그리고 사상을 요구했다.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과정이었고, 소련은 공산주의가 틀렸음을 증명했다.
초인동맹과 네크로 모두 성공하면 다른 국가들도 많은 세력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출신을 따지는 세력은 유저 유입이 정체될 수밖에 없고, 문호를 개방한 초인동맹이나 네크로에 밀릴 수밖에 없다.
초인동맹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러 서버의 세력들이 연합하기를 바랐다. 네크로가 같은 노선을 걷는다면 기꺼이 도울 의향이 있었다.
"진짜 수도 옮기고 도시 포기한 후 둘을 싸움 붙일 생각입니까?"
"대화는 국내 여론도 안 좋고 세력 여건도 안 좋아. 마나 동결이 성공했으면 신풍을 누르고 일본을 대표하는 세력이 되어 많은 지원을 얻어냈을 거야. 그런데 도시 몇 개 포기하고 마을 수십 개 포기하면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실패했어. 지금 당장 전쟁을 통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고 지원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야."
"가만히 둬도 둘이 싸우지 않을까요? 수도 이전을 너무 급하게 하면 우리에게도 부담입니다."
"대화는 욕심이 커. 고구려와 싸우고 싶어서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어차피 수도 옮겨야 하는데 이참에 불 확 붙여보려고. 그래도 둘이 안 싸우면 야마토가 반드시 고구려와 싸우겠다는 뜻이니 그에 맞춰 우리도 계획을 바꾸면 된다."
네크로와 야마토가 싸우면 네크로가 이긴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인동맹은 빨리 둘을 싸움 붙여서 야마토를 대륙 서남부에서 쫓아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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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들은 미스릴 조각상을 양쪽으로 옮기는 거로 그레이트 웜을 똥개 훈련 시켰다. 첫날에 12% 깎았고 이튿날엔 14% 깎았다. 그리고 닷새 되는 날 39% 피통이 남은 상황에서 제이크가 칼날비로 26%로 만들었다.
"물러나, 전부 물러나."
몇 분 뒤에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마지막 단계야. 그레이트 웜이 이족보행으로 변할 거야."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미스릴 조각상에 생명을 부여해야 해."
"그럼 빨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간이 꽤 걸리는데, 누군가 그레이트 웜을 유인해야 하네."
"지금 하던 것처럼 계속 공격하면 안 됩니까?"
"가보면 알 걸세."
골짜기였던 곳에 도착하니 커다란 고치가 있었다.
"신성 공격마저 면역이네. 저 고치가 터지면 이족보행 하는 그레이트 웜이 나올 거야. 이동 속도는 비슷하지만, 기동력은 비할 바가 아니지. 앞으로 나가는 것밖에 안 되고 방향 전환하려면 큰 원을 그려야 했는데, 이족보행이 되면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지."
"설마, 생명력을 다 회복하고 나옵니까?"
"그렇다네."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욕을 가까스로 삼켰다.
'가만히 맞아줘도 현실 시간으로 이틀 사흘 때려야 하잖아.'
"미스릴 조각상에 생명을 부여하면 어떻게 됩니까?"
"신성이 깃들어 그레이트 웜을 해치울 걸세. 다만 그레이트 웜의 방해를 받으면 기간이 연장되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커."
"얼마나 버텨야 합니까?"
"사흘 정도면 되네."
고치에서 그레이트 웜이 나오는 시간을 확인한 후 네크로는 로그아웃했다. 24시간 그레이트 웜을 유인하려면 그전까지 푹 쉬어야 한다.
"형, 벌써 나왔어?"
로그아웃하니 진돗개도 밖에 나와 있었다.
"응, 푹 쉬려고. 마지막 단계만 남았어."
쉴 시간이 넉넉하다는 말에 진돗개가 반색했다.
"다행이다. 형과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퀘스트 중일까 봐 말을 못 했어."
"무슨 일인데?"
"초인동맹이 수도를 서북부로 옮겼어. 그리고 기존 수도를 아예 포기했어."
"근데?"
"야마토에게 도시 점령할 생각 있냐니까 없다고 그랬어. 네사모 길드가 점령해도 되냐니까 당연히 된다고 했지."
네사모는 '네크로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초창기 길드원 모두 전설 게임방 VIP였다. 현재 길드원 8백 명 정도 되는 꽤 괜찮은 길드였다. 전투 유저는 350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친하게 지내는 길드가 많아서 만 명 정도 유저를 동원할 수 있었다.
"수도였던 도시여서 포기하며 인구가 10%로 줄었어. 그걸 우리 국가로 받아들여 다시 3배가 된 거야. 초인동맹이 별로 가꾸지도 않아서 욕심낼만한 도시도 아닌데, 우리가 알기론 야마토 세력인 일본 길드가 갑자기 태클을 걸었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이미 우리 국가 소속이야. 누구든 공격하면 전력으로 받아치고 우리 영토에선 보는 족족 잡아 죽여."
"야마토가 싸움 걸려는 거 같아서 그러지."
"그럼 싸우면 돼. 수비 상황에서 우리도 밀릴 거 없어. 마을 괴롭히면 똑같이 갚아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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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일 꼭 해야 해?"
겨우 3천 명 정도 전력으로 도시를 공격하려니 막막했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길드를 키우는 과정에 야마토로부터 꽤 많은 자금을 가져다 썼다.
"한 번 더 생각해 봐. 싸움 걸어서 우리가 이기면 괜찮아. 그런데 만약 진다면 길드 해체해야 해. 우리만 죄인 된다고."
바보만 아니라면 야마토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3천 명 유저는 희생양으로 던져졌다. 야마토가 네크로를 공격하는 명분이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야마토가 승리하면 괜찮다. 한 번의 죽음 정도야 게임에서 별일 아니니까. 그런데 만약 야마토가 전쟁에서 실패한다면, 이들은 사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전쟁에서 지고 나서 어떻게 됐지? 전쟁 영웅이 범죄자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전범국이 됐어. 지금 우리가 그 꼴 나게 생겼다고. 못 이기면 어디도 우릴 받아주지 않을 거고 길드원들 다 떠날 거야. 친구도 등 돌리고 원수들은 웃으면서 침 뱉을 거야."
"야마토를 배신하자고? 배신자를 가미카제가 받아줄까?"
"그냥 로그아웃하고 여행이나 가고 싶다."
"임시 신전 지킬 사람. 지원자를 받는다."
손을 드는 사람이 이백이 넘었다. 대부분이 전투에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손을 든 이백 명을 남겨두고 남은 자들과 함께 성벽으로 달려갔다. 게임인데도 콧등이 시큰했다.
'내가, 버리는 패로 쓰이다니.'
성벽에 쭉 늘어섰던 사냥꾼들이 활을 쐈다. 방패로 막으며 좀 더 접근하니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공격했다. 성벽에 다다르니 네크로맨서를 비롯한 소환 계열들이 소환수를 내려보냈다. 공성 병기가 없어서 성문을 때렸다. 성벽보다는 성문 내구도가 낮았고 파괴도 쉬웠다.
성벽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며 성문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푸슉 소리와 함께 공간이동 되었다.
"뭐야?"
"미안. 임시 신전이 점령당했어."
전투가 벌어진 지 7분도 안 되었다. 임시 신전을 상대가 5분 이상 점령하고 있어야 공성 측 패배로 여겨졌다. 얼굴을 보며 대화한다는 건 이들이 죽어서 부활한 게 아니라 그냥 수비를 포기했다는 뜻이었다.
"너희 뭔 생각이야."
이가 갈렸지만, 꾹 참았다.
"길드 해체하자. 그리고 우리끼리 레전드 세상을 여행하며 게임을 즐기자. 즐기자고 하는 게임인데 하나도 안 즐거웠어. 누군도 인정하지 않고 누구도 칭찬하지 않아도 레전드라면 난 즐거울 수 있어."
"너희 다 같은 생각이야?"
"내가 군대 가본 적은 없지만, 여긴 군대 같아. 숨 막혀."
"그래. 우린 즐기려는 거야. 한국을 미워하고 한국과 싸우려고 게임 하는 거 아니야."
"한국은 우릴 미워하잖아."
"너 한국 사람이랑 대화한 적도 없잖아. 미워하는지 어떻게 알아?"
"미워하라고 그래. 난 무시할 테니까."
"여행이나 하자."
- 작가의말
초인동맹의 대화는 여럿이 하는 겁니다. 야마토가 더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네크로 세력이 더 강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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