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흔적을 찾아서
"전화 받았습니다."
조형물을 때리는 네크로의 손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가격 부르세요.]
"280억. 평강국 처리해드리는 비용은 따로 안 받겠습니다."
[부동산도 괜찮죠? 굳이 현금 고집할 필욘 없죠?]
"변호사 보내세요. 제가 있는 곳은 아실 테니."
통화를 마친 네크로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군단이 사라지지 않고 버텨냈다. 중간에 공격하는 유저가 잠깐 사라진 적 있었는데, 그때 정말 땀이 날 뻔했다.
천 길 낭떠러지를 썩은 동아줄 하나 밟고 건너는 느낌이었다. 1억을 준대도 이런 경험은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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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 과한 투자가 아닐까요?"
"내부자의 정보가 확실한 거겠지?"
"어느 정보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저에게 허락된 광산이 드래곤 산맥에 총 6개밖에 없고, 대륙 전체를 따져도 23개밖에 없다는 정보 말이야."
"지금까지 못 알아낸 정보는 있어도 틀린 정보를 알려준 적 없습니다."
"광부를 최대로 투입하고 광물은 운영 자금만 뽑는 정도로 팔아. 남은 광물은 창고에 쌓아두고 가격 오르길 기다려야겠어.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거고, 광물 가격 올랐을 때 투자금 회수하는 거야."
"판을 너무 키워서 버겁습니다."
"가미카제인지 뭔지 하는 길드 있잖아. 거기서 50억 투자해주기로 했어. 일본은 우리보단 중국이 주적이라고 생각해. 지금 한국 유저는 70만도 안 되는데 일본은 2백만 넘었고, 중국은 곧 3백만 넘을 예정이야. 중국과 싸울 때 일본 편들어주는 조건으로 지속해서 투자받기로 했어."
"네크로 유저는 저대로 둡니까?"
"광산 거래가 끝난 다음, 지배 길드 권한으로 희망의 등대 출입을 제한해. 280억 먹고 떨어지는 거니까 불만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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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서 평강 왕국을 물리치고 승리하였습니다.
- 멸망한 평강 왕국 소속 유저들은 3개월 동안 모든 마을과 도시의 대부분 시설 사용이 금지됩니다. 은행과 경매장 그리고 직업 길드를 비롯한 소수의 시설만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평강 왕국 소속 모든 유저의 명성이 한 달에 걸쳐 하락합니다.
- WAR MADAM 길드의 길드 명성이 대폭 하락합니다. 길드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길드 레벨이 6이 될 때까지 길드원을 새로 받을 수 없습니다.
- 왕국에서 강제로 탈퇴한 역천 길드 유저들은 반년간 평강 왕국 소속 길드들과 적대 관계가 성립합니다. 도시에서도 무제한으로 PK 할 수 있습니다.
- 왕국에서 강제로 탈퇴한 역천 길드는 게임 시간 반년 안에 건국이 제한됩니다. 다른 도시로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도 제한됩니다.
역천 길드는 평강 왕국이 멸망하기 전에 빠져나갔다. 비록 네크로 손에 왕국이 멸망했지만, 평강 왕국 소속이라는 신분은 당분간 유지된다. 그렇기에 WM 길드를 포함해 평강 왕국 소속을 천명했던 모든 길드의 길드원과 역천 길드는 적대 관계가 되었다.
- 중심 도시의 지배 길드에 승리했습니다. 중심 도시의 지배 길드가 되시겠습니까?
"아니요."
- 중심 도시는 집정관 NPC가 관리합니다.
- 전쟁에서 승리한 즐기자 길드원 모두 한 달에 걸쳐 막대한 명성을 얻습니다.
- 즐기자 길드는 막대한 명성을 얻어 길드 레벨 7이 되었습니다.
길드 채널이 폭발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광석 캐고 광석 나르고 광물 정련하던 비전투 유저들이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었다. 더 대박인 건, 30일에 걸쳐서 명성을 계속 준다는 것이었다. 아주 희귀한 광석을 캐내거나 큰 거래를 성사하거나 귀한 아이템을 만들었을 때에나 조금씩 오르던 명성을 아주 쉽게 얻어냈다.
그러나 막대한 명성을 얻은 기쁨보다, WM 길드를 비롯한 수십 개 길드와 척을 졌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기쁨 반 걱정 반에 로그인한 길드원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진돗개를 찾을 때, 길드 공지가 떴다.
광산을 역천 길드에 판매했다는 통보와 더불어 광부와 상인 그리고 대장장이 유저들이 지금처럼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최소 게임 시간으로 반년은 역천 길드에서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고, 달라진 점은 하나밖에 없었다.
즐기자 길드 상인 유저들은 운반만 책임지고, 매입은 역천 길드 상인이 하기로 했다.
"망했다. 역천 길드 상인들 스킬 숙련도 장난 아닌데."
"그래도 쫓겨나지 않은 게 어디야. 게임 시간 반년이면 2달인데, 게임 열심히 하면 다들 마스터 랭크 찍을 수 있을 거야."
"광부들에게 로비해야 하는 거 아냐? 광석 좀 많이 캐 달라고."
광부나 상인 유저들은 괜찮지만, 대장장이 유저들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그럼 아이템 제작은 물 건너 간 건가?"
"재료비 안 나가고 매직 만들면 돈도 벌고. 우리가 너무 편하게 게임 해서 하느님이 벌을 주나 봐."
"어차피 정련만 해도 경험치는 쑥쑥 올라가잖아. 수리 숙련도는 매일 수천 개씩 해야 하니 걱정 없고, 제작은 당분간 돈 좀 팔면서 광석 얻어 올리는 거로 하자고."
"상황이 나빠진 건 아냐. 그냥 아주 좋던 상황이 아주까지는 아니게 좋게 된 거지. 지금 중앙섬에서 60렙 미만들은 우리가 부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다행히 대장장이 유저는 대부분 나이 지긋하고 점잖은 사람이라서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다들 유하게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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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신의 흔적을 우리가 찾아보겠습니다."
광산 일을 계기로 네크로는 다시 달리기로 했다. 광산을 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서 언데드 좀 모으려고 했는데, 역천의 수작에 그냥 광산을 빼앗길 뻔했다. 서로 모른 척 했지만, 그날 역친 길드의 길드원들도 왕궁 수비에 분명히 참여했다.
"신은 가장 높은 곳에도 있고 가장 낮은 곳에도 임하시네. 세상 어디에도 신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지만, 우리 미천한 인간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흔적은 다섯밖에 없다네. 그 다섯 모두 드래곤 산맥에 있으니, 부디 찾아내서 우리에게 잊힌 신의 이름을 되찾아보세."
퀘스트에 160이라는 카운트가 붙어있었다. 게임 시간으로 160일, 현실 시간으론 53일 정도. 그 안에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단서라곤 대주교의 말뿐이야. 다섯 흔적 중 두 개에 관한 힌트라고 나는 생각해. 드래곤 산맥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가장 낮은 곳은 몰라도, 가장 높은 곳은 드래곤 로드의 레어가 있는 산이잖아. 이건 찾지 말란 뜻인데?"
"드래곤 로드가 지금 공석이야. 그러니까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만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
현피의 말에 진돗개가 코웃음을 쳤다.
"투라칸 같은 놈들이 득실거리는 드래곤 레어를 털겠다고? 소란이 커졌다간 다른 드래곤들이 참견할 수도 있어."
다른 사람과 달리 진돗개는 NPC들과 대화하고 게임 안에서 책을 찾아 읽으면서 여러 지식을 쌓았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해온 경험까지 합쳐져서 게임에 관해 네크로보다 훨씬 많이 파악했다.
"그래도 가장 확실한 곳부터 시작해야지. 하나만 찾으면 다른 흔적을 찾는 단서를 줄 게 분명해. 어차피 기간 퀘스트여서 실패해도 상관없잖아."
"상관있어. 진짜 드래곤 로드 레어에 신의 흔적이 있다면 실패는 안 돼.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고. 우리 시도가 들키면 드래곤들이 방비를 강화할 거야."
"가장 확률 높은 곳부터 시도하는 게 정답이라고 봐."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 아니라고."
"저기요. 두 건물주께선 잠시 대화 멈춰주세요."
네크로가 던진 마법의 단어에 진돗개와 현피 입꼬리가 심하게 말려 올라갔다. 광산을 양도하고 반형운으로부터 건물 한 채 받았다. 네크로가 60%, 남은 넷이 10%씩 해서 다섯은 건물주가 되었다.
"제이크, 지도."
반투명 지도가 허공에 펼쳐졌다. 깜깜한 드래곤 산맥에 밝은 점 하나 찍혀있었다.
"여긴 우리가 찾아갔던 구룩 부족이야. 파열의 협곡이라고. 우린 거기서 밤의 결정을 찾아냈지."
"저길 가자고?"
"저긴 성직자가 있었어. 레전드 게임엔 아직 성직자 혹은 사제라는 직업이 없어. 성기사는 초반부터 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밤의 결정을 찾았던 동굴, 협곡 바닥에 있었어. 가장 낮은 곳."
"너무 억지 아냐?"
"돗개야, 이건 게임이야. 무턱대고 아무 단서도 없이 퀘스트를 주고, 모호한 말만 던졌을 때 난 생각했어. 비록 조각사를 찾아내서 도시까지 호송하는 퀘스트는 우리가 하지 않았지만, 이건 연계 퀘스트야. 그저 유저 위주가 아니라 퀘스트는 퀘스트대로 흐르고, 누구든 퀘스트 완성하면 된다는 식이어서 우리가 연계 퀘스트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던 거야."
진돗개가 벌떡 일어났다.
"형 얘기는 앞선 퀘스트에 힌트가 있다는 뜻이야?"
"그래. 역천 길드가 조각사를 찾아내서 데려오는 과정을 전부 동영상으로 찾아봤어. 그리고 밤의 결정을 조각한 조각사를 찾아가서 대화도 나눴어. 확신은 금물이지만, 조각사는 신의 흔적이랑 상관없다고 판단했어. 그리고 난 바로 전 퀘스트인 밤의 결정 퀘스트가 생각났어."
"투라칸은 드래곤 편이야. 그런 투라칸과 적대하는 레오칸은 신의 흔적과 상관있지 않을까? 신이랑 드래곤은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게 레전드 설정이야. 게다가 밤의 결정을 얻은 지하 동굴, 그 끝까지 우리 가보지 못했잖아."
"형, 역천 길드에서 우리 다섯에게 출입 제한을 걸었어."
"응. 나도 메시지 받았다. 그래도 은행이랑 경매장이랑 직업 길드는 이용할 수 있어. 신전도 출입할 수 있고."
"길드에서 믿을만한 상인 유저 찾아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자. 어차피 퀘스트 때문에 당분간 떠나야 하는데, 잘된 거야.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라고 할까."
"형, 너무 긍정적인 거 아냐?"
숙련도가 가장 높은 상인에게 부탁해 필요한 물품을 넉넉히 구했다. 준비를 마치고 드래곤 산맥 지도에 생뚱맞게 밝혀진 밝은 점을 목적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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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구 수리 맡기겠습니다."
왼손에 망치, 오른손에 맥주잔을 든 드워프가 일행의 꼬락서니를 보고 껄껄 웃었다.
"고생 심하게 했군. 우리 부족이랑 인연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쁜 자는 아니겠어. 내가 싸게 수리해주지."
말은 싸게 해준다고 했지만, 수리비를 한 푼도 에누리 없이 다 받아냈다. 수리를 마치자 새것처럼 변한 아이템이 일행은 여전히 신기했다.
"수리하면 땜빵 자국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이건 그냥 새 걸로 변하니."
"혹시 세라프 위치를 아십니까? 보시다시피 음식도 떨어져서."
"저쪽으로 20리 정도 가면 세라프가 있어. 사정이 딱해서 돕고 싶은데, 맥주는 비매품이라서."
드워프에게 맥주는 사들이기만 하는 음식이었다. 맥주를 판다는 건 조상이 물려준 망치를 버린다는 거나 마찬가지. 미친놈 소리 듣고 싶으면 자기 맥주를 다른 드워프에게 한 모금만 양보하면 된다. 사흘 안에 드래곤 산맥 모든 드워프가 그를 미친놈으로 기억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인연이 되면 또 만납시다."
드래곤 산맥 곳곳에는 아이템을 사고팔고 수리까지 해주는 드워프가 있고, 음식물을 파는 세라프가 있었다. 덕분에 네크로 일행은 늘 음식과 아이템이 부족하지 않게 단단히 준비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고정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였다. 좋게 말해서 친밀도를 쌓아놓으면, 다시 만났을 때 떡고물이 떨어졌다. 괜찮은 몹 정보를 알려주거나 중요한 지식을 알려줄 때도 있었다.
드워프가 가리킨 방향으로 꾸준히 걸으니 세라프를 쉽게 찾아냈다. 일행에게 필요 없는 아이템들을 주고 음식을 구매했다. 최근 공복도 개념이 생겨났다. 체력이 높은 네크로는 괜찮지만, 진돗개를 비롯한 넷은 공복도가 쉽게 내려갔다.
"여기 마법 음식도 있답니다."
세라프는 사람 모습에 잠자리 날개를 단 요정이었다. 황혼의 결정을 드랍하는 게겔처럼 비물질 종족에 포함되는데, 환영과 같은 존재라서 만질 수 없었다.
"다 주세요."
마법 음식은 요리사 직업이 만드는 버프 음식을 말했다. 아까 수리할 때 필요 없는 잡템들을 처리하지 않은 건, 아이템을 만들고 수리하는 드워프보다 세라프가 아이템 값을 더 쳐주기 때문이었다. 만약 드워프가 세라프 위치를 모른다고 했으면 헐값에 드워프에게 처리했을 거지만, 고작 20리 거리에 세라프가 있다는 말에 템을 남겨뒀다.
세라프와 작별인사를 한 후 파열의 협곡을 향해 전진했다.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던 제이크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뱉어냈다.
"나도 전설이 될 수 있어."
"설마."
제이크의 말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일행은 파티 채널로 많은 의견을 쏟아냈다. 그러다 진돗개의 우렁찬 외침이 토론을 끊어버렸다.
"제이크가 그랜드 마스터 랭크 된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밤의 결정 퀘스트 할 때 유니크 템 장착했어."
"와, 소름. 쟤 지금 열세 살 아냐?"
"다음 달에 열세 살이야. 지금은 열두 살이지."
"우리도 빨리 용병 찾자."
"드워프가 용병이 되어주진 않을까?"
"다음에 만나면 시도해보자."
"드워프는 힘들 거야. 매일 맥주 먹어야 하니까."
"난 세라프. 귀엽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
"드워프나 세라프 다 도움이 되긴 하지. 그리고 우리에겐 사냥꾼 캐릭도 필요해. 함정 이런 거 찾는 건 제이크가 잘하지만, 매복이나 흔적 쫓는 건 그래도 사냥꾼이 나아."
"투라칸 같은 몹은 용병 안 되나? 투라칸이 내 펫이라면 정말 든든할 것 같아."
"숙영지 발견했다."
"그게 뭔데?"
여러 이유로 부족을 떠난 자들이 임시로 뭉쳐있는 곳이었다.
"숙영지엔 강자들만 있다. 마음 맞으면 용병 해 준다."
"숙영지는 고정되어 있어?"
"아니다. 누군가 동료가 필요하면 모닥불을 피우고 숙영지 만든다. 모닥불을 본 자들이 모인다. 모두 떠나고 모닥불 꺼지면 숙영지 사라진다."
숙영지에 접근하기 전, 네크로는 넷에게 신신당부했다.
"꼭 필요한 존재 아니면 거절해. 용병은 바꿀 수 없어."
- 작가의말
곧 돼지해가 되네요. 미리 설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예약으로 매일 2편씩 연재하니까 명절 기간에도 휴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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