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신 구하기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는 정식 이름 WORLD보다는 네크로 국으로 더 많이 불리는 네크로가 국왕으로 있는 왕국이었다.
오아시스는 중앙섬의 중심 도시보다 못하지만, 근처에 가까운 사냥터가 꽤 많았다. 게다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섬 사냥터들이 널렸다. 마법 아이템 일회용 텐트를 넉넉히 사서 가면 며칠씩 사냥과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우르크와의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도 우르크의 공격을 정기적으로 받지만, 네크로의 성과 마을은 꽤 오랜 평화를 유지했기에 우르크의 양이 많았다.
도시나 마을을 점령하면 출신 불문하고 국가로 받아들였다. 우르크를 공격하기도 하고 방어하기도 하면서 매일 피 튀기는 전투를 골라 참여할 수 있었다. 용병 길드에 가입해 용병 신분만 얻으면 세금을 훨씬 적게 낼 수 있었고, 우르크와 싸우면 국가 공적치가 차곡차곡 쌓였다.
자금이 부족한 길드는 대륙 서남부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일단 마을을 점령하면 첫 석 달은 연소탄을 무료로 제공한다. 석 달 이후부터는 제 가격을 받고 팔기로 했다. 도시를 점령한 길드엔 50% 가격으로 연소탄을 석 달 판매한다. 석 달이 지난 후 운영 결과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등급에 알맞은 지원을 한다고 발표했다.
서남부가 어항에 미꾸라지 떼를 넣은 것처럼 시끌벅적하다면, 서북부는 질서 그 자체였다. 초인동맹은 울타리를 치고 도시와 마을을 안정적으로 판매했다. 구매자는 주로 중국과 유럽 유저였다. 무력적인 부분은 초인동맹이 모두 책임지고 이들은 고전 심시티 게임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가상현실 심시티를 즐겼다.
동북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대한제국은 도시 세 개와 그 사이에 있는 마을만 점령한 채 웅크리고 가만히 있었다.
야마토 길드는 해체한 후 세력의 70% 정도가 가미카제에 흡수되었고 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평강 길드는 일본의 오신 길드와 중국의 맹강녀 길드와 연합해서 제국 북부에 도시 몇 개 점령하고 NPC를 왕으로 추대했다. 이름은 여인국으로 지었고 여성 유저만 우대했다.
중앙에 자리 잡은 철혈팔기는 대륙섬에서 광산이나 탄광을 얻어내 한탕 하자던 계획이 물거품 되고 나서 오히려 갈 길을 제대로 찾았다. 철혈팔기의 실무진은 공무원 마인드로 일하던 자들인데, 능력이 없는 건 아니어서 사리사욕을 걷어내자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 길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물론,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몸부림도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역천 이놈은 처음부터 우리와 갈라서는 걸 대비했어."
가미카제 세력은 고구려에서 나왔다. 그리고 야마토의 왕이었던 일본 유저를 왕으로 하여 '대일본제국'을 세웠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역천이 자신들을 가지고 놀았음을 알아챘다.
우르크 제국이 사라진 당일, 미리 배에서 대기했던 역천 세력은 도시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작은 성을 점령해 수도로 정했다. 왕의 혈통 얻는 데 실패한 가미카제는 빠른 결단을 내려 고구려에 편입했다.
역천은 희망의 등대 수비를 구실로 가미카제에 대륙에서 확장하라고 했다. 가미카제 길드원들을 수도로 옮긴 후, 도시를 점령해 포탈이 열리면 모든 세력이 몰려온다는 핑계를 대면서 마을만 점령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포탈도 없이 마을 점령하고 수비하느라 정말 힘들었어. 지출도 컸고."
공격이야 주동권을 쥐고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수비 상황에선 돈을 아끼지 않고 대야로 퍼부으면서 동분서주했다. 그 자금을 다른 데 썼으면 가미카제 길드는 훨씬 많은 일본 유저를 포용하고 지금보다 더 강한 세력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마나포를 성에 배치한 후 마을만 집중 공격받았지."
역천도 마을을 점령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배틀넷의 대한제국 세력이 가미카제 마을만 골라서 공격했다. 공격한 후에는 적군으로 표기되어 방비할 수 있었지만, 초반에 10여 개 마을을 동시에 초토화한 탓에 가미카제는 마을을 복구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 뒤에 야마토와 철혈팔기의 기마병이 마을 위주로 괴롭혔다. 상대적으로 마을을 훨씬 많이 점령한 가미카제가 크게 손해 봤다.
"게다가 우리가 외곽 도시들만 점령했어."
점령한 마을을 보호하려고 외곽의 도시부터 점령했다. 지금은 사라진 수도를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퍼졌는데, 역천은 부챗살 뿌리 부근을 점령해 도시들이 뭉쳐있었다. 외곽으로 점령한 가미카제는 당연히 도시 숫자에 비교해 넓은 면적을 수비해야 했다.
가미카제로선 정말 억울했다. 역천이 차지한 도시와 마을은 우르크 마을과 전혀 접점이 없었다. 현재 상태를 보면 대일본제국이 고구려를 확장 못 하게 포위한 격이지만, 반대로 보면 우르크의 공격으로부터 고구려를 보호해주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포위라고 하기엔 포탈이 있다. 고구려는 포위를 뚫을 필요도 없이 다른 곳에서 마을과 도시를 확장해도 된다.
"철혈팔기 이놈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우르크들은 식량 감소로 약탈 빈도가 점점 늘었다. 게임이어서 아무리 가난한 마을을 약탈해도 최소 골드는 얻어낼 수 있었다. 우르크들도 마을을 되찾는 게 아니라 그저 약탈로 끝내는 일이 많았다. 철혈팔기가 우르크 마을을 약탈해 골드를 얻어내던 것을 보고 빠르게 학습했다.
그러던 철혈팔기가 대륙섬이 드워프 왕국이 된 이후 빠르게 동부로 확장했다. 이제 도시 두세 개만 점령하면 대일본제국과 국경이 맞닿을 수 있을 거리까지 왔다.
"게다가 역천 이놈 생각도 모르겠고."
역천이 점령한 도시 중 일부는 가미카제가 점령한 마을로 둘러싸였다. 그런데도 역천은 가미카제의 마을들을 가만히 놔뒀다.
비록 가미카제와 역천은 서로 적대하기로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국가에 소속한 동맹이었다. 누가 먼저 상대를 공격하냐에 따라서 여론이 형성되고 중립 유저들이 어느 편을 들어줄지 갈린다.
비록 공격 상황에선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야마토와 네크로의 전쟁만 봐도 중립 유저들이 수비 상황에선 꽤 큰 역할을 해줬다.
지금은 가미카제의 마을들이 고구려에 가시처럼 박힌 상황인데, 역천이 너무 느긋하니 가미카제가 오히려 안절부절못했다. 역천의 수완을 지금껏 잘 봐왔기에 뭔가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지 않을지 의심되었다.
"또 빙하시대를 쓰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되면 우리 생산량 떨어져서 NPC 주민들이 고구려로 도망갈 수 있어."
"철혈팔기도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랑 철혈팔기를 동시에 적대하기엔 너무 부담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더 짜증 나지.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으니까."
"정보 담당자들을 다그치겠습니다."
가미카제는 역천의 거미줄에 지금까지 걸려있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역천이 귀한 정보들을 신속 그리고 정확하게 제공했기에 정보 쪽으로 신경을 덜 썼다. 정보부를 운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외주 업체나 마찬가지인 역천에 맡겨놓고 정작 정보부 소속 유저들은 몹 잡고 아이템 얻는 데 더 혈안이었다.
더구나 대륙섬에서 거대 세력들은 최소 에픽 아이템 하나씩 얻었다. 야마토가 공성전에서 선보인 유성 소환 마법이 바로 에픽 아이템에 내장한 스킬이었다. 원래는 감춰두려고 했는데 화우진과 투석기가 너무 쉽게 무력화되어 야마토도 어쩔 수 없이 꺼냈다. 지면 안 되는 건 당연하고, 어렵게 이겨도 패배나 다름없는 야마토로선 배수진을 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역천이 어떤 아이템을 얻었는지 모르는 가미카제로선 함부로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고구려를 선제공격하면 야마토 꼴이 난다. 야마토가 소금성을 공격할 때 중국이나 한국 유저보다 유럽 유저들이 더 이 악물고 달려왔다. 지금 북미와 유럽 유저들의 대륙 진출이 한창 활발할 때다.
첫 코를 잘못 꿰면 모조리 망한다. 이미 야마토의 멍청한 짓 때문에 일본 길드 이미지가 좋지 않다. 만약 가미카제도 똑같은 짓을 벌인다면 일본 유저 전체가 다른 서버들에게 찍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일본을 대표하는 세력이 되어 대륙에서 일정 크기의 영토를 점령한 후, 레전드 금융 왕국의 중요한 한 축이 되려는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당분간 NPC 군대를 늘이는 데 전력을 기울여."
"식량이랑 아이템 비축에 차질을 빚습니다."
"우르크랑 역천이 동시에 닥치면 지금 상황에선 일부 포기해야 해. NPC 군대가 시간을 조금만 벌어줘도 전황을 바꿀 수 있어. 어차피 아이템은 드워프 왕국 덕분에 넉넉하고 식량도 세라프를 소환하면 언제든 보충할 수 있어."
지시를 내린 가미카제 길드장은 또 이가 갈렸다. 고구려는 유저가 마을 수비에 전념하게 하려고 NPC 군대를 유치했고 당연히 그 비용은 가미카제가 감당했다. 그런데 국가를 탈퇴하면서 그 NPC 군대는 고구려에 고스란히 남았다. 인구 비율 때문에 일부는 다시 NPC 주민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히려 정예만 남아서 훨씬 나은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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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안에게 국가 운영을 떠넘긴 네크로는 철벽과 단둘이 던전에 진입했다. 현피는 이미 99레벨이 되었고 동해와 진돗개는 98이다. 진돗개와 현피는 길드 사무로 바쁘고 동해는 혼자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숙련도와 레벨을 함께 올렸다. 네크로나 철벽과 함께하면 경험치는 잘 들어오지만 스킬 숙련도 올리는 건 힘들었다.
"안익진."
네크로가 앞장서고 그 뒤로 타이탄이 다섯이나 늘어섰다. 드래곤 사체와 드래곤 잔해로 총 8마리까지 만들 수 있었는데, 셋은 실패하여 먼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 뒤로 철갑 기사 120이 늘어섰다. 철갑 기사는 다리 짧은 말을 탔기에 그다지 체고가 높지 않았다. 마지막엔 철갑 전사 200 정도가 있었다. 네크로가 철갑 전사보다 철갑 기사 만드는 데 더 신경 썼기에 전사 비율이 좀 낮았다.
"돌격."
'이성 잃은 우크' 수만 마리가 있었다. 네크로는 육지형 해동청을 타고 앞장서서 돌격했다. 그 뒤로 4미터 크기의 타이탄이 성큼성큼 따랐다. 환경에 따라 크기가 변하는데 3미터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고 밖에서 소환하면 12미터까지 커졌다.
해동청이 속도를 적당히 조절했기에 진형을 유지하면서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천벌, 신의 불, 도발, 이교도 심판, 신의 분노."
철벽은 쿨타임이 돌아오는 대로 스킬을 난사했다. 레벨업보다 숙련도 올리는 게 훨씬 어려움을 알기에 99레벨이 되기 전부터 숙련도에 신경 썼다. 처음부터 탱커로 캐릭 키우려고 무기 공격 스킬을 하나도 안 익혔기에 전면에 안 나서도 숙련도 올리는 데 지장 없었다.
"위성진."
도발 스킬에 우크들이 몰려왔다. 네크로는 진형을 위성진으로 바꿨다. 타이탄과 철갑 전사들이 둥그렇게 원을 유지하고 철갑 기사는 바깥에 나가 큰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약한 상대를 소탕할 때 사용하는 스킬로, 전투 시간을 1/3 수준으로 줄여주는 정말 고마운 진법이었다.
"오빠, 천벌 스킬 숙련도 엄청 빠르게 올라가는데."
"신을 가둔 놈들이라서 천벌 잘 받나 보다."
언데드에게도 전혀 효과 없는 천벌이었다. 그러나 얀을 통해 받은 퀘스트로 찾아낸 던전에서 천벌 스킬은 숙련도도 쭉쭉 올랐고 효과도 엄청났다.
어머니가 숲의 여왕 혈통인 얀은 '고블린 신의 부활'이라는 퀘스트를 철벽에게 줬다. 고블린은 숲의 친구로 불렸는데 숲의 종족인 푸레와 동맹이었다.
예전에 대부분 종족이 모시는 신이 있을 때, 각 종족은 신의 대리전을 자주 벌였다. 신이 없는 우크는 멍청하고 이용당하기 좋은 종족이었다. 어떤 종족의 꼬임에 넘어간 우크들은 고블린의 신을 던전에 가둬 왕이 탄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왕이 사라진 고블린은 점점 밀려서 드래곤 산맥의 험지로 숨어들었고 부족 단위로밖에 뭉치지 못했다. 그걸 가엽게 여긴 푸레의 왕족인 여왕 일족이 얀에게 부탁했고, 얀이 퀘스트 형태로 철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성기사인 네크로만 퀘스트를 공유받았다. 내친김에 진돗개는 당분간 현피와 함께 길드 사무를 정돈하겠다고 선언했고 동해는 칼 한 자루 차고 강호를 돌아다니는 협객 흉내를 내겠다며 홀로 사냥터를 전전했다.
즐기자 길드는 학자 NPC를 길드원으로 받아들여 길드 사무를 보게 했다. NPC는 상식 범주를 벗어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런 부분은 여전히 유저가 맡아야 하기에 현재 작업 분담을 정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대부분 정상 사무를 다 NPC에게 맡기면 진돗개와 현피도 다미안에게 모든 걸 맡겨버린 네크로처럼 고된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다미안은 대현자이기에 '합리적'이지 못한 정책도 네크로가 언질만 주면 수용했다. 그러나 다미안과 같은 대현자 NPC를 찾기도 힘들거니와 길드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어쩔 수 없이 현자도 아닌 학자 NPC를 구해 천천히 레벨과 랭크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빠, 타이탄 레벨 몇이야?"
키가 4미터인데 검 길이가 4미터다. 타이탄이 검을 수평으로 휘두를 때마다 우크들의 몸이 잘리고 으깨졌다.
"15레벨 정도야."
레벨업이 느렸다. 비록 우크가 60레벨 유저들이 상대하는 대륙산 몬스터라고 하지만, 공헌도에 상관없이 똑같이 나눈 경험치는 무척 적었다.
게다가 타이탄이 1레벨 올리는 경험치와 철갑 전사가 1레벨 올리는 경험치는 큰 차이가 있었다. 철갑 전사 대부분은 이미 40레벨을 채웠지만, 철갑 기사는 30레벨 정도가 대부분이고 타이탄은 겨우 16레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동청은 철갑 기사들 앞에서 달렸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 거느린 어미 오리 같았다. 긴 창을 든 철갑 기사들은 해동청이 내준 길을 편하게 달리며 스치는 우크에게 큰 상처를 입히거나 목숨을 취했다.
"귀여워."
도대체 금속 비늘로 뒤덮이고 눈을 항상 불량하게 치켜뜨는 덩치가 왜 귀여운지 네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작가의말
반형운은 초반부터 결별을 염두에 두고 가미카제를 소모했습니다. 야마토는 네크로가, 가미카제는 역천이 견제했습니다. 일본이라고 일부러 멍청하고 약하게 만든 게 아닙니다.
세력 다툼은 꼭 필요한 만큼만 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진행함에 필요하니깐요. 줄거리는 주인공 위주로 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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