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수도 공방전1
"마나 동결?"
김연마저 놀라서 손에 든 피자를 내려놨다. 그저 감탄인 셋과 달리 광해와 성필은 토론에 돌입했다.
"성기사랑 전사는 괜찮은가?"
"안 괜찮아. 성기사 성력도 마나 물약으로 보충해."
"그러고 보니 전사 기력도 마나 물약이네? 난 돈 아까워 몇 번 먹은 적 없지만."
평타도 꽤 나오는 진돗개여서 딱히 스킬에 집착하지 않았다. 숙련도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사용하지만, 보스 말고 일반 몹 상대로는 스킬이 필수 아니었다.
"마나포 치웠어."
성벽에 배치한 마나포가 하나둘 사라졌다.
"근데 서로 마나 없이 싸우면 성벽이 있는 고구려가 이득 아냐?"
동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마토와 철혈팔기 연합 측에 투석기를 비롯한 거대한 공성 병기들이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마나포를 치운 자리에도 소형 투석기와 쇠뇌가 나타났다. 그러나 숫자가 공성 측에 비교해 너무 부족했다.
"스킬 없이 그냥 사람 갈아 넣는 거라면 공성 측이 너무 유리한 거 아냐?"
"역천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는지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거야."
광해의 말에 진돗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사전에 정보 입수했다고 쳐도 무슨 수가 있겠어."
양측에서 투석기로만 서로를 공격했다. 지루한 나머지 모두 먹는 데 더 집중했다.
"마나가 동결되면 패시브도 안 먹히나?"
"패시브는 마나 안 써."
"형이랑 철벽은 저 상황에 잘 살아남겠네?"
"너도 마찬가지지. 쌈닭 패시브 장난 아니잖아."
"이상하지 않아?"
입에서 우물거리던 족발을 꿀꺽 삼킨 김연이 기름이 번지르르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왜 수성 측에 유저가 저렇게 적지?"
"어차피 상대가 성벽까지 달리려면 몇 분 걸려. 상대 전력 분배를 보고 맞춰서 배치하려는 거겠지."
과연, 위성 시각으로 확인하니 성벽과 일정 거리에 많은 유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내 눈엔 포탈 주변에 서서 도망칠 준비 하는 거 같은데?"
"그러진 않을 거야. 유저들은 괜찮지만, 수도를 저항도 없이 쉽게 버리면 NPC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칠 가능성이 커. 야마토가 도시 연속 잃으면서 우리 인구가 15만 늘었어. 다 야마토 국에서 도망친 주민 NPC였어."
광해 반박이 무색하게, 투석기들이 멈추고 연합군이 고구려의 수도로 돌격하는 순간 수성 측 유저들이 포탈로 도망쳤다.
"뭔 짓이지?"
"아씨, 깜짝이야."
스피커를 터뜨릴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작지 않은 거실을 꽉 채웠다. 김연은 바닥에 떨어뜨린 닭 다리를 황급히 주워서 휴지로 먼지를 털어냈다. 맥주캔 따던 현성은 소리에 놀라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바지에 맥주를 가득 쏟았다.
"뭐야? 저기 드래곤이 왜 나와?"
"한둘이 아니야. 열 마리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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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답니다."
"철수."
포탈 주변에 몰려있던 유저들이 빠르게 포탈을 타고 희망의 등대로 이동했다. 다른 포탈비 덜 드는 도시도 아니고, 왜 드래곤 산맥으로 막힌 희망의 등대로 이동하는지 누구도 몰랐다. 그저 투석기끼리 한판 붙을 때 갑자기 내려진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
한국 유저 식충이. 친한 친구 먹충이와 함께 VR 때부터 레전드 게임을 했다. 게임을 연구하지도 않고 그저 둘이 만나 마냥 즐겁게 사냥하고 수다 떨었다. 게임이 가상현실로 전환한 후, 식충이는 캡슐을 공짜로 받아 게임을 계속했지만, 먹충이는 이벤트에 당첨하지 못해 게임을 그만뒀다.
그러다 레전드 게임방이 생기면서 먹충이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게임을 했다. 훨씬 실감 나는 게임에 둘은 원래보다 더 행복하게 게임을 즐겼다.
'널 위해 게임 접을 수 있어.'
얼마 전 먹충이가 입원했다. 무슨 암 초기라고 하는데, 먹충이네 집은 수술비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식충이도 도울 형편이 안 됐다. 대학 졸업 이후 취직은 생각도 안 하고 맨날 게임에 빠져있었고, 집안도 넉넉하지 않았다.
'의뢰비하고 캡슐 판 돈이면 수술비 댈 수 있어.'
인벤토리에서 어제 받은 아이템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먹충이와 둘이서 어렵게 오우거 주술사 잡아서 얻은 유니크 무기 '파쇄추'를 들고 힘껏 내리쳤다.
공성 옵션을 선택해서 일본과 중국 유저와 '같은 편'이 되었기에 누구도 식충이를 공격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들 이상한 또라이네 정도 느낌으로 식충이가 하는 짓을 바라보기만 했다.
- 드래곤 알을 파괴했습니다.
- 모든 드래곤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 수면에 든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드래곤이 당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 '영원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어도 드래곤이 당신을 찾아냅니다.
- 드래곤 세 마리 사냥하면 낙인이 사라집니다.
동시에 나타난 수십 마리 드래곤이 각자 피어를 뿜었다. 고구려 수도의 모든 NPC가 즉사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유저들도 대기실로 떠났다. 고수부터 포탈로 철수하고 약한 유저만 남았기에 누구도 드래곤 피어에 저항하지 못했다.
야마토와 철혈팔기 측은 그나마 살아남은 유저가 좀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유저보다 드래곤이 더 많았다. 겨우 목숨 부지했던 유저들은 드래곤 브레스 두 개 이상 할당받는 영광을 누리며 대기실로 떠났다.
백만이 넘은 유저와 NPC를 순식간에 다 해치우고도 드래곤들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고구려의 수도를 온전한 벽돌 하나 남기지 않고 깡그리 파괴했다. 왕성은 주춧돌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성벽은 터조차 남기지 못했다.
대기실에서 로그아웃한 식충이는 경매 페이지에서 유니크 무기를 비롯해 모든 아이템을 24시간을 기한으로 경매장에 올렸다. 오리지날 캡슐을 판다는 광고를 중고나라에 올리자마자 바로 2천3백만 원을 제시하는 부자가 나타났다. 흥정 좀 해서 2천6백만 원에 팔기로 했다.
하루 지나고 의뢰비와 캡슐 판매한 금액 그리고 아이템 처분한 돈을 들고 먹충이에게 갔다.
"시발 새끼. 뭐 볼 게 있다고 자꾸 기어와."
"좆도 존만한 새끼가 볼 게 뭐 있겠어. 삼촌 보러 왔지."
"삼촌이라니. 큰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생일도 늦은 놈이."
"동갑이면 키로 형 동생 갈린다. 내가 니보다 키는 더 크다."
"깔창 빼고 다시 재자."
"수술 날짜 잡았다."
"네가 의사냐?"
"캡슐 팔았다."
"미친 새끼. 그거 팔아도 모자란 거 알아. 설마 사채 긁었냐?"
"아니. 내 능력으로 일해서 큰돈 벌었다. 캡슐 판 건 게임 접고 열심히 살겠다는 내 확고한 의지의 발현이다."
"의지의 발현? 어느 만화책에서 나오는 말이야?"
"나 내일부터 공사판 나간다. 자주 못 올 거야. 수술비는 이미 다 결제했어. 공사판에서 네 자리 마련해 놓을 테니까 어서 나아라. 내 돈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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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비서. 유니콘 반응 체크했어?"
"상무님. 긴급회의가 6시간째라고 합니다."
"어떤 조치를 하는지 궁금한 게 아냐. 유니콘이 이번 일로 내게 수작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런 것뿐이야. 은근히 나한테 엿 먹일 수 있잖아."
"네크로 유저한테 자문하는 건 어떨까요?"
"네크로? 나처럼 큰 사고 친 적 있어?"
"캐릭 만들고 며칠 만에 에픽 아이템 얻었는데, 유니콘이 가만있었을까요?"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네크로는 그때 뭔가 버그가 있었을 게 분명해. 그리고 그 버그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닐 거야. 그런데 내가 사용한 방법은 버그 아냐. 누구나 쓸 수 있어 악용 여지가 엄청나지. 드래곤 알 얻어내서 상대 수도에 가서 깨버리기만 하면 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잖아."
수도가 사라진 후, 희망의 등대를 수도로 고구려를 다시 세웠다. 수도가 된 덕분에 희망의 등대 주민이 300만이 되었다. 수도 하나가 지워졌는데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 어차피 언젠가 버릴 생각으로 원래 수도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타격이 적었다.
"그 부분은 수시로 체크하겠습니다."
"야마토랑 철혈팔기는 어떻게 됐지?"
"마나 동결을 사용하는 NPC가 죽었습니다. 아마 새로운 대안을 찾기 전까지는 잠잠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위치는?"
"부활 위치가 각자 수도였습니다."
"아마 기마병이 달려올 거야. 대한제국이 도시 하나 점령하겠지. 그럼 그 포탈로 철혈팔기와 야마토의 기마병들이 와서 마을을 초토화하겠지."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기에 두 국가 유저는 당분간 적군으로 인식된다. 포탈을 타고 도시에 등장하는 순간 NPC와 유저들의 공격을 받는다. 대륙 동남부에는 고구려만 성을 점령했기에, 저들이 빠르게 건너오려면 제삼자가 도시를 점령해 포탈을 열어줘야 한다. 그 제삼자가 대한제국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대안이 없어. 우린 잃을 게 많은데 저들은 없어. 야마토는 도시 두 개고, 철혈팔기는 북부를 버리기로 이미 결심했어."
반형운은 녹차로 목을 축였다.
"지금 가장 문제 되는 건 만리장성이고 그다음은 네크로 길드야."
"만리장성이야 누구 잘되는 꼴 못 보는 놈들이어서 이해 가는데, 네크로 길드는 왜입니까?"
"만리장성은 왕의 혈통이 없어서 이상한 포지션이 되었고, 네크로 길드는 약해서 누구도 먼저 건드리기 싫어해. 고슴도치 같다고 할까? 딱히 위협이 안 되는데 건드리긴 싫은 그런 존재야. 그런데, 만약 그 고슴도치가 이빨과 발톱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네크로가 그 정도 안목이 있을까요? 리더쉽은 타고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설사 타고난다고 해도 후천적인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지금 네크로가 확장할 적기야. 만약 네크로가 확장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과대평가한 거겠지. 그럼 이후 무시해도 돼."
"그럼 정기 보고 마저 하겠습니다. 지난달부터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순이익이 36억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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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평강 길드랑 그 일본이랑 중국 화냥년들 때문에 이게 뭐야."
자작이 총 여섯이었다. 근데 셋이 마을이 파괴되며 남작이 되었다. 다시 자작 되려면 다른 남작보다 시간이 훨씬 걸렸다.
그러나 소도시를 지탱할만한 길드가 그렇게 많은 게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소형 마을이 된 셋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다시 자작으로 만들어줘야 했다.
"야마토도 기세 다 죽은 지금이 확장 최적기란 말이야. 근데 자작 하나 모자라서 손 빨고 있잖아."
초인동맹은 북서부에서 도시를 야금야금 늘렸다. 중부에 도시가 가장 밀집했고, 북부가 가장 밀도 낮았다. 게다가 발전 정도도 상대적으로 낮아서 초인동맹은 도시 늘리는 속도를 느리게 조절했다. 자금줄이 끊어져도 버틸 수 있게 무척 조심했다.
대다수 마을이 철혈팔기와 야마토의 기마병에게 연일 무너졌지만, 도시 그리고 도시와 가까운 마을은 건재했다. 고구려는 꾹 참으며 철혈팔기와 야마토가 지치기를 기다렸다. 마을을 파괴하기만 해서는 얻는 게 없다.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니고, 철혈팔기든 야마토든 손해 보면서 전쟁을 끝까지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철혈팔기는 북부를 버리기로 완전히 마음먹고 중부를 노렸다. 중부에서도 남쪽을 노리며 마을과 도시를 점령했다. 다만, 북부 도시를 누구도 빼앗지 않아 부담이 커서 초인동맹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확장하지 못했다.
고구려는 야마토와 철혈팔기와 엮였고, 대한제국은 이들에게 포털 제공하려고 도시 수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초인동맹을 은근히 견제하느라 만리장성도 네크로를 방해할 여력이 없었다.
여섯이던 자작이 셋이 되었다가 지금 일곱으로 늘었다. 문제는 자작에서 남작으로 강등한 세 길드 외엔 마을을 소도시로 만들어 자작 작위를 얻을 세력이 없었다. 확장할 최적기인데, 자작 한 명이 발목을 잡았다.
축구로 비유하면, 골키퍼가 골대 비우고 노마크 온사이드인 상황에 갑자기 축구공이 터져서 심판이 경기를 중단한 것과 같았다.
"배후가 누군지 알아냈으면 좋겠다."
"알아내면 뭐해. 어차피 아직 복수할 실력도 안 되는데."
"드래곤 알 하나 얻어내면 되잖아."
드래곤 알 부수면 캐삭이 아니라 계정을 삭제해야 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기에 진돗개는 쉽게 얘기했다.
"나 퀘스트 하러 갈게. 당분간은 고착상태일 거야."
철괴와 미스릴괴를 적당히 구해서 인벤토리에 담은 네크로는 대지의 어깨춤 얻으러 텔레포트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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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위치 표시."
제이크가 맵에 위치를 표시했다. 일명 '대륙섬'으로 불리는 곳에서도 중심지였다.
강이 'Y'자 형태로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강 때문에 섬 아닌 섬이 되어버려 대륙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섬이라고 하기엔 한 면만 바다와 접했고 크기가 너무 컸다.
한때는 탄광과 광산 그리고 채석장이 넘치는 부유한 땅이었다. 대륙 최남단임에도 교통이 발달했다. 바닷길은 물론 강으로도 배가 끊이지 않았고 육로로 수레를 끌고 오는 상인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게 지진이 일어나는 재해 지역이 되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지진이 강을 넘지 않아서 큰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엄청난 규모와 위력의 지진임에도 강 반대편은 평온했다.
그렇게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대륙섬에도 마을이 존재했다. 주민은 우르크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드워프였다.
"드워프는 지하나 동굴에 사는 거 아니었어?"
"대부분은 그렇다. 맥주를 시원하게 먹어야 하니까."
검은 바위 부족이나 용암 드워프는 지하에 살았고, 흰 수염 부족은 동굴에 살았다.
"넌 누구냐?"
마을에 접근하니 창을 꼬나든 드워프가 눈알을 부라렸다. 지금까지 본 드워프들은 친절하진 않더라도 적대적이지 않았는데, 마을 문을 지키는 드워프는 화가 많아 보였다.
"나 맥주 있는데."
치켜떴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건들건들 흔들던 창이 어느새 한쪽에 팽개쳐졌다.
"귀한 분이시군요. 무슨 용무가 있습니까?"
드워프가 손을 싹싹 비볐다.
"바알드로를 모시는 성기사다. 이곳의 지진을 조사하고 해결하라는 신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 작가의말
요즘 BL 요소를 넣으면 인기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취향상 BL은 너무 힘들어 브로맨스 넣어봤습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선호작 10만 찍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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