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반목3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상인 유저들이 인벤토리로 옮긴 공성 병기가 바위를 날렸다. 그러나 몇 발 못 날리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소금성 성벽에서 수많은 마나포가 발사되었다. 마나포를 발사한 건 드워프 포수였다. 네크로가 개인 친분으로 불러온 드워프였다.
"유저 전원 돌격시켜."
소금성으로 개미 떼처럼 달려가는 유저들에게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마나포와 쇠뇌가 번갈아 강한 공격을 퍼부었다. 드워프 제 투석기가 공성 측의 것보다 훨씬 큰 바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전장에 뿌렸다.
"얘기랑 다르잖아!"
수뇌부 중 하나가 화를 버럭 냈다. 가미카제와 고구려랑 싸우면서 마나포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았다. 예전에 병력을 많이 동원하지 못할 때와 달리, 이젠 마나포도 그렇게 두려운 병기가 아니었다.
꽤 큰 피해를 강요해 짜증 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포열이 뜨거워서 사용을 중단했었다.
"성능이 훨씬 나은 마나포 같습니다."
"그런 얘기는 누가 못 해."
앞장선 성기사와 전사의 피해가 무척 컸다. 이런 식이면 성문을 깨거나 성벽을 무너뜨려도 문제다. 성기사와 전사로 쌓은 인간 장벽이 없다면, 다른 캐릭터들도 힘을 제대로 쓰기 힘들다.
"아이템 스킬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아니야. 소금성의 왕궁 성벽도 만만치 않단 말이야."
우르그르의 황궁보단 못하지만, 소금성의 왕궁을 보호하는 벽의 내구도도 만만치 않았다. 벌써 아이템 스킬을 사용하면 성벽만 무너뜨리고 정작 공선전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성기사나 전사가 후유증까지 벗으려면 시간이 엄청 걸립니다. 이론상으론 30분이지만, 편제까지 다시 짜려면 40분 이상 걸립니다."
"괜찮아. 상대는 다 합쳐도 20만 안 된다. 우린 백만이 죽어도 백만이 남아."
지휘부는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리 공성 병기가 얼마 없다고 해도 열 배의 병력이기에 필승을 자신했다. 그런데 마나포가 예상을 벗어나면서 조금씩 틀어졌다.
"잠깐. 그 우크 주술사나 피의 주술사는?"
눈을 가렸던 오만이 걷히니 지휘부는 점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펼쳐야 할 우크 주술사의 무지개 주술이나 피의 주술사의 주술이 펼쳐지지 않았다.
"이건 일부러 우릴 혼란에 빠뜨리려는 게 아니야. 뭔가 있어."
"뭔가 있어도 뭘 어쩔 건데. 우리 2백만이라고. 그리고 저들이라고 안 죽는 것도 아니잖아."
"급보입니다. 수도가 곧 함락될 거랍니다."
"어떻게?"
"오우거가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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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투스는 네크로에게서 선물로 받은 에픽 갑옷을 입고 크게 소리 질렀다. 역천에게서 받은 에픽 갑옷은 네크로 일행에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용병 퀘스트를 성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산투스에게 선물로 줬다.
오우거들은 문이나 성벽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냥 벽을 기어서 넘어갔다. 안에 들어가 NPC를 학살하다시피 해서 피로 길을 뚫었다.
미쳐 날뛰는 오우거 NPC들과 달리, 오우거 유저들은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하고 왕성 대문을 열었다. 역천과 네크로 길드의 유저들이 열린 문으로 편하게 들어갔다.
"덕분에 정말 쉽게 전투했습니다."
"성벽이 5미터 이상이면 설정으로 막혀 넘지 못합니다. 운이 좋았죠."
만리장성은 소금성을 차지할 생각에 수도에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징벌을 받았다. 전투가 시작되고 불과 20분도 안 되어 왕성에 적군이 침입했다.
유저 국왕이 소금성 전투에 참여했기에 왕궁 최종 보스는 NPC가 맡았다. 국가 규모가 작고 인구도 적고 발전도 낙후했기에 NPC는 평범한 보스몹 수준이었다. 오우거들이 3분도 안 되어 보스 NPC를 처단했다.
"자, 바로 초나라 수도를 공격합시다."
옥문관을 점령한 유저들은 포탈을 통해 프리덤의 도시로 갔다. 도착하는 족족 탈것을 불러 초인동맹의 수도 '영'으로 달렸다.
"가미카제는?"
"이미 포탈 타고 이동해서 만리장성의 도시만 골라 점령하는 중입니다."
"만리장성이라는 나라를 대륙에서 지워버려야 해. 소금성에 네크로 보고 좀 더 버텨달라고 해."
동맹석을 구하지 못했다. 네 개만 구했으면 프리덤과 가미카제까지 해서 넷이 힘을 모아 중국 세력들을 밀어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수성전에선 서로 도움을 줄 수 없지만, 공성전에서는 동맹을 맺지 않아도 같은 편으로 쳐줬다. 굳이 문제라면, 같은 무리로 치지 않기에 규모에서 오는 사기 스탯의 상승이 미미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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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빨리 소금성을 점령해야 합니다."
철혈팔기의 수뇌부가 주장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만리장성은 모든 도시가 가미카제에 점령당한다.
게다가 만리장성 수도를 함락한 유저들이 지금 초인동맹의 수도로 달리고 있다.
셋의 동맹이 깨지면 일정 기간 동맹을 맺지 못한다. 그러면 철혈팔기는 고구려와 대일본제국 그리고 WORLD의 협공을 받아야 한다.
"소금성을 빨리 처리하고 초인동맹의 수도를 지켜야 합니다."
"차라리 공성에 실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초인동맹도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수도를 점령한 국가가 대도서관을 비롯한 시설을 없애버리면 큰일이다. 하루에 하나씩 없앨 수 있는데, 초인동맹이라면 대도서관부터 없앨 것이다.
"안됩니다. 가미카제가 우리 도시를 공격했습니다. 오늘 소금성은 반드시 함락해서 만리장성이 차지해야 합니다."
"정보 들어왔습니다. 네크로와 역천이 동맹 맺은 사실 없고 가미카제 역시 아니랍니다."
초인동맹의 정보력은 무척 강했다. 짧은 시간에 필요한 정보가 뭔지 판단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정보를 얻어낼 능력까지 있어야 한다.
"소금성은 초인동맹이나 철혈팔기가 차지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초패왕의 말에 만리장성 간부들이 크게 반발했다.
"만리장성이 차지한다고 칩시다. 네크로와 역천이 함께 공격하면 반드시 지켜낼 자신 있습니까?"
만리장성 간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호언장담했다가 소금성을 빼앗기면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할 깜냥이 되지 않았다.
"일단 점령을 서둘러야 한다는 건 다 동의할 겁니다. 빠른 점령을 목표로 유저들을 다그칩시다."
희생을 무릅쓴 빠른 점령을 지시했다. 그러나 지시가 내려가고 1분도 안 되어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 전장의 마나가 동결됩니다.
네크로가 마나 동결을 펼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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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은 우리 오우거에게 맡겨주십시오."
산투스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성벽 높이가 6미터여서 넘을 수 없었다. 설정으로 막힌 부분이어서 어쩔 수 없다. 이런 설정이 없었다면, 성기사들이 탈것을 타고 날아 들어가 파괴신 스킬로 깽판을 칠 수 있다.
성문과 성벽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파괴해야 탈것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직업이 돌격병인 오우거 유저가 나섰다. 유저가 든 두 방패는 중심에 뾰족한 돌기가 있어서 무기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단체 돌격."
수백의 오우거가 성문 그리고 성벽을 향해 돌격했다. 유저는 키가 3미터 정도고 NPC 오우거는 5미터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보폭이 커서 동작이 느린 듯한데 속도가 무척 빨랐다.
"공성추."
오우거 유저의 스킬이 터졌다. 무려 유니크 등급의 스킬로, 산투스가 준 왕의 피를 마시고 영웅급 오우거가 되면서 얻은 스킬이었다.
쩌적 소리와 함께 성문에 금이 갔다. 초인동맹이 굳이 수도 방어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지 않은 것도 있고, 수비 병력이 적어서 성벽의 저항이나 방어력이 낮은 것도 있었다. 수비 병력이 많으면 성벽 방어력이 소폭 상승하고 저항은 유저 숫자에 따라 높아진다.
"파멸."
광전사 스킬로 공격력이 몇 배로 높아진 산투스는, 파멸로 공격력을 10배 만들었다. 네크로와 함께 미쳐버린 오우거 왕을 잡고 얻은 에픽 무기 '돌 망치'에 수십 배의 공격력이 실렸다.
"괴력."
네크로는 운으로 펼치는 스킬. 산투스는 괴력으로 다시 공격력을 십수 배 늘렸다. 최종적으로 8백 배에 가까운 공격력을 담은 공격이 성문에 터졌다.
"브로, 나 좀 뒤로 빼줘."
팔 두 개가 골절로 무력화된 산투스는 다른 유저에게 호송을 부탁했다. 뒤에 가서 물약을 마시고 치료도 받았지만, 수십 마디로 끊어진 팔뼈는 쉽게 회복하지 않았다.
'네크로는 체력 스탯이 도대체 얼마야?'
하약스 덕분에 큰 부상도 바로바로 회복하는 것인데, 산투스가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다. 그저 체력이 어마어마해서 웬만한 부상은 바로 낫는 줄 알았다.
산투스가 깨버린 성문으로 유저와 오우거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갔다. 왕궁 벽은 5미터가 안 되어 오우거들이 타고 넘었다.
"산투스 씨. 고용비 얼맙니까?"
"WORLD와 국가 동맹입니다. 그러나 이번 용병 퀘스트도 어렵게 성사했습니다. 당신이라면 아마 퀘스트 하는 데만 2개월 걸릴 겁니다. 네크로 유저는 동맹이어서 퀘스트가 몇 개 안 되었습니다."
순수 청년 산투스는 용병 퀘스트를 생성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역천은 산투스의 설명을 듣고 네크로 외엔 오우거를 용병으로 고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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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기쁜 소식이 전해졌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못했다. 역천과 네크로의 병력이 이미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받았다. 국가 규모나 인구가 많은 초인동맹이기에 NPC 보스의 위력도 만리장성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역천과 네크로의 유저 수십만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성벽을 무너뜨린 유저들은 환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네크로가 드워프로부터 구매한 전차들이 세 겹으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안에는 유저 혹은 궁수 NPC가 들어가서 밖으로 화살을 쐈다.
아직도 바위가 남았는지, 투석기가 여전히 유저가 몰린 곳으로 공격을 날렸다. 쇠뇌 역시 원거리 유저를 한 방에 대기실로 보낼 위력을 담은 금속 화살을 지속해서 쏘아냈다.
"그냥 밀고 들어가."
"근접 유저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마나 동결이 언제 끝나지?"
"마나 동결 NPC가 하나라는 법도 없습니다."
"서브 직업으로 전사나 성기사 선택한 유저들을 앞장세워. 저들은 유저가 기껏해야 3만이야. NPC는 한 번 죽으면 끝이잖아. 그냥 밀고 들어가."
"이럴 거면 초반에 아이템 스킬을 쓰는 건데."
"그러면 모두 물러가서 왕성만 지키겠지. 어차피 똑같아. 상대도 아이템 스킬 몇 개 안 썼잖아."
중국 세력들은 무너진 성벽으로 유저를 마구 밀어 넣었다. 네크로는 방패병 2만과 전차로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방패병이 줄어들고 전차도 하나둘 파괴되었다. 물론, 중국 세력들에게서 참혹한 대가를 받아냈다.
"근접 대부분이 2번 죽었고 원격도 대부분 한 번씩 죽었습니다."
"괜찮아. 상대방 화살보다 우리 유저가 더 많아. 계속 밀고 들어가."
전차와 NPC 군대로 세운 저지선을 밀고 끝내 왕성까지 도착했다. 그사이 초인동맹의 수도가 함락되었다.
동맹이 깨져도 상관없다. 초인동맹이나 만리장성은 수도가 함락되며 국가가 사라졌다. 공성 상황은 물론 수성 상황에서도 철혈팔기와 협력하는 덴 아무 문제 없다.
다만,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국가가 없기에 보람이 없다. 공성이든 수성이든 성과에 따른 보상이 있는데, 국가가 없기에 보상도 보잘것없다.
"죽어라!"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해동청이 드래곤 피어 스킬을 사용했다.
"왜 초반에 사용하지 않았을까?"
"피어 지속 시간이 10분밖에 안 됩니다. 아꼈다가 왕궁까지 밀리니 어쩔 수 없이 쓴 거 같습니다."
"근데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네크로는 해동청, 철벽은 유니콘을 타고 지휘부가 있는 곳으로 왔다.
"우리 흩어질까요? 지휘 체계를 교란하려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잡아버리는 게 어떤가? 고작 둘인데."
"어려울 겁니다. 저들은 드래곤 피어 버프가 있고 우린 디버프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네크로의 무기가 얼마나 강한지 알잖습니까."
네크로를 태운 해동청이 공격하자 지휘부는 다섯 무리로 나뉘어서 적당히 흩어졌다. 그러나 네크로의 목표는 지휘부가 아니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그러나 아쉽게도 마나가 동결된 상황에서 네크로의 공격을 세 번 받아내는 유저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공격이 철벽과 네크로의 방패에 막혔다. 어렵게 성공한 공격도 방어력과 저항이 어마어마한 네크로에겐 먹히지 않았다.
임시 신전에 들어간 철벽이 돌아서서 방패로 유저의 접근을 막았다. 네크로는 신전 안에 있는 유저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정리를 끝낸 둘은 신전 대문을 막고 버텼다.
"빨리, 빨리 공격해. 신전이 점령당하면 끝이다."
수천이나 수만 규모의 소꿉놀이도 아니고, 2백만이 넘은 유저를 동원한 공성전에서 수성 측이 임시 신전 점령에 나설 것은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것도 겨우 둘이서.
"해동청, 마음껏 싸워."
역천이 시간 좀 끌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마나 동결과 임시 신전 점령이라는 필살기를 아껴야 했다. 만리장성의 수도가 생각보다 포탈이 적어서 병력 이동이 느렸다. 오우거들이 성문을 단번에 깨버릴 걸 예측하지 못했기에 초인동맹의 수도도 순식간에 끝날 건 예상치 못했다.
임시 신전 앞에서 덩치가 변이 드래곤 정도로 커진 해동청이 행패를 부렸다. 전투 시작하고 지금까지 꾹 참은 화를 신전을 탈환하러 다가오는 유저들에게 풀었다.
몸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몸무게가 웬만한 드래곤보다 훨씬 무거운 해동청이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굴렀다.
날개를 펼쳐 살짝 날아올랐다가 그대로 내려앉기도 했다. 해동청의 육탄전에 버티는 유저가 얼마 없었다.
"어머, 귀여워."
철벽에겐 귀여울지 몰라도, 상대 유저들에겐 끔찍한 악몽이었다.
다급한 마음과 달리 시간은 일 분 일 초 정확히 흘렀다. 해동청의 행패를 뚫고 신전에 접근하는 유저가 늘었지만, 이들은 철벽에게 막혔다.
3분 버틴 철벽이 대기실로 떠났다.
그리고 하약스의 추종자들에게 '트롤'로 불리는 네크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 작가의말
하약스는 트롤의 신입니다. 혹시 잊으신 분 계실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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