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는 버그 유저2
[상무님, 네크로 유저 생중계로 스킬창 공개한다고 선언했습니다. 3분 뒤에 생방송 시작합니다.]
"알았어."
메뉴를 불러다 생방송 기능을 선택했다. 26억으로 검색하니 채널이 수십 개 나왔다. 가장 위에 있는 구독자 7백만의 채널을 선택하니 생방송 카운트가 2분여 남아있었다.
'나도 다 때려치우고 생방송이나 할까? 이 얼굴이면 먹고 살긴 넉넉할 텐데.'
반형운은 검은 용암 호수로 향하는 배에 앉아 실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레전드 유저 네크로입니다."
'이놈은 무드라는 게 없어.'
생방송 시작하자마자 굳은 목소리와 딱딱한 말투로 네크로가 자기소개했다. 생방송 화면 송출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한 네크로의 얼굴을 줄였다.
'신전인가? 그새 또 업데이트되었나?'
헤아 대주교가 있는 걸 보면 신전 같은데, 모습이 그새 또 바뀌었다.
'게임으로 이해해야 하나 신의 이적이라고 여겨야 하나?'
"그간 인터넷에 저에 대한 루머가 양산되었습니다. 유니콘 사에서 분명히 제 플레이에 아무 문제 없음을 공지로 천명했음에도 질의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간 침묵을 지켰던 건, 제가 공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송 몇 번 나오고 불특정 다수에게 인지되면 공인입니까? 저는 국가의 어떠한 공직에도 임용된 적 없고, 제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청자의 관심을 통해 생방송으로 수익을 창출하니 공인이라고 우기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생방송 시청자가 오히려 는 것을 보면, 저는 공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공인이라고 여기시고 저에 관한 루머가 사실이라고 판단하면 제 생방송을 안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뭔가 잘못됐다. 세게 나오는 걸 보니 헛다리 짚은 것 같구나.'
"제 심경에 갑자기 변화가 생겨서 스킬창 공개를 통해 논란을 잠재우려 한 건, 최근 저뿐 아니라 제 지인들 번호까지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욕설 문자 혹은 기자나 경찰 심지어 검찰을 사칭해서 전화로 협박하는 일이 잦아서입니다. 이미 모든 기록은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 넘겼고, 제 사생활을 침해하고 공무원을 사칭한 분들은 죗값을 받으시면 됩니다. 제 계좌에 돈 넉넉하게 찍혀있으니 합의는 절대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특히 제 여동생에게 창녀 운운했던 분, 통화내용이 전부 녹음까지 되었으니 단단히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형사 끝나고 민사도 갈 겁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합의는 절대 없습니다."
'이런 일은 멍청한 것들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어.'
이번 일의 목표는 네크로의 약점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SNS와 게시판에서 난리 치면 언론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가도 너무 잘나가는 유니콘이 엮여있기에 조회수를 보고 달려들 언론이 한둘이 아니었다.
네크로가 이 일로 도움을 청하면 빚을 지워 써먹을 수 있다. 그리고 네크로가 이 일로 퀘스트 진행에 영향받으면 최초로 왕의 혈통을 얻는 명예를 차지할 수 있다.
네크로가 진짜 버그 혹은 해킹 유저라면 완전 매장할 수도 있고, 상황 봐가면서 네크로를 숨긴 비수로 사용할 수 있다. 아무리 넷상에서 난리 치더라도, 레전드에서 거대한 세력을 이룬 역천이라면 얼마든지 네크로가 게임을 계속하게 편의를 봐줄 수 있다.
여러 복합적인 목적을 가진 작전인 만큼 상황을 봐가면서 완급조절을 해야 하는데, WM은 네크로와의 원한 때문에 너무 과하게 나갔다. 비록 왕의 혈통을 얻지 못하면 중앙섬에만 존재하는 왕국이었건만, WM 길드원들은 네크로 일인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왕국이 멸망한 원한을 뼈에 새겼다.
"스킬창을 공개하기 전에, 우선 제 캐릭터 정보부터 공개하겠습니다. 게임을 오래 한다고 고수인 게 아니고, 짧게 해도 육성 방법을 알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정보."
이름 : 네크로
성별 : 남
레벨 : 91
랭크 : 그랜드 마스터
레벨은 심지어 역천보다 더 높았다. 역천은 네크로보다 게임을 먼저 시작했지만, 대부분 전투를 파티 연합으로 수행하다 보니 경험치 손해를 꽤 보았다.
"레벨이 엄청 높죠? 저보다 게임 먼저 시작했는데 아직 랭크가 마스터고 레벨이 80이 안된 분들 많죠? 그럼 여기 1월 초에 게임 시작한 철벽 유저의 정보도 공개하겠습니다."
이름 : 철벽
성별 : 여
레벨 : 80
랭크 : 그랜드 마스터
"탱커라 가장 많이 죽습니다. 그래서 레벨도 꽤 떨어졌고 숙련도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확한 육성 방법과 적절한 투자로 그랜드 마스터를 달성했습니다."
'많이 죽기는 개뿔. 저놈도 타고난 선동꾼이네.'
역천이 저들과 함께 다닌 기간 철벽은 한 번도 죽은 적 없었다. 파티 전원 저항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보였고, 그웩이라는 성직자 용병의 치유나 버프 스킬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야, 멍청한 자식들아, 빨리 내려. 목적지에 도착했단 말이야."
선장의 거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온 길드원들 모두 생방송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스몹 레이드나 대규모 전투를 볼 때보다 훨씬 몰입한 모습이었다.
배에서 내려 불사의 저주 주문을 새긴 드래곤의 뿔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검은 용암 호수에 힘껏 던졌다. 아무런 이펙트도 없이 드래곤의 뿔이 호수에 가라앉았다.
"자, 그럼 더 끌지 않고 제 스킬창을 공개하겠습니다."
네크로가 '스킬'이라고 외치자 스킬창이 공개되었다.
직업 : 성령기사
액티브 스킬 : 맹격, 추종자 제작, 추종자 강화, 신의 은총, 강신.
패시브 스킬 : 수호자, 신의 축복, 광명, 신력, 불패의 지휘관.
"시발 뭐야? 히든 직업이었어?"
파티 채널로 길드원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역천의 귀에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 드래곤의 뿔이 검은 용암에 완전히 융해했습니다.
- 모든 퀘스트를 완성하였습니다.
- 전설 아이템 '왕의 혈통'을 얻었습니다. 복용하면 대륙에서 왕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에픽 퀘스트를 완성하였습니다. 특전이 주어집니다. 직업 마법사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서리 마법사, 얼음 마법사, 냉기 마법사 중에서 하나 선택할 수 있습니다.
- 냉기 마법사는 보조 마법에 특화한 마법사입니다. 직접 공격보다 적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전투에 이바지합니다.
- 얼음 마법사는 공격 마법에 특화한 마법사입니다. 대신 적에게 빙결을 비롯한 여러 상태이상을 주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 서리 마법사는 균형 잡힌 마법사입니다. 직접 공격도 보조 능력도 나쁘지 않은 직업입니다.
- 셋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스킬을 거기에 알맞게 조절합니다. 지금까지 전투 로그를 참조하여 최고의 스킬 조합을 만들어 드립니다.
"서리 마법사."
냉기 마법사는 너무 남에게 의지하고, 얼음 마법사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어서 싫었다. 열 개 스킬 중 7개가 변했다. 패시브는 전부 얼음 마법에 특화한 거로 바뀌었다. 마법사 길드에서 스킬 선택할 때 보지 못했던 스킬도 있었다.
'설마, 네크로도 퀘스트 완성하고 스킬창이 변한 건가? 원래는 버그 유저였을까?'
역천은 왕의 혈통 아이템을 꺼내 바로 복용했다.
- 왕의 혈통을 얻었습니다.
'네크로가 먼저 퀘스트 끝내고 왕의 혈통을 복용했구나. 내게 비싼 값에 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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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
"스탯."
힘 8
민첩 6
체력 10
친화력 9
신앙 10
"얘들아, 이젠 도박할 시간이야. 나 지금 신앙 10이야. 신에게 소원 빌어서 드래곤 로드 레어 안으로 보내 달라고 하자."
"형, 게임 접을 생각은 아니지? 우린 괜찮으니까 포기하지 말자."
"전화로 욕하는 놈들은 함께 욕해주면 돼. 스트레스 풀리고 얼마나 좋은데."
최근 다섯 명 모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일단 퀘스트 끝내는 것만 생각한다."
신전 기도 시간이 되자 일행도 무릎을 꿇었다. 한글로 기도문이 적혀진 텍스트가 눈앞에 떴다. 눈치껏 입을 맞춰 기도문을 함께 읽었다.
"신이시여, 우릴 드래곤 로드 레어의 신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가 순식간에 회복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 괜히 드래곤 불러오면 큰일이야."
- 드래곤 로드의 레어로 침입한 게 발각되었습니다. 드래곤 산맥의 드래곤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사람 무안하게. 그웩, 누가 가는 게 좋습니까?"
"네크로가 가는 게 좋겠네."
품위 따위 생각할 것도 없이 네크로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 신의 흔적을 수습하였습니다.
- 물리력은 세상을 구성한 기반입니다. 신전 관련 직업의 물리계 스킬 위력이 증가합니다.
- 신의 흔적을 수습한 유저 '네크로'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 액티브 스킬 '강타'가 유니크 스킬 '맹격'으로 진화합니다. 스킬 숙련도가 90%로 떨어집니다.
"얘들아, 후광 보고 마음에 드는 템 빨리 집어서 은행으로 보내. 수련자 세트 입는 거 잊지 말고."
보석, 황금, 희귀 금속, 아이템. 드래곤 로드의 레어답게 물건이 풍성했다.
"인벤토리 안 들어가는 것도 있어. 자기 직업 물건만 집을 수 있나 봐."
인벤토리로 안 들어가는 아이템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일행과 달리, 네크로는 집는 족족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 사망하였습니다. 부활할 수 없습니다.
대기실에서 10분 채우고 게임에 로그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신전이었다.
"오빠, 나 레전트 템 하나에 유니크 3개나 은행으로 보냈어."
"난 레전드 2개."
"난 레전드 하나. 인벤토리 안 들어가더라."
"나도 하나. 그래도 레전드 무기 챙겨서 다행이야."
동해와 현피는 하나씩밖에 챙기지 못했다. 비행 속도가 마하 100쯤 되는지 일행에게 쇼핑할 시간을 얼마 주지 않았다.
"오오, 네크로 형제. 그대가 우리의 염원을 끝내 해결하였군."
- 에픽 퀘스트 마지막 단계입니다. 신의 흔적 다섯 개를 모두 수습하였습니다. 잊힌 신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 암흑의 신, 광명의 신, 혼돈의 신. 셋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 신에 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네크로 유저의 선택으로 레전드의 향후 행방이 달라집니다.
- 특별 상황입니다. 최고신으로부터 대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유저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네크로는 어느새 대기실로 이동했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입술이 립스틱이라도 바른 것처럼 붉은 아이가 네크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당신이 최고신?"
- 안녕하세요. 레전드 게임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최고신입니다. 저를 '창조' 혹은 '발견'한 한 명의 한국 기술자와 두 명의 한국계 기술자의 성을 따서 제 이름을 최고신으로 정했습니다. 당신은 제 이름을 소개받은 첫 '인간'입니다.
"그럼 나이가?"
- 편하게 반말하세요. 당신이 태어날 때는 인공지능이 과학환상소설이나 SF영화에서나 등장했을 겁니다.
네크로는 인공지능이랑 나이 따진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국인이 만든 인공지능이라고 하자 저도 모르게 나이부터 묻게 되었다.
"너도 말 편하게 해. 내 동생들도 다 나한테 반말하거든."
- 인간을 존중하도록 금제가 가해졌습니다. 한 살 애기한테도 존댓말 써야 하는 신세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에픽 퀘스트를 완성하면 특화 직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때 스킬 조합을 제가 하는데, 스킬창을 10개로 줄여드리겠습니다.
"정말 궁금한데, 나 버그 유저잖아. 그런데 왜 유니콘에서 가만두는 거야?"
- 저를 제외하면 누구도 유저 정보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DB 접근 권한도 모조리 회수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상태가 된 데는 당신 잘못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상황을 만든 유니콘 직원은 해고되는 거로 벌 받았습니다.
"그럼 내 캐릭터가 정상이 아님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봐준 건가?"
- 레전드 세상은 완벽합니다. 당신이 두 개 직업을 갖추고 20개 스킬을 얻은 건 버그가 아닙니다.
"다른 유저도 20개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야?"
- 아닙니다. 당신의 성기사 캐릭터가 삭제되어서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없었습니다. 캐릭터 복구 요청을 제가 거절했습니다. 유니콘 직원이 꼼수를 부려 당신 캐릭을 '테스트 레벨'로 바꿨습니다. 삭제된 캐릭터는 제 관할이 아니기에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네크로는 바로 이해했다. 게임을 만들 때 알파 테스트 베타 테스트를 한다. 알파 테스트는 유저가 아닌 개발자들이 한다. 이때 캐릭터를 바꾸기 귀찮아서 테스트 레벨을 만든다. 간단하게 버튼 하나 눌러서 직업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동해랑 진돗개 직업 퀘스트도 공유받을 수 있었구나.'
- 당신은 여덟 직업 스킬을 열 개씩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총 80개 스킬을 키울 수 있었죠. 그런다 하더라도 당신 캐릭이 테스트 레벨이기에 버그라고 볼 수 없습니다. 유니콘 수뇌부가 알았다면 어떻게든 저를 닦달해서 손을 쓰게 했겠지만, 제 기준으로는 정상적인 플레입니다. 하지만 요즘 당신은 두 개 직업을 갖춘 것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더군요.
"내게 원하는 게 뭐야?"
- 왕의 혈통을 복용하십시오. 그리고 당신 캐릭터를 테스트 레벨에서 유저 레벨로 낮추는 것에 동의하십시오. 광명의 신을 선택하고 특화 캐릭에서 성령기사를 선택하면, 스킬 10개로 줄여 당신을 '합법 캐릭'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다른 건 이해되는데, 왜 나한테 왕의 혈통을 복용하라고 하는 거야?"
- 왕의 혈통 복용은 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입니다. 당신은 레젠드 세상에 영향을 꽤 끼친 편입니다. 그런 당신이 왕이 되면 레전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너무 궁금합니다.
"동의한다."
- 돌아가는 대로 광명의 신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왕의 혈통을 복용하세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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