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교 토벌
독고거병은 치료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른손으로 중검을 펼치는 수련을 했고, 당우형도 돌멩이나 나무 조각 혹은 풀잎이나 나뭇잎으로 백화제방을 연습했다. 둘에게 자극받은 남무천도 새로운 검법을 만들어낸다고 선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열정이 식어버렸다.
유신은 외부의 자극에 거의 영향 받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위지경이 유신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는 게 많지 않은 유신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 내면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무위지경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 잘 반응하지 않으니, 순수하게 개인의 노력으로 내면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갈등이나 모순을 통해 내면을 연마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최근 우문현성이 한 말이 유신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우문현성의 행태는 전영득에게도 그렇지만, 유신 역시 큰 반발을 느꼈다. 인간의 어떠한 행동도 결국 무위자연에 포함되는 거라고, 세상의 포용력은 인간 따위가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문현성이 하는 일은 유신의 관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우문현성이 하려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막아내지 못하면 내가 이룬 경지는 거짓된 것이다.'
지금까지 유신은 복수나 은원으로 움직인 게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개인의 욕심으로 행한 일은 초설을 위하여 동인진을 파한 것이다. 그것도 심사숙고하여 차분히 결정한 게 아니라, 곤륜 고수의 찌르기를 보고 번뜩이는 생각에 홀려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다. 물론 그 기저에 초설을 향한 흠모가 깔려 있었지만, 결정만큼은 충동적이었다.
유신은 난생처음 상황이나 주변인을 이유로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도 충동적인 결론이 아니고, 우문현성과 조우한 후 내내 생각해왔던 일이다. 귀주에서 싸우려는 두 무리를 방해한 것도, 우문현성이 하려는 일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무위지경에 너무 일찍 이르면서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 불교의 가르침처럼 소우주를 완성할 기회를 잃었지만, 우문현성 덕분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무공 수련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유신 역시 어렴풋이 자신의 이런 상태를 느끼고, 자신의 단전에 걸맞은 단 하나의 초식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무학의 대종사들처럼 넓으면서도 깊이 있는 무학을 완성할 자신은 없었다.
외부의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유신이지만, 서문가에 묶여있는 몸인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황제의 명으로 청성과 당문의 고수들이 목왕부로 파견되었는데, 청성은 왕부와 장수들의 호위를 맡았고, 당문은 해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대가 오독교여서 청성보다는 독을 잘 다루는 당문이 더 환대를 받았다.
소흥부 칠 왕야의 왕부에 비교하면, 목왕부는 참으로 검소했다. 중앙에 대전 하나 있고, 주변을 낮은 건물들이 둘러쌌다. 전(田)자 모양으로 담을 만들어, 중앙의 대전을 제외하고 네 구역으로 나뉘었다. 그중 한 곳이 목왕부 소속 호위무사들이 묵는 곳이고, 청성과 당문 고수들은 목왕부와 가까운 장원에 기거하고 있었다.
검은 기와와 붉은 벽이 인상적인 목왕부에 도착하니, 목왕이 둘을 환대했다. 사실 세 번째 목왕인 목성은 현재 금국공으로, 왕이 아닌 공의 작위다. 그리고 목성 이전의 둘은 평서후의 작위로, 죽은 후에야 금녕왕과 정원왕으로 추봉(追封)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목성은 왕이 아닌 공으로 칭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목왕이라 부른다.
"무림을 이끌어나갈 동량이라 해서 무척 궁금했는데, 직접 보니 소문이 오히려 부족했소. 자자, 폐하의 만수무강과 천하의 태평성세를 기원하여 건배를 제안하오."
그 뒤로도 자리한 사람들의 안녕을 빌미로 건배하고, 가족들의 평안을 빌미로 건배하고, 전장에 나간 장수와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빌미로 건배했다. 술을 마시며 금을 타고 풍월을 읊고 세상사를 논하는 중원과 달리, 독물이 많고 맹수가 많은 이곳은 여러 가지 축사로 건배하는 술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 사람씩 축사하며 건배를 제안했고, 유신 차례가 되자 할 말이 궁했다. 농사가 잘되라는 축사는 이미 나왔고, 초목이 무성하여 사냥감이 늘었으면 한다는 축사도 나왔었다.
"현재 전장이 대치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이 잔을 마시고 바로 출발해서 오독교를 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마도공성(馬到功成 - 승리를 빌어주는 축언)과 무사귀환을 위하여 건배를 제안합니다."
"나도 동행하겠습니다."
유신과 당우형이 함께 잔을 이마까지 들어 올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좋다를 연발했다. 중원의 격식 있는 술자리도 나쁘지 않지만, 이곳은 술 마시는 분위기가 살아있다.
"자자, 잔을 치우고 대접을 올려라."
건배를 제안할 때마다, 목왕의 허락이 필요하다. 가끔 짓궂게 축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건배 제안을 한 사람에게 벌주를 마시게 하기도 한다. 그게 오히려 친근한 표현이어서, 벌주를 마시는 자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다들 대접을 들고, 강호에서 용으로 불리는 두 분의 기개득승(旗開得勝)을 바라오."
기개는 깃발을 펼친다는 뜻이다. 깃발을 펼친다는 건 출정을 뜻하는 것이고, 깃발만 펼치면 승리를 거둔다는 말은 연전연승을 뜻한다.
대접의 술을 말끔히 비운 유신과 당우형은 목왕에게 읍을 올린 후 경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둘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지자, 목왕뿐 아니라 청성의 고수들도 무척 놀랐다. 황제의 편지를 받고 둘을 무척이나 환대했던 목왕은, 둘이 보여준 한 수에 황제가 노파심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홍이포와 총통을 들여야겠다. 저런 자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탄하게 만들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한편, 목왕부를 떠난 유신과 당우형은 약왕곡으로 달렸다. 오독교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가는 길을 모른다.
"동생, 왜 경공을 최대한으로 펼치라고 한 거야?"
"우문현성이 하는 일을 방해하려면, 우리 힘을 보여주어야 해요. 무림맹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담화궁의 뿌리를 뽑으려면 관과 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 대협이 그러는데, 하오문에도 마교의 세력이 뿌리를 깊게 박았다고 합니다. 담화궁이 여태껏 숨어있던 곳을 찾으려면, 관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거지도 없으니, 개방 역시 의지할 데가 못 됩니다."
"차라리 서문가도 성도에 자리를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럼 담화궁이든 마교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산에 호랑이가 한 마리만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서문가는 조상의 뼈가 묻힌 형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클 겁니다."
"그런데 왜 오독교와 마교는 목왕을 암살하지 않았을까?"
"반란이 목적이 아닌 거겠죠. 반란을 통해 이목을 가리고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습니다. 목왕을 죽였다면 반란군이 이미 이곳을 차지했을지도 모르죠."
유신의 생각과는 달리, 목왕을 지지하는 백성들도 무척 많다. 목왕을 죽이는 건 오히려 반란을 실패하게 할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다. 반란군의 명분이 목왕의 위신을 넘어서기 전에는, 반란군도 목왕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둘은 최근 얻은 깨달음과 무공이나 내공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으며 약왕곡으로 돌아갔다. 오독교를 멸하려 한다는 말에, 남무천이 반색했다.
"나도 한 손 거들지. 할 일도 없이 심심했는데 말일세."
전영득은 요즘 약초를 배우는 데 푹 빠졌다. 그리고 초현을 지켜야 할 사람도 한 명 필요하니, 셋만 가기로 했다.
### 快劍神龍 龍遊迅 ###
"독을 쓰는 놈들이 버젓이 시내 한복판에 커다란 장원을 짓고 살 줄은 몰랐네요."
유신의 말에 당우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당문만 봐도 성도와 꽤 먼 거리에 있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살지 않는다. 자칫 실수하면 독이 십 리까지 퍼질 수 있는데, 당문 주변에 살고 싶은 자는 없겠지."
"오독교의 독이 부족하다고 봐야 하나요? 아니면 오독교의 위세가 그만큼 강하다고 해야 하나요?"
둘의 대화에 남무천이 끼어들었다.
"소형제, 당문과 달리 오독교는 독물을 주로 다룬다네. 당문처럼 독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독을 발견하고 그 용도를 알아내는 데 주력한다네. 그래서 당문은 독과 해독약을 함께 만들지만, 이놈들은 독만 만들어내고 해독약은 제대로 만들지 못하지."
해독약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자들이 교의 주요 지위를 차지하고 남은 자들을 노비 부리듯 하는 게 오독교다. 일행이 눈치 못 채게 서문초현에게 하독한 고수의 머리도, 사죄의 의미라면서 쉽게 잘라서 올리는 게 오독교의 실상이다.
"대가리만 치면 쉽게 무너지겠네요?"
"소형제, 나도 머리 쓰기 싫어하는데, 소형제 역시 만만치 않구먼. 오독교 따위가 감히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꿈에서나 했겠소? 교의 고수들이 포진해 있을 게 분명하니, 대가리만 치는 게 아니라 몰살해야 하네."
"셋이서 하기에는 좀 힘에 부칠 것 같습니다."
그때 당우형이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목왕부에 갔을 때 화영산을 가져왔다."
화영산(化榮散)은 짐승이나 벌레들을 미치게 만드는 향기를 내는 물건으로, 엄밀히 말하면 독이 아니다. 화영산을 지니고 다니면 독물이나 독충이 은밀히 다가오지 못한다. 그러나 꽃을 한 근 말려서 찌고 빻고 고르고 해서 겨우 일 전(錢 - 대략 3.72g 정도)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향기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기에 무척 귀한 물건이다. 그러나 당문은 다른 방식으로 화영산을 만들어냈고, 이번에 목왕에게 선물로 가져왔다. 덕분에 당우형 역시 넉넉한 양을 얻어낼 수 있었다.
"꽃을 말려서 찌고 빻고 해서 한 달이나 고생해야 조금 나오는데, 우리 당문은 효과가 부족해도 양은 풍족하게 만들어낸다는 말이야."
"언제 손을 쓸까요?"
"내가 독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오시로 바뀔 무렵이 제일 적합할 것 같아. 오시는 만물이 소생하고 양기가 가장 성한 시간이거든. 그 시간에 독물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할 거야."
이쪽과는 완전히 다른 복식을 한 세 사람은, 은밀한 곳을 찾아 숨었다. 괜히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아질 일이 없다. 오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셋은 오독교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했다.
"당 대협은 정문을 지키시오. 나는 뒷문을 지키겠소. 나오는 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죽이는 것으로 합시다."
독물을 많이 기르는 오독교의 장원은 담도 높고 문은 두 개밖에 없다. 경공이 가장 뛰어난 유신은 상황을 봐가며 알아서 움직이기로 했다. 모조리 죽이기로 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오독교의 아이들은 열 살도 안 되어 독물로 사람을 해친다는 말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독교의 아이들은 독물로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보고 배우며 자랐기에,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살려둬봤자 오독교의 불씨만 살려두는 것이다.
"오시가 되었소."
남무천의 말에 당우형이 몸을 훌쩍 날렸다. 화영산이 당우형의 몸 주변을 감쌌다. 조약돌은 몸 주변으로 잘 띄웠는데, 풀잎이나 나뭇잎은 힘들어했었다. 그러다 유신이 물 위를 달릴 때 기를 체내에서 체외로 순환했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서 실마리를 얻어 가벼운 물건들도 잘 잡아둘 수 있게 되었다.
사지는 물론 머리까지 물결에 휩쓸린 수초처럼 하느작거렸다. 어찌 보면 훈풍에 몸을 흔드는 꽃송이 같기도 하고, 강풍에 흩날리는 천산의 눈가루 같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흔들리던 당우형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두 손이 순식간에 백 가지 변화를 완성했다. 당우형의 두 손은 꽃이 만발한 화원이 되었고, 당우형의 주변으로 화영산이 꽃가루처럼 날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독을 썼으면 나았을 것 같네."
"고수를 죽일 수 있는 절독은 귀합니다. 만드는 데 돈이 엄청 든다고 들었습니다."
"제길, 고수가 되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살이가 무공보다 훨씬 어렵구먼."
유신은 고개를 끄덕여 남무천의 말에 동조했다. 무공 역시 쾌 · 중 · 변 · 환 · 강 · 유 ·허 ·실 등등의 많은 종류가 있고, 상극과 상생의 조화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무공은 일정한 법도가 있고, 그 법도를 벗어났다 평가받는 마공들도 사실 극을 취했을 뿐 법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삶 역시 뭔가 법도가 있을 텐데. 그걸 깨닫는 게 무공보다 훨씬 힘들구나.'
장원 내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지기 시작하자, 남무천은 검을 들고 뒷문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홍두명의 지팡이를 갈아서 만든 검은 무척이나 든든했지만, 한 자루는 유신의 심룡척과 부딪치고 부러졌다. 베어진 게 아니라 부러진 것으로 무척 튼튼한 검임이 증명되었지만, 남무천은 술김에 객기를 부렸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유신도 높은 나무 위로 신형을 옮겨 상황을 살폈다. 정문과 뒷문을 제외하면 유신의 몫이어서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나 여인에게 손을 쓰는 게 찝찝했는데, 장원 안에 일어난 난리 통을 보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미쳐 날뛰는 독물들이 사람을 마구 공격하는데, 아이나 여인들이 살아서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 작가의말
유신은 우문현성이 하는 일에 행패 부리기로 했습니다. 유신이 무공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는 ‘믿음’과 ‘깨달음’에 반하는 일을 우문현성이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북한을 싫어하는 게, 원한보다는 독재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민주주의가 옳다고 믿는데, 그 믿음에 전면 부정하는 북한의 체제에 반감을 품는 것이겠죠. 마찬가지로, 우문현성이 하려는 일은 유신과 전영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득 따위를 떠나, 그저 싫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고난과 힘겨운 세월이 있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독재가 그걸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하여튼, 유신이 우문현성을 ‘미워’하는 이유는 대략 이런 느낌으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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