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교
말라버린 풀이 듬성듬성 보이는 울퉁불퉁한 길로 마차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한 달의 여정에 태반이 산길이어서 마차가 여기저기 탈이 났다. 하지만 누구도 마차를 수리할 줄 몰라서 당문까지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다.
"히야, 용케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네."
허름한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밖에 살짝 해진 천에 주점이라는 두 글자를 적지 않았다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알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보통 당문이나 청성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성도를 거친다. 그래서 중경부 쪽에서 오는 길은 이용자가 많지 않다.
"가서 가볍게 배를 채우고 갑시다. 이런 곳에 의외로 별미가 많거든요."
당우형의 말에 서문청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주점에서는 구경도 못 하는 특별한 음식들을 운 좋으면 맛볼 수 있다. 관외의 허름한 주점에서 토끼 고기와 새 고기에 채소를 섞어서 만든 삼선 완자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주인장 계시오?"
천장에 거미줄만 치지 않았다뿐이지 거의 폐가나 다름이 없다. 등이 살짝 굽은 불혹은 넘어 보이는 대머리가 밖으로 나왔다.
"불을 지피지 않아 안이 더 추우니 밖에 앉으슈. 마침 야미(野味 - 들짐승) 들인 거 있으니 통구이가 좋겠수다. 동전 서른 닢이오."
"술도 포함인 거요?"
"당연하쥬. 야미 통구이에 술이 빠지면 안 되쥬. 석삼아, 움에 가서 술 좀 내와라."
주인장의 도축 솜씨가 무척 좋은지 가는 뼈까지 다 추려냈다. 고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려고 굵은 뼈는 남겨두었지만 정말 먹기 좋게 잘 손질했다. 나뭇가지 두 개를 십자로 짐승을 꿴 다음 숯불 화로 위에 고기를 올렸다.
칙칙 소리와 함께 향긋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주인장은 먼저 소금을 조금 뿌렸고 고기가 조금 익은 후 푸른색 가루를 칼집 자리에 쑤셔 넣었다. 고기가 살짝 타기 시작할 때 붉은 즙을 칠하고 소금을 한 번 더 뿌렸다.
마지막에 바른 붉은 즙이 다 마르자 요리가 완성되었다. 칼집과 센 화력 덕분에 속까지 빨리 익었고 붉은 즙을 바른 후 더 익히면서 겉은 바싹하게 익고 속은 부드럽게 익었다. 당우형이 가장 먼저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남은 사람들도 손으로 고기를 찢어먹기 시작했다.
"이거 규화계랑 막상막한데."
초현이 감탄하자 주인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곧 두 번째 짐승도 나무 꼬챙이에 꿰어져 숯불 위에 올라가 숯불 쬠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것보다 덩치도 더 크고 기름이 많은지 칙칙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천천히들 드슈. 이건 기름이 많아 오래 구워서 기름을 빼야 해유. 아님 배탈이 나거든유."
이런저런 양념을 쳐가며 고기를 굽는 사이 술이 도착했다. 역시 당우형이 가장 먼저 술맛을 보았다. 술을 넘기고도 한참 음미하던 당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술을 맛본 서문청월이 술을 맛보고 주인장에게 질문했다.
"세 가지 술을 섞어서 특별한 맛을 냈군. 주인장 솜씨요?"
"아니유. 아비가 죽기 전에 해놓은 건데 나는 아무리 해도 그 맛이 나지 않아유. 이제 몇 동이 남지 않아서 걱정이유다."
"한 동이 더 내주시오."
서문청월의 말에 주인장이 동전 열 닢을 더 달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과 술에 기분이 좋아진 초현이 동전 스무 닢을 건넸다. 주인장은 장사는 법대로 해야 한다며 동전 열 닢을 초현에게 돌려주었다.
새로 올린 술과 고기를 따뜻한 화로 곁에서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긴 여정에 알게 모르게 조금 피곤이 쌓였는데 맛있는 음식으로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씻겨나갔다. 또 찾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주인장과 작별한 후 마차를 몰아 당문으로 향했다.
"이제 저 앞에 보이는 산만 넘으면 당문입니다."
당우형의 말에 서문청월은 말 위에서 기지개를 크게 켰다. 추운 날씨에 말을 타면서 굳었던 몸이 약간 풀렸다. 그때 쿵 소리와 함께 초현이 낙마했다.
"어? 토혈이다."
유신의 말에 당우형이 경공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강연원도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서문청월은 초현을 살피는 대신 주변을 경계했다. 당우형은 빠른 속도로 초현을 살핀 후 유신에게 말했다.
"네 피독주 좀 빌려라. 급성 독은 아니니 당문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피독주를 초현의 목에 걸어준 후 유신이 초현을 업기 전에 당우형이 초현의 몸을 들춰 독을 찾았다. 아까 줬다가 다시 돌려받은 동전들에서 독을 발견했다. 유신은 초현을 둘러업고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산길에서는 유신이 말보다 훨씬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저 장면 소림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당우형이 부인을 업고 경공을 펼쳤다. 유모가 마차와 말을 수습해 천천히 오기로 하고 서문청월 역시 경공을 펼쳤다. 말 따위는 버리고 유모도 함께 가려고 했는데 유모는 경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셋의 속도를 따를 수 없다.
한참 달리는 데 초현이 갑자기 피를 왈칵 토했다. 당우형이 급히 유신을 멈추고 초현의 증세를 살폈다.
"제길, 독개미와 같은 독물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방금 새로운 독에 중독되었다. 좀 더 빨리 가자."
유신은 안정을 버리고 빠름에 집중했다. 당문에서도 경공은 천재 소리를 듣는 당우형과 완숙한 일류의 경지에 이른 서문청월도 유신의 빠름에 놀랐다. 초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검은 피가 옷에 튀었지만 유신은 빨리 당문에 도착하는 데 집중했다.
"동생, 왼쪽에 보이는 장원이 당문이다."
빠르게 달리면서 당우형이 입을 열자 서문청월은 자괴감이 살짝 들었다. 둘 다 사람 하나씩 업고도 전력을 다한 자신만큼 빨리 달리고 있다. 거기에 당우형은 입을 열어 소리까지 질렀고, 목소리에 떨림이 전혀 없다. 등에 업힌 부인을 배려해서 속도를 다 내지 않은 것이다.
"나 당우형이 돌아왔다. 빨리 문을 열어라."
내공이 실린 당우형의 외침에 적지 않은 사람이 뛰쳐나왔다. 특히 당문의 어린 식솔들은 당우형을 무척 반겼다. 그러다 유신과 초현의 몰골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둘을 관찰했다.
"독의당으로 가자."
부인을 내려놓은 당우형이 유신과 함께 독의당으로 향했다. 강연원은 많은 식솔 앞에서 당우형의 등에 업힌 모습을 보여준 게 부끄러워서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서문청월은 당우형과 유신의 뒤를 따라 독의당으로 향했다.
"작은할아버지, 위급한 환자입니다."
뿌리는 검고 끝만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당우형의 외침에 빠르게 일어나서 초현을 진단했다.
"누구냐?"
"우령이 신랑입니다."
"우령이 복 받았구나."
"큰 위험은 없겠죠?"
노인은 등 긁는 용도로 사용하는 나뭇가지로 당우형의 머리를 두드렸다.
"숨 붙여서 내 앞에 데려왔는데 무슨 위험이 있겠느냐."
진단을 끝낸 노인은 세필로 약 처방을 세 가지나 지어서 당우형에게 주었다. 그리고서 침 몇 개를 꽂자 초현은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었다. 그제야 서문청월이 황급히 노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후배 서문청월이 독왕께 인사 올립니다. 제 조카를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네가 서문가의 거머리구먼. 그리고 우리 당문 때문에 다친 아이이니 고마워할 필요가 없어. 오독교 따위가 기어오르게 한 당문의 잘못이 크지."
"오독교는 어찌 아셨습니까?"
"솜씨가 딱 오독교인데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둘의 대화가 끝나자 유신도 인사를 올렸다. 비록 독왕이라는 별호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서문청월의 태도로 보아 대단한 사람이 분명하다.
"당우형 대협을 의형으로 모시는 항주 태생 용유신입니다. 독왕께 인사드립니다."
"오호, 네가 우형이 말하던 특이체질이구나. 언제 시간이 나면 한번 진맥해봐도 되겠니?"
"분부만 하십시오."
얼마 안 지나서 당우형이 약 세 첩을 들고 달려왔다. 독왕은 약을 달이고 즙을 내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당우형에게 시켰다.
"네놈이 강호에 나가서 시간을 허비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소독왕 이나 소약왕 소리를 들었을 텐데. 재능도 없는 침과 암기를 붙들고 살다가는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강호에서 당우형의 침술은 그 명성이 무척이나 드높다. 그런데 독왕의 눈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는지 약을 끓이고 즙을 내는 내내 당우형을 구박했다. 당우형은 히죽거리며 독왕의 구박을 받아들였다.
"작은할아버지, 여기 내 동생 사지백해 뚫어야 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독왕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유신이 당우형의 눈치를 보자 당우형이 손을 내미는 시늉을 했다. 유신이 왼손을 내밀자 독왕이 맥을 짚었다.
"이놈 이거. 큰일 칠 놈이군. 살다 살다 이렇게 살벌한 놈은 처음 보는데."
당우형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독왕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사지백해 뚫는 건 당우형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들어가는 약재도 많고 독왕의 침술도 필요하다.
"사지백해 뚫어놓으면 이놈 엄청 무서운 사람 된다. 우형이 너 장담하냐?"
"저와 피를 섞은 형제입니다."
당우형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 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다 되면 내가 부르마. 그리고 우령이 신랑은 여기 두어라. 닷새 뒤면 정신을 차릴 거다."
그제야 혼서와 폐납이 생각 난 셋은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유모를 도와 말과 마차들을 끌고 왔다. 네 필의 말과 마차를 끌고 오느라 유모가 무척 애를 먹었다. 일류에 이른 고수 주제에 말을 두려워해서 얼마 움직이지도 못했다.
### 快劍神龍 龍遊迅 ###
"우리 당문의 다음 대 화수(花首) 당우형이오. 이쪽은 청운산장의 소장주다."
청운산장은 오독교가 중원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초현을 중독시킨 게 오독교의 소행이라는 걸 독왕으로부터 전해 들은 당우형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오독교의 소교주를 노려보았다.
"청운산장의 소장주 독만(毒卍)입니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운종흑룡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말투가 조금 어색했지만 운남 쪽 사람치고는 중원어를 꽤 잘 하는 편이다. 낙양 쪽 말투와 흡사하여 오독교의 사람인 줄 몰랐으면 그저 혀가 좀 부었나 생각할 정도로 유창했다.
"당우형이오. 어제 은혜는 평생 잊지 않고 두고두고 갚겠소."
얼굴이 조금 곰보인 소교주는 외견과 달리 해가 바뀌어야 약관이 되는 청년이다. 독을 다루다 얼굴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꽤 미남이었을 것이다. 물론 별호에 옥면 두 글자가 들어간 초현과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어제는 그저 간단히 인사만 드린 것뿐인데 이렇게 감격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독만 언제라도 응하겠습니다."
"군자호구 십년불만이라고, 기대하셔도 좋소."
군자복수 십년불만, 군자의 복수는 십 년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확실한 복수를 하는 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혼인 후 유식한 말을 자제하는 당우형이었지만, 초현을 중독시킨 오독교의 소교주와 대면하자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역시 소문대로 유식한 분이군요. 중원에 와서 멋진 말을 많이 배웁니다."
독만의 말과 표정에 진심이 묻어나서 비꼬는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거기에 당문이 있는 성도는 중원에 속하지 않는다. 운남 정도는 아니지만 변방으로 취급받는 곳이다. 둘의 대화에 유신은 아랫배에 힘을 꾹 주어 겨우 웃음을 참았다.
당문의 가주와 장로들에게 안부 인사를 드린 다음 서문청월은 혼서와 폐납을 올렸다. 유신은 왜 이런 자리에 외인인 오독교의 소교주가 끼었는지 궁금했다.
"공교롭게 여기 청운산장의 소장주도 우령이에게 혼서를 넣었네. 그래서 고민하다가 강호인답게 당사자들이 비무를 통해 정하기로 했네."
유신은 초현을 굳이 이 무리에 넣은 이유와 오독교가 초현에게 독을 푼 이유가 짐작 갔다. 서문청월은 미리 알았을까 궁금해 눈길을 돌리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 작가의말
풍종호 운종룡. 풍운을 몰고 다니는 게 호랑이와 용이죠. 삼룡이 합체하니 바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일행이 급하게 서문가를 떠난 게 바로 오독교가 당우령에게 혼서를 건네서입니다. 급하지만 혼서와 폐납 때문에 마차로 움직였습니다. 혼서야 편지니 괜찮지만 폐납은 무겁고 부피도 크거든요. 폐납에는 검은 비단과 붉은 비단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붉은 비단이 신랑이 입는 옷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붉은색은 남쪽이고 불이며 양, 검은색은 북쪽이고 물이며 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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