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흑백지쟁
쾅 소리와 함께 당가주의 앞에 놓인 다탁이 가루가 되었다. 그러나 자리한 모두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당가주의 막내아들이 불퉁한 표정으로 나뭇가루를 수습했다. 하인이나 시비를 들이지 않는 당문의 특성상, 이런 일은 신분이 낮은 식솔이 해야 한다. 그러나 가주회의와 같은 중요한 곳에서는 막내아들이 해야 했다. 대가문의 막내아들은 해야 할 일이 많은 무척 피곤한 자리다.
"아무리 방계라고 해도 그렇지. 감히 성도의 땅에서 당문 사람의 손목을 잘라?"
이른 아침에 갑자기 가주회의가 소집된 건, 방계 하나가 주루에서 손목을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자기 굴에서 꼬리를 잘린 셈이다.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라."
"가주께 아뢰오. 흉수는 염성이라는 곳에서 온 염방이오. 소금 밀수를 하는 주제에 백룡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오. 장강의 수적들도 저들의 배는 웬만해서 그냥 지나친다고 할 정도로 독종으로 유명하오."
"이건 흑룡을 섬기는 당문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당가주가 주먹을 들자, 막내아들이 잽싸게 다탁을 빼돌렸다.
"방계의 아이 하나가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백룡방의 작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오. 염방에서 소금을 달여 염정(鹽精)이라는 덩어리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무척 귀한 물건이라고 하오. 천하에 약이 없다는 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라고 하오. 그걸 잃어버리고 방계의 아이에게 뒤집어씌웠소."
"염병 같은 소릴 하고 있네. 우리 당문이 치료 못할 병이 몇 개나 있다고 그딴 염정을 훔친단 말이냐."
"방계의 아이는 당연히 개소리라고 했고, 놈들에게 손목 하나 잘렸소."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격동한 마음을 가라앉힌 가주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장독대를 파견하도록 해라."
장독대(掌毒隊)는 전원 독을 사용하는 당문의 핵심무력이다.
"가주, 잘 생각해 보시게. 장독대는 아직 강호에 내보내서는 안 되네. 천하가 우리 당문을 경계할 것이오. 장독대가 있는 곳은 잡초도 자라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시오."
"장로님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누구를 보낼까요?"
"생리대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소."
생리대(生離隊)는 사별대(死別隊)와 함께 당문 최흉의 무력이다. 생리사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생리대는 죽이지 않고 괴롭히는 데 특화되었고 사별대는 죽이는 데 특화되었다.
"생리대가 먼저 괴롭히고, 사별대가 끝장내지요."
"그런데 생리대 대장과 사별대 대장이 사이가 좋지 않소. 예전에 한 여인을 두고 다투던 사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수를 함께 보내고 장로도 한 명 보내서 잘 다독이게 하는 게 좋겠소."
"화수는 갓 아들을 얻지 않았습니까? 먼 길을 나서기엔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화수가 그 방계의 아이와 사이가 돈독했다고 하오. 본인도 가고 싶어 할 것이니, 이대로 하는 게 좋겠소."
대장로의 말에 당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족인 당문은 가주보다는 장로 체제로 흘러가기에, 아직 당가주는 발언권이 강하지 않다. 장로의 말이 틀린 거라면 가주의 권위로 누를 수 있지만, 지금은 장로의 말에 따르는 게 낫다.
"가주의 이름으로 명하겠다. 생리대와 사별대는 삼장로와 화수의 인솔하에 백룡방의 근거지를 피로 씻고 이름을 백사방으로 바꾸게 만들어라."
보름 후, 보름달이 무척 밝은 밤.
백룡방의 이백 명 식솔들이 모조리 생포되어 해변의 모랫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반항이 심했는지 팔다리가 안 보이는 사람이 스무 명은 되었다.
당문의 사별대는 피 한 방울 옷에 묻히지 않았다. 피 칠갑을 한 생리대와 무척 대조적이다. 사별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생포하기 위해 생리대만 나섰기 때문이다. 생리대는 사별대를 죽이는 것밖에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했고, 사별대는 생리대를 마음이 약해 여인에게나 어울리는 자들이라고 깎아내렸다.
"화수, 어찌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소?"
화수는 당문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장로도 함부로 말을 놓지 않았다.
"성현께서 이르기를."
화수가 입을 열자 사별대와 생리대의 무인들이 동시에 이마를 찌푸렸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무리가 유독 단합이 잘 되는 시간이다.
"원한이 있는 걸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라(有讐不復非君子)고 했습니다. 성현도 복수는 정당한 행위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君子復讐十年不晩)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수는 꼭 해야 한다는 뜻이죠. 당문이 은혜는 열 배로 갚고 원한은 백 배로 갚는(恩十讐百) 행위는 성현들도 미리 인정한 바입니다."
'이 새끼, 또 시작이다.'
"복수를 정확히 백 배로 하려면, 우선 당문이 받은 피해를 정확히 산출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당문의 방계 한 명이 성도의 주루에서 술 마시다가 손목 하나 잘린 것이니, 저들 중 오십 명의 손목을 자르면 해결될 것 같은 간단한 일이지만."
사별대와 생리대는 물론, 백룡방의 포로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방계의 형제는 평소 자신을 위로할 때 주로 오른손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오른손을 철로 된 의수로 바꿨으니, 그 감촉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철로 만든 정교한 의수를 오른손에 단 방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별대와 생리대는 백룡방이 저지른 죄가 단순히 손목 하나 자른 것이 아님을 알고 전율했다.
'화수가 아니었으면 저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몰랐을 것이다. 과연, 화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저 손놀림이 정교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판이었다.'
"정밀하고 복잡한 계산을 통해 저들 중 육십 명의 목을 자르는 것이 정확히 백 배가 됨을 산출했습니다."
"과연 당문의 화수로구나."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생리대와 사별대가 같은 마음이 되었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 소임을 내릴 때, 먼저 심지를 건드려 고난을 겪게 하고, 다음 근골을 피곤하게 하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때 백룡방 포로의 비명이 화수의 말을 끊었다. 화수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지자 장로가 눈치를 주어 방계의 무인에게 복수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의수로 검을 잡은 방계는 눈에 익은 자들을 찾아 목을 베기 시작했다.
사별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정확히 육십 명을 베었을 때, 검의 날이 망가졌다. 장로는 물론 생리대와 사별대도 화수의 정확한 계산에 탄복했다. 혓바닥이 좀 길어서 문제지, 실력이나 인품은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방계의 사생활까지 조사하여 복수에 도움을 주는 깊은 배려심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이제부터 너희는 백사방으로 개명한다. 이후 당문을 보면 멀리 피하든지 목을 빼 들고 무릎을 꿇든지 해라. 만약 당문에 두 번 다시 적대한다면, 오늘처럼 간단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육십 구의 시체를 남기고 당문이 떠났다. 보름달이 붉게 물든 백사장을 환하게 비췄다. 당문의 무인들이 다 사라진 후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백사방의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시체를 수습했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먼 곳에서 백사방의 동정을 살피던 장로가 화수에게 말했다.
"아들 얻은 걸 축하하네. 이름은 지었는가?"
"우형이라고 지으려고 합니다. 제발 아이가 백화수를 대성해서 당문의 위명을 떨쳤으면 합니다."
"자네 반만 닮아도 해낼 수 있을 걸세. 물론 무공을 말하는 것일세."
혓바닥은 제발 짧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백사방의 눈에 서린 독기가 옅어지자, 장로는 복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을 알았다. 몸을 돌려 백사방의 무리를 등지고 경공을 펼치려던 장로는, 문득 방계 아이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말이오. 저 방계의 아이가 이름이 뭐였지? 나이가 드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먼."
"병헌입니다. 원래 당병헌인데, 손목 잘리기 전에 어머니 성을 따라 이 씨로 바꿨습니다."
- 작가의말
염병은 전염병의 줄임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주로 욕으로 사용하지요.
생리사별은 애틋하고 안타까운 헤어짐을 뜻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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