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천의 감옥 생활
전영득은 잠도 아끼면서 최대한 빠르게 분지로 돌아왔다. 만약 누란의 왕궁에 전설처럼 많은 황금이 쌓여 있고 그 황금이 홍두명의 손에 들어가면 큰일이다. 무력만 가진 세력은 더 강한 힘에 쉽게 흩어지나 금력을 가진 자 주변은 늘 단단하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분지에 들어선 전영득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무공을 수련하는 계성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내공만 해도 또래는 물론 약관을 넘은 자 중에서도 드문 수준이다. 아직 갈무리가 어설퍼 단전 속에 웅크린 화기가 그대로 느껴져 전영득에게 더 큰 놀라움을 선사했다. 세 알이나 삼킨 사실을 모르는 전영득에게는 무척 큰 의외였다.
다음 마주친 사람은 눈을 꼭 감고 나무를 부둥켜안은 은무성이다. 계성이 화령초의 기운을 녹이는 것을 도우며 당우형으로부터 내공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 훔쳤다. 사람이나 짐승을 상대로 하기에는 아직 미숙해서 나무를 안고 수련하고 있다. 두 손으로만 기운을 내보내지만, 나무 안에서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느끼려고 꼭 그러안고 있다.
조약돌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암기 수련을 하는 당우형을 본 전영득은 숨이 턱 막혔다. 내공의 양도 양이지만 눈썰미가 뛰어난 전영득은 당우형이 마구 던지는 돌멩이가 벌레를 한 마리씩 맞히고 있음을 발견했다. 모양새가 불규칙적이어서 균형점이 제멋대로인 돌멩이를 정확히 제어하는 것도 놀랍지만, 돌멩이가 아닌 거기에 실린 내공으로 벌레를 때려잡는 모습은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돌멩이가 가까이 갔는데도 벌레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피하려는 노력도 안 했다.
사슴인지 산양인지 모를 짐승의 고기를 꼬챙이에 꿰고 훈제하는 유신을 바라보니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가시를 잔뜩 세운 호랑이 같은 느낌을 주는 당우형과 달리 유신은 바라보는 사람까지 편하게 했다. 전영득은 가늠이 힘들 정도로 급성장한 유신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십 년이 아니라 오 년 시간만 있어도 우문현성의 상대가 될 수 있다. 이번에 꼭 남무천을 구하고 홍두명을 제거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도 남무천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사 년 전보다는 낫다. 은무성은 몰라도 당우형과 유신은 최소 이번 일만큼은 전력으로 도울 것이다. 둘은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하고 흉금이 넓지만 원한에 대해서는 무척 속 좁은 모습을 보였다. 유신은 아비의 복수를 어설프게 끝낸 것이 속에 앙금으로 남아 원한을 갚는 일에 더욱 집착하고 있고 당우형은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 때문에 복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전 대협, 어디를 다녀오신 겁니까?"
"우리가 만났던 곳으로 다녀왔소."
당우형은 가벼운 몸을 한 전영득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안에 재물을 챙기려고 갔다면 짐이 많아야 할 텐데,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가벼운 짐을 메고 있다.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까?"
"천산괴노를 거기에 가뒀네. 먹을 것도 적당히 넣어 줬으니 내가 다시 가서 놓아줄 때까지는 살아 있겠지."
전영득은 목숨도 해치지 않고 무공도 그대로 둔다는 약속을 정확히 지켰다. 그리고 가는 길에 천산괴노를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일부는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정보지만 전영득이 원하는 정보 대부분을 얻었다.
그리고 천산괴노를 시켜 성화인(聖火印)을 하나 모조하게 했다. 성화인은 교의 신물로 그 권위가 교주보다 더 높다. 성화인이 찍힌 명령서와 교주의 직접 명령이 충돌하면 명령서를 따르는 게 교의 법이다. 일월교로 바뀌면서 교주의 권위가 훨씬 강해졌지만, 여전히 성화인의 권위는 대단하다.
"전 대협 오셨군요. 하루 푹 쉬고 내일 출발합시다. 물주머니를 좀 더 말려야 합니다."
남은 세 사람이 무공 수련에 몰두할 때 유신은 사냥을 열심히 다녔다. 사냥한 사슴과 산양의 가죽 및 방광으로 물주머니를 만들었다. 남무천과 홍두명이 있는 나포백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사이에 있는 사막 분지에 있다. 황토고원보다 훨씬 거친 고비사막으로 유신은 험한 여행에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전영득 역시 하루 정도 향후 계획을 짜고 일정을 계산할 필요가 있기에 급하게 출발하자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전영득은 홀쭉한 보따리에서 죽통을 꺼내 당우형에게 건넸다.
"당 대협, 지난번에 구해준 걸 제대로 보답 못 했소. 이건 장군검을 만드는 야장이 반년의 정성을 들여 만든 침이오."
장군검을 만드는 야장이라면 황실 최고의 야장이라는 뜻이다. 과연 당우형이 가출할 때 훔쳐낸 침보다도 훨씬 잘 만든 침이었다. 당우형은 전영득에게 감사를 표한 후 힘 조절에 실패해서 반탄력에 손목을 다친 계성을 침으로 치료했다. 몇 번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당우형이 내공으로 치료해 주었는데 이제는 침이 있어 훨씬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
당우형의 치료를 받으며 계성은 무공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고 당우형도 보기 드물게 진지한 태도로 답했다. 은무성은 너무 이론에 치우쳐서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은 계성이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유신 역시 자기가 가진 것들을 명확히 정리한 게 아니어서 어려서부터 절차대로 배웠고 가출하면서 경험까지 쌓은 당우형의 조언이 계성에게 가장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사람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영득은 계산적인 사람이지만, 모든 걸 계산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전영득이 유신의 무공에 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해준 건 우문현성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질을 보인 것도 있지만, 한 명의 무인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후배를 아끼는 마음도 있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고 베푸는 마음만 있다면 다툼도 없을 텐데.'
물론 전영득은 그런 세상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우문현성의 계획에 반대하고 심지어 훼방을 놓으려고 결심했다. 우문현성이 황제가 되면 남무천과 전영득 자신은 반드시 우문현성에게 제거당한다. 우문현성의 계획을 방해하기로 한 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부분이 가장 크지만, 자신의 계산을 부정하고 억지스러운 계획을 계속 실행하려는 우문현성에 대한 반발도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암복설계(暗腹雪鷄) 두 마리를 잡은 유신은 솜씨를 부려 규화계를 만들었다. 향신료가 부족해서 특유의 맛은 제대로 살리지 못했지만, 추운 곳에서 살아 기름이 많은 암복설계는 무척 고소했다. 한 마리가 다섯 근 정도여서 무척 많은 양이지만 다섯이서 뼈에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웠다.
### 快劍神龍 龍遊迅 ###
나포백은 위치가 가끔 바뀌는 도시다. 물길이 바뀌어 물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새롭게 물이 모이는 곳으로 천천히 이사한다. 몇 년의 시간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 건물을 세우고 살기 시작하면 그곳이 새로운 나포백이 된다.
그렇게 버림받은 도시는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모래가 된다. 그러나 일월교가 수만의 교도를 데리고 나포백에 둥지를 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물길을 파서 버려진 도시에 다시 물을 끌어들였다. 이미 이사를 하였던 사람들은 건물에 대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못했고 물마저 빼앗긴 후 어쩔 수 없이 돌아와서 일월교의 통치를 받았다.
그래서 나포백에서 일월교가 가지는 위세는 대단하다. 문지기나 무사들의 위세는 말할 것도 없고, 마구간을 청소하고 말똥을 치우는 말똥지기도 밖에 나가면 무척 거드름을 피울 수 있다. 말똥지기보다 훨씬 위세가 강한 감옥의 간수는 말할 것 없다.
"이걸 사람이 먹는 거라고 내놓은 거야?"
남무천은 화를 버럭 내며 음식 그릇을 발로 걷어찼다. 그릇이 뒤집히며 멀건 죽이 바닥에 쏟아졌다. 간수는 아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남 호법님, 사막에 큰바람이 불어서 상단들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있으니 제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서역으로 향하는 상단들은 반드시 나포백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지 않으면 물을 수급하기 힘들다. 그리고 일월교는 식량과 재물을 받고 호송도 해준다. 일월교가 나서면 마적들도 도망 다니기 급급하기에 대부분 상인은 적당한 재물과 식량으로 일월교의 호송을 받으려고 했다.
천산이 무림맹 손에 떨어지기 전에 이 호송 임무가 일월교를 먹여 살리는 주요 수단이었다. 가끔 마적을 터는 부수입도 있지만, 사막에서 마적과 술래잡기 하다가 길을 잃으면 아무리 고수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마른 시체가 된다. 그리고 마적이 전부 사라지면 상인들에게 호송비를 걷을 수 없기에 적당히 살려두기도 했다.
돈황이 무림맹의 손에 떨어진 것 때문에 현재 호송 임무가 위축되었다. 무림맹의 위협으로 상단들은 마적에게 뇌물을 바치는 쪽을 더 선호했다. 괜히 일월교의 호송을 받다가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잡혀가서 옥살이하고 가진 재물을 다 털릴 수도 있다. 이곳을 터전으로 생각하고 가꾸는 일월교와 달리 무림맹은 막무가내로 나왔다.
거기에 일월교의 활동 범위가 축소되면서 감숙과 청해 일대에 마적들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일월교가 마적들을 적당히 퇴치했는데 돈황을 차지한 무림맹은 마적들을 그냥 내버려 뒀다. 마적 백 명을 죽이는 것보다 일월교 무인 하나 죽이는 게 더 큰 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상단들이 예전처럼 자주 나포백을 방문하지 않게 되면서 가끔 식량이 부족해지면 식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무천은 간수의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개소리 그만해. 홍두명은 여자를 끼고 술로 발을 닦으며 사는데 같은 호법인 나는 왜 대우가 이렇게 다른 거야?"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하시면 어떻게든 구해오겠습니다."
"술, 고기 그리고 전갈 구이를 가져와."
간수는 연신 굽신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팔다리가 쇠사슬에 묶인 남무천의 단전 주변에 파정(破釘)이 몇 개 꽂혀있다. 거꾸로 된 갈퀴가 달린 이 쇠못들은 남무천이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단전을 폐쇄하고 내공을 흩어버린다. 팔다리를 그나마 움직일 수 있지만 몸은 기둥에 묶여있다. 몸을 묶은 밧줄에 방울이 달려 조금만 버둥거려도 방울이 짤랑짤랑 울린다.
"간수장님, 호법께서 술과 고기 그리고 전갈 구이를 원하십니다."
"이런 시발."
간수는 불경하게도 손으로 간수장의 입을 찰싹 때렸다. 급하게 입을 막는다고 힘을 과하게 쓴 것이다. 그러나 간수장은 오히려 간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놈의 성질. 네 덕분에 큰 화를 면했다."
처음에 남무천이 잡혀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음식은 먹다 남아서 쉰 죽을 줬고 쩍하면 욕하고 때리며 괴롭혔다. 그런데 그때부터 감옥에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남무천을 욕한 자는 혀에 커다란 혹이 났다. 남무천을 때린 자는 아침에 깨어난 후 몸에 생긴 멍을 확인하게 된다. 쉰 죽을 준 자는 사흘 내내 설사를 하지 않으면 변비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과 재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지만, 남무천의 몸에 칼자국을 낸 간수의 목이 잘린 후부터 누구도 남무천을 괴롭히지 못했다. 그러다 남무천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간수들이 귀가 잘리고 나서 남무천이 원하는 건 적극적으로 들어주기 시작했다.
"술은 내가 숨겨둔 게 있으니 괜찮고, 당장 사람 셋을 보내 사막 전갈을 잡아 오게 해라. 고기는 푸줏간들을 돌며 최대한 좋은 고기로 마련하고, 돈은 우리가 조금씩 걷자."
세 명의 간수가 갈대로 짠 덮개가 있는 광주리를 들고 전갈 잡으러 급히 출발했고 한 명이 모은 돈을 들고 좋은 고기를 구하러 푸줏간으로 갔다. 푸줏간이라고 매일 장사하는 게 아니기에 가까운 곳부터 하나하나 찾아다녀야 한다. 만약 모든 푸줏간이 문을 닫았다면 직접 도축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기를 마련해야 한다.
'제길, 귀신일까 사람일까? 차라리 귀신이면 낫지, 사람 소행이라고 생각하면 더 무섭구나.'
일월교는 금주령을 내려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상인들이 가져온 술을 사 먹는 건 괜찮지만, 쌀로 직접 술을 빚는 건 금했다. 그래도 감옥 간수장 정도가 되면 몰래 술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걸리면 곤장형을 받을 각오로 빚은 아까운 술은 대부분 남무천의 뱃속에 처넣었다.
남무천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며 오히려 더 하얗고 포동포동해졌다. 흑면야차라는 흉명과 달리 평소에 원래 하얀 남무천이었는데 이제는 서역 상인들만큼 하얗게 변했다.
"게 누구 없느냐. 배고파 뒈질 것 같구나."
'제길, 목청도 참 좋아. 내공도 없는 데 여기까지 들린다니.'
다행히 파정은 살을 크게 째야 뽑을 수 있고, 쇠사슬을 채운 자물쇠를 열 열쇠는 새로 임명된 호법 중 하나가 가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쇠사슬도 풀어주고 내공을 못 쓰게 만든 파정을 뽑아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위에 사정을 말하면 무능하다고 자리에서 쫓겨나겠지.'
이래저래 힘든 간수장이다. 은자를 갖다 바치면서 어렵게 얻은 자리였고 그간 죄수의 가족들이 갖다 바치는 재물로 허리춤이 무거웠는데 요즘은 사막 바람에 날려갈 것처럼 가볍다. 그래도 들어오는 재물이 적지 않아 이 자리를 내놓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 작가의말
여러분, 죄를 짓지 마십시오. 감옥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경험이 없어서 상상으로만 썼는데 손이 떨려서 타자를 겨우 했습니다. 남무천은 꽤 애정하는 캐릭터인데 감옥에서 저런 수모를 당한다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앞부분을 유심히 읽으시고 댓글까지 잘 살핀 분들은 이미 무슨 일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혹시 모르겠다 하는 분이 계신다면 급해 하지 마세요. 내일 바로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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