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알 수 있는 것
내공심법은 도교의 연단사들로부터 나왔다. 인체를 단약을 정련하는 화로로 보고, 보이지 않고 느낄 수만 있는 기를 연성하여 단(丹)을 만들려는 엉뚱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얼떨결에 내공을 쌓았고, 그 무궁무진한 효력에 매료되어 널리 알려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했다.
초반에 내공심법은 도가의 사상에 따라 연정화기(煉精化氣)로 시작해 연기화신(煉氣化神)을 거쳐 연신화허(煉神化虛)의 세 단계로 나뉘었다. 정기신의 일체를 목표로 했고, 그 존재를 확신하는 정을 느낄 수 있는 기로 바꾸고, 기는 실재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신으로 바꾸고, 신은 느껴지지도 실재도 확신하지 못하는 허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내공심법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내공을 얻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체계를 갖추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건, 연단사들 덕분이다. 그리고 유신의 구절신공은 아주 초기에 만들어진, 아무나 익힐 수 없는 특별한 심법이다.
특별한 심법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 익힐 수 있다.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서로 심득을 주고받으며 연구하던 초기에는, 익히는 사람이 없어도 어찌어찌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유파가 나뉘기 시작했고, 교류의 범위가 유파 내부로만 국한되며 일부 심법들이 비급으로만 남거나 비급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실되었다.
그러다 유파가 문파로 바뀌면서 교류가 뜸해졌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익힐 수 있는 심법들만 살아남았고, 특별한 심법들은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부작용이 심하게 드러나면서 마공으로 매도되어 사라졌다.
죽절공, 즉 구절신공은 특별한 심법이다. 알맞은 사람은 아주 쉽게 익혀내지만, 아닌 사람은 평생 익혀도 이류를 벗어나기 힘들다. 지금 강호에서 일컫는 이류가 예전의 삼류 수준임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전해진 게 신기할 정도다.
광서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을 한 달 앞두고, 유신은 열 번째 단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굳이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 번째 단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웠다. 어차피 지금까지 모두 몸과 죽절공이 알아서 해왔다. 지금에 와서 유신이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 계속 맡겨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을 멈췄다.
유신의 단전 속 내기들이 전부 체외로 배출되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산공은 아니지만, 산공과 같은 자극을 주어 열 번째 단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방식으로 열 번째 단전을 확실히 만들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유신은 의심하지 않았다. 체외로 나온 기운들이 서로 섞이면서, 아홉 개 단전의 기운끼리 성질이 점점 가까워졌다. 예전에 각 기운은 가장 자신에게 적합한 단전을 찾아갔고, 단전과 기운이 서로 영향을 주며 단전마다 조금씩 다른 성질을 띠었다. 현재 아홉 단전의 기운이 같은 성질로 바뀌고 있다. 몸 밖에 배출했던 기운을 다시 몸속으로 들이면, 바뀐 기운의 영향으로 단전들도 변하면서, 아홉 개의 단전이 점점 비슷해졌다.
처음에는 체외에서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서로 소원하던 아홉 가지 기운들이 점점 서로 닮아가면서 체외에서 융합하기 시작했다. 일반 무인은 하나의 단전에도 여러 기운이 섞여 있는데, 유신은 단전이 많은 덕분에 단전마다 담긴 다른 기운을 품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홉 단전의 기운들이 점점 같아졌다.
'사흘.'
사흘 뒤면 모든 기운이 같아지고, 아홉 단전의 성질이 같아지면서 열 번째 단전이 생겨날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유신도 모른다. 죽절공이 알려준 것일 수도 있고, 청중단풍검 비급의 구결을 수없이 외우면서 무의식이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밖에 나가니, 용박이 계성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계성을 관문제자라고 말한 은무성은, 용박을 제자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열다섯 살이 된 계성이 오라지 않으면 여섯 살이 될 용박의 스승이 되었다. 여전히 키가 자라지 않은 꼬맹이 계성이 사부랍시고 근엄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좋아. 네 자질이 극히 뛰어나 이 사부의 마음이 심히 흡족하구나."
"격려 감사드립니다. 정진하고 정진하여 우양장을 천하제일의 장법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굳이 널리 알릴 필요까지는 없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 있는데, 내 나이쯤 되면 사부의 말이 이해될 것이다."
"사부님의 금과옥조를 명기하겠습니다."
두 꼬맹이의 소꿉놀이 모습은 꽤 재밌었다. 그러나 단순히 소꿉놀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계성은 일류의 경지에 확고하게 발을 들였고 용박의 우양장은 무방비로 맞으면 꽤 아프다.
"자, 그럼 기초 수련을 한 번 더 한다. 이 수련을 웃으며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고수다. 무인은 다른 사람과 우열을 겨루기보다 자신을 이겨내고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자아를 성찰하고 단련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외 적인 것들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진지한 애늙은이 같았던 계성과, 조숙하기 그지없는 용박은 궁합이 잘 맞았다. 웬만한 꼬맹이가 계성의 말을 들었으면 혀를 쑥 내밀었을 것이고, 다른 열다섯 살짜리가 훈계했으면 용박이 비웃었을 것이다.
수련이 끝나면 은무성이 둘을 추궁과혈 해줬다. 아주 대단한 건 아니고, 은무성이 수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전보다 훨씬 내공을 정교하게 다스릴 수 있었지만, 불쑥 찾아온 넷의 모습에 은무성의 수련 욕구가 다시 불타올랐다.
"소형제, 왜 날 두고 혼자서 멀리 떠나는 건가?"
눈이 점점 깊어지고 있지만, 남무천은 여전히 남무천이었다. 시비조로 말을 건네오는 남무천에게 유신은 씩 웃어주었다. 유신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남무천이 울컥했다.
"제길. 거시기 빼고 다 져버렸어."
"전 사흘 남았습니다."
"난 아직이네."
남무천도 지금 하나의 도약을 앞에 놓고 있다. 내공에 무공을 맞출 것인지, 무공에 내공을 맞출 것인지 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두고 있다. 내공 따로 무공 따로 배웠고, 내공은 화령초의 열매로 급격히 늘렸다. 그래서 무공과 내공이 서로 맞지 않아 둘을 결합하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남무천은 아직도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재수 없어."
남무천의 폭언을 귓등으로 흘린 유신은, 당우형의 신형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두 발을 밧줄로 매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당우형이 온몸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누워서 엎드려서 물구나무서서 백화수를 펼치는 연습을 하더니, 오늘은 색다르게 밧줄에 매달렸다.
"형님, 차라리 팔다리를 꽁꽁 묶고 연습하시지 그럽니까?"
당우형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듯하다. 점점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딱히 얻을 깨달음도 남아 있지 않고 수련만이 답인 당우형은, 다양한 자극을 통해 수련 효과를 더 좋게 만들려고 애썼다.
"꽁꽁 묶어줘.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당우형의 몸을 밧줄로 꽉 묶으면서, 유신은 가볍게 말했다.
"전 사흘 남았습니다."
"어차피 나는 들러리 아니냐. 너랑 남 대협이 수괴를 처리해야지?"
"형님이 복수하려고 칼을 갈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괜히 숨기지 마세요."
필담을 통해 당우형은 자신의 아비를 죽인 원수를 알아냈다. 직접 죽인 자는 홍두명이지만, 심한 상처를 입힌 건 우문현성이다. 홍두명은 동생인 유신이 죽였으니 절반의 복수는 완성했다고 봐야 한다. 남은 절반의 복수는 어떻게든 당우형이 직접 할 생각이다.
"백화제방 있잖아."
당우형이 은근한 말투로 목소리를 낮추자, 유신은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뒤에 이어지는 말은 엄청 대단한 말이거나, 엄청 어처구니없는 말일 것이 분명하다.
"하나의 암기에 백화수의 백 가지 수법을 모조리 쏟으면 어떻게 될까?"
"암기가 버텨낼까요?"
"그때 남 대협이 검 끝을 잘라버렸잖아. 그걸 갈아서 추(錐 - 송곳)로 만들었다."
손바닥 길이의 송곳이 당우형의 손바닥에 어느새 올려졌다. 어디에 숨겼고 어떻게 꺼냈는지는 유신도 보지 못했다. 상대가 검수라면 무슨 수작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분야가 다르다 보니 전혀 낌새를 몰랐다.
"해본 적은 있어요?"
당우형은 고개를 저었다. 왠지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 백화수의 백 가지 동작을 하나의 암기에 쏟는 일은 시도하지 못했다.
"최대로 몇 개까지 넣어봤어요?"
"팔십까지는 다른 암기로 해봤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그다음부터는 하나하나가 고비잖냐."
유신의 백화수는 현재 팔십 초반에 머물러 있다. 검을 다루는 감각과도 상관있기에 유신은 백화수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높은 수준의 고수가 된 지금에도 백화수는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이따 내가 수련 끝내면, 답수능파 좀 가르쳐줘. 뭔지 알 것 같은데 잘 안 되고 있어."
깨달음이나 운공이나 나무랄 데 없지만, 당우형은 물 위에서 오래 달리지 못했다. 유신은 단전이 여러 개여서 내공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지만, 당우형은 중간중간 흐름이 끊긴다. 당우형 뿐이 아니라 남무천도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단전이 단 하나뿐이어서, 쉼 없이 내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 대협, 전 사흘이면 준비가 끝납니다."
"알았소. 바로 일정을 짜도록 하지."
유신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전영득은, 경지를 더 끌어올리지 못했다. 전영득이 냉철한 계산으로 얻어낸 결론은 틀리지 않아, 무위나 경지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같은 경지와 무위여도 실전에서 현저히 다른 위력을 보일 수 있다. 유신 덕분에 전영득은 실전에서 예전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데려갈 거요?"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습니다."
"소림은 괜찮지 않소?"
"아이를 꼬드겨 머리를 밀 것 같아 걱정입니다."
"소림은 인연을 중요시하오. 중이 될 인연이 아니라면 강요하지는 않을 것 같소."
"소림이 용박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용 소협은 소림의 손에서 용박을 빼앗을 자신이 있소?"
전영득의 질문에 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후면 될 것 같습니다."
### 快劍神龍 龍遊迅 ###
열 번째 단전은 만들어지자마자 완성되었다. 열 개의 단전은 자신들을 채워달라고 아우성쳤고, 유신은 온몸의 혈도를 활짝 열고 기운을 받아들였다. 알아서 음양으로 바뀔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열 개의 단전은 똑같은 성질을 띠었다.
'믿고 맡기자.'
알아서 운기 하는 죽절공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관조하기만 했다. 열 개의 단전은 똑같은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 혈도들을 경유한 후 다시 돌아오게 했다. 처음에는 어느 단전에서 나간 기운이 어느 단전으로 돌아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단전의 기운이 나갔다 저 단전으로 들어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점점 시간이 흐르며 기운이 뒤죽박죽 섞였다. 부단한 운기를 통해 작은 차이마저 없애버린 기운들은, 똑같은 성질만 간직하게 되었다.
'중단전?'
중단전은 심전(心田)이라고도 불린다. 글을 배우는 선비들이 주로 단련하는 단전이 심전이다. 하단전과 달리 그 효용이 확실치 않아 무인들은 굳이 단련하려고 하지 않는 단전이고, 단련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열 개의 단전에서 시작하여 열 개의 단전에서 끝나는 무질서한 흐름이, 하나의 질서를 갖췄다. 매번 경유하는 혈도가 다르고 운기 속도도 달랐는데, 모든 운기 경로에 중단전이 포함되었다.
'단풍의 중심이었구나.'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운기가 단순해졌다. 첫 단전에서 내공이 중단전으로 향했다. 중 단전은 그 내공을 두 번째 단전으로 보냈다. 두 번째 단전은 내공을 세 번째 단전으로 보내고, 세 번째 단전은 다시 중단전으로 보냈다.
'중단전에 내공을 주는 단전은 음, 내공을 받는 단전은 양. 중단전을 중심으로 단풍을 그리는 것이었구나.'
열 번째 단전이 받은 내공을 첫 번째 단전에 주자, 열한 개의 단전이 하나로 이어졌다. 운기를 함에 따라 중단전이 점점 차오르며, 하나의 단전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가는 내공과 들어오는 내공의 양이 점점 균일해지며, 전체적인 양이 변하지 않는데 늘 운기가 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단풍이 완성된 줄 알고 운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신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자 살짝 놀랐다. 첫 단전에서 한 가닥 약한 기운이 두 번째 단전으로 향했다. 두 번째 단전은 그 기운을 중단전으로 보내고, 중단전은 세 번째 단전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음이었던 단전이 양이 되고 양이었던 단전이 음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흐름도 그대로여서, 모든 단전이 음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했다.
두 흐름이 같아지고 중단전이 꽉 차자, 음양의 구분이 사라지고 열한 개의 단전이 하나같이 느껴졌다. 모든 단전의 기운이 거의 변화가 없지만, 운기는 시종일관 멈추지 않았다. 내공을 살짝 뽑아내니, 단전 속의 운기가 거기에 맞춰 상응한 변화가 보였다.
"소형제. 매우 흉해졌네."
허전한 느낌에 둘러보니 옷은 물론, 머리카락과 눈썹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미리 준비해둔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은 유신은, 보따리를 싸고 기다리는 일행에게 질문했다.
"뭐 이리 급하십니까?"
"빨리 광서로 뛰어가야 하네. 자네 이레 동안 불길에 휩싸여 있었네."
- 작가의말
원래, 은신처를 찾아다니고 암살하는 장면으로 몇 편 때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글이 늘어질 것 같더군요. 예전부터 글을 읽을 때,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을 상세하게 쓰면 짜증 나더군요. 그리고 이미 보여주었던 패턴을 장소와 인물만 바꿔서 다시 보여주는 행태를, 저는 비난합니다. 그래서 글을 길게 쓰지 못하나 봅니다.
그래도 동일 패턴을 반복하며 글을 늘리는 것보다, 깔끔하게 완결 내고 새로운 글로 찾아뵙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요즘 중2병 글을 구상하고 있는데, 구상만 하고 있음에도 무척 즐겁네요.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중2병 글을 싫어했던 게 아니고, 개연성 없는 작위적이고 뻔한 글을 싫어했던 거였습니다. 누구의 마음에나 중2병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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