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수묵화(1)
33화.
회장은 오야카타에게 볼일이 있다며 말하고는 조용히 파티장을 빠져 나갔다. 센슈라쿠 연례 행사인 가라오케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 날을 위해 노래 연습을 했었다. 선배들이 차례대로 노래를 부른후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上野発の夜行列車 おりた時から
~~~~ああ~~津軽海峡 冬景色."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라는 가수의 츠가루카이쿄(津軽海峡) 후유케시키(冬景色)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래다. 한곡을 끝내자 앵콜이 나왔다. 아직 다른 노래는 모른다.
전번에 부른 마츠자키 시게루(松崎しげる)상의 사랑의 메모리(愛のメモリ-)라는 노래를 다시 불렀다. 마지막 후렴구인 독특한 '아아~~'가 고음(高音)으로 뿜어져 나와 파티장을 압권할 정도였다.
파티가 무사히 끝나고 나루토 베야로 돌아 갈때였다. 오야카타가 미우리 회장이 갑자기 파티장을 빠져 나간게 궁금한듯했다. 자신과 이야기를 한후에 급한 볼일이 있다며 나갔기 때문이었다.
"회장님은 안색이 좋지 않아서 병원으로 간거에요."
"병원이라고?"
"예. 큰 병이 아니길 바랄수 밖에요."
***
다음날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스모 교습소로 향했다. 나투로 베야에서의 아침 훈련보다 가벼운 훈련을 소화한후 교양 교육을 받을때였다. 서예 수업 시간이었다. 심(心), 기(気), 체(体)라는 한자를 붓으로 쓰라고 했다. 붓글씨라면 자신 있었다.
이곳과는 달리 중원에서는 붓으로 한자를 쓰기 때문이다. 어려울것도 없이 순식간에 세 글자가 순백의 한지위에 수놓아졌다. 시간이 남아 돌았다. 다른 동기들은 비뚤비뚤하게 천천히 쓰고 있었다. 길쭉한 한지 한장을 다시 펼쳤다.
남아 도는 시간에 오래간만에 수묵화를 그려 볼 생각이다. 작년에 중국으로 가서 본 장가계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안개속에 우뚝 솓은 먼곳의 석주(石柱) 한개와 앞부분 오른쪽에 절반만이 보이는 석주가 안개와 아우러져 뭐라고 형용할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려 본 수묵화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우와~!"
붓을 내려 놓자 주변에 동기들과 교관들이 몰려 있었다. 무아무중(無我無中)으로 수묵화에 정신을 집중한 탓으로 주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온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자네 이름은 뭔가?"
"나루토류라고 합니다."
"수묵화는 그려 본적이 있는가?"
"아니요. 처음입니다."
붓글씨를 지도하던 서예가는 수묵화를 보고는 놀라워했다. 일부러 처음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것도 자네가 쓴것인가?"
"그렇습니다."
"자네, 스모를 그만 두고 이 길로 나가게."
심(心), 기(気), 체(体)를 쓴 것을 보고는 서예가가 되라고 했다. 취미로는 적당하지만 직업으로는 무리다. 많은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교습소 교육을 끝내고 돌아 가는 길에 문방구점에 들러 붓과 먹, 벼루, 한지, 그리고 조각도까지 구입했다.
스윽슥!
"응? 왠일이래? 연습 벌레가 오늘은 연습 않하냐?"
"고바야시상! 정신 집중이 필요한 일입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먹(墨)을 가는데도 정신 집중이 필요한거냐?"
"물론이에요. 정성 들여 간 먹을 사용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거든요. 심심하면 낙관을 만들수 있는 활석(滑石)이나 구해줘요."
낙관까지 직접 만들어 그린 그림에 찍어 놓을 생각이다. 낙관을 만들기에 적당한 돌은 활석이다. 나무로 만들려면 흑단이나 대추 나무, 미송을 사용해야 한다.
"활석? 처음 들어 보는 돌이다. 그런걸 어디서 구하는데?"
"제가 모르니까 알아서 구해 오세요. 활석을 구하지 못하겠다면 5센티 정도 굵기의 이런 나무들을 구해 주십시요."
나무 이름을 알려 주며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에게 처음하는 부탁이다.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던 고바야시상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혼마상과 사토상은 오카미상을 따라 장을 보러 간 상태다. 토라키오상은 오야카타와 함께 불가리아인 모임에 참석한다며 외출했다고 들었다.
먹을 간 후 어떤 그림을 그릴지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에 젖어 들었다. 학, 거북, 호랑이, 용등 동물을 그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색을 입혀 주어야 박진감과 생생한 생동감을 표현할수 있다. 지금은 물감을 준비하지 않아 무리였다. 간단하고 쉽게 먹물로 그리는 것은 주로 산과 강이다.
스으윽!
조용한 큰방안에서 붓을 놀리는 소리만이 들려 오고 있었다. 생동감이 넘치게끔 내공까지 운기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을 집중했다.
"후우!"
피곤했다. 마두(魔頭) 놈과 싸우는게 쉬울 정도였다. 기력 소모가 심한 탓으로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 왔다. 정신 수양하기에는 적당한 취미였다. 한폭의 수묵화가 겨우 완성되었다.
계곡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당장에라도 쏟아져 나올듯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그림을 살펴 보고 있을때 오카미상들이 돌아 온듯 아래층이 시끌거렸다. 잠시후 쿵쾅거리며 선배들이 이층으로 올라 오고 있었다. 벼루와 붓을 정리하고 있을때 방안으로 혼마상과 사토상이 들어 왔다.
"와아!! 아메미야! 네가 그린거냐?"
바닥에 펼쳐져 있는 수묵화를 본 사토상이 감탄하고 있었다. 그림에 아무런 조예도 없는 사람이 볼때도 절로 빠져 들것이 분명했다. 중원에 있을때도 서화에는 일가견이 있어 가끔씩 그려 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었다.
"너어, 대체 못하는게 뭐냐?"
"아메미야! 이 그림 어떻게 할꺼냐? 나 주면 않돼?"
혼마상이 자신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사토상은 그림을 원했지만 이번엔 거절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그린 그림이다. 오야카타에게 선물 할 생각이다.
"그럼 나중에 하나 그려줘."
"어떤것을 그려 줄까요?"
"음, 후지산(富士山)이 좋을것 같다."
당장 사토상의 스마트 폰을 빌려 아마존에서 검색했다. 물감과 여러 종류의 붓이 필요해서였다. 이층으로 누군가가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로 볼때 고바야시상이다.
"아메미야! 구해 왔다."
"감사합니다."
"소나무야."
미송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굵직한 소나무 가지를 내밀었다. 궁금해 하는 다른 선배들에게 낙관을 만들기 위한 나무라고 설명해 주어야 했다.
"와아! 끝내준다. 나 줄꺼지?"
"아니요. 오야카타에게 선물할건데요."
"쳇. 그럼 하나 그려줘."
"어떤것을 그려 줄까요?"
곰곰히 생각하던 고바야시상은 만발하는 벚꽃을 그려 달라고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소재였다. 시간이 걸린다고 말해 주며 일년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자 천천히 그려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혼마상도 그림을 원했다.
특이하게도 미인도 한폭을 그려 달라고 했다. 바닥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신문지를 깔았다. 조각도를 들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 작은 사각형으로 만든후 낙관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한번씩 손을 놀릴때마다 작은 소나무가 쓱쓱 잘려 나가자 지켜 보던 선배들의 놀라워했다. 그럴듯한 모양이 완성되자 자신의 이름을 새겨야 했다.
보통 호(號)를 새기는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크레이지라는 별명을 새길순 없어 자신의 시코나(四股名)인 나루토류(鳴戸龍)를 각인하기로 했다. 나루토류라는 한자중에 나루토(鳴戸)는 히라가나로 쓰고 류(龍)는 그대로 한자로 새길 생각이다.
'なると龍'라는 글을 사각형의 낙관 오른쪽에 먼저 세로로 나루(なる)를 각인한후 오른쪽 위에 토(と)를 새기고 아래쪽에 조금 크게 류(龍)를 각인했다. 작은 글씨를 각인하는 일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선배들은 숨을 죽이며 각인하는 장면을 지켜 보고 있었다.
"인주(印朱) 좀 가져다 주십시요."
꾹.
혼마상이 가져 온 인주를 묻히고 신문에 찍어 봤다. 그럭저럭 맘에 들었다. 이번엔 완성된 수묵화 왼쪽 아래쪽에 인장을 찍었다.
"저녁 준비는 하지 않고 뭐 하는거니?"
오카미상이 들어 왔다. 저녁 시간이 되었음에도 모두 방안에 틀어 박혀 있는 탓으로 무슨 일인지 궁금한듯 이층으로 올라 온것이다. 모두들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오카미상! 아메미야가 그린 그림을 보십시요."
"그림?"
수묵화를 본 오카미상은 눈이 동그래졌다. 오야카타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하자 고마워했다. 그날 밤 귀가한 오야카타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멋지구나. 고맙다. 표구를 해서 방안에 걸어 놓겠다."
"아메미야. 나도 하나 그려줘."
토라키오상이 부러워 하며 졸라 대었다. 토라키오(虎来欧)상에게는 호랑이 그림을 그려 주기로 했다. 이름에 호(虎)가 들어 있어 토라키오상에게 어울리는 그림일것이다. 취미로 그리기 시작한 수묵화는 매일 그리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훈련을 마친후 오전에 교습소를 다녀 오면 저녁때까지 그림을 그린후 밤 시간대에 훈련을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물감과 붓도 도착한 상태로 색을 입혀 동양화를 그리고 있을때 오야카타가 미우리 회장 소식을 알려 왔다.
"간암으로 입원했다고 한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 수술로 완치할수 있다더구나."
"다행이군요."
미우라 회장은 많은 식재료를 보내 오고 있었다. 식재료가 너무 많아 보관할 냉동고와 냉장고를 새로 구입하기까지 했다. 병문안을 가야 했다. 선물로는 역시 요즘 푹 빠져 있는 그림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또 그림을 그릴려는거냐?"
"예. 미우라 회장님 병문안을 갈때 가져갈 그림이 필요해서요. 선배님들 지금부터 말 걸지 마십시요."
저녁 식사후 일층 마루에 도구들을 펼쳐 놓았다. 선배들은 개인 훈련을 하거나 아니면 이층 방에서 휴식을 취할것이다. 어떤 그림이 좋을지는 이미 생각해 놓은 상태다. 탄쵸(タンチョウ)라고 불리우는 단정학(丹頂鶴)이다. 장수(長壽)의 상징인 단정학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운다.
일본에서는 주로 탄쵸(タンチョウ)라고 불리우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선학(仙鶴)이나 선금(仙禽), 노금(露禽), 태금(胎禽), 두루미라고도 불리운다. 꼬리부분과 목덜미에서 부리 부분까지가 검고 흰머리위에 붉은 모양이 있는게 특색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들판에서 두마리의 단정학이 목을 길게 빼어 들고 입을 벌려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생각해 두었다.
***
"...후우~!!"
가느다란 숨을 길게 뱉어냈다. 밤새도록 단정학 그림에 매달린 상태로 엄청나게 지쳐 버렸다. 새벽 시간대가 되어 겨우 그림을 완성한후 심법을 운공해 지친 몸을 위로했다. 찬바람을 맞으러 스미다 공원으로 조깅을 하고 돌아 오자 오야카타와 선배들은 물론 밀착 촬영하는 아오키상까지 찾아와 마루를 빙 두른채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오키상은 매일 찾아 오는건 아니다. 바쇼가 가까워지면 찾아와 촬영을 하는 식이다.
"모두 뭐하는 겁니까?"
"어? 왔냐? 이거 네가 그린 거라며?"
"예."
"정말 네가 그린거야? 엄청난 그림이다. 네가 그림에도 이런 재능을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그림 내게 선물해라."
아오키상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한후 단정학 그림을 달라고 졸라댔다. 심혈을 기울여 밤새도록 정신을 집중하고 고생해서 그린 그림이다. 이미 주인은 정해져 있어 아오키상에게는 미안하지만 줄순 없었다.
"그렇냐? 그럼 내게도 하나 그려줘."
"어떤 것으로요?"
"이것과 비슷한 것이면 돼."
단정학이 마음에 드는지 망설임도 없이 즉답이 돌아 왔다. 시간이 있을때 그려 준다고 말한뒤 교습소에 갈 준비를 했다. 교습소는 오늘만 가면 당분간 가지 않아도 된다. 지방에 있는 스모베야에 소속된 신입 제자들이 5월 바쇼 뒷정리를 끝내고 돌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7월 바쇼는 나고야에서 개최되고 9월 바쇼는 료고쿠 고쿠기칸(両国 国技館)에서 열린다. 9월 바쇼가 되면 다시 교습소를 재개할것이다. 다른 동기들은 어떤지 몰라도 교습소는 제법 재미있었다. 실기 훈련은 별로지만 교양 교육은 배울게 많았다.
"혼자 갈꺼냐?"
"예."
교습소를 마치고 돌아 와 오야카타에게 미우라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물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고 하자 오야카타가 스마트 폰으로 전철 노선을 검색해 알려 주었다. 단정학 그림을 둥근 원통안에 넣고 보자기로 감싼후 혹시 몰라 구입해 놓은 침을 넣은 침통까지 품속에 넣고는 다녀 온다며 밖으로 나갔다.
겨울철엔 기모노(着物)를 입지만 지금은 유카타(浴衣)를 입은 모습으로 배가 불룩하게 튀어 나온 스타일이 아니지만 올백으로 넘긴 머리 스타일과 게타(下駄)를 신은 모습은 전형적인 스모토리 스타일이다. 머리 스타일과 입고 있는 유카타로 세키토리는 아니라고 생각할것이다.
또각거리며 걸어 가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거렸다. 특히 전철역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까지 찍어 대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전철은 신기한 이동 수단이다.
이 세계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지만 전철을 탈때마다 거대한 철덩어리가 고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몇번의 전철을 갈아 타고 제법 시간이 걸려 겨우 병원에 도착할수 있었다. 여전히 병원의 소독약 냄새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우라 회장은 제법 큰 개인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응?"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던 미우라 회장은 누가 들어 왔는지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말을 걸자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놀라워했다.
- 작가의말
일본에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철 노선은 처음 타는 사람들은 많이 헷갈릴것입니다. 안국어로도 어느 역인지 쓰여 있어 큰불편은 없지만 노선도를 보며 어느 방향에서 타야 할지 구분하는게 처음에는 힘들겁니다. 모르면 용기를 내어 물어 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줄겁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많았습니다.
다음화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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