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거래를 제안하다
10화.
일찍 철이 든것인지 소학교 5학년생인 아츠야가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벌써부터 장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츠야는 고아는 아니다. 엄마와 둘이 사는 모자가정(母子家庭)이었지만 아츠야 엄마가 재혼을 한탓으로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 이곳으로 온것이다.
아츠야 엄마도 아츠야를 싫어 하는지 이곳으로는 한번도 찾아 오지도 않았었다. 아마 엄마도 새아버지와 같이 학대에 참가한것 같아지만 아츠야는 새아버지만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했었다.
엄마는 보고 싶지만 새아버지가 두려워 만나러 갈수도 없다며 울먹인적도 있었다. 아츠야에게 공부를 배우면서 친해진 덕으로 알게 된 내용이다. 장래를 생각하면 알바만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싶진 않았다. 번듯한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 싶은건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일본인들 거의 모두가 마이 홈을 마련하는게 꿈이다.
"넌 뭘 하고 싶은데?"
"...대학에 가고 싶지만 무리겠지..."
대학을 졸업만 하면 졸업생들은 거의 모두 회사에 취직할수 있다. 일본의 대학 졸업 예정자들중 무려 98%에 해당되는 학생들이 졸업후 취직 회사가 내정되어 있을 정도로 대학만 나온다면 취직 걱정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회사에 취직한 신입 사원들중 2~3년내에 30% 정도의 인원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이직을 한다고도 했다. 아츠야라면 좋은 대학에 들어 갈수 있을 것이다. 아츠야는 똑똑하다.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키며 소학생치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묻는 말엔 즉시 답이 튀어 나올 정도였었다.
'나도 대학에나 갈까?'
돈이 있다면 대학에 들어 가고 싶었다. 송가장은 의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집안인 덕으로 의술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지금도 침만 있다면 침을 놓을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선 하리시(はり師.침술의)를 양성하는 전문 대학에 진학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침을 놓을수 있다.
아무런 자격도 없이 침을 놓는다면 불법 의료 행위가 된다. 중원이었다면 침술 자격증같은건 필요도 없이 아픈 사람에겐 누구든지 침을 놓을수있다. 의술을 모르는 자는 돌팔이라고 매질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침을 놓고 약을 제조해 주는 의원도 있을 정도다.
대학에 들어 갈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들어 가도 되는 세상이지만 그건 모두 학자금을 빙자한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빚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갚아야 한다.
대학 졸업생들중에 장학금 명목으로 빚진 빚을 갚기 위해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 들어 간다고 해도 문제다. 살집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돈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든 세상이다.
중원에서는 무인이라면 무가(武家)나 상가(商家)에 식객으로 들어 가면 풍족한 생활을 할수 있다. 무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생활하지만 이곳은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중원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할뿐 풍족한 생활은 바랄수도 없다. 어떤 특수한 작물을 재배하면 되지만 농사를 지을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방법이 없다.
"아츠야! 넌 공부를 열심히 해. 내가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 줄께."
"많은 돈이 필요할텐데?"
"넌 지금 소학교 5년생이야. 대학에 입학하기까진 아직 7년이나 남아 있잖아. 그때까지 내가 돈을 벌어 놓을테니까 공부나 열심히 해."
아츠야를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린 나이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스모밖에 없다. 빠른 출세를 한다면 2년안에 최고 정점인 요코즈나(横綱)로 올라 갈수도 있다.
단전만 만들면 굳이 뚱뚱하게 몸을 키울 필요도 없다. 토할 정도로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엉덩이를 드러낸채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곳은 중원도 아니다. 스모토리는 엉덩이를 드러내 경기를 하는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몇가지 조건만 해결된다면 스모베야(相撲部屋)에 입문(入門)해도 될것 같았다. 아츠야의 머리를 쓰다 듬어 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얼떨결에 어린 아츠야의 머릴 쓰다 듬은 탓으로 아츠야가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
7월말에 접어 들자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내일은 나루토 베야(鳴戸部屋)의 스모토리들이 돌아 오는 날이다. 중국을 다녀 오기 위해 오야카타에게 직접 거래를 해 볼 생각이다. 중학생 신분인 지금으로써는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어딜 가더라도 이곳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많은 자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얻을수 있는 세상이다. 가지고 있던 돈은 여권을 만들기 위해 모두 써 버린 상태다. 설날때 원장 선생님이 준 오토시다마(お年玉.세뱃돈)를 모아 놓은 돈으로 여권을 만든 탓으로 수중엔 땡전 한푼도 없는 상황이다.
신야 녀석은 항상 방안에 틀어 박혀 있는 탓으로 돈 쓸곳이 없어 모아 놓은게 천만다행이다. 성인이 아닌 탓으로 5년짜리 여권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성인이었다면 10년짜리 여권을 만들었겠지만 10년짜리 여권 신청에 필요한 자금도 조금 부족했었다. 유효 기간 5년인 여권도 겨우 만들수 있었다. 여권 신청 서류엔 법정 대리인인 원장 선생님의 사인이 필요했었다.
"여권은 왜 만들려는 거니?"
"현대인은 여권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대요."
"......."
변명아닌 변명을 할수 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혼자 여권을 만드는 일은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일이다. 다행히 원장 선생님은 별말없이 사인을 해 주었다. 11000엔의 신청비와 각종 서류를 구비하는데 1200엔이 들어 갔다. 이제 중국으로 갈수 있는 자금만 마련된다면 비행기를 타고 갈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중국으로 갈수 있는 경로와 도착했을때의 이동등을 알아 보고 운동을 하러 갔다.
"후~후~! 합!"
스미다(隅田) 공원에 도착해 사람들이 오지 않는 외곽 구석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을 하나씩 시전했다. 살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 날렵하겐 움직이진 못하지만 그럭저럭 만족하게 움직일수 있었다.
권법(拳法), 각법(脚法), 보법(步法), 검법(劍法)등을 차례대로 시전하자 어느새 저녁 시간대가 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엔 나루토 베야를 찾아갈 생각이다. 늘 하던 대로 한밤중엔 옥상으로 올라가 양월심법을 운공하며 단전을 만들 준비를 했다.
"후~욱! 후~욱!"
이른 아침 일찍 스미다 강변을 달릴때였다. 한여름철인 관계로 선선한 이른 아침에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어?"
스미다 공원에 도착하자 나루토 오야카타가 몸을 풀고 있었다. 자신보다 먼저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늦었구나."
"오야카타가 빨리 온겁니다. 나고야 바쇼(名古屋場所)는 무사히 끝난겁니까?"
"그래. 모두들 그럭저럭 성과를 냈다."
모두가 잘한건 아닌것 같았다. 나루토 베야로 가서 스모토리들에게 물어 보면 자세히 알것이다.
"이제 방학이지?"
"예."
"그럼 매일 아침에 찾아와라. 스모가 어떤 것인지 지켜 보고 들어 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하마."
"저어, 오야카타(親方)! 몇가지 조건만 허락되면 들어 가겠습니다."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다.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오야카타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오야카타의 눈이 커지며 환한 얼굴로 바뀌었다.
"정말이냐?"
"예. 그전에 몇가지 조건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어떤 조건인데?"
"일년 동안 제 마음대로 훈련하게 해 주십시요. 물론 스모의 기본적인 훈련은 모두 할겁니다. 또한 일년 동안은 살을 찌우라고도 하지 마십시요. 일년안에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오야카타의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며칠내로 30만엔이 필요합니다. 스카우트 비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생각하고 있던 조건을 말하자 오야카타는 굳어진채 생각에 잠긴듯했다. 이런 조건을 제시하고 스모 베야에 입문하는 자는 단한명도 없을 것이다. 오야카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스모 베야를 찾아가 조건을 말해 볼 생각이다.
스모 베야엔 제자가 한명씩 늘어 날때마다 스모 협회에서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수 있다. 일년에 여섯번의 바쇼(場所)중 한번의 바쇼마다 스모토리 한명당 스모 베야 유지비 명목으로 11만 5천엔의 지원금과 마쿠시타(幕下) 지위의 스모토리가 있는 스모 베야는 매달 스모토리 양성비 명목으로 한명당 7만엔이 지급된다. 그 점을 감안하면 30만원 정도는 충분히 내 줄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되었다.
"음, 일년 동안 제멋대로 하겠다고?"
"제멋대로는 아닙니다. 모든건 성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늘 올꺼지? 그때 다시 이야기 하자."
"예. 그럼 전 운동을 하겠습니다."
오야카타는 꼼꼼한 성격같았다. 곧바로 허락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둔것이다. 공원에서는 늘 하던 운동을 했다. 마보를 시작으로 송가 태극권까지 펼쳤다. 오야카타는 수련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런 수련을 매일 하고 있었던거냐?"
"예."
"그런데 그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은 뭐지?"
송가 태극권을 시연한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마치 춤을 추는듯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몸을 부드럽게 하는 훈련입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하지만 그런 훈련을 한다고 해도 스모토리들의 힘을 당하지 못할텐데?"
"오야카타! 절 공격해 보십시요. 어떤 공격이든 상관없습니다."
"뭐? 어린 널 공격하라고?"
나루토 오야카타의 신장은 2미터가 넘는다. 참고로 나루토 오야카타는 은퇴를 한지 3년이 지난 상태지만 배근력(背筋力)은 281kg. 오른손 악력(握力)은 120kg이라고 나루토 베야의 오쇼잔( 欧翔山)이 자랑했었다.
2미터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장난이 아닐것이지만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 아무리 신력(神力)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무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릴수 없다. 내공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마찮가지다.
"공격을 해 보시면 이해가 될겁니다. 마음 놓고 공격해도 됩니다. 오십시요."
스모 경기처럼 오야카타와 마주 섰다. 바닥에 손을 댄 상태는 아니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정말 공격해도 되는거야? 후회할텐데?"
"공격해 보시면 제가 일년동안 마음대로 수련할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이해할수 있을 겁니다."
"음, 좋아. 조심하거라."
휘익.
손바닥을 활짝 벌린 오야카타의 오른 손바닥이 가슴을 향해 왔다. 일부러 천천히 뻗어 오는것 같았다. 밀쳐 버릴듯 접근하는 오른손을 향해 마주 손을 뻗었다. 아메미야의 손바닥보다 두배 정도나 더 큰 손바닥과 마주 칠려고 했을때 아메미야의 손바닥이 급히 오므려지며 기묘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덥석.
휘익.
금나수(擒拏手)의 수법으로 오야카타의 오른 손목을 잡아 왼쪽으로 잡아 당기며 오야카타의 오른쪽으로 한발을 내디는것과 동시에 오야카타의 허리를 슬쩍 밀었다. 큰덩치인 오야카타인 탓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 또한 제대로 힘을 사용해 밀어 버린것도 아니었다. 금나수는 상대방의 손발을 잡아 꺾거나 낚아 채는 수법이다.
"어, 어떻게한거냐?"
"뭘요?"
"다시 해 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야카타가 재대결을 요구했다. 뭐가 뭔지도 모른채 얼떨결에 당한 탓으로 조금 놀란 눈치였다.
"오십시요."
"조심하거라. 이번엔 진짜로 간다."
휘익.
오야카타는 양 손바닥을 활짝 벌린채 가슴을 밀쳐 낼려고 빠르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아메미야는 오야카타처럼 양 손바닥을 벌린채 마주쳐 갔다. 두 손바닥이 마주칠 찰나 아메미야의 손바닥이 접혀 지며 오야카타의 양 손목을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쳐 올리며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가슴에 손바닥을 슬쩍 대면서 보법을 밟으며 빙그르 오야카타의 뒤쪽으로 순식간에 돌아 갔다. 등뒤에서 오야카타의 등을 살짝 밀었다. 스모토리는 등을 잡히면 아무것도 할수 없이 도효(土俵) 밖으로 밀려 나간다.
"음, 다시 해 보자."
화가 난듯한 오야카타는 얼굴이 조금 붉어진채였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같았다. 은퇴를 한 상태였지만 아직도 승부욕이 넘치고 있었다.
"오십시요."
다시 마주 보고 섰다. 잠시 눈을 노려 본 오야카타가 이번엔 작심을 했는지 빠르게 왼 손바닥을 펼쳐 뻗어왔다. 이번에도 마주 왼손을 뻗자 오야카타는 오른손을 번갈아 뻗어 오고 있었다.
덥석.
빙글.
오른손이 채 뻗어 오기도 전에 왼손을 몸쪽으로 끌어 당기는 오야카타의 손목을 잡아 오른쪽으로 밀며 오야카타의 왼쪽으로 빙글 돌아 뒤를 잡고는 등에 손바닥을 대었다.
"이익! 어떻게 그럴수 있는거냐?"
"제가 몸집이 크도 몸놀림만큼은 엄청 빠르거든요."
보법을 시전해 등뒤로 돌아 간것이지만 무공을 모르는 오야카타는 자신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진것으로 착각했을것이다. 내공을 보유하고 있다면 더욱 빠르게 순식간에 등뒤로 돌아가 버렸을것이다.
"이번에는 스모 경기처럼 바닥에 양손을 대고 해 보자.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지?"
"예."
- 작가의말
일본도 여름 방학은 7월 말에 시작합니다.
찾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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