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후손을 만나다
140화.
드디어 찾았다. 이곳에서 자세하게 설명할순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알았네. 임자는 뒷일을 끝내고 와."
괭이를 들고 앞서 가는 송강을 따라 갔다. 자신의 후손을 만났다. 아직 후손이라고 확신할순 없지만 이렇게 가슴이 북받치는건 중원에서 아들이 태어 났을때 다음으로 두번째였다. 처음 방문했을때의 집으로 들어 갔다.
멍멍멍멍!!!
또다시 대문밖으로 나온 개가 짖어 대기 시작했다. 살기를 개에게 뿜어내자 꽁지를 말고 낑낑거리며 바닥에 납짝 엎드리는 녀석이었다.
"자네는 누군데 선친을 알고 있는건가?"
"그 전에 족보가 있습니까?"
"족보는 왜?"
"있으면 가져 오십시요."
자신이 누군지 말할 생각이다. 족보가 있다면 누군지 말해도 믿을것이다. 자신이 시공간을 이동해 다른 사람 몸에 빙의했다고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상대해 주지도 않을것이지만 족보에 번듯이 이름이 적혀 있으면 믿지 않을수가 없을 것이다.
"음, 잠시 기다리게."
집안으로 들어간 송강은 잠시후 허름한 책자 한권을 들고 나왔다. 표지는 낡아 글씨도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빛바랜 책자였다.
"그 족보에 500년전 송진(宋陳)이라는 분이 있는지 살펴 보십시요."
"음, 미안하지만 난 글을 읽지 못한다네."
"뭐라고?"
저도 모르게 반말과 큰소리가 새어 나왔다. 설마 글을 읽을줄 모를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을 물끄르미 바라 보는 송강에게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 보았다.
"왕씨라면 읽을줄 아네."
"그럼 그 족보는 대대로 내려 오는 것이죠?"
"그렇다네. 선친이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었네."
"좋아. 그럼 내가 누군지 말해 주마. 난 송 가문의 10대손인 송청이다. 아마 믿기지 않겠지만 명나라 시대에 살고 있었다. 내가 죽은후 깨어 난곳은 일본인의 몸속이었다. 어떻게 된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기억이 고스란히 남은채 깨어 난거다. 예전 송가장이 있던 텐진에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 빌딩이 자리하고 있었어.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걸 겨우 알아내 찾아 온거다."
"....."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자신을 바라 보는 송강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할것이다. 갑자기 찾아와 자신이 먼조상이라는 말을 믿는 자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족보를 가져 오라고 한것이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족보를 살펴 보면 알수 있어."
할아버님과 아버님, 아들의 이름까지 말해 주며 몇대손이라는 것도 말해 주었다. 송가장은 예전에 의원 집안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자 송강이 놀란 표정이었다.
"마, 맞습니다. 제가 어릴적엔 송가장은 큰장원을 의원으로 사용했었습니다. 저, 정말 조상님이신지요?"
"그래. 족보를 살펴 보면 알수 있어. 왕씨라는 사람에게로 가자."
다시 밭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 가야 했다. 무슨 일로 다시 돌아 왔는지 의아해 하며 일손을 멈춘 이들이었다.
"왕씨, 글 좀 읽어 주게."
키가 작은 노인에게로 다가 간 송강이 족보를 내밀었다. 손에 묻은 흙을 털고는 족보를 받아든 왕씨라는 노인에게 8대손인 송진을 찾아 보라고 했다. 갑작스런 일에 왕 노인은 의아해 하면서도 족보를 넘기기 시작했다.
팔락팔락.
족보를 넘기며 8대손인 송진을 찾고 있던 왕 노인이 한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손가락으로 이름을 확인하며 찾았다고 했다.
"이곳에 있네."
"그럼 9대손인 송정(宋丁)과 10대손인 송청(宋靑), 11대손인 송명(宋明)도 있는지 살펴 봐 주십시요."
"이곳에 모두 있네만?"
손가락으로 이름을 짚으며 송강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송강은 까막눈인 탓으로 이름을 짚어 주어도 알수 없을 것이지만 일단 확인이 되었다. 의아해 하는 이들을 남겨 둔채 다시 집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 송강이 믿기지 않는지 몇번이나 물어 왔다.
"저, 정말 선조시란 말입니까?"
"그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족보속의 이름을 알고 있겠어?"
"그, 그럼 송가 태극권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이다. 송가 태극권은 물론 다른 가전 무공이나 의술도 모두 알고 있어."
다행히 송강은 송가 태극권을 알고 있는것 같았다. 가문 비전 무공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의술도 알고 있다고요?"
"그래. 그런데 송가장은 어떻게 된거냐?"
"어릴적 일인 탓으로 잘은 모르지만 문화대혁명때 쫒겨 났다고 합니다. 홍위병에게 쫒겨 텐진과는 먼 이곳에 자리잡게 된것입니다."
송강의 설명으로는 조부는 텐진에서 죽고 아버지는 이곳으로 오면서 죽었다고 했다. 그때가 송강의 나이는 불과 6살로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였다.
"그런데 가족은 둘뿐이냐?"
"아닙니다. 아들 녀석이 있지만...지금은 손녀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송강 가족은 모두 여섯명이었다. 송강 부부와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와 손녀다. 아들 부부는 8년전에 객지벌이를 나선채 돌아 오지 않았다. 중국의 대부분 농촌 사람들이 그렇듯 가을 추수가 끝나면 노인과 아이들만 남겨 둔채 도시로 돈을 벌러 간다.
8년전 사건이 벌어졌다. 송강의 손자 손녀는 모두 세명이었다. 아들 부부는 객지로 돈벌이를 나간 상태였다. 노부부 둘이 손자, 손녀들을 돌보고 있을때 사고가 발생했다. 2살짜리 손자 녀석이 앞쪽 저수지에 빠져 익사한것이다. 아들인 송복(宋福)은 자신의 아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며 부모를 원망하며 부모와의 연을 끊고는 고향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또한 아들 부부는 객지에서 이혼까지 했다. 그때부터 노부부가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었다. 손자 녀석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러 간다며 고향을 떠난 상태로 지금 이 집에는 송강 부부와 초등학교 6학년인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손녀는 지금 학교에 간 상태였다.
"송가 태극권을 펼쳐 봐 주실수 있습니까?"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송가 태극권을 시전해 보였다. 송가 태극권 시범이 끝나자 송강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 정말이시군요. 제가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틀림없습니다."
송강은 어릴적에 송가 태극권을 배웠다. 아들 녀석은 시대가 변했다며 무공은 배울려고 하지 않아 지금은 송강만 알고 있을 뿐이다. 송가 태극권외엔 다른 무공이나 의술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어 버린 탓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내가 네 선조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먼 친척이라고 소개해라."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끔 말도 편하게 해."
"그럴순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
송강과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선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이방인 신세로 이곳에 정착해 갖은 고생을 하며 겨우 연명할수 있었다고 했다.
멍멍멍!!
다른 집 개들이 짖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 오는 사람들을 반겨 주는 소리였다. 송강의 부인인 왕순(王純)도 마당으로 들어 서고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먼 후손뻘이다. 자신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임자. 인사해. 먼 친척인 송청이라는 분이야."
"친척이라고요?"
"그래."
"친척은 없다고 했잖아요?"
"없긴 왜 없어. 이렇게 버젓히 찾아 왔잖아."
버럭 화를 내는 송강이었다. 친척이 있다고 해도 어릴적에 이곳으로 피난해 온 탓으로 친척들 이름은 물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것이다.
꾸벅.
"송청이라고 합니다."
"예. 식사를 준비할테니까 드시고 가세요."
"닭을 잡아."
"알겠어요."
손님이 방문하면 성대하게 대접하는게 오랜 풍습이다. 시대는 변했다. 집안 사정도 넉넉해 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닭까지 잡을 필요는 없었다. 닭을 잡을려고 하는 부인을 말렸다. 그때 한 여자 아이가 가방을 둘러 맨채 마당으로 들어 서고 있었다.
"예(藝)야, 인사하거라. 송청이라는 친척분이시다."
꾸벅.
무뚝뚝하게 자신을 한번 바라 본 송예(宋藝)라는 아이는 머리를 한번 숙인채 집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무표정한 표정의 아이였다. 그런 송예에게 송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하십..하게.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란 아이여서 항상 저런식이라네."
심각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객지에서 돌아 오지 않아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알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아이였다. 저대로 성장한다면 사회 생활에 큰지장을 초래할것이다.
안에서 책과 노트를 들고 나온 송예는 의자위에 책과 노트를 펼치고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켜 보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듯했다. 한여름철인 탓으로 무더운 날씨다.
이곳 동안현은 여름철엔 30도이상으로 올라 가지만 겨울철엔 영하로는 잘 내려 가지 않는 건조 기후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아 푹푹 찌는 날씨로 집안보다는 집밖 그늘 아래가 조금은 나을것이다.
어두운 집안 부엌에서는 송예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후끈한 열기가 집안에서 밖으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가스를 사용할수 없는지 화덕에 불을 피우고 중화 냄비에 무언가를 볶고 있었다. 전기줄은 보이지만 불도 켜지 않은 상태였다.
"전기는 들어 오지 않는겁니까?"
"전기세가 비싸서 일부러 켜지 않는다네."
전기세가 얼마나 하길래 비싸다는지 물어 보고는 당황했다. 고작 몇천원도 되지 않는 전기세를 아낄려고 켜지 않고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집은 모두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에 이곳이 얼마나 가난한 마을인지 알수 있었다.
"전기를 켜세요. 돈은 제가 드릴테니까 걱정말고 켜세요."
"어두워지면 모기들이 몰려 와서 켜지 않는게 좋다네."
그렇게 말하며 송강은 마당 한켠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잠시후 매케한 연기가 퍼져 나갔다. 모기 대책이랬다. 오랜만의 이런 풍경에 옛날 생각을 떠 올리게했다. 중원에서도 한여름철엔 모기때문에 저녁 무렵엔 이런식으로 불을 피운다.
"식사하세요."
집안 입구 옆 탁자에는 야채 볶음과 면 요리 네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집안은 화덕에 피운 불로 인해 후끈한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어두컴컴한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면 요리는 먹을만했다. 해가 완전히 지자 개구리들이 왁자지끌 합창하기 시작했다.
집 앞쪽 아래가 저수지인 탓으로 유독 개구리 울음 소리가 심했지만 그것도 정겹게 느껴졌다. 도심속에서는 좀처럼 개구리 울음 소리는 들을수 없다. 그러고 보니 대낮에는 매미 울음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 근처에는 매미들은 없는것 같았다. 송예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끔씩 자신을 힐끗거렸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면서 누군지 궁금한듯했다.
"어디에 살고 있어요?"
"일본에서 살다가 영국에서 10년정도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왕 부인의 질문에 대답을 들은 송예가 살짝 놀란 눈빛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외국에 살고 있어서였다.
"일은 뭐 해요?"
"축구 선수였다가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결혼은요?"
"맘에 드는 여자가 없어 하지 않았습니다."
왕 부인은 궁금한 점이 많은지 꼬치꼬치 캐 물었다. 송강이나 송예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내일은 저하고 같이 시내로 가죠."
"시내는 왜요?"
"여러 물건을 구입할려고요. 송예, 넌 내일 학교에 가니?"
도리도리.
말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일은 토요일이어서 학교를 쉴것이다. 모두 같이 가기로 했다. 스마트 폰으로 이곳으로 타고 온 택시 운전수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9시에 오라고 했다. 스마트 폰을 본 송예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이 방을 사용하게. 아들 녀석이 사용하던 방이라네."
퀘퀘한 냄새가 베어 있는 방이었다. 전기를 켜지 않아 어두운 탓으로 방안 전체를 알순 없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방은 침대와 옷가지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맨손으로 온 탓으로 갈아 입을 옷도 없어 잠을 자기엔 마땅치가 않았다. 침대에 앉아 내공심법을 운공하며 밤을 지새웠다.
부르릉.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모두 함께 영주시로 향했다. 어떤 물건을 구입하는지는 말하지 않은 상태다.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물어 보지 않아 설명해 주지 않았을뿐이다. 영주시는 중소 도시였다. 큰건물들도 제법 많은 곳으로 시내 양쪽으로는 상강(湘江)이 흐르고 있다. 영주시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걱정하는 송강 부부였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택시가 훨씬 편했다.
"돌아 갈때 전화할테니까 기다려 주실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볼일을 보고 전화하십쇼."
요금을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강우인 탓으로 택시 운전수는 봉을 잡았다고 생각할것이다. 영주시로는 거의 나오지 않아 지리를 잘 모른다는 송강 부부의 말에 가게들이 많은 곳을 물어 찾아 가는 중이다.
"오당촌을 나와 이곳에 살 생각은 없습니까? 이곳이 아니라면 텐진으로 가도 좋습니다."
"이곳에서 살려면 집도 구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들텐데 그럴 돈이..."
"오당촌에 살아야 해."
송강이 부인의 말이 끊나기전에 잘라 버렸다. 단호하게 말하는게 무슨 이유가 있는것 같았다.
"이곳으로 이사하면 아들 녀석이나 손주 녀석이 찾아 올수 없다네."
"그놈은 우릴 버렸어. 8년동안 한번도 찾아 오지 않은 놈이야. 그런 놈을 기다려 뭐해."
"언젠가는 찾아 올게 분명해. 그리고 송복이를 기다려야 할게 아냐?"
"송복이는 옆집에 이사한 주소를 알려 주면 되잖아?"
"편지가 올지도 몰라."
- 작가의말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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