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아오이(2)
104화.
아오이는 그럭저럭 공부는 잘 하는 편이어서 일본에서 몇손가락안에 드는 와세다(早稲田) 대학에 진학할수 있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은 문제없었다. 작년에도 대졸 취업생들의 취직율은 97%를 넘어 서고 있었다. 일본은 전체적으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편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 탓이다. 때문에 졸업후 취직을 한다고 해도 3년 이내의 이직율이 30%를 넘어 선다고 했다. 대학만 졸업한다면 거의 대부분 취직할수 있다는 것이다.
원룸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었다. 수많은 알바중에 시급이 가장 비싼 알바는 파친코 가게에서의 알바다. 오전 시간대와 저녁 시간대의 시급 차이도 많이 나는 파친코 가게 알바는 저녁 7시부터 영업이 끝날때까지 하기로 했다.
가게문은 밤 10시 50분에 닫지만 뒷정리까지 감안해 11시 30분까지 4시간 30분의 알바였었다. 파친코 가게에서의 알바는 힘든 일은 전혀 없었다. 예전에는 무거운 도루바코(ドル箱.쇠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를 손님 뒤쪽에 내려 쌓아 놓는다고 했지만 요즈음은 전자동으로 구슬이 아래쪽으로 흘러가 자동적으로 구슬 개수를 계산하는 덕으로 하는 일이라곤 파친코 기계의 촘촘히 박혀 있는 못 사이에 구슬이 끼여 구슬이 흘러 가지 않는다고 손님이 부르면 달려가 문을 열고 구슬을 치워 주거나 담배나 쥬스 심부름, 재털이 입구 옆에 흘린 재를 치우는 일 정도로 간단한 알바였다.
단, 계속 걸어 다니며 부정을 저지르는 손님이 없는지 감시해야 했기에 그 점만 제외하면 쉬운 알바였다. 알바를 하는 애들도 모두 20세 전후로 자신처럼 대학교를 다니며 알바를 하는 이시다(石田)라는 남학생도 있었다. 알바도 3개월째에 접어 들어 같이 알바하는 알바생들과도 모두 친해진 상태였다.
이시다는 일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이시다가 코우콘(コウコン.미팅)을 하자고 제의했다. 이시다의 친구들인 일본 대학 학생들과 자신의 친구들인 와세다 대학 여학생들과의 코우콘이었다. 같은 학과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전하자 모두 찬성했다.
대학에 진학하면 코우콘은 반드시 해 보고 싶었다며 어떤 남자들이 나오는지 기대하고 있었다. 3대 3의 코오콘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시다 친구 둘은 첫눈에 반할 정도로 잘 생긴 남자들이었다. 자신의 친구 둘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코우콘 자리에 나오기 전에 여러 가지를 조사해 보았었다.
어떤식으로 코우콘이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자신들은 아직 20세가 되지 않아 술을 마실수 없었지만 상대 남학생들은 모두 20세로 술을 마실수 있었다. 맥주를 마시는 그들은 손가락으로 표시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것과 똑 같았다. 남학생 세명이 제각각 건배를 하며 오른손으로 맥주잔을 잡고 있는 손가락의 위치가 달랐다.
새끼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니시우라(西浦)는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우에다 사키(上田咲)짱을 가르키고 있었으며 오오야마(大山)라는 중앙에 앉아 있는 남학생은 집게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게 왼쪽에 앉아 있는 자신을 가르키고 이시다(石田)는 아무런 손가락도 펼치지 않아 중앙에 앉아 있는 에모토 모에(江本萌)짱을 가르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자신을 가르키고 있는 오오야마상은 잘 생긴편이다.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에 1차를 끝내고 2차로 카라오케(カラオケ.노래방)를 간뒤 3차를 가자고 했다. 늦은 시간인 탓으로 집으로 돌아 가고 싶었지만 친구들인 사키짱과 모에짱이 3차를 가자고 했다. 3차는 바(Bar)였다.
작은 바는 손님은 한명도 없었으며 젊은 바텐더가 달랑 한명 있을 뿐이었다. 이시다 일행들은 바텐더를 잘 알고 있는듯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하자 바텐더가 특별한 칵테일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친구들은 이미 술을 몇잔씩이나 한 상태였지만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알코올이 들어 가지 않은 것이라며 핑크빛으로 물든 칵테일을 내밀었다. 모두 함께 건배를 하며 살짝 맛을 보았다.
달착지근한게 정말 알코올이 들어 가지 않은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잠이 쏟아졌다. 학교와 알바로 인해 피로가 누적된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칵테일은 이미 모두 비운 상태다. 친구들도 제각기 칵테일을 주문해 비운 상태로 술에 취한 것인지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
"네 활약이 조금씩 알려 지고 있다."
"그래요?"
나루토 베야에서 선배들과 묵은 이야기를 하고 저녁땐 아오키상을 만났다. 식사를 하면서 카메라 맨임에도 은근히 취재에 열을 올리는 아오키상이었다.
"영국은 편하냐?"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비만 아니라면 살만합니다. 체스터가 있는 곳은 엄청 시골이거든요. 조금만 도심을 벗어 나면 전원 풍경이 펼쳐져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젊은 놈이 전원 풍경은 무슨...그런데 만약 네가 큰활약을 해 일본 대표로 선출된다면 어떻게 할꺼냐?"
"제가 우(Woo)라는 이름으로 뛰고 있잖아요. 정부에서 절 납치할려고 했습니다. 그런 나라의 대표로 뛴다는건 있을수 없습니다."
아오키상에게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많은 것을 도와 준 아오키상이다. 국가 대표가 된다면 한국 국가 대표가 될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아쉽구나. 언제 영국으로 출국하냐?"
"이주일 후요."
"출국하기 전에 전화해."
***
이주일 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한국어는 잘하지 못한다. 고작 몇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어를 배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길버트가 직접 찾아와 아식스사와 협상을 하고 슈즈만 계약했다.
웨어 계약까지 하고 싶어 했지만 구속되는게 싫다며 웨어는 계약하지 않은 것이다. 2년 계약으로 체스터와의 계약이 끝나면 아식사와도 슈즈 계약이 끝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아식스사와 슈즈 계약을 이어 갈 생각이다.
"외할머니, 안녕하세요."
"한국말을 할줄 아는거니?"
택시를 타고 외할머니 집을 찾아 갔다. 간단한 기본적인 회화만 할줄 아는 강우다. 손으로 조금만 할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며 김영아가 알려준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해 일본어로 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 외할머니와 대화했다.
외할머니도 스마트 폰 조작에 능숙했다. 저녁 무렵엔 외사촌이 일찍 집으로 돌아 와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서울 구경까지 같이 했다. 한국의 외할머니집에 있는 일주일동안 서울 곳곳을 돌아 다녔다. 혼자서는 길을 잃는다며 외할머니와 함께 돌아 다녔다.
"자주 연락하거라."
"예."
손으로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는 외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차렸다. 연락은 외사촌의 폰에 영어로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동하고 있을때였다. 비행기안에서는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일이 없어 폰으로 여러 가지를 검색하고 있을때 일본에서 방송한 프로그램이 시선을 끌었다.
스포츠 데이터 분석이라는 것으로 여러 가지 스포츠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배양한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건 축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독일의 진스하임에 있는 소프트 개발 회사인 SAP사(社)에서 개발한 페널티 인사이트(PENALTY INSIGHTS)라는 소프트로 과거 10년간의 7241시합의 페널티 킥 데이터를 분석해 공유하고 있다고 있다.
독일은 월드컵 대회에서 PK전까지 갔을때의 승률은 100%로 이 소프트를 활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예를들어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페널키 킥을 찰때 골키퍼와 눈이 마주쳤을 경우 골문 중앙 골키퍼가 있는 곳으로는 한번도 차지 않았다.
즉, 골키퍼는 눈이 마주쳤을 경우 좌우 어느쪽으로 찬다는것을 파악할수 있다는 것이다. 메시는 지금까지 페널티 킥 79개(성공율 77%)를 찼다. 골대를 9등분으로 해 상단 라인 1, 2, 3, 중단 라인 4, 5, 6, 하단 라인의 7, 8, 9부분으로 나누었을때 왼쪽 하단인 7쪽으로는 16개, 골키퍼가 서 있는 하단 중앙 8쪽으로는 5개, 오른쪽 하단 9쪽으로는 22개를 찼다.
골키퍼가 있는 중앙 라인인 2, 5, 8부분으로는 골키퍼와 눈이 마주 쳤을 경우엔 차지 않고 좌우 어느쪽으로 찼다는 분석 데이터를 이용해 골키퍼는 왼쪽 보다는 오른쪽으로 점프한다고 했다. 메시는 왼발 잡이인 탓으로 오른쪽으로 가장 많은 페널키 킥을 찼기 때문이다.
호날두의 경우 106개(성공율 83%)의 페널티 킥중 왼쪽 하단 7쪽으로 43개, 오른쪽 하단 9쪽으로는 23개를 찼다. 오른발 잡이인 호날두는 자연적으로 왼쪽 하단으로 많이 찼다는 분석이다. 이런 데이터 분석은 물론 축구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분석 활용해 적용한 TGS 1899 호펜하임 클럽은 2006~7년 시즌에는 3부에 해당되는 리그에 속해 있었지만 다음 시즌엔 2부로 승격하고 그 다음 시즌에는 1부인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고 한다.
또한 풋 보나우토(Foot Bonauto)라는 트레이닝 머신을 도입해 패스의 정확성을 배양하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풋 보나우토라는 머신은 인조 잔디가 깔린 사방 14m 입방체의 측면 8개의 발사구중 한곳에서 야구의 피칭 머신에서 튀어 나오는 볼처럼 축구공이 튀어 나와 72개의 정사각형중 지정된 한곳으로 볼을 차 넣는 연습 장치다.
72개로 분리되어 있는 정사각형의 틀 한곳이 일순 청색으로 라이트가 번쩍거린다. 튀어 나온 볼을 잡은 선수는 그 청색으로 빛난 틀안으로 볼을 얼마나 빨리 차 넣는지 시간을 계측한다. 처음에는 8개중 어느 틀안에서 볼이 튀어 나오는지 붉은색으로 위치를 선정해 주며 익숙해지면 튀어 나오는 위치를 알려 주지 않고 집어 넣어야 할 위치만 알려 준다.
톱 선수는 평균 2초 전반대로 볼을 차 넣는다. 정확한 패스와 빠른 스피드를 단련하는 훈련이다. 독일에서도 단 두개의 머신밖에 없다는 이 머신은 100만유로라고 한다. 독일에는 케룬 체육 대학이라는 곳이 있다. 이 대학에는 2015년에 신설된 세계에서 유일한 '플레이 데이터 분석과'라는 학과가 존재한다.
수강생들은 축구 감독이나 코치, 애널리스트들로 2년 코스다. 통계 조사 방법, 선수 재능 평가 방법, 데이터 베이스 강좌, 대전 상대팀 분석 요령, 선수들의 운동량및 팀 전술 분석, 시합중 선수들의 퍼포먼스 분석등을 배운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시합에 활용할수 있는 강좌다. 어떤 강좌인지 수강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체스터에도 풋 보나우토라는 머신을 도입하면 많은 도움이 될것이지만 그런 자금이 없을것이다. 전세계에서도 단 두대밖에 없다고 했다.
6월 14일부터는 러시아 월드컵이 개최된다. 체스터 필드 FC 선수중 대표로 발탁되어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는 단한명도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것이지만 월드컵 기간내엔 8월달부터 시작되는 시즌에 대비해 훈련을 할 생각이다. 이번 시즌에는 최소한 7위이내에는 들어 가야 3부 리그로 승격할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아직 자신의 능력은 10%도 보여 주지 않았다. 전반전에 미드 필드로 출전해도 무공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슈팅을 할때에만 내공을 불어 넣어 차고 있지만 무공을 활용하면 혼자서도 많은 골을 넣을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관한 데이터가 어떤식으로 분석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12시간 동안이나 비행기안에 갇혀 있던 탓으로 몸이 찌뿌둥했다. 런던에서 다시 더비셔로 이동해야 한다.
"선물입니다."
"고마워요."
저녁 늦게 도착해 일본과 한국에서 구입한 물건을 코넬리 코치 부인인 제인에게 선물했다. 코넬리 코치에게는 일본산 양주를 선물하고 유앙에게는 플레이 스테이션 4를 축구 게임 소프트와 곁들여 선물했다.
"와아! 우(Woo)! 고마워."
"게임만 해선 않된다는건 알지? 공부도 해야 된다."
"난 공부는 잘하거든."
자신있게 말하는것으로 볼때 유앙은 정말 공부를 잘 하는것 같았다. 저녁 식사후 코넬리 코치에게 풋 보나우토 영상을 보여 주며 이런식으로 훈련해 보는건 어떤지 상의했다. 머신은 구입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만들어 활용해 보자고 했다.
머신에서 튀어 나오는 볼은 사람이 직접 던져 주는식이면 머신은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사각형의 큼직한 폴대를 구입해 서로 연결시켜 코넬리 코치 집 정원에 설치하고 뒤쪽에는 네트를 쳐 놓았다. 찬 공을 막기 위해서는 네트는 필수였다.
휘익!
착!
툭!
코넬리 코치가 던져 주는 볼을 발이나 몸을 사용해 아래쪽으로 떨어 뜨린후 몇번째라고 지목한 사각형 틀안으로 차 넣었다. 처음치고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무공은 온몸을 활용해 시전한다. 만약 자신이 중원에서 신야 몸으로 들어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간단하게 차 넣지는 못했을것이다. 자신보다는 유앙이 좋아했다. 유앙의 훈련으로는 안성마춤이었다.
- 작가의말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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