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크레이지 신야(2)
17화.
더이상 오카미상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선배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때였다. 성격이 가장 밝은 오쇼잔 선배가 놀리기 시작했다.
"아메미야! 만약 네가 쥬료(十両)로 가장 빨리 올라 간다면 네 츠케비토(付け人.따까리)를 해 줄께."
"선배! 그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 대신 여섯 바쇼(場所)안에 올라 가야 한다는 조건이야."
"알겠습니다. 그 약속 잊지 마십시요. 다른 선배님들도 모두 들었죠? 오쇼잔 선배는 미래의 제 따까리입니다."
스모 세계에선 계급, 즉 지위가 모든 것을 우선시한다. 세키토리라고 불리우는 쥬료(十両)로 올라 가면 입을수 있는 옷은 물론 신발까지 달라 지며 츠케비토라는 따까리가 붙는다.
보통 쥬료는 1~2명정도의 츠케비토를 거느릴수 있으며 쥬료보다 한단계 위인 마쿠우치(幕内) 선수들은 3~4명, 최고 정점인 요코즈나(横綱)는 5~6명을 거느리게 된다. 농담이지만 그런 따까리를 스스로 자청한 오쇼잔 선배였다.
츠케비토는 오야카타가 지명해 주거나 쥬료로 올라간 세키토리가 쥬료 이하의 누군가를 직접 지명한다. 스모에 입문한 자가 최단 시간으로 쥬로로 올라 가기 위해서는 전승 우승이나 6승 1패의 성적으로 다섯 바쇼를 통과하면 쥬료로 올라 갈수 있다. 운이 없으면 올라 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대부분 올라 간다.
만약 2패를 한다면 위쪽의 상황에 따라 올라 갈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안전하게 올라 가기 위해선 최소한 6승 1패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 밥 한공기를 뚝딱하고 옥상에서 훈련을 한다며 올라갔다.
스모 선수들의 밥 한공기는 장난이 아니다. 15센티정도 되는 그릇에 산처럼 수북히 쌓아 올리는 식이다. 스모 베야(相撲部屋.스모 클럽)에 따라 식사때마다 할당된 양이 정해져 있다. 보통 세 그릇에서 다섯 그릇을 먹어야 한다.
나루토 베야에선 다섯 그릇을 먹어야 한다. 아직 선배들 몸집이 작은 탓으로 오야카타가 다섯 그릇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식사때마다 토라키오 선배가 가장 힘들어 했다. 불가리아 출신인 토라키오 선배는 스모 훈련보다 식사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옥상 바닥에 앉아 월광심법을 운공하며 발바닥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때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살금살금.
누군가가 다가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심법을 운공할때가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상태다. 급히 내공을 단전으로 수습했다. 만약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수도 있다.
탁!
"컥!"
우웩!
한발 늦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탁 치며 무슨 말을 했지만 전혀 들려 오지도 않았다. 정신을 집중해 단전으로 내공을 수습하는 중이었다.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단전에 내력을 거의 다 안착시킬 무렵 자신의 몸을 건드린 탓으로 충격으로 인해 내력이 흔들리며 요동쳤다.
역류한 내공으로 인해 한모금의 피를 뿜어 내며 폭주하지 않게끔 안간힘을 쓰며 내공을 다독여 단전으로 수습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만약 역류한 내공이 머리속까지 침투해 폭주하게 된다면 광인(狂人)이 되어 희대한 살인마가 탄생하게 될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후 내공을 모두 사용해 버린다면 몸의 원천지기(原天之氣)까지 끌어 올려 끝내는 미이라처럼 쭈글쭈글한 상태로 변해 버리든지 아니면 몸이 폭발해 버릴것이다.
***
토라키오(虎来欧)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불가리아 아마추어 레슬링 챔피언이던 자신이 불가리아의 영웅인 나루토 오야카타의 설득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스모 베야에 입문했다.
체급 경기인 레슬링과는 달리 무제한급인 스모 경기는 몸집이 큰자가 유리하다. 한끼의 식사에 무려 수북한 밥이란걸 다섯 공기나 쑤셔 넣어야 했다. 목구멍까지 밥이 치밀어 올라 토할정도였지만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집어 넣는 나날이 이어졌다.
비록 훈련은 가혹했지만 훗날 쥬료(十両)이상의 지위가 된다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오야카타가 지시하는 대로 꾸준히 훈련을 임했다. 스모 세계의 독특한 풍습에 당황하며 같은 불가리아 출신인 오야카타외엔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내년부터 한솥밥을 먹게 된다는 오토우토데시(弟弟子.사제)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건방지게 최단 시간안에 쥬료로 올라 간다고 당당히 선언한 놈이다. 녀석은 지독한 놈이었다.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스스로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야카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야카타도 한수 접어 주는 놈이었다. 대체 어떤 훈련을 하길래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지 알아 보기 위해 후배 녀석이 올라간 옥상으로 찾아 갔다.
후배 녀석은 훈련은 커녕 옥상 바닥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살짝 놀래켜 주기로 했다. 살금살금 다가 가도 미동도 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탁!
어깨를 탁 치며 아메미야 녀석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를려고 했다. 그때였다. 아메미야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혹시나 너무 세게 때린건 아닌지 아메미야를 흔들며 불러 보았지만 게슴츠레하게 눈을 반쯤 감은채 덜덜덜 떠는 녀석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에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아메미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자신은 더이상 스모를 할수 없게 된다.
타다다닥.
급히 아래로 뛰어 내려 가며 오카미상을 불렀다. 자신 혼자서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오카미상이라면 아메미야가 왜 저러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
안도 아사코(安藤麻子)는 나루토 베야(鳴戸部屋)의 오카미(女将)다. 남편은 일본인인 자신과 결혼을 한 계기로 일본 국적을 취득해 나루토 베야를 계승했다. 남편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특이한 애가 제자로 들어 올 예정이다.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훈련을 고집하는 애였다. 두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말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떤 말도 할수 없었다. 최단 시간안에 쥬료로 올라 간다고 선언하는 애는 처음이었다.
다른 제자들은 입문했을때 그냥 열심히 한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특이한 애였다. 자살을 시도한 탓으로 심경 변화가 있지 않다면 그런 식으로 당당하게 선언할순 없을 것이다. 남편과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아 보기 위해 제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통화 가능해요?"
- 응, 무슨 일인데?
"아메미야군 말이에요. 발바닥이 피투성이인데도 훈련을 고집하고 있어요. 말려도 당신에게 물어 보면 안다고 해서 전화를 건거에요."
- 녀석, 말려도 소용없을꺼야. 역시 굉장한 놈이네. 그 녀석 걸물이야. 훗날 크게 될 놈이 틀림없어. 녀석을 처음 만났을때...
남편이 아메미야군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2미터가 넘어가는 남편을 상대로 스모도 전혀 모르는 애에게 남편이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또한 터무니없는 거래 내용도 들었다.
다른 제자들과의 형편성이 불거져 나올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점까지 감수한채 남편이 용인할 정도라면 굉장한 인재라고 생각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아메미야군의 발바닥을 본다면 놀랄 것이다. 많이 아플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본인은 전혀 아프지 않다며 훈련을 강행하는 독한 애였다.
- 그렇게 된거니까 잘 보살펴 줘.
"후우, 알겠어요. 오늘은 많이 늦는거에요?"
- 아냐, 이곳의 일은 거의 끝나 가. 끝나면 바로 갈께.
앞으로 아메미야군 때문에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고 생각되었다. 훈련이라며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남편도 일년동안은 뭐라고 할수도 없는 조건부로 입문하는 애였다.
"후우..."
전화를 끊자 한숨만 나왔다. 나루토 베야에서 빨리 세키토리(関取)가 나와야 한다. 쥬료이상의 세키토리만 배출하면 스모 협회에서의 지원금과 후원자들이 늘어 나 재정 사정도 많이 개선될것이다. 지금은 남편의 저축을 깨 가며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스모 베야(相撲部屋.스모 클럽)로 출발한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탓으로 모든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후원자들이 조금씩 늘어 나고 있는 추세지만 다른 스모 베야처럼 모든 운영을 후원금이나 사시이레(差し入れ.개인이나 어떤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보내는 물건)로 할수 있게끔 나루토 베야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남편도 TV에 출연하는등 스모 베야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후원자들만으로는 운영할수 없는 실정이다.
타다다닥.
"오카미상~!!!"
생각에 젖어 있을때 토라키오군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저렇게 크게 부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게 틀림없었다. 서둘러 사무실을 나가자 토라키오군이 무언가에 크게 놀란듯 당황한 빛이 역력한 얼굴로 쿵쾅거리며 이층에서 급히 뛰어 내려 왔다.
"무슨 일이니?"
"헉헉! 아, 아메미야군이 옥상에서...옥상에서..."
당황한채 '옥상에서'라는 말만 연발하는 토라키오를 뒤로 하고 즉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 갔다.
***
"...으으."
몸속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내공이 폭주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 대신 몸속 곳곳을 송곳으로 푹푹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이를 악물고 눈을 떴다.
'또 병원이군.'
병원 냄새는 역시 지독했다. 소독약 냄새라는걸 알고는 있지만 자신에게는 독연(毒煙)처럼 느껴지는 냄새였다. 아무튼 제정신으로 살아 남은게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옥상에서 기절한 자신을 이곳 병원으로 옮겨 놓은것 같았다.
오른 팔뚝에는 호스같은게 달려 있었다. 거제를 벗겨 내자 주사 바늘이 팔뚝에 꽂혀 있었으며 호스를 따라 눈동자를 돌리자 비닐 봉지안에 들어 있는 물같은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링겔이라는 주사같았다. 팔뚝의 거제를 벗겨 내고 주사 바늘을 빼 냈다.
"크윽!"
침대에서 일어 날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운채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왼팔과 왼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마비?'
주화입마의 부작용이 틀림없었다. 오른손을 침대에 짚고 끙끙거리며 강제로 상체를 일으켰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헉헉헉!!"
오랜만에 고통다운 고통을 느낄수 있었다. 발바닥이 까지고 어깨가 까진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상체를 일으키는건 힘들었다. 주화입마땐 고통보다는 다급함이 먼저였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가부좌를 틀순 없어 다리를 뻗은 채로 몸속 상태를 점검 했다. 먼저 기초 심법인 양월심법을 운공해 몸 전체를 파악했다. 혈도가 막힌 곳이 한두곳이 아니었다. 너무 많아 막힌 혈도를 뚫을려면 몇년은 걸릴것이다.
곳곳의 혈도도 찢겨진 상태다. 엉망인 몸이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것이다. 내년에 스모 데뷔를 할려고 했었지만 이 상태로는 무리였다. 다음은 월광심법을 운공해 단전의 상태를 살펴 보았다. 부글부글 끓었었던 단전은 안정된 상태였지만 내공이 절반 이상이나 사라진 상태다.
"...후우."
찢겨지고 꽉 막힌 혈도를 뚫기 위해선 소림사(少林寺)의 대환단같은 최고의 영약이 필요했다. 그런 영약이라면 단번에 치료할수 있을 것이다.
"아아!"
있었다. 자신에게는 신선수(神仙水)를 적셔 놓은 쿠키가 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해야 한다. 이런 몸 상태로는 지금 당장 막힌 혈도를 뚫기도 어려운 상태다. 신선수가 필요했다.
"끄으응."
침대에 다시 누웠다. 몸이 휴식을 원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
"아, 아메미야군!"
누가 자신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부스스 눈을 뜨자 오카미(女将)상이 놀란듯 소리쳤다. 오카미상외에는 병실에는 누구도 없었다.
"며칠이나 지난 겁니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얼마동안 기절해 있었는지 모른다. 막힌 혈도를 뚫을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막힌 혈도는 더욱 단단히 굳어져 버린다. 신선수가 있다고 해도 고생하지 않고 뚫을려면 빨리 시도하는게 좋은것이다.
"삼일이 지났단다."
"오카미상! 전 괜찮습니다. 원장 선생님껜 연락하지 마십시요."
"미안하구나. 연락하지 않을수가 없었어."
원장 선생님은 또다시 걱정하실것이다. 혹시나 또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것이다. 걱정을 들어 드리기 위해선 빨리 완치를 시켜야 한다.
"퇴원하겠습니다."
"않돼! 네 몸은..."
오카미상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것 같았다. 끝까지 말을 못한채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걱정없습니다. 몸 왼쪽 부분이 마비된 상태죠. 병원에서는 고치지 못합니다. 퇴원을 해야 고칠수 있거든요.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퇴원 수속을 밟아 주십시요."
"않돼! 네 고집이 세다는건 알고 있지만 정밀 검사를 받아 보고 의사 선생님의 판단에 따르는게 좋아."
"오카미상! 하루라도 늦는다면 제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게 점점 어려워집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퇴원해야 합니다."
- 작가의말
츠케비토가 쥬료 이상의 선수가 아래 지위의 선수를 직접 지명하거나 오야카타가 지명해 줍니다. 만약 같은 클럽 소속의 지위가 낮은 자가 몇없을 경우 츠케비토를 다른 클럽에서 빌리기도 합니다.
다음화를 기대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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