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3월 바쇼(1)
48화.
스모 세계에 입문한지 일년이 지났지만 스피드 출세로 인해 머리카락이 출세를 따라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쥬료(十両) 도효이리(土俵入り)까지는 할일이 없어 고바야시상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긴장되지도 않냐?"
"긴장을 왜 해요?"
"....."
오히려 고바야시상이 긴장하고 있는듯했다. 주변에는 점점 쥬료 선수들이 몰려 들고 있는 상태였다.
"네가 신쥬료냐?"
"그렇습니다. 나루토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몸집이 큰 자였다. 이렇게 말을 건다는 것은 최소한 이 자도 쥬료이거나 마쿠우치(幕内) 선수임이 틀림없었다. 왜 모르는 자가 말을 거는지는 모른다.
"정말 하루 종일 훈련만 하는거냐?"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질거려서 움직이는 걸 보고 훈련하는 것으로 착각한것 같습니다."
"그런거냐? 근데 말이다. 쥬료부터는 연승 기록을 이어 가기는 쉽지 않을꺼다. 모두들 널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걸 명심해."
"......"
연승 기록을 저지하기 위해 쥬료 선수들이 무슨 담합이라도 한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최고 연승 기록은 69연승이다. 그것도 마쿠우치(幕内) 선수들을 상대로 한 기록이다.
2위는 63연승으로 현재 요코즈나(横綱)로 있는 몽골 출신인 하쿠호(白鵬)다. 요코즈나 하쿠호(横綱白鵬)는 연승 기록을 몇번이나 세워 최강의 요코즈나로 불리우고 있다. 다만, 요즈음 기력이 떨어지는지 예전처럼 압도적인 시합은 못하고 있었다.
아메미야는 현재까지 35연승이다. 이번 3월 바쇼에 전승으로 우승하면 50연승이 된다. 쥬료부터는 15일간 하루에 한번씩 15번의 시합을 해야 한다. 전승이나 1패정도로 우승한다면 다음 바쇼땐 마쿠우치(幕内)로 승급하게 될 공산이 큰상태다.
아직 대기록을 세우지도 못한 상태임에도 왜 자신을 목표로 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언인지 주의인지 모를 말을 하고는 멀어져 간 자를 물끄러미 바라 보며 고바야시상에게 누군지 물어 보았다.
"아마카제(天風)라는 선수야. 200Kg이 넘어간다더라. 후우~! 저렇게 몸집을 불릴려면 얼마나 먹어야 할지."
아마카제는 오늘은 같은 동(東)쪽에 자리하고 있어 대결하는 일은 없지만 내일은 모른다. 스모 시합은 기본적으로 동(東)과 서(西)로 구분해 서로 대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반즈케효의 동서(東西) 지위와는 전혀 상관없다.
오늘은 동쪽에 있다고 해도 내일은 서쪽으로 갈지는 모른다. 대전 상대는 7일날까지는 지위가 비슷한 자와 대결하고 8일째부터는 승수가 비슷한 자와 대결한다. 쥬료 선수는 모두 36명으로 그중 외국인이 8명이나 된다.
8명중 7명이 몽골 출신 선수들이다. 몽골에서도 일본처럼 몽골 스모라는 것이 존재한다. 상대를 바닥에 쓰러 뜨리면 승리하는 경기로 일본 스모와 비슷한점이 많아 몽골 스모 출신 몽골인들은 일본 스모에 입문해도 강한 면모를 보인다.
요코즈나 하쿠호(横綱白鵬)의 아버지도 몽골 스모 챔피언 출신으로 올림픽의 레슬링 경기에 참가해 몽골인으로써 처음으로 메달을 딴 자다. 그런 일로 인해 몽골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하쿠호(白鵬)는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너무 많아 열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연간 최다 승수 기록, 연간 최다승, 마쿠우치 연속 카치코시 기록, 마쿠우치 연속 2자릿수 승리 기록, 요코즈나 재위 최다 기록등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며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늙은 호랑이라고 불리며 일본인 요코즈나 탄생으로 인해 비난 받는 일이 많아진 상태다.
특히, 몽골인 스모토리 모임에서 다른 요코즈나가 쥬료 지위의 몽골인이 버릇이 없다고 구타한 사건이 벌어졌다. 위대한 요코즈나인 하쿠호(白鵬)가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쥬료인 세키토리가 감히 스마트 폰을 조작하고 있던 탓으로 다른 요코즈나가 화를 내 가라오케 리모컨으로 머리를 때리고 얼굴을 손으로 수십번을 친것이다.
머리가 깨진 쥬료 선수는 자신의 스모 베야 오야카타에게 들켜 버린 탓으로 큰소동이 벌어 졌다. 그 오야카타(親方)가 타카노하나(貴乃花)로 스모 협회 이사이면서도 다른 이사들은 물론 협회장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폭력 문제로 인해 일본 전체가 들끓었다. 1990년대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모 선수가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였다. 최연소 기록을 갈아 치우며 요코즈나로 승진해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은채 우승까지 했었다.
그런 탓으로 지금도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인기를 배경으로 스모 협회에서 발언권을 유지하지 위해 제자를 이용했다.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가 항상 하는 말은 스모 협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떠든다. 스모 협회에서는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는 아웃 사이더다. 다른 이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스모 협회는 복마전이라고 한다.
스모 베야는 각각 독립적인 단체지만 몇개의 파벌로 나누어져 있다. 그 파벌을 00 일문(一門)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나루토 베야(鳴門部屋)는 니쇼노세키(二所ノ関) 일문(一門)에 속해 있다.
스모 협회의 이사는 모두 10명이다. 오랫동안 제각기 일문에서 이사 후보를 조율해 모두 10명이 되게끔 담합해 입후보한다. 정원 10명에 후보 10명으로 선거를 할 필요도 없이 모두 무투표로 이사로 선출된다.
오랜 전통이었다. 그런 전통에 반기를 든 자가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였다. 오야카타가 속해 있던 일문(一門)을 나와 자신의 일문(一門)을 설립하고 동조하는 젊은 오야카타를 포섭한것이다.
불과 4명의 오야카타가 동조했지만 매스컴의 호응을 얻어 이사 선출 선거에 입후보했다.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오야카타는 매스컴에서 항상 거론할 정도다. 지금까지는 담합으로 인해 정원 10명에 입후보 10명으로 무투표로 이사가 선출되었지만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가 입후보한 탓으로 11명이 입후보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투표로 이사 10명을 선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다른 일문에 속해 있던 젊은 오야카타가 배신을 해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 발생해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가 이사로 선출된 것이다.
매스컴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었다. 협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젊은 오야타카 몇명이 자신이 속한 일문을 배신한것이다. 물론 배신한 젊은 오야카타는 일문에서 추방되었다. 추방된 오야카타들은 타카노하나(貴乃花) 일문으로 들어 갔다. 그렇더라도 다른 일문에 비하면 수가 적었다.
요코즈나가 자신의 클럽 소속 제자에게 폭력을 가한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스모 협회를 비판하며 젊은 오야카타들이 자신에게 동조하기를 기대했다. 매스컴도 모두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에게 동조했다.
하지만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와 매스컴이 아무리 스모 협회를 비판해도 협회에서도 반박할 건수는 얼마든지 있었다. 먼저 쥰교(巡業.순업) 부장이었던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는 쥰교때에 벌어진 폭력 사건을 경찰에 먼저 신고를 한것이다.
쥰교 부장은 일정 지역을 돌아 다니며 스모 흥행을 하는 동안 스모토리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무슨 일이 발생했을땐 즉시 협회에 보고를 해야 하는 자리다. 협회에서는 경찰에서 폭력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알려 와 폭력 사건이 벌어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통수를 맞은 협회에서는 쥰교 부장인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가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점을 문제삼았다. 또한 피해자인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의 제자에 대한 청취를 거부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스모 협회의 위기 관리 위원회에서 조사를 할려고 해도 협조하지 않은채 경찰의 조사를 기다려야 한다며 협회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 이사 자리에 있음에도 회사에는 아무런 보고도 없이 조사에도 협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스컴은 연일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 편을 들며 스모 협회를 비난했다.
오야카타의 개혁에 왜 협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 모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몽골인들끼리 모여 야오쵸(八百長.승부조작)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요코즈나인 하쿠호(白鵬)가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폭력을 말리지 않았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비난했다.
폭력을 휘두른 몽골인 요코즈나는 요코즈나 자리를 내 놓고 은퇴를 해야 했다. 몽골인들은 술자리에서의 주먹질은 일상다반사라고 한다. 특히, 선배가 후배를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구타하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폭력 사건후 다음날 피해자인 쥬료 세키토리는 가해자인 요코즈나를 찾아가 사과를 하며 서로 악수를 하며 화해를 했다.
가해자인 요코즈나(横綱) 하루마후지(日馬富士)와 피해자인 타카노이와(貴ノ岩)는 서로가 부모를 일찍 잃은 탓으로 하루마후지가 평소에 타카노이와를 친동생처럼 대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선배이자 몽골인들의 우상인 하쿠호(白鵬)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도 딴짓을 하는 타카노이와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오히려 흘겨 보는 듯한 눈빛에 참지 못하고 손을 댄것이 폭력의 발단이었다.
이 일로 인해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자신의 제자를 이용해 다음해 있을 이사 선거에 유리한 입장을 취할려고 모색했지만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의 언행이나 행동로 인해 오히려 다른 일문(一門)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타카노하나(貴乃花) 일문(一門)에서는 이사 선거에 다른 오야카타를 옹립하기로 결정하고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는 단독으로 입후보하게 되었다. 매스컴에서는 이번에도 다른 일문(一門) 소속 젊은 오야카타들이 반기를 들어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에게 투표를 해 당선될지도 모른다며 연일 떠들어 대었지만 막상 두껑을 열자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에게 표를 던진 오야카타는 단한명뿐이었다.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와 사돈 지간인 다른 일문(一門) 소속 오야카타의 표뿐이었다. 이사 선거에서 낙선되고 쥰교 부장의 위치임에도 협회에 보고를 하지 않은 일은 중대한 의무 위반 사항을 문제삼아 두단계를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러자 매스컴의 비난의 화살은 이제 요코즈나 하쿠호(白鵬)에게로 돌려졌다. 하쿠호의 스모 시합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스모의 기술중 카치아게(かちあげ)라는 기술이 존재한다.
주먹을 바닥에 대고 일어 서는 것과 동시에 팔꿈치를 굽혀 상대의 가슴을 밀어 상체를 들어 올리거나 턱 아래 부분을 강타해 치켜 올리는 기술이다. 강하게 턱밑을 강타하면 어떨땐 단한방에 뇌가 흔들려 바닥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하쿠호(白鵬)가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요코즈나가 사용하면 품격이 떨어진다며 문제를 삼은 것이다.
현역 시절의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는 머리를 내밀고 돌진하는 상대방을 가슴으로 받아 마와시나 잡거나 쯧빠리로 도효 밖으로 밀어 내는 요코즈나 스모를 했다며 요코즈나라면 비겁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스모 기술중에 카치아게(かちあげ)라는 기술이 명시되어 있는 이상 요코즈나든 누구든 사용하는건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음에도 연일 떠들썩한 매스컴으로 인해 스모 협회 이사장의 자문 기관인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横綱審議委員会)에서도 하쿠호를 비난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스컴의 뭇매를 맞은 하쿠호는 카치아게(かちあげ) 기술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오랫동한 사용해 온 기술인 탓으로 버릇이 되어 있어 수정할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일본 스모는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의 현역 시절에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도박 문제와 승부 조작 문제로 인해 스모 인기가 바닥까지 추락했었다. 요코즈나가 한명도 없는 바쇼가 이어지기 시작하자 인기 회복을 위해 외국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몽골인들이 스모 세계로 몰려 오기 시작했다. 몽골 스모와 비슷한 일본의 스모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며 승승장구하자 제각기 스모 베야에서는 몽골 스모 출신자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하자 몽골인들이 마쿠우치 지위를 점점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탄생한 요코즈나가 하쿠호(白鵬)다. 한동안 일본인 요코즈나는 탄생하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몽골인 요코즈나 하쿠오와 다른 몽골인 요코즈나 탓이었다.
점점 몽골인들이 스모계를 장악해 가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스모 협회에서는 스모 베야 하나에 외국인 출신 스모토리는 한명만 둘수 있다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 몽골인들을 견제했다. 2003년부터 일본인 스모토리가 마쿠우치에서 우승한 해는 2006년, 2016년. 2017년의 18바쇼중 단5번 바쇼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스모 인기는 회복했지만 마쿠우치 우승은 모두 몽골인들을 포함한 외국인 선수들 차지였으며 일본인 요코즈나의 탄생도 없는 상태였다. 2017년에 일본인인 키세노사토(稀勢の里)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만에 우승한 일본인 선수로 인해 매스컴에서 연일 떠들어 대었다.
그동안의 키세노사토의 성적을 감안하면 요코즈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코즈나(横綱)가 되기 위해서는 연속으로 마쿠우치(幕内) 2바쇼(場所) 우승과 그에 준하는 성적을 올린 자로 명시되어 있다.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에서는 매스컴에 등을 떠밀려 그동안의 키세노사토(稀勢の里)의 성적을 감안해 요코즈나 승격을 제안했다.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에서 제안한 일은 이사장도 거부하지 않는다. 심의 위원회에 이사장도 참석하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협회 이사 선거나 요코즈나 폭력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몽골인 선수들, 특히 하쿠호가 우승을 거의 차지했습니다.
다음화에 일본인 요코즈나 탄생 비화가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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