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7월 바쇼(2)
62화.
타다닥.
양발을 좌우로 크게 벌려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빈틈을 노렸다. 이동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여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이치노죠였다. 접근하면 밀어 버린다는 듯 무릎을 살짝 굽힌채 튼튼하게 중심을 잡은 상태였다.
휘익.
탓!
오른쪽으로 크게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이치노죠의 왼쪽을 향해 돌진했다. 이치노죠의 거대한 왼손이 비스듬하게 뻗어 오고 있었다.
휘익.
덥석.
금나수를 시전해 손목을 잡고는 몸을 빙글 돌리며 품속으로 쑥 들어 가는 것과 동시에 등을 이치노죠의 몸에 밀착시킨후 왼손목을 양손으로 잡아 당기며 상체를 숙였다. 거대한 이치노죠의 몸이 들어 올려 지며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유도의 업어치기를 시도한것이다. 눈깜짝할새에 벌어진 일이다. 순발력과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수 없었다. 거대한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대로 짖눌러 버려 부상을 입을지 모른다.
쿵!
"우와아아!!!"
등부터 바닥으로 떨어지자 큰소리가 들려 오며 관중들이 열광하는 함성이 뿜어져 나왔다. 스모 경기에서는 좀처럼 볼수 없는 장면이다. 예전에 한번 사용한적이 있는 업어치기지만 이치노죠처럼 거대한 몸을 날려 버린건 아니었다.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 나는 이치노죠는 분한 표정이었다. 오늘도 현상금은 10개정도 되었다. 기분 좋게 현상금을 받고는 도효 아래로 내려 갔다.
"전광석화(電光石火)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대한 이치노죠제키((逸ノ城関)를 상대로 그런식으로 업어칠수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았을뿐입니다."
복도로 걸어 나오자 인터뷰를 요청해 답해 주었다. 질문하는 NHK 기자도 흥분이 가라 앉지 않은 상태였다. 13일째 12전 12승으로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현재까지의 전승은 요코즈나(横綱)인 하쿠호(白鵬)와 나루토류(鳴戸龍), 그리고 마에가시라(前頭) 9마이메(枚目)인 오키노우미(隠岐の海)로 1패로 뒤를 쫒고 있는 선수는 요코즈나(横綱) 가쿠류(鶴竜)와 세키와케(関脇) 토치노신(栃ノ心), 고무스비(小結)인 치요타이류(千代大龍)의 세 선수다.
12일째는 전승이나 1패의 성적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끼리 대결하게끔 대진표가 짜여졌다. 아메미야는 오키노우미(隠岐の海)와의 대결이다. 191cm, 165kg인 오키노우미는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우승 전선에 살아 남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을 이겨야 우승 희망이 남아 있다. 양주먹을 바닥에 대었다.
스윽.
쿵!
서로의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강하게 박고는 양손으로 가슴을 밀치며 쯧빠리 공방이 이어졌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다.
타타타탁!!
보통 몸집이 큰 선수가 힘도 강하다고 생각할것이지만 아메미야는 천근추를 시전한 상태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오오오!!!"
관중석에서 떠들썩한 함성이 뿜어져 나왔지만 시합에 집중했다. 아메미야가 전혀 밀리지 않자 오키노우미는 방법을 달리했다. 목쪽으로 손을 내밀어 밀며 끌어 당기듯 확 잡아 당기며 뒤쪽으로 물러 났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 탓으로 이런식으로 갑자기 잡아 당기면 앞으로 쓰러지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아메미야는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오키노우미가 뒤로 물러서자 즉시 움직였다.
타다닥!!
물러 난 쪽으로 따라 가며 내공이 깃든 양손을 빠르게 내밀며 가슴을 밀쳤다. 도효 밖으로 한발이 나간 오키노우미는 멍한 표정이었다. 오키노우미는 1패로 우승 전선에서 한발 후퇴한 상태로 남은 두번의 시합을 모두 이기고 전승 선수들이 모두 패해야만 우승을 넘볼수 있을 것이다. 13승 전승으로 다른 선수들의 시합이 남아 있지만 신경 쓰진 않았다. 최유력 우승 후보는 요코즈나 하쿠호(白鵬)다.
"쯧빠리의 응수에서 승리했습니다."
"운이 좋았을뿐입니다."
"다른 선수들의 결과를 지켜 봐야 하지만 우승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좋은 결과가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샤워를 했다. 나루토 베야 숙소로 돌아 가는 택시안에서 고바야시상이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 누가 이겼는지 알려 주었다. 역시 하쿠호(白鵬))는 승리했다. 14일째인 내일은 세키와케(関脇) 토치노신(栃ノ心)과의 일정이 잡힌 상태다.
토치노신도 승리해 1패인채로 자신을 반드시 이겨야 마지막날 하쿠호와 대결하게 된다. 하쿠호와의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1패의 선수들이 모여 우승 결정전을 치루게 될것이다. 이번 바쇼는 마지막날까지 누가 우승할지 예상할수도 없는 혼전 양상이다.
토치노신(栃ノ心)은 죠지아라는 유럽의 작은 나라 출신으로 192cm, 177kg의 몸무게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한다. 다만 오른쪽 무릎의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깁스를 한것마냥 테이핑으로 둘둘 말아 놓은 상태다.
자신보다 12cm나 더 키가 크고 큰 몸집이 접근하자 압박감이 느껴졌다. 제한 시간전 요비다시상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마나 얼굴을 박박 닦았는지 얼굴이 붉어진채 대치했었다. 토치노신만의 특별한 루틴이다.
선수들에 따라 루틴은 모두 다르다. 어떤 선수는 소금을 손안 가득 집어 도효위쪽 높이 던지는 선수나 기합을 넣기 위해 양팔을 동시에 내려 치기도 하며 마와시를 팡팡 두드리기도 한다.
아메미야는 루틴은 전혀 하지 않았다. 조용히 도효 중앙으로 이동해 양주먹을 바닥에 댈뿐이다. 토치노신은 좀 더 유리한 입장을 취할려는듯 아메미야의 일어서는 타이밍을 늦추기 위해 가늠하고 있었다. 먼저 충돌하거나 일어 서는게 유리하다. 팔이 긴 토치노신은 충돌한후 마와시를 잡고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 내는게 특기다.
스윽.
쿵!
예상대로 머리로 오른쪽 어깨를 강타하며 마와시쪽으로 빠르게 손을 뻗어오는 토치노신이다. 아메미야도 똑같이 머리로 토치노신의 오른쪽 어깨에 부딪히며 배쪽의 마와시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덥석.
덥석.
두사람이 거의 동시에 마와시를 잡았다. 토치노신은 마와시를 잡자마자 곧바로 몸을 밀착시키며 밖으로 밀어 낼려고 얼굴을 붉히며 힘을 주었지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그러자 토치노신은 몸무게가 가벼운 자신을 들어 올릴려고 마와시를 위쪽으로 잡아 당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천근추를 시전하고 있는 이상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내공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한 위로 들어 올릴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거대한 토치노신의 몸이 들썩이며 위로 올라 가고 있었다.
버둥거리며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양발이 도효위로 붕 뜬 상태다. 이대로 패대기를 쳐도 되지만 도효 밖으로 들고 갔다. 토치노신은 즉시 마와시를 놓고 자신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움직임을 봉쇄할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도효 밖으로 살짝 내려 놓자 붉었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덕을 본것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내일은 요코즈나 하쿠호(白鵬)와의 대결입니다. 요코즈나와는 첫대결입니다."
"자신의 스모가 얼마나 통할지 저도 궁금합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예상대로 하쿠호는 승리했다. 전승으로 아메미야와 하쿠호 둘만이 남은 상태다. 내일 마지막날 대결해 이기는 선수가 우승을 거머 쥐게 되었다.
"져도 상관없어. 편하게 해."
"정말 질까요?"
"지고 싶냐?"
"아니요. 이길겁니다. 파티 준비나 해 놓으십시요."
오야카타에게 큰소리를 치고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고바야시상은 이번 바쇼는 마케코시(負け越し)였다. 하지만 아메미야가 우승을 할지도 몰라 흥분한채였다.
"반드시 한방 먹여 줘라."
"때리라고요?"
"뭐?"
"하하하, 농담이에요."
당황하는 고바야시상이었다. 마지막날인 탓으로 대기실은 긴장감과 살벌함으로 뒤덮혀 있었다. 구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저벅저벅.
시간이 되었다는 말에 고바야시상을 따라 갔다. 긴장되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서 가는 고바야시상이었다.
털썩.
방석에 앉아 도효위를 지켜 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점점 대결 시간이 다가왔다. 중요한 시합이었지만 흥분되지는 않았다.
"동서(東西)! 동~~서!! 계속되는 시합으로 저쪽은 하쿠호(白鵬), 이쪽은 나루토류(鳴戸龍)! 이번 스모 경기가 센슈라쿠(千秋楽)입니다~!!!!"
도효위로 올라가 서쪽 타와라 앞에 무릎 걸음으로 앉자 심판인 교지상이 큰소리로 7월 바쇼 마지막 시합이라고 외쳤다. 마지막 시합에선 항상 교지상이 이런식으로 큰소리로 알린다고 했다. 하쿠호는 192cm, 156kg으로 자신보다 10cm나 더 키가 크고 56kg이상이나 무겁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요코즈나답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압박감이 전해졌다.
짝!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벌려 박수를 한번 치고는 소금이 있는 앞쪽 도효 앞으로 걸어가 시코를 밟았다.
쿵!
"와아아!!"
휘익!
소금을 뿌리고 도효 중앙으로 이동해 시코를 밟고는 시키리를 했다. 하쿠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노려 보고 있었다. 소금을 뿌리며 두번이나 더 시키리를 하자 제한 시간이 되었다.
휘익!
소금을 뿌린후 중앙으로 이동해 양주먹을 바닥에 대었다. 위대한 요코즈나인 하쿠호를 상대로 얼마든지 오라는 식이었다. 하쿠호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번쩍.
'허억!'
깜짝 놀랐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하쿠호의 눈에서 살기(殺氣)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살기를 내뿜은 하쿠호는 양주먹을 바닥에 대고는 일어났다. 얼떨결에 같이 일어나 시합이 성사되어 버렸다.
상대가 먼저 일어나도 자신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시합은 성사되지 않지만 몸이 익숙해진 탓으로 일어나 버린 것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한채 속절없이 밀렸다.
주르르.
일어서자 마자 하쿠호는 곧바로 어깨를 부딪히며 마와시를 잡고는 밀었다. 도효 끝자락의 타와라(俵)까지 주르르 밀려 버리자 즉시 천근추를 시전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이미 하쿠호는 전력으로 자신을 밀어 내고 있었다.
상체가 이미 뒤로 굽혀진 상태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막강한 천근추로 버틴다고 해도 무리다. 자신은 하쿠호의 마와시는 잡지도 못한 상태다. 오른쪽 팔은 하쿠호의 겨드랑이를 잡은채였으며 왼손은 하쿠호의 왼팔 바깥쪽을 잡고 있었다.
이런 불리한 상태에서 할수 있는 일이라곤 단한가지 밖에 없었다. 내공이 깃든 오른손으로 겨드랑이를 잡아 당기며 왼손으로 밀었다. 순간의 판단이었다. 주르르 밀리며 타와라에 발이 걸리는 순간 곧바로 하쿠호와 자신의 몸이 밀착된채 오른쪽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꽈당!
거의 동시에 둘의 몸이 도효 아래 바닥으로 쓰러졌다. 즉시 심판인 교지상을 보았다. 교지상은 하쿠호를 가르키고 있었다.
'제기랄!'
하쿠호가 왜 위대한 요코즈나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살기를 발산할수 있어서였다. 하쿠호는 지금까지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63연승, 43연승, 36연승, 33연승, 30연승등등 연승 기록만 해도 엄청나다. 모두 살기로 인해서다.
상대하는 자는 살기를 받으면 평소와는 달리 몸이 굳어져 자신의 스모를 취할수 없게 된다. 지금처럼 속절없이 밀려 버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모른다. 일반인은 살기가 뭔지도 모른다. 요코즈나의 압력에 당했다고 생각할것이다.
7월 바쇼 우승은 물 건너 간 상태였다. 도효 위로 올라 갈려고 했을때였다. 도효위의 교지 심판외에 도효 아래쪽 동서남북엔 쇼부(勝負.승부) 심판들이 교지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감시를 한다.
동서남쪽엔 한명씩 앉아 있으며 북쪽에는 두명이 앉아 있다. 동쪽 도효 아래쪽으로 쓰러진 탓으로 동쪽의 쇼부 심판이 손을 들어 모노이이(物言い.이의 제기)를 제기했다. 실날같은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쇼부 심판이 모노이이를 제기하면 도효 아래쪽의 다섯명의 심판이 도효위로 올라가 어느 선수의 몸이 먼저 바닥에 닿았는지 서로 상의한다. 심판들끼리의 상의는 명목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모니터실에서 비디오 판독으로 상세한 내용을 무전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상의를 끝낸 심판들이 내려와 심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상의 내용을 관중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 승부는 교지 군바이 사시치가에(行事軍配差し違え)로 양자의 몸이 동시에 닿은 것으로 판단해 재시합을 개최합니다."
"와아아~!!!"
속으로 '살았다'라고 외쳤다. 교지 군바이 사시치가에(行事軍配差し違え)는 심판인 교지상이 손에 들고 있는 군바이로 승리한 쪽을 가르키는 것을 말한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재시합을 하게 되었다.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성속에 도효위로 올라가 시코를 밟았다. 장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하쿠호와 나루토류가 시키리를 끝내고 마주 섰다.
아메미야는 이번엔 한발 뒤로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굳이 물러날 필요는 없었지만 일부러 겁을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제 하쿠호가 살기를 발산할줄 안다는 것을 안 이상 더이상 당황하는 일은 없지만 나중을 위해서 일부러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양주먹을 바닥에 대자 하쿠호는 이번에도 살기를 발산하며 바닥에 주먹을 살짝 대고는 벌떡 일어나 양손을 목쪽으로 치켜 올리고 있었다. 살기는 발산할줄 알면서도 내공은 없는지 움직임이 느려 보였다.
- 작가의말
다음화에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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