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축구와의 인연 & 우강우(1)
89화.
호텔 방에서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때 연락이 왔다. 프런트로 내려가 메모 한장을 건네 받았다.
"지금 찾아 가면 만날수 있는지요?"
"있을 겁니다."
택시를 부탁해 주소지로 찾아 갔다. 왕상명이라는 이름의 민속 학자로 이곳 텐진에서는 제법 유명한 자라고 했다. 민속 학자여서 그런지 옛날 기와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뻑뻑 담배를 태우고 있는 왕상명은 60세 이상은 되어 보였다. 누런 이빨에 담배 댓진이 덕지덕지 달라 붙어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담배 연기와 구취가 심했다.
"먼옛날에 있었던 집을 찾고 있습니다."
고층 빌딩을 설명해 주며 그 자리에 옛날에 어떤 집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고층 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몇개의 집들이 있던 터라며 설명해 주며 문화 대혁명이 발생하기 전에는 제법 큰 장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장원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음, 잠깐만 기다려 봐."
누렇게 변색된 책자를 들고 와 펼치면서 무언가를 찾던 왕상명은 책자를 자신쪽으로 돌리며 한곳을 짚었다.
"여기 송가장이라는 곳이 있던 자리야."
지도책을 보여 주며 짚은 자리에는 송가장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몇십년전까지만 해도 송가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송가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몰라. 문화 대혁명때 부자들은 모든 재산을 빼았기고 거의 다 죽었거든. 죽지 않았다면 멀리 떠나야 했을꺼야."
문화 대혁명이 어떤것인지는 모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 남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찾기가 막막했다. 찾는다고 해도 직접 만나면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너희들 선조라고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왕상명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 왔다. 더이상 송가장 사람들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 보고 영국으로 향했다. 일본의 원장 선생님껜 가끔씩 안부 전화를 했다. 런던을 둘러 보고 더비셔(Derbyshire) 체스트 필드(Chesterfield)라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영어 회화 학원의 영국인 영어 강사였던 코르다 선생이 추천해 주던 곳이었다.
더비셔에서는 전형적인 영국 전원 풍경을 볼수 있으며 몇개의 귀족성은 물론 석회암 동굴은 꼭 가 보라고 했었다. 오후 4시가 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지금 시간에 관광을 하기엔 애매했다.
오늘은 호텔 주변을 둘러 보고 내일 석회암 동굴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호텔 근처에는 큰호수가 있었다. 호수 주변을 따라 천천히 산책했다. 호수옆의 큰건물을 지나자 축구 경기장이 보였다. 선수로 보이는 자들이 시합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몇개냐?"
선수들보다는 축구 경기장 수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육상 트랙이 있는 축구장 한개, 전용 축구장이 2개, 축구장 두개를 4등분해 작은 규모로 만들어 놓은 축구장 4개, 모두 7개의 축구장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유럽이 축구가 성행한다고는 알고 있었다. 영국도 축구가 인기가 있는것 같았다. 아메미야는 축구는 전혀 모른다. 학교 체육 수업 시간에 축구를 한적이 없었다. 점심 시간때 다른 애들이 축구를 하며 놀기도 했지만 한번도 참가한 적도 없었다. 이지메를 당하는 외톨이 신세였었다.
팡.
"루이스! 이 새꺄~!! 똑 바로 차!"
펜스도 없는 바깥쪽에서는 십여명이 시합을 지켜 보고 있었다. 지켜 보는 관중들 중 배가 불룩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무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의 모두 욕설이었다.
어떤 선수 이름을 부르며 침까지 튀겨 가며 흥분한채였다. 왜 그런지 잠시 서서 지켜 보았다. 유니폼위에 서로 다른 색깔의 얇은 조끼같은걸 입은 두팀이 시합을 하고 있었지만 움직임도 느렸으며 마치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팡.
"이 따위로 할려면 때려 치워!!"
파란색 조끼를 입은 선수가 골대를 향해 힘차게 볼을 찼다. 하지만 볼은 골대위를 벗어나 버렸다. 그러자 중년인이 다시 고함을 쳤다. 볼을 찬 선수앞엔 수비하는 사람도 없어 앞쪽이 뻥 뚫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골대위로 한참이나 벗어 났다. 너무 시시해 산책을 다시 했다. 골대 왼쪽 뒷부분에서 지켜 보고 있는 중년인이 있는 뒤쪽을 스쳐 지나 갈려고 했을때였다.
팡!
볼을 차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얼굴을 돌리자 이쪽으로 볼이 날아 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중년인을 향해서였다. 욕설을 하는 중년인에게로 일부러 찬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이쪽으로 날아 온것인지는 모른다.
"우왓!"
깜짝 놀라며 머리를 감싸는 중년인 앞으로 스윽 접근해 손을 내밀었다. 욕설을 퍼 부은 중년인이 호되게 당해도 상관없었지만 몸이 절로 움직였다.
착!
왼손으로 공을 잡았다. 일반인에 비해 손이 큰 아메미야다. 스모를 해서인지 손바닥이 커졌다고 생각되었다. 나무나 기둥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는 훈련을 매일 빠짐없이 한탓일지도 모른다.
손바닥이 작다고 해도 이런 공쯤은 어렵지 않게 잡을수 있었다. 금나수의 수법으로 손목을 살짝 비틀며 잡아 채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날아 오는 공이 엄청나게 빠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메미야 눈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루이스! 이 새끼 너어! 일부러 이쪽으로 찬거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중년인이 자신을 힐끗 보고는 그라운드의 조금 까무잡잡한 선수를 가르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선수들은 중년인이 화를 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무시로 일관하며 자신을 바라 보며 손을 까닥거렸다. 공을 던져 달라는 것이었다.
"야~! 중국인, 공을 멀리 차 버려!"
"주, 중국인요?"
아메미야는 깜짝 놀랐다. 신야 몸안에 들어 온 송청은 중국인이다. 이 중년인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한발 뒤로 물러 났다. 혹시 영매술사일지도 몰라서였다. 영매술사는 영혼을 알아 볼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라면 자신의 영혼이 신야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아 차릴지도 모른다.
"중국인이 아냐?"
"아, 아닌데요! 일본인 아니, 한국인인데요."
"한국인? 치성 박이 있는 한국?"
"....."
치성 박이 누군지 모른다. 한국 사람같았지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괜히 한국인이라고 말한것 같았다. 그라운드에선 손짓으로 빨리 던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한국인! 저 멀리 힘껏 던져 버려."
오른손으로 볼을 잡고 내공을 불어 넣었다. 축구공은 얼마나 멀리 던질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행이 이 중년인은 영매술사는 아닌것 같았다. 하긴 외국인이 영매술사일리가 없었다. 반대편 골대를 겨냥해 상체를 젖힌후 오른팔을 힘껏 뿌렸다.
슈아앙.
바람을 가르고 날아 가는 소리가 들리며 축구공은 쭉쭉 뻗어 나갔다. 축구장 규격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골대 뒤편에서 던진 공은 반대편 골대로 날아가 선수가 서 있는 곳까지 도달했을즈음 그 선수가 몇발자국 움직여 덥석 잡아 챘다. 비록 골대는 빗나갔지만 먼거리까지 날아 간것에 만족스러웠다.
"우와아!! 대체 몇미터나 날아 간거야?"
"하, 한국인! 너어, 엄청나구나."
십여명의 관중들이나 그라운드의 선수들 모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만족감에 물들어 산책을 재개할려고 했을때였다.
"한국인! 난 브랜든이다."
"아메...우강우라고 합니다."
볼을 던지라고 재촉하던 중년인이 말을 걸었다. 항상 쓰던 일본 이름이 튀어 나올려고 했다. 습관이 된 탓이다.
"엄청난 팔힘이구나."
"제 자랑은 아니지만 힘과 체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어떤 운동을 한건가?"
"스모요."
숨길 이유는 없었다. 영국인이 스모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주었다. 그때였다.
"방금 볼은 누가 던진겁니까?"
"전데요."
체육복 차림의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언제 다가 왔는지 뒤쪽에서 말을 걸어 왔다. 볼을 멀리 던져 버린 탓으로 따질려고 온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던지라고 한 중년인을 슬쩍 바라 보았다.
"얀센! 이 한국인은 괴물이야."
"브랜든! 닥치고 있으세요. 너무 시끄럽잖아요."
"욕 먹지 않을려면 잘 하면 되잖아."
"...후우. 말을 말아야지."
중년인과 얀센이라는 자의 말투로 볼때 서로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한소리 들은 중년인은 오히려 화를 냈다.
"전 수비 코치인 얀센이라고 합니다."
"아, 예! 우강우라고 합니다."
"한국인이라고요?"
"예."
말투로 볼때 다행히 따질려고 온건 아니었다. 한시름 놓을수 있었다. 얀센이라는 코치는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이곳에선 뭘 하느냐, 축구 경험은 있느냐등등 물어 보는것 같았지만 영어가 서투른 탓으로 완전히 알아 들을순 없었다.
"그런데 몇살입니까?"
"18살인데요?"
"그래? 그럼 다시 한번 축구공을 던져 보겠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안 얀센은 말투를 바꾸었다. 속으로는 네놈보다 나이가 많다고 궁시렁대면서 던져 보겠다고 답해 주었다.
"마셀! 공을 이리 줘."
탁.
자신보다 키가 더 커 보이는 마셀이라는 선수가 볼을 가볍게 던졌다. 던진 볼을 잡은 얀센이 건네 주며 힘껏 던져 보라고 했다. 선수들도 멈춰 선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골대안으로 들어 가게끔 잘 겨냥해 손을 뿌렸다.
슈아앙.
또다시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공은 이번에는 골대 정면에 서 있는 선수에게로 거의 가벼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갔다. 날아간 공을 양팔을 가슴쪽으로 모은채 끌어 안듯 캐치하고 있었다.
"와아아!! 역시 엄청나다."
"골키퍼하면 딱 좋겠다."
"축구 해 볼 생각은 없어?"
지켜 보던 사람들이 이번에도 놀라고 있을때 얀센이 제안을 해 왔다. 축구는 규칙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흥미가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축구가 어떤것인지 경험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아는 것은 힘이라고 했다.
"경험삼아 해 보죠."
"좋아. 그럼 감독님(Manager)을 만나러 가자."
"야! 코리언! 너 골키퍼해라."
얀센을 따라 그라운드로 내려 갈때 브랜든이라는 중년인이 크게 외쳤다. 아메미야는 축구에 대해 잘 아는 브랜든의 말마따나 골키퍼를 잠깐 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다. 감독인 잭 레스터(Jack Lester)다."
"한국인인 우강우 현재 18세입니다. 축구 경험은 전혀 없으며 축구의 '축'자도 모릅니다."
여러가지 묻기 전에 미리 다 말해 주었다. 했던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는건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키는 180정도?"
"그렇습니다. 몸무게는 아마 86kg정도일겁니다."
키까지 물어 오는 바람에 체중까지 말해 주었다. 스모 선수였을땐 100kg였었지만 지금은 살을 많이 빼서 아마 그 정도의 몸무게일것이다. 감독은 영국인 치고는 얼굴이 조금 까무잡잡했다. 머리카락도 곱슬머리였다.
나중에 안것이지만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체스터 필드(Chesterfield) FC 감독을 역임한 적이 있었으며 첫감독으로 부임한것도 체스트 필드 FC였다는 것을 알았다. 첫감독으로 부임했었던 탓으로 체스터 필드 FC에는 애착심이 강한 감독이었다.
"축구를 모른다고?"
"예. TV로도 본적이 없습니다."
"혹시 야구라는걸 했었는가?"
"아니요."
축구를 모른다는게 이상했는지 감독이나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꼭 알아야 하는건 아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것 같았다.
"음, 그럼 볼은 한번도 차 보지도 않았겠지?"
"예. 차 본적은 없지만 어렵지 않을것 같은데요."
"좋아, 그럼 연습 경기가 끝난후 자네 발힘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 보겠네."
연습 경기라고 했다. 그래서 마치 놀고 있는 것처럼 시시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축구는 왜 실전처럼 연습하지 않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하하하, 그런 실전적인 시합을 하면 체력 소모는 물론 부상을 입을수가 있거든. 팀을 홍백으로 나누어 하는 연습 경기에서도 가끔씩 부상을 입어. 연습 경기는 어떤 선수의 몸 상태가 좋은지 파악하는건 물론 컨디션 조절이나 전술적인 실험을 하는 경기란다."
이해가 되었다. 부상 위험때문에 전력으로 시합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소모된 체력이야 회복하면 된다.
삐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 오자 선수들 모두 발을 멈추었다. 하나둘씩 이쪽으로 털레털레 걸어 오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에게 흥미가 있는지 빤히 얼굴을 바라 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세."
골대 한곳을 가르키며 앞서 가는 감독을 따라 모두 함께 이동했다. 선수들은 목이 마른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 마시며 따라 오고 있었다.
"자아, 한번 차 보게."
"옛? 어떻게 차는지 모르는데요?"
골대 앞쪽 큰 사각형의 둥근 반원으로 그려 놓은 사각형 선상에 볼을 내려 놓은 얀센은 차 보라고 했다. 선수들이 연습을 하며 차는 장면을 보긴 했지만 눈여겨 본것이 아니라 어디를 어떻게 차는지는 모른다.
"누가 시범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제가 차죠."
- 작가의말
이제 축구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음화에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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