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새로운 보금자리(1)
4화.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
꾸벅.
원장 선생님이 의사 선생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은 퇴원을 하는 날이다. 송청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병원을 나가자 공기부터가 달랐다. 병실안에는 소독약이라는 악취가 풍겼지만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자 이제야 조금은 살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즉시 이루어졌다.
"신야! 택시를 타고 갈런다. 괜찮겠니?"
"예."
신야 놈이 자동차를 두려워한다는걸 알고 있는 원장 선생님이 물어 왔지만 자동차라는 기물을 탈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벽돌이 깔린 도로변에서 원장 선생님이 한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색 자동차인 택시라는 기물이 멈추어 선후 뒷쪽 문이 저절로 열렸다. 어떻게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도 저절로 열리는지 신기해 신야의 기억을 살펴 보았지만 신야도 원리는 모르고 있었다. 택시안에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리가 없었다.
"먼저 타 거라."
원장 선생님의 말에 뒷쪽의 열린 문안으로 뚱뚱한 몸을 밀어 넣었다. 특이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충분히 참을수 있었다. 택시 운전수는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동차를 처음 타 보는 탓으로 앞쪽의 여러가지 물건들을 훔쳐 보았다. 이상한 물건들이 달려 있었지만 무얼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신야의 기억에도 없는 물건으로 신야는 택시는 한번도 타 본적이 없었다.
부우웅.
"아오마츠엔(青松園)으로 가 주세요."
고아가 된탓으로 고아원으로 들어 가야 했다. 고아원은 아동 양호 시설(児童養護施設)이라고 불리운다. 시설 명칭인 아오마츠엔(青松園)은 무슨 인연인지 자신의 이름을 반대로 한 이름이었다.
자동차라는 기물은 마차와는 달리 거의 흔들림도 없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다른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 바퀴는 눈으로 감지할수 없을 정도로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도로변에 널려 있는 건물들도 너무 신기했다. 유리라는 투명한 물건이 흔한지 어느 건물에서나 사용하고 있었다. 걸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신발 또한 특이했다. 모든것이 생소한 탓으로 중원과는 천지차이였다. 마치 별천지에 온듯한 느낌이다.
캉캉캉캉!!!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택시는 스르륵 멈추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이 중간 중간에 칠해진 긴 막대기가 좌우에서 천천히 내려 오고 있었다. 신야의 기억에 있는 건널목에 설치되어 있는 차단봉이었다.
잠시후면 전철이라는 철괴물이 빠르게 달려 올것이다. 이 괴물도 꼭 타 보고 싶었다. 택시 옆에는 자전거라는 물건에 엉덩이를 걸치고 한쪽 발을 바닥에 댄 남자가 건널목 반대편을 바라 보고 있었다.
카르르릉!!!
가벼운 진동과 함께 철괴물이 고속으로 지나갔다. 안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의 동체 시력으로는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빠르기였다. 철괴물이 지나간후 차단봉이 위쪽으로 올라가며 귓청을 때리던 시끄러운 경고음도 멈추었다.
부르릉.
건널목을 건너 간 택시는 검은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가 신야의 기억에 익숙한 곳에 도착해 멈추었다. 원장 선생님이 택시를 운전하는 남자에게 직사각형의 종이 쪼가리를 내밀었다. 지폐라는 종이였다. 신야의 기억으로는 왜놈 나라인 이곳 일본에는 일엔, 오엔, 백엔, 오백엔짜리 동전과 천엔, 이천엔, 오천엔, 일만엔짜리 지폐가 존재한다.
지폐는 중원의 전표와 비교할수 있었다. 원장 선생이 먼저 내리고 뒤를 따라 짐을 들고 내렸다. 아동 양호 시설(児童養護施設) 아오마츠엔(青松園) 앞에 도착했다. 이곳엔 원장 선생님과 주임 선생님, 영양사 선생님, 주방 선생님, 호시노(星野) 선생님과 원생들 8명이 살고 있다. 원장 선생님외에는 자신의 집에서 이곳으로 출퇴근을 한다. 주변의 다른 건물에 비해 낡아 보이는 이층 건물로 규모는 제법 커 보였다.
"들어 가자꾸나."
일층은 사무실과 식당, 주방, 다목적 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층엔 남녀로 구분된 숙소와 원장님 숙소, 그리고 목욕탕과 세탁실, 도서실이 겸비되어 있다. 신야의 기억으로 안쪽이 어떤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아오마츠엔은 조용했다. 다른 애들은 모두 학교라는 곳에서 아직 돌아 오지 않은것 같았다. 이층 숙소로 올라갔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방으로 들어간 송청은 신야가 사용하고 있는 침대에 짐을 던져 놓고 털썩 주저 앉았다.
이층 침대 3개가 놓여 있는 방으로 사방 구석엔 책상이 한개씩 놓여 있었다. 이곳엔 남학생 5명이 같이 산다. 지금쯤 모두 한학년씩 올라 갔을 것이다. 신야의 기억으로 이곳은 4월달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상급 서당에 해당되는 고교 3학년인 스즈키 타쿠로(鈴木拓路), 신야와 같은 중급 서당에 해당되는 중학교 3학년인 여중생 사사키 아오이(佐々木葵), 초급 서당에 해당되는 소학교에 다니는 스도 겐키(須戸玄貴), 세키네 신지(関根信二), 나카무라 아츠야(中村敦也)라는 남자 아이 세명과 니시오 소라(西尾青空), 노다 메구미(野田恵)라는 여자 아이 두명으로 남자 5명과 여자 3명 총8명이 함께 산다. 잠을 잘땐 남녀가 구분된 방에서 자고 평소엔 다목적 홀이나 도서실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날 밤에 어떤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지 신야의 기억을 되새기며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다. 고3인 스즈키와 소3인 스도가 같은 이층짜리 침대를 사용하고 소4인 세키네와 소5인 나카무라가 같은 침대를 사용하지만 신야는 이층짜리 침대 한개를 통채로 사용한다.
다른 애들이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일층만 사용할뿐이다. 텅빈 방안에서 할일이 없었다. 방안은 둘러 볼것이 없었다.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그렇군.'
말이 급선무였다. 일본 말을 술술 내뱉을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해야 한다. 침대 위쪽 난간에 걸려 있는 가방을 끌어 내렸다. 신야의 가방은 꽤 무거웠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애들은 학교에서 돌아 오면 가방은 침대 난간에 걸어 놓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라는 책을 모두 꺼냈다.
모두 중2 교과서였다.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지리, 체육, 음악, 미술, 이과(理科), 가정과, 기술 교과서로 모두 열한권이 가방안에 들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모든 교과서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신야는 시간표라는 그날 공부할 과목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 무식하게 모든 교과서를 가방안에 넣고 다닌다.
지금은 3학년 과정으로 올라간 상태일것이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던 탓으로 3학년 교과서는 받지 않았다. 국어 교과서부터 펼치고 첫장부터 작은 소리를 내어 읽었다. 일본어에 입에 익숙해질때까지 무작정 읽었다.
똑똑.
"신야! 점심을 먹자꾸나. 네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놨어."
원장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조금 놀란듯 눈이 커진채였다. 원장 선생님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 식당 테이블에 앉자 파스타라는 붉그스럼한 무언가를 묻힌 면 요리를 내왔다. 포크라는 물건을 집어 들어 파스타를 먹었다. 처음 맛 보는 음식이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공부를 한거니?"
"...예."
"미안하구나. 네가 그렇게 힘들어 했을 줄은 물랐구나.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려워하지 말고 모두 이야기 하거라. 모두가 널 미워한다고 해도 난 아니란다. 힘들더라도 살아야 한다. 천국에서 네 부모님들이 지켜 보고 계실꺼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학교를 가야 한단다. 이제 너도 중3이야. 네 담임은 시무라(志村) 선생님으로 3학년 1반으로 배정받았다구나. 학교에 가면 직원실을 찾아가 시무라 선생님께 인사드리거라. 그럼 교과서를 줄꺼다."
"...예."
원장 선생님이 내일 할일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여중생인 사사키 아오이(佐々木葵)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도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오이에게 물으면 된다고 했지만 늘 외톨이로 있는 신야의 기억속엔 아오이와 말 한번 나눠 본적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층으로 올라가 도서실로 들어 갔다. 도서실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과 앉아서 읽을수 있는 탁자는 물론 한쪽 구석에 컴퓨터라는 것도 세대나 놓여져 있었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교과서보다는 도서실에 있는 책을 잃는게 더 많은 도움이 될것같아서였다.
책은 제법 많았다. 종이 질이 중원에서 사용하는 종이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깨끗했다. 동화책이나 소설책, 만화책도 있었으며 그림책도 구비해 놓았다. 동화책은 내용이 굉장히 짧았다. 순식간에 한권을 읽을수 있었다. 도서실에 있는 책을 소리내어 읽고 있을때 복도에서 여러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왔다.
소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돌아 온것 같았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라는 둥근 물체를 보고 세시간이나 흘렀다는걸 알게 되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후 아래층으로 내려 가는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다목적 홀이라는 넓은 곳으로 놀러 가는 것이다.
다시 책을 읽고 있을때 간간히 일층에서 아이들의 큰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다지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얼마나 읽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또다시 이층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다시 한시간이 흘러 오후 4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소학교 상급반에 다니는 애들이 돌아 온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중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클럽 활동을 해야 한다. 클럽에 따라 활동하는 날이 다르지만 테니스 클럽같은 부서엔 매일 클럽 활동이 있으며 탁구 클럽은 수요일만 클럽 활동이 없다. 클럽마다 제각각이었다. 신야는 탁구 클럽에 들어 갔지만 3일만에 그만 두었다. 무슨 운동을 할 의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클럽 활동을 끝내고 귀가하면 저녁 6시가 넘어 간다. 유일하게 고등학생인 스즈키는 보통 7시가 넘어야 돌아 온다.
벌컥.
누군가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누군지 알아 볼려고 얼굴을 들었다. 소학교 다니는 이제 5학년이 되었을 노다 메구미라는 여자애였다.
"꺄아악!!"
자신과 눈이 마주친 메구미는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 대었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부르르 떨며 후다닥 밖으로 뛰쳐 나가는 메구미였다. 신야 녀석은 아오마츠엔에 같이 살면서도 다른 애들과 전혀 친분이 없었다.
늘 말도 없이 혼자 침대에 앉아 멍한 상태로 지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때까지 도서실에 계속 책만 읽었다. 6시 30분경이 저녁 식사 시간이다. 고등학생인 스즈키를 제외한 모두가 식당에 모였다. 원장 선생이 퇴원한 자신을 모두에게 소개하며 잘 대해 주라고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식사를 마친 애들은 모두 숙제를 해야 한다. 숙제가 끝난 차례대로 목욕을 하고 늦어도 밤 10시엔 잠자리에 든다. 신야는 목욕은 항상 가장 늦게 했다. 고등학생인 스즈키가 귀가한후 목욕을 끝내면 신야 차례다.
중원과는 달리 이곳은 매일 목욕을 한다. 몸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수도 꼭지만 틀면 신기하게도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지는 이것만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남학생들이 생활하는 방에는 신야를 제외한 이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었지만 신야는 교과서를 읽기만 했다. 도서실에 있는 책들은 방으로 가져 올수 없는 규칙이다.
"밤 10시다. 그만 자자. 아츠야(敦也), 불 꺼."
"매일 나한테만 시켜."
아츠야가 궁시렁대며 불을 켜고 끄는 리모컨이라는 작은 직사각형 물체를 집어 들자 천장의 둥근 전등에서 쏟아지든 밝은 빛이 사라졌다. 교과서를 읽고 있던 자신에게는 물어 보지도 않고 불을 꺼 버린것이다. 깜깜한 방안인 탓으로 교과서를 읽을수 없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옥상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넓은 옥상은 빨래를 말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신야는 옥상으로는 한번도 올라 간적이 없었다. 올라 가지 못하게끔 원장 선생이 못을 박은 탓이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옥상 난간에는 가는 철봉으로 빙 둘러 막아 놓은 상태였다.
달빛과 옆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옥상의 모든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빨래를 말리는 도구들이 접혀져 바닥에 놓여 있는것 외엔 아무것도 없는 옥상이다. 바닥에 앉아 양월심법을 운공했다. 하루라도 빨리 단전을 만들어야 한다. 4월달이라고 해도 한밤중엔 쌀쌀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
달이 많이 기울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심법을 운공했는지는 모르지만 제법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송가 태극권을 천천히 시전하고 방으로 내려 갔다. 모두들 잠에 빠져 든 상태였다. 이른 새벽에 일어날 생각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
"헉헉헉!!!"
- 작가의말
보육원을 일부러 고아원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보육원을 아동 양호 시설이라고 부른답니다.
고아들만 아동 양호 시설에서 생활하는건 아니고 부모에게 학대받은 애들도 같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물론 정부의 지원금과 자원 봉사자, 기부등을 받아 운영합니다.
식량같은 것들을 택배로 보내 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6천자씩 매일 하루에 1화이상씩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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