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비행기안에서(2)
15화.
아메미야는 뒤에서 세번째 줄 왼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여졌다. 의술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다. 이곳 세상엔 의원도 두종류다. 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분류되어 대부분 환자들은 양의학을 배운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간다.
한의학을 배운 의사들은 양의학을 배운 의사에 비해 숫자는 물론 병원수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일본은 불과 1989년에 정식으로 한방 전문의 인정 제도가 발족되었으며 대부분 집 근처 어디에 한방의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양의학 개인 병원이라면 흔하게 찾아 볼수 있다. 그런 실정임에도 자신이 덜컥 한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고 나선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뻔했다. 혹시라도 중학생이라고 발각된다면 경을 칠것이다. 나서지 않는게 좋을것 같았다.
"승객 여러분 부탁 드리겠습니다.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의학에 지식이 있는 분은 제발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몇번이나 기내 아나운서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승객들은 웅성거리기만 할뿐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승객이 환자인지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아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저렇게 몇번이나 방송을 하는 것으로 봐서 중환자가 틀림없었다. 나서지 않을려고 했지만 죽어 가는 사람을 더이상 두고 볼순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는 탓으로 옆자리의 승객에게 양해를 구했다. 중앙 통로쪽으로 걸어 나가자 CA(객실 승무원)가 급히 달려 왔다. 저것만 보더라도 다급한 상황이라고 짐작할수 있었다.
"의사세요?"
"아닙니다. 의학 지식이 조금 있어 나선겁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실망하던 표정의 CA가 얼굴이 조금 펴지며 서둘러 안내했다. 어디로 가는지 앞쪽으로 안내해 커텐까지 걷어 제치고 들어 가고 있었다. 따라 들어간 곳은 넓은 공간에 좌석이 몇개 밖에 없는 객실이었다. 큼직한 의자에 곱게 늙어 보이는 여인이 누워 있었다. 입에는 노란색 마스크같은게 씌워져 있었으며 창백한 얼굴로 쌕쌕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중이었다. 여인 옆에는 젊은 여자가 안절부절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의학에 지식이 있는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의사세요?"
"아닙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아 제가 살펴 볼려고 나선것 뿐입니다."
젊은 여자는 일본인이었다. 다급한 표정으로 질문한 여자는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의사를 데려 온게 아닌탓이다.
"살펴 봐도 되겠습니까?"
"할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알수 있겠어요?"
"그건 살펴 봐야 합니다."
젊은 여자가 할머니라는 여인 옆에서 비켜 주었다. 즉시 할머니의 맥을 잡았다. 덥석 손목부터 잡자 지켜 보던 여인이나 CA들까지 의아해 하며 환자 손녀라고 짐작되는 여인이 불만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뭐 하는거죠?"
"환자분을 살리고 싶다면 모두 조용히 하십시요."
환자의 맥은 엉망이었다. 이 상태로는 언제 숨이 넘어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탓으로 다급하게 몇번이나 기내 방송을 한것 같았다.
찌익.
"아앗! 뭐하는 짓이에요?"
환자가 입고 있던 상의를 찢었다. 급했다. 언제 숨이 멈출지 모르는 상태다. 손녀가 뾰족하게 외쳤지만 일일이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즉시 심장 위쪽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촉진했다.
'역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심장 주변으로 손을 옮겨 가고 있을 때였다.
덥석.
"대체 뭐 하는거죠? 세쿠하라(セクハラ.성희롱)로 고소 당하고 싶은거에요?"
"급합니다. 선택하십시요. 전 의사 자격증은 물론 하리시(はり師.침술사) 자격증도 없습니다. 제가 치료를 하면 불법 치료가 될것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을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절 고소하지 않겠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치료 할수 있습니다."
컴으로 조사해 알고 있는 부분이다. 의사 자격증이 없는 자가 치료를 한다면 불법 치료가 된다고 했다. 불법 치료로 경찰 신세를 지고 싶진 않았다. 괜히 좋은 일을 하고 경찰에 붙잡혀 간다면 원장 선생님이나 나루토 오야카타를 뵐 면목이 없어진다.
"예엣? 저, 정말 치료를 할수 있다는 거에요?"
"확신할순 없습니다. 하는데까지 해 봐야 합니다. 급하다니까요."
"사, 살려면 주신다면 절대로 고소같은건 하지 않을께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고소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앞으로 볼 장면에 대해서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써 주십시요."
뭐든 확실하게 증거를 남겨 놓는게 좋았다. 실패를 한다면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괜히 덤터기는 쓰기는 싫었다.
"정말 살릴수 있는 거에요?"
"이렇게 말씨름하는 중에도 할머니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쓰, 쓸께요. 최선을 다해 주세요."
"좋습니다. 그럼 누가 침...아니, 바늘을 가져 주십시요."
비행기안에 침 같은걸 구비해 놓진 않을 것이다. 바늘이라면 구비해 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바, 바늘은 없어요."
"그럼 나무 젓가락과 작은 칼을 가져 다 주십시요. 급합니다."
후다닥.
CA 한명이 다급히 달려 나갔다. 그동안 손녀라는 여인은 펜으로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할머니로는 보이지 않는 환자였다. 중년 여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평소에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쓴것 같았다. 심장 부근을 만져 보며 어느쪽이 이상한지 다시 꼼꼼히 살펴 보았다. 이 할머니는 심장 부근의 혈맥이 좁아진 상태로 그곳을 넓혀 주면 치료가 될것이다.
"여, 여깃어요."
"지금부터 절대로 말을 걸지 마십시요."
지켜 보던 이들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부탁한 나무 젖가락과 작은 칼을 내미는 CA에게 받아든 나무 젖가락을 쪼개 칼로 다듬기 시작했다. 가는 침을 만들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해 칼을 놀렸다.
스윽! 쓱!
가느다란 나무침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칼 놀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아메미야였다. 문제는 가는 젖가락에 내력을 불어 넣는 일이다. 자칫하면 젖가락이 터져 나갈것이다. 연습이 필요했다. 잡고 있는 칼에 내력을 조금씩 불어 넣었다.
투둑.
오른팔의 세맥이 뚫리는 소리가 들려 오며 칼에 내력이 들어 가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불어 넣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내력이 들어 가면 칼은 폭발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신까지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다행이 예전의 경험이 큰도움이 되었다. 내력은 순조롭게 들어가 칼에 머물렀다. 시간이 없었다. 가늘게 깎은 나무침에 천천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내력을 불어 넣었다. 칼보다는 더욱 세심하게 정신 집중이 필요했다.
푹!
"꺄아악!"
"아앗!"
가늘고 긴 나무침을 심장 부근에 푹 박아 버리자 지켜 보던 여인과 객실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뭐 하는 짓이에요? 할머니를 죽일 생각이에요?"
"죽일지 살릴지는 잠시만 기다려 보면 알수 있을 겁니다."
성격이 급한 손녀같았다. 손녀가 뭐라고 하던 말든 박아 넣은 나무침을 살펴 보며 심장에 손가락을 대 제대로 뛰는지 확인했다. 불규칙적이던 심장이 서서히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창백했었던 안색도 조금씩 혈기를 띄어 가고 있었다.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본 결과 확신할수 있었다.
쑥.
"성공입니다."
"저, 정말 치료가 되었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나무침을 잡아 뺐다. 원래는 이 상태로 병원에 가서 뽑는게 좋았지만 병원으로 간다면 나무침을 보고 수상하게 생각할것이다. 자신이 치료했다는게 드러 날게 분명했다. 손녀가 서약서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승객 명단을 입수해 조사하면 발각될것이 틀림없다. 자신이 이곳으로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았다. 누군가는 스마트 폰이란 걸로 녹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표정을 보십시요."
"저, 정말이네요."
꾸벅.
"감사합니다. 이름을 알수 있을까요?"
"아니요. 모르는게 좋을 겁니다. 서약서를 이리 주십시요. 그리고 귀찮게 찾아 오진 마십시요. 그럼 전 실례하겠습니다."
얼떨결에 내민 서약서를 받아 든 아메미야는 즉시 자신이 있는 좌석으로 돌아 가 앉아 눈을 감았다. 이번 일은 자신에게도 큰도움이 되었다. 내력의 수발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것이다.
투두둑.
왼손으로 내력을 보내 세맥을 뚫었다. 다음엔 양손으로 내력을 보내 보았다. 좀전보다 수월하게 내력을 보낼수 있었다.
'좋군.'
만족감에 물들어 잠을 청했다. 지루한 비행 시간이다. 비행기안에서 할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앞좌석에 달려 있는 모니터로 영화를 보거나 신문을 부탁해 읽는것 뿐이다.
흔들.
지루한 비행이 끝났다. 비행기는 무사히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은 지금 대낮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전철을 몇번이나 갈아 타고 아오마츠엔(青松園)으로 향했다. 한여름철인 관계로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잘 다녀 왔니?"
"예."
아오마츠엔으로 들어 서자 원장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원생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지 조용했다. 야외 수영장으로 놀러 갔다고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침대에 앉아 배낭을 열었다. 신선수가 들어 있는 생수병은 무사했다. 그러고보니 원장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사지 않았다.
배낭속을 뒤지자 과자 종류와 건과류가 나왔다. 모두 중국 제품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원장 선생님께 모두 드렸다. 보잘것없는 선물인 탓으로 괜시리 민망해졌다. 많은 돈을 벌면 제대로 된 선물을 안겨 줄 생각으로 훗날을 기약했다.
"전 운동을 하고 오겠습니다."
"더운데 열사병 조심하거라."
"예."
반바지, 티셔츠 차림에 슬러퍼를 싣은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 밖은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를 정도였다. 슬러퍼를 벗어 손에 들었다.
"우웃!"
발바닥에 불이 붙은듯 화끈거렸다. 그대로 서 있는다면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천천히 달렸다. 스미다 강변 도로까지 천천히 달린후 강변 도로에 도착하자 마보 자세를 취한후 옆구리에 팔을 바짝 붙여 슬러퍼를 잡은 손바닥을 위로 한채 앞으로 손을 번갈아 내밀어 걸어 갔다. 마보 자세에 비해 상체를 앞으로 내민채였다. 이때에 발뒷꿈치가 바닥에서 뜨면 않된다. 뒷꿈치에 중심을 두면서 미끄러지듯 앞으로 한발씩 나아 가야 한다.
스윽.
마치 양변기에 앉은 자세로 한발씩 내밀며 손을 뻗으며 전진하는 것이 스리아시(すり足)라는 스모의 기초 트레이닝중의 하나다. 강변 도로의 아스팔트 위를 한발씩 전진하는건 쉽지 않았다.
스리아시는 도효(土俵)라는 흙을 단단히 굳힌 바닥위에 뿌려 놓은 모래위에서 하는 훈련이지만 딱딱한 아스팔트위에서 하는 탓으로 발바닥에 불이 붙은듯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스리아시로 전진하면서 간혹 시코(四股)를 밟아 주어야 한다.
선 자세로 양손을 허벅지에 가볍게 댄후 한쪽 다리를 옆으로 일직선으로 높게 들어 올린다. 상체를 들어 올리는 다리 반대쪽으로 45도 각도로 기울여 곧게 뻗은 다리를 들어 올릴수 있는 한계까지 들어 올린후 바닥을 강하게 찍어 누르며 허벅지가 지면과 수평이 되게 한다.
이때에 양손은 무릎에 가볍게 올린채다. 양다리를 번갈아 가며 반복하는 훈련이 시코(四股)를 밟는 기초 훈련이다. 스리아시로 스미다 공원으로 이동하며 간간히 시코를 밟으며 공원에 겨우 도착했다.
"헉헉헉!"
숨이 턱끝까지 차며 목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가장 뜨거운 시간대인 한여름의 3시인 탓으로 비 오듯 흐르는 땀과 피가 베어 나온 발바닥이 화끈거리며 아려왔다. 내공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채였다. 몸을 단련시키기 위한 훈련으로 내공을 사용하면 훈련을 하는 의미가 없다.
촤아악!
벌컥벌컥.
스미다 공원에 도착해 수돗물을 틀어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었다. 수돗물은 미지근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공원의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발바닥이 까진 탓으로 피범벅이었다. 스리아시와 시코를 밟으며 공원으로 올때까진 정신을 집중한 탓으로 아픈줄도 몰랐지만 공원에 도착한후 천천히 걷자 고통이 엄습해 왔다.
"맴맴맴맴."
나무위에서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고 있었다. 무더위 탓인지 매미를 잡을려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공원 어디서나 여름철엔 매미들이 울어 댄다. 신야의 기억으로는 아이들은 매미를 잡을려고 공원으로 몰려 오는 시기다. 여름 방학 과제로 자유 연구 숙제를 하기 위해 매미의 성장을 관찰하는 아이들도 많다.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땅속을 뚫고 매미들이 올라 온다. 나무위로 올라간 매미는 껍질을 벗고 변태를 시작한다. 그 과정을 관찰해 사진을 찍어 자유 연구로 과제로 제출하는 소학생들은 흔히 찾아 볼수 있을 정도다. 정신을 집중하고 월광심법(月光心法)을 운공했다. 십이주천(十二周天)을 운기하자 발바닥의 고통이 많이 사라진듯했다. 대부분의 내공 심법은 운기(運氣)와 요상(療傷)을 병행한다.
훌러덩.
티셔츠를 벗었다. 예전의 뚱뚱하고 볼품없었던 상체가 그동안의 수련으로 인해 점점 단단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쿵!
"윽!"
- 작가의말
일본의 공원에는 한여름철엔 매미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여름 방학과 겹치는 덕으로 아이들이 매미를 잡으며 놀기도 한답니다.
찾아 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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