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1월 바쇼(1)
44화.
토라키오상과 옥상에서 명상을 한후 그 다음엔 보법 연습이 이어졌다. 보법 연습이 끝나면 대결을 해 어떤식으로 운용하는지 연습시키는 나날이 이어졌다.
"야! 둘이 매일 옥상에서 뭘 하냐?"
"명상이요. 선배들도 같이 할래요?"
"......."
매일 옥상으로 올라 가는 탓으로 정말 명상을 하는지 옥상으로 확인하러 온 선배도 있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내려 갔을 뿐이다. 토라키오상은 나날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런식이라면 어느 정도 몸에 베인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아침 훈련때 사용해 보십시요."
"고맙다."
다음날 아침부터 토라키오상은 도효위에서 다른 선배들과 훈련할때 삼각보법을 사용했다. 상대는 몸집이 큰 사토상이다. 몸집이 큰만큼 움직임이 둔하다. 뻗어 오는 팔을 조심하며 보법을 시전해 좌우로 움직이며 빈틈을 노려 안으로 파고 들어 마와시를 잡고는 유리한 입장을 취한채 밖으로 밀어 냈다. 사토상과 몇번이나 대결해 모두 이겼다.
***
11월 말이 되어 드디어 스모 교습소 졸업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교습소를 나간건 한달도 되지 않았지만 유익한 나날이었다. 지루한 졸업식이 끝나고 한명씩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엔 상장이라고 큼직하게 쓰여져 있었다. 졸업장이 아니라 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12월도 이주일 밖에 남지 않은 지점에 1월 바쇼 반즈케효(番付表)가 발표되었다. 고바야시상은 산다메(三段目) 서(西) 31마이메(枚目), 혼마상은 죠니단(序二段) 동(東) 72마이메(枚目), 사토상은 마쿠시타(幕下) 동(東) 52마이메(枚目), 토라키오상은 마쿠시타(幕下) 서(西) 17마이메(枚目), 자신은 마쿠시타(幕下) 동(東) 힛토(筆頭.첫번째)인 1마이메(枚目)였다. 토라키오상을 제외한 모두가 조금씩 올라간 상태다.
"아메미야는 1월 바쇼가 끝나면 세키토리(関取)가 되어 있겠다."
쥬료(十両)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의 성적에 달려 있지만 4승 3패만으로도 쥬료로 승급할수 있는 위치였다. 토라키오상은 우승하지 않으면 승급할수 없는 위치였다.
"자아, 모두 반즈케효를 봉투에 넣은후 1월 바쇼 포부를 생각해 놔."
***
12월 31일 자정이 되어도 제야의 종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작년에만 해도 들려 왔었지만 올해는 들려 오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진건 아닌지 궁금했다.
"주민들이 제야의 종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서 일꺼야."
절(寺)이나 신사(神社)는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절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묘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 일본이다. 묘비 아래에 화장한 뼈가 들어 있는 묘지다.
그런 절에서 제야의 종을 치지만 일부 주민들이 항의를 하면 종을 치지 못하게 된다. 마츠리(祭り.축제)때에도 일부 주민들의 항의로 인해 음악이 없는 축제가 열리는 곳이 있을 정도다.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월 아침 모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했다. 오늘 아침에는 훈련이 없는 날이다. 오카미상이 오토시다마(お年玉.세뱃돈)를 한개씩 건네 주었다. 작은 봉투에 들어 있는 오토시다마는 만엔이었다.
서둘러 아오마츠엔(青松園)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준비한 물건이 있었다. 아동 양호 시설인 아오마츠엔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매년 1월 1일을 고대하고 있다. 오토시다마라는 명목으로 용돈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돈을 받는건 아니다. 부모들 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친척들이나 조부모에게서 오토시다마를 받을수 있지만 아오마츠엔의 아이들은 아니다. 원장 선생님이 작은 봉투 한개씩을 건네 줄뿐이다.
학년에 따라 오토시다마는 모두 다르다. 고등학생은 5천엔, 중학생은 3천엔, 소학생은 천엔이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몇만엔이나 되는 오토시다마를 받아 서로 얼마나 받았는지 자랑한다. 그들을 부럽게 생각하는 아오마츠엔 아이들이 주눅들지 않게끔 듬뿍 안겨 줄 생각이다.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원장 선생님께 인사를 먼저 하고는 아이들을 모두 모아 달라고 했다. 지금은 7명이 생활하고 있다. 가장 연장자인 고교 3학년생인 스즈키상은 학교를 졸업하면 나가야 한다. 이미 갈곳은 정해져 있는 상태다.
원장 선생님이 알고 있는 코우무텐(工務店)에 들어 가기로 했다. 코우무텐은 토목, 건축일을 하는 회사다. 스즈키상이 들어 가는 코우무텐은 주로 주택을 건설한다. 일본의 단독 주택은 대부분 목재로 뼈대를 구축해 3층까지 짓는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탓으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지진이 발생한것처럼 집이 흔들리기도 한다. 1층 식당으로 하나둘씩 내려 오며 새해 인사를 했다. 잠시후 모두가 모였다. 왜 모인 것인지는 모를것이다.
"자아, 한명씩 받아."
"오토시다마?"
"그래."
"와아! 고마워."
소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다. 오토시다마를 넣는 전용 봉투는 작은 봉투지만 평범한 흰봉투를 준비해 제각기 이름을 쓴 봉투를 건네 주었다.
"근데 넌 나보다 어린데 받아도 되냐?"
"물론이야. 난 지금 돈을 벌잖아. 타쿠(拓)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내게 주면 돼."
고3인 스즈키 타쿠로(鈴木拓路)는 이곳에선 타쿠라고 부른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부담스러워했다.
"와아! 5만엔이다."
"뭐? 신야! 소학생에게 그렇게 많이 줘도 되는거니?"
"오늘은 일년에 한번 있는 특별한 날이잖아요."
깜짝 놀란 원장 선생님이었다. 애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기 죽지 않게끔 소학생들에겐 5만엔씩을 주었고 고등학교 1학년인 아오이(葵)에겐 10만엔을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타쿠에게는 20만엔을 주었다. 타쿠는 이곳을 나가면 코우무텐에서 준비해 준 집에서 생활한다. 이것저것 구입할 물건들이 많을 것이다.
"너희들 4만엔은 저축하고 만엔씩은 맘대로 쓰거라."
"신야! 고마워."
그동안 여자애들과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단번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돈의 힘은 과연 대단했다.
"자아, 마시거라."
원장 선생님과 사무실에 앉았다. 할말이 있어서였다. 이제 소학교 6학년이 된 아츠야는 훗날 대학에 간다면 학자금을 모두 대 준다고 약속했었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너무 부담되지 않는거니?"
"앞으로 많이 벌꺼에요. 그러니까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애들은 모두 가라고 하세요. 그리고 아오이도 대학에 가라고 하세요."
"알겠다. 네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도와 주거라."
공평하게 모두를 대학에 보내 주고 싶었다. 일본에선 보통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만 간다. 전국의 대학 정원도 40%가 미달이다. 지방의 대학중 정원 미달인 곳은 얼마든지 들어 갈수 있다.
대학만 졸업하면 회사 취직율은 90%가 넘는다. 대신 회사에 취직한후 3년내에 이직하는 신입 사원들은 30%가 넘어 간다고 한다. 아오이는 자신과 동갑인 고등 학교 1학년이다. 올해 2학년으로 올라 간다. 아마 대학 진학은 생각지도 않을것이다.
여자인 아오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곳이 애매하다. 살집은 원장 선생님이 구해 줄것이지만 일은 알아서 찾아야 한다. 아마 알바 자리를 찾아 결혼할때까지 여러 알바를 전전할것이 뻔했다.
알바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수 있지만 대학만 졸업하면 번듯한 직장을 구할수 있을 것이며 장래에 하고 싶은 일도 할수 있을 것이다. 아츠야외엔 자신이 대학 자금을 댄다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 원장 선생님에게 돈을 보내 애들에게 학자금을 대 주기로 했다.
"고맙구나."
"아니요. 제가 원장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고쳐 먹고 새 삶을 사는 것이니까요."
이 몸의 주인인 신야가 자살 소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신야 몸으로 들어 오지도 않았을것이다. 덜떨어진 신야가 백팔십도 바뀐 이유를 이런식으로 설명해야 나중에 별탈이 없을 것이다. 이제 며칠후면 1월 바쇼가 시작된다.
1월 바쇼에선 토라키오상은 아직 삼각보법을 사용할순 없다. 거의 몸에 익숙해진 상태지만 무의식적으로 움직일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선배들과 대결할땐 보법을 사용해 모두 이겼지만 같은 마쿠시타 선수들을 상대로는 아직 무리일지도 모른다. 연습이 더 필요했다.
***
"네가 힛토(筆頭.첫번째)인 나루토류(鳴戸龍)냐?"
"예. 잘 부탁 드립니다."
1월 바쇼 2일째 대기실에 들어 가자 쥬료로 보이는 자가 말을 걸어 왔다. 쥬료 선수는 마게(髷.상투) 모양이 다르다. 마게 앞쪽을 은행잎처럼 세워 활짝 펼친 오오이쵸(大銀杏)라는 머리 스타일이다.
세키토리라고 불리우는 쥬료부터는 시합을 할때엔 오오이쵸 스타일로 도효로 올라 간다. 아직 쥬료로 올라 가지도 않았지만 마쿠시타 힛토(筆頭)인 1마이메(枚目)는 쥬료 선수들과도 시합을 한다.
쥬료 선수들중 부상으로 결장을 했을때 쥬료 선수 인원이 부족해 지기 때문에 땜방을 하는 것이다. 쥬료 선수의 시합은 2시간뒤에나 시작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찍 대기실로 들어 와 있었다.
"난 야고(矢後)라고 한다. 네가 그렇게 강하다고?"
"운이 좋았을뿐입니다."
"나하고 대결할땐 살살해라."
"......"
야오쵸(八百長.승부 조작)를 하라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일부러 져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노려 보는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점점 시합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부담은 물론 긴장도 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앉아 기다리고 있을때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 왔다.
저벅저벅.
세키토리(関取)들인 쥬료들은 마쿠시타 1마이메인 자신의 시합이 끝나면 케쇼마와시(化粧まわし)를 착용하고 도효위로 올라 가야 한다. 대기실에는 이미 쥬료 선수들과 츠케비토(付け人.따까리)들로 꽉 차 있는 상태였다. 요즈음은 스모 인기가 많아 쥬료 시합부터는 관중석이 거의 꽉 들어 찬다. 지금도 만원 관중이었다.
도효 아래로 인사를 하고는 비어 있는 동쪽 자리에 앉았다. 도효 위에선 이제 시합이 벌어 질려고 했다. 시합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도효 위에서 밀려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로 굴러 떨어 지는것만은 조심해야 한다.
큰덩치에 짖눌려 버리면 부상을 입게 된다. 도효위의 시합은 간단하게 끝났다. 한쪽이 발이 미끄러져 양손을 바닥에 대어 버린것이다. 너무 싱거운 승부였다. 다음 시합은 자신의 오른쪽 옆 승부 심판 옆에 앉아 있는 동(東) 2마이메(枚目)인 데와하야테(出羽疾風) 선수 차례다.
상대는 코우토쿠잔(荒篤山)이라는 서(西) 12마이메(枚目) 선수다. 시간이 다 되어 서로 머리부터 충돌했다. 박 깨지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스모 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승리에 혼을 싣는다.
둘은 박진감 넘치는 시합이었다. 쯧빠리의 응수에서 마와시를 먼저 잡은 데와하야테(出羽疾風) 선수가 도효 끝자락까지 밀어 붙였지만 몸을 비틀며 옆으로 쓰러 뜨린 코우토쿠잔(荒篤山)이 역전으로 승리했다. 분한듯한 데와하야테(出羽疾風)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짝!
드디어 자신 차례다. 도효 위로 올라가 가슴 중앙에 모은 손으로 손뼉을 치고 양팔을 벌려 시코를 밟았다. 시간이 남아 돌진 않아 소금은 놓여 있지 않은 상태다.
"오오!"
여전히 관중들이 시코를 밟는 모습에 함성을 쏟아 내고 있었다. 도효 중앙으로 이동해 다시 한번 시코를 밟아야 한다.
"와아아!!"
시코를 밟을때마다 관중석이 들썩거렸다. 바닥에 양주먹을 대고 먼저 일어 났다. 상대는 서(西) 11마이메(枚目) 다이쇼류(大翔龍)라는 자신의 시코나처럼 용(龍)자가 들어가 있는 선수였다. 두마리의 용의 대결이다. 제한 시간이 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먼저 양주먹을 흰색 시키리센 바닥에 대며 상체를 조금 앞쪽으로 기울였다. 이런식으로 자세를 취하면 상대방은 스스로의 타이밍에 일어 설려고 가늠하기 시작한다. 다이쇼류(大翔龍)도 왼주먹을 먼저 바닥에 대고 오른 주먹을 언제 바닥에 대고 일어설지 가늠하고 있었다.
스윽!
결정이 되었는지 오른 손을 살짝 뻗어 바닥을 쓸고는 머리를 먼저 내밀며 일어서고 있었다. 이대로 충돌해도 문제없었지만 이번 바쇼는 재미있는 시합을 할 생각이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자신의 시합 장면을 촬영하고 있을 아오키상에게도 미리 말해 놓았었다.
빙글.
완전히 일어 나지도 않은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았다. 다이쇼류(大翔龍)는 전면에 자신이 없자 즉시 한쪽 발을 내밀며 왼쪽으로 돌아 설려고 했다.
덥석.
다이쇼류의 왼쪽 팔을 잡고 힘껏 당기듯 뿌려쳤다. 급격하게 앞쪽으로 몸이 쏠려 버린 다이쇼류는 몸 중심을 잃고는 바닥으로 엎어졌다.
"와아아아!!"
재미있는 시합이었는지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기실로 걸어 가자 통로쪽에 케쇼마와시(化粧まわし)를 착용하고 대기하고 있던 쥬료 선수들이 빈정거렸다.
"약은 놈이군."
"덩치가 작아서잖아."
"나라면 한방에 끝내 버린다."
쥬료 선수들이 무슨 말을 하던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과는 다음 바쇼때나 이번 바쇼 후반쯤에 대결할지도 모른다. 그때에 자신의 힘을 보여 주면 된다.
"수고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고 변화를 주는 일은 될수 있으면 하지마라. 다른 선수들이 욕할꺼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는게 보는 관중이나 선수들도 납득할꺼다."
- 작가의말
제야의 종과 음악이 없는 축제는 실제로 있습니다. 그리고 목재로 지어진 단독 주택은 바람이 심할땐 지진이 발생한것처럼 가볍게 흔들립니다. 일본에서도 대학은 학자금을 빌리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달이 이자를 내고 졸업후엔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야 하므로 부담이 크답니다.
당므화에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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