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후손을 위하여(완결)
143화.
"넌 계속 이곳에 있을꺼냐?"
"돈을 벌려면 이곳에서 번듯한 직장을 찾아야 합니다."
"돈은 내가 줄테니까 오당촌으로 돌아 가자. 산골이지만 그곳에서 할수 있는 일을 찾으면 돼. 지금 오당촌엔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중이야. 산골이라서 불편한 점은 많겠지만 자동차를 구입하면 그렇게 불편하진 않을꺼다."
송동의 친구인 왕장명이 목욕을 끝내고 돌아 왔다. 교대로 송동이 목욕을 하러 가고 왕장명에게 먹고 싶은건 뭐든 시키라고 한후 이야기를 했다.
"넌 무슨 무공을 배운거냐?"
"정식으로 뭘 배운건 아닙니다. 이소룡을 좋아해 흉내낼뿐입니다."
"무공을 가르켜 준다면 배울 생각이 있는거냐?"
"정말이십니까? 가르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눈이 커진 왕장명은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무공을 동경하는것 같았다. 의욕이 넘치는 왕장명은 몸이 좋았다. 무공을 배우기에 좋은 몸매였다.
"그럼 날 따라 송동의 고향인 오당촌으로 가자."
"옛? 이곳에서 배우는게 아닙니까?"
이번에도 화들짝 놀라는 왕장명이었지만 급히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오당촌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것 같았다.
"오당촌에 가면 일은 할수 있는 겁니까?"
"일이라면 당장은 논밭에서 일하는 것 밖에 없어. 돈이 필요한거냐?"
"...예."
왕장명이 털어 놓았다. 부모가 모두 죽어 동생들을 할아버지가 돌보고 있다며 번 돈을 보내 주어야 동생들이 학교에 다닐수 있다고 했다.
"걱정마. 돈이라면 얼마든지 얼마 든지 줄수 있어. 근데 운전 면허증은 있냐?"
"이. 있습니다."
"좋아. 그럼 자동차를 구입하자."
왕장명의 입장에서는 좋아 하는 무공도 배우고 돈도 벌수 있어 일거양득일것이다. 친구를 구할려고 달려온 마음가짐이 맘에 들었다.
***
"이미 다 갚았는데 뭘 더 갚으라는 겁니까? 더이상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전화인데 그렇게 큰소릴 치는거냐?"
"그게...돈을 빌려 다 갚았는데도 남아 있다며 계속 갚으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송동은 빚을 지고 있었다. 고작 천위안을 빌린 것이 빌미가 되어 빚 독촉을 받고 있었다. 돈을 갚아 준다며 전화해서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이런 일은 빌려 준 놈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한다. 원금을 모두 갚았다고 해도 이자를 빌미로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수도 있다.
끼이익.
약속한 장소 앞에 자동차 한대가 멈추어 섰다. 두명이 내려 송동을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오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놈들 같았다.
"네가 송동이냐?"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송동에게 받을 돈이 얼마지?"
강우가 끼어 들었다. 송동이 저들을 상대할순 없었다. 자신쪽으로 얼굴을 돌린 둘이 눈을 반짝였다.
"넌 누구냐?"
"굳이 알 필요는 없잖아. 얼마냐?"
"음...3만 위안(약510만원)이다."
"뭐라고? 내가 빌린건 천 위안이야."
깜짝 놀란 송동이 펄쩍 뛰며 끼어 들었다. 천 위안이 3만 위안으로 불어난 상태다. 사채업을 하는 놈들치곤 악덕한 놈들에 속한다.
"넌 나서지 말거라. 1만 위안으로 퉁치자."
"1만? 계산이 틀려. 3만!"
"후후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저벅.
놈들쪽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즉시 한놈이 주먹을 뻗어 왔다. 무엇때문에 접근하는지 놈들도 파악한것이다.
휘익.
덥석.
꽈악.
퍽!
"아악!"
뻗어 오는 오른 주먹을 왼손바닥으로 감싸 쥐고는 힘을 주며 오른쪽 발로 복부를 차 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놈이 즉시 달려 들었다.
휘익.
이놈도 주먹을 휘둘러왔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주먹에 맞을 강우가 아니었다. 이런 놈들은 떼거지로 몰려 온다고 해도 순식간에 처리할수 있을 정도다.
퍽!
뻗어 오는 주먹을 향해 얼굴을 들이 밀어 한걸음을 다가 가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리며 오른 주먹을 복부에 박아 넣었다.
"큭!"
배를 움켜 쥐고 바닥에 주저 않은 놈은 고통이 심한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것이다.
"일어 나지 않으면 이번엔 팔다리를 부러 뜨린다."
"으으..."
"크으으...."
일어 나라고 해도 일어날 힘이 없는지 두놈 모두 배를 움켜 쥐고 괴로워했다. 두번째로 달려 든 놈의 얼굴 바로 옆에 발을 찍었다.
쿵!
생각같아선 얼굴에 찍어 버리고 싶었지만 대낮인 탓으로 지켜 보는 눈들이 있었다. 두놈이 바닥에 쓰러진채 괴로워하자 지나 가던 몇몇 사람들이 힐끗거리고 있었다.
"허억!"
얼굴 옆의 보도 블럭이 움푹 들어 갔다. 놈에게 경고를 해 준것이다. 눈을 찔끈 감았던 놈이 눈을 뜨고 보도 블럭을 확인하고는 덜덜 떨었다.
"일어 나지 않을꺼냐?"
"...으으."
두놈이 고통스러운 얼굴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직도 배를 움켜 쥐고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일어난 놈들을 노려 보며 입을 열었다.
"송동의 빚은 얼마나 남은거냐?"
"......."
"...없, 없습니다. 이미 다 갚았습니다."
"그렇냐? 그럼 꺼져라."
비틀거리며 자동차쪽으로 걸어 간 놈들이었다. 송동은 이제 더이상 협박당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만약 놈들이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 온다면 놈들의 조직까지 뿌리 뽑을 생각이다.
"우리도 가자."
송동과 왕장명은 어벙벙한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두놈을 제압한 탓이다. 자동차는 왕장명 명의로 구입해야 했다. 당분간은 왕장명이 몰고 다녀야 했기에 왕장명이 마음에 들어 하는 차로 골랐다.
***
중국에 들락거린지 8년이나 지난 상태다. 비자 문제로 몇년동안이나 계속 거주할수 없는게 귀찮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유명인인 탓으로 불법 체류가 발각되면 큰이슈가 될것이다. 때문에 3개월 단위로 한국과 일본을 들러 외할머니와 원장 선생님도 만나 볼겸 오고 간것이다.
오당촌은 많이 변했다. 8년전엔 네 가구가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두 가구만 남은 상태다. 송강 가족과 오당촌으로 이사해 온 왕장명 가족이었다. 오당촌의 계단식 밭은 평지로 밀어 버려 큰비닐 하우스가 들어 선 상태로 하우스안에는 토마토를 재배해 출하하고 있었다. 두 가족이 먹고 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우스는 최신식 장비가 설치되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관리한다.
"자아, 출발하자."
5일후 상하이에서 전국 무술 대회가 열린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무술 대회로 그동안 송동과 송예, 왕장명과 동생들 세명 모두 강우에게서 무공을 배웠다. 장명이는 자질이 뛰어났다. 몸이 유연하고 탄력은 물론 순발력도 남달랐다. 장명이와 동생들에겐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먼훗날 오당촌을 벗어 나더라도 송가의 무공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번 무술 대회엔 송동과 송예, 왕장명, 그리고 왕장명의 동생인 왕상휘(王翔輝)가 참가한다. 송예는 예전의 송예가 아니다. 마음의 문을 굳건히 닫고 있었던 송예의 일기장을 봤을땐 할말을 잃었었다.
송예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부모가 있는 애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부럽다고 생각할수록 자기 자신이 비참해 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1초, 1분, 1시간, 1주일, 1개월 ,1년...절대로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난 로봇이 되어 버렸다. 혼자가 되면 끝없는 낭떠러지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이 심정을 털어 놓고 싶지만 누군가의 앞에 서면 즉시 마음속이 메말라 버린 강이 되어 버린다. 유일한 친구였던 얼룩이가 사라졌다. 믿을수 있는건 자기 자신뿐이다. 자신의 속마음은 누구에게도 들려 주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처절한 마음속의 외침이었지만 속으로 꾹 억누른채 누구와도 대화도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은채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룩이는 집에서 키우던 개였다. 유일한 친구였던 개는 보신탕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으로 더욱 철저히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군채였다. 그런 송예에게 혼자가 아니라는걸 강조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갔다.
송예에게 필요한건 친구였다. 또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왕장명의 가족을 오당촌으로 이주시키고 무공도 가르켰다. 자신감을 불어 넣기 위해 무공으로 심신을 단련케 한것이다. 조금씩 밝아져 가는 송예는 지금은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연 상태다. 송예는 중원에서의 자신이 딸아이와 동성동명이다. 그런 탓으로 더욱 애정이 가는 애였다.
"예(藝)! 여성부에서 우승할수 있지?"
"물론이죠. 형(型)만으로 판단하는게 아쉽지만 그래도 우승할수 있어요."
"그래. 너라면 충분히 우승할수 있을꺼다."
성인 여성부는 송예가 우승할수 있을 것이며 남성부에서는 왕장명, 고등부에서는 왕상휘가 우승할수 있을 것이다. 송동은 장명이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와아아아!!!"
상하이에서 열린 전국 무술 대회는 참가한 선수들은 대부분 내공이 없는 자들이었다. 절도있게 무술 시연을 하고 있지만 겉모습만 번드르한 쓸모없는 무술뿐이었다. 무공 대회가 아니라 무술 대회인 탓으로 중원에서 처럼 서로 대련으로 승부를 내는 방식이 아닌 형(型)만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지만 자신이 개최하는 대회가 아닌 탓으로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참가 번호 263번 오당촌 송가장의 왕장명!"
짝짝짝짝!!
드디어 장명이 차례가 되었다. 중앙에 선 장명이는 포권을 한후 송가 태극권을 시연했다. 권법, 봉법, 창, 칼등의 무기부로 구분되어 있는 대회에 오당촌에서 참가한 제자들은 모두 권법부에 참가했다.
쩡!
소리부터가 남달랐다. 다른 몇몇 내공을 보유했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이 시연하며 주먹을 뻗을땐 '펑'하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장명이는 공기를 찢어 발기는 '쩡'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른 선수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실전 위주의 권법이다. 심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층 관중석에서 조용히 지켜 보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 다섯명이 제각기 100점씩 총 500점으로 순위를 책정한다.
쩡!
오른 주먹을 힘차게 뻗은 장명이는 손가락을 펴면서 안쪽으로 구부려 손등으로 상대방을 치고는 왼손 바닥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때렸다. 장명이는 지금 송가 태극권의 시연을 끝내고 가상의 상대로 대련하고 있는 중이다.
형(型)의 시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이런식의 방식을 취한 것이다. 장명이의 시연이 끝났다. 무술 대회는 총3일에 걸쳐 열린다. 첫날과 이튿날은 예선전이며 사흘째가 결승전이다.
참가자는 5천명이 넘었다. 예선전이 끝나면 결승 진출자가 발표된다. 결승전에 진출할수 있는 선수들은 각 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권법부는 30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장명이와 송동은 결승전에 진출했다. 장명이가 1위, 송동이 2위였다. 장예와 왕상휘가 제각기 예선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짝짝짝짝!!
심판들이 제대로 평가해 주었다.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시연을 선보인 왕장명이 남자 성인 권법부에서 우승했으며 송동이 2위였다. 송예와 왕상휘도 모두 우승했다. 오당촌의 송가장이 어떤 곳인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무공은 자신에게 배웠다고는 말하지 말라고 해 두었었다. 송강에게 배웠다고 말하라고 해 두었다.
"이제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어딜 가시는지요?"
"나도 내 할일을 할런다."
자신의 제자들은 배울만큼 배웠다. 이제 스스로 수련하는 일만 남았다. 자신의 엄청난 재산도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조용히 떠났다.
완결.
- 작가의말
그동안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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