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멸마 대주 송청(1)
1화.
"헉헉헉!"
한쪽 무릎을 꿇은채 바닥에 꽂은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놈의 몸뚱아리들을 죽일듯이 노려 보듯 송청(松淸)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폭사되던 안광(眼光)을 거두어 들였다. 마두(魔頭) 한놈을 잡기 위해 멸마대(滅魔隊) 전체가 동원되어야 했다. 멸마대 대원 32명중 13명이 마두 놈에게 당했다.
북철성(北鐵城)에는 5개의 무력 부대가 존재한다. 청룡대(靑龍隊), 백호대(白虎隊), 현무대(玄武隊), 주작대(朱雀隊), 멸마대(滅魔隊)다. 다른 4대 무력 부대들과 달리 멸마대는 중소 문파에 속한 가문 출신 소가주나 차남들로 이루어져 있다. 송청은 송가장(松家莊)의 소장주(小長主)로 멸마대 대주 신분이다.
이번 임무를 마지막으로 대주 자리를 내놓고 그리운 장원으로 돌아 갈 생각이다. 이미 삼십줄에 접어 든 탓으로 장원으로 돌아가 장원 일을 돕기 위해서다. 이번 임무를 하달 받기 전에 멸마대 대주 자리를 내 놓은 상태였었다. 북철성 군사인 사마영달(司馬英達)의 간곡한 부탁에 정 들었던 북철성을 떠나는 김에 마지막 선물을 안겨 준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
쉬운 임무라고 생각했었던 임무는 큰 착오였다. 정보에 의하면 출현한 마두는 고수(高手) 경지라고 했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마두는 본실력을 발휘했다. 그동안 자신의 경지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본 실력의 3할은 숨기는게 무림의 정설이지만 마두 놈은 무려 7할을 숨긴 것이다.
마두 놈은 놀랍게도 절정(絶頂)의 경지였다. 고수와 절정은 천지차이다. 절정의 실력을 발휘하는 마두 놈에게 멸마 대원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고 있다는 보고에 즉시 놈에게로 달려간 송청은 마두 놈과 일대 일 대결을 벌였다.
송청도 절정 경지로 마두 놈과는 막상막하의 치열한 대결이 전개되었다. 대등한 실력이었지만 이쪽은 대원들이 지켜 보고 있는 상황이다. 마두 놈과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한다고 해도 대원들이 마두 놈의 목을 쳐 버릴것이 분명했다. 그런 점을 알고 있는지 마두 놈은 도주를 감행했다.
쩡!!
파팟!!
서로 부딪힌 검의 반동을 이용해 뒤쪽으로 훌쩍 튕겨나간 놈은 곧바로 경신법을 이용해 산속으로 쏘아져 나갔다. 놈이 도주하는 곳으로 대원들이 막아 서고 있었지만 절정인 놈을 막을순 없었다.
쩡!
"큭!"
놈을 막아선 장가람(張伽藍)이 튕겨져 나갔다. 다행히도 놈은 장가람을 쫒지 않고 산속으로 계속 도주했다.
탓!
놈이 도주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찍어 경신법을 발휘한 송청은 도주하는 마두놈 앞을 부하인 장가람이 막아선 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힐순 있었지만 놈을 죽이기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산속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경공 실력이 부족한 멸마 대원들은 따라 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부대주인 홍여곤(洪呂昆)만은 어렵지 않게 따라 오고 있을 것이다. 놈도 이걸 노리고 달아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 곳으로 유인할 목적으로 달아 나고 있는지 아니면 무작정 달아 나고 있는지는 알수 없었다.
캉!
놈의 뒤를 바짝 추격하자 간간히 암기(暗器)를 던지는 놈이었다. 암기라고 해도 뾰족한 무언가가 아니라 동전을 던지는 것이지만 내공이 담겨 있는 암기에 적중되면 치명적이다. 놈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뒤쪽을 힐끗거리며 굳은 얼굴로 무슨 결심을 했는지 땅을 박차고 돌진해 왔다. 조금 불리한 상황이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돌진하는 놈이 유리한 상황이다. 검을 곧추 세운후 내공을 불어 넣으며 흔들었다.
우우웅.
송파검법(松波劍法) 전삼식(前三式) 파천무(波天武)를 시전할려는 자세였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물결 모양으로 번져 나가는 기파(氣波)가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하며 검에 백색 강기(罡氣)가 둘러졌다. 마두 놈의 검에도 검은 강기가 어려 있었다.
꽝!!
"크윽!"
"으윽!"
주르르.
서로 밀렸지만 송청이 조금 더 많이 물러 나야 했다. 비탈길인 산길 위쪽보다는 아래쪽이 불리한 탓이었다.
탓.
불리한 아래쪽 상황을 벗어 나기 위해 놈과 평행선이 되게끔 자리를 이동하며 공격했다. 또다시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꽝!
펑!
쩌저정!!
검을 내밀며 왼손에 뭉친 강기로 놈의 검을 잡을려고 하자 놈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왔다. 어느쪽이 우위에 서지도 못한채 치열한 공방이 계속 되고 있었다. 누가 더 단전에 많은 내공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질것이다. 계속된 전투로 마두 놈도 지쳐 보였다.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엔 가느다란 핏줄기도 흘러 나오고 있었다.
송청도 내상을 입은 상태로 숨이 가빠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 지는건 마두 놈이다. 부대주가 달려 오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놈은 자신이 처리하고 싶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대등하게 싸우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절정에 접어 들고 부터는 한번도 없었다. 일류 경지일때 산적 토벌에 나서 죽을뻔한적이 있었다. 아차하면 저승길로 접어 드는 아슬아슬한 승부에 점점 희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꽝!
"컥!"
마두 놈이 튕겨져 나갔다. 둘도 없는 기회였다. 땅을 박차고 보법을 펼치며 검을 빙글 회전시켰다. 송파검법 후일식(後一式) 만월(滿月)을 시전했다.
"가랏!"
둥근 강기 덩어리가 놈에게로 쏘아져 갔다. 튕겨져 나가는 불안한 자세임에도 놈은 만월을 쪼개듯이 내려 그었다.
꽈앙!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찬 송청은 왼손을 휘둘러 흙먼지를 날려 버리며 후이식(後二式) 잔월(殘月)을 시전했다. 초승달처럼 생성된 강기가 놈에게로 날아 갔다. 강기를 향해 불쑥 검이 솟아 나왔다.
쩌정!!
우지끈.
비산하는 강기 덩어리에 주변의 나무들이 굉음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놈은 큰충격을 받았는지 입가에 새어 나오는 피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우웩!"
토해 낸 놈의 검붉은 피속엔 내장 부스러기도 섞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활활 타 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꽈악!
놈의 손아귀 힘줄이 불거지며 정면으로 쏘아져 왔다. 마지막 승부를 걸 생각인것 같았다. 검을 얼굴쪽으로 겨눈채 찌르는 자세 그대로 돌진하는 놈에 대응해 후삼식(後三式)인 파월(破月)을 펼칠려고 했을때였다.
퍼펑!!
갑자기 놈의 몸이 폭발하며 살점과 뼈조각들이 암기처럼 쏟아져 왔다. 혼자선 절대로 죽지 않겠다는듯 마지막 비장의 한수를 전개한것이다.
"크윽!"
즉시 후삼식 파월을 중단하고 강기막(罡氣幕)을 급히 둘렀지만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또한 파월을 시전하기 위해 검에 밀어 넣을려든 내공을 다급히 거두워 들여야 했다. 내공의 수발(收發)은 자유로운 상태지만 찰나의 시간 차이로 몸속으로 놈의 살점과 뼈조각들이 파고 들었다. 다행이 얼굴과 가슴은 무사했지만 어깨와 허벅지, 팔다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공도 거의 바닥 난 상태다.
비틀.
꽉!
"헉헉헉!!!"
검을 바닥에 찍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힘든 싸움이었다. 당장 치료해야 하지만 너무 지쳐 버렸다. 이대로 바닥에 벌렁 드러 눕고 싶을 정도였다. 품속에서 요상약 꺼내 삼키고 구멍난 부위의 혈도(血道)를 눌러 피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끔 조치하며 금창약을 바르고 있을때였다. 늦은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제야 부대주가 도착했다.
"헉헉! 대주님!"
"걱정말게. 죽을 정도는 아니네. 호법(護法)을 서 주게."
치료를 하기 위해 내공 심법을 운공해야 한다. 내공 심법은 아무곳에서나 함부로 운공해선 절대로 않된다. 누구도 없는 곳에서나 아니면 믿을수 있는 자가 호법을 서 줄수 있을때만 운공해야한다. 혹시라도 심법 운공중에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내공이 역류되어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 정좌를 하고 바닥에 앉아 심법을 운공할려고 했을때였다.
푹!
"컥!"
가슴이 화끈거렸다. 불로 지지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일순 사고(思考)가 정지되었다. 눈을 뜨자 부대주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부대주가 들고 있는 검이 가슴 중앙에 박혀 있었던것이다.
"곤(昆)! 네가 왜?"
"대주님은 너무 오래 대주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만 물러 나야 할때입니다."
"어리석은 놈!"
내공을 운용하자 가슴이 더욱 화끈거리기 시작하며 내공 수발이 끊기며 몸속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철저히 믿고 있던 부대주의 배신에 치를 떨며 부대주쪽으로 손을 휘둘렀다.
휘익!
"아앗? 제기랄!"
손을 휘두르자 부대주는 자신을 공격하는 줄 착각하며 검을 잡은 손을 떼며 뒤쪽으로 훌쩍 물러났다. 기회였다. 혼신의 힘을 발휘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자신의 시체는 부대주 놈이 처참하게 뭉개 버릴것이 틀림없었다.
탓!
용천혈(湧泉穴)로 내공을 보내 땅을 박찼다. 산 정상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비록 내공이 끊기고 있었지만 한달음에 도착할수 있는 거리였다. 부대주 놈은 속았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쫒아 왔지만 이미 정상에 도달한 상태다.
"...역시..."
마두 놈이 산정상에서 멈춘 이유가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 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수십미터는 될법한 돌 기둥들이 수백개는 늘려져 있는 곳이었다. 말로만 듣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장가계(張家界)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경치를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자신이 죽는다는 건 변함없다. 전설의 명의인 화타(華佗)가 온다고 해도 무리다. 가문인 송가(松家)는 의가(醫家)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자신도 의술이라면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지만 지금 상황은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다.
"...크으으..."
울컥.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장가계(張家界)도 점점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산 정상 아래쪽은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절벽 중간쯤에는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작은 숲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작은 소나무들 같았다. 부대주 놈이 바짝 다가 온 상태였다.
"대주! 포기하시죠."
"놈! 죽을 자리는 내 스스로 결정한다."
훌쩍.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점점 눈이 감겨져 가고 있었다. 바람을 느끼며 추락하는 느낌은 그렇게 나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추락하는지 길게 느껴졌다.
'명(明)아, 예(睿)야...'
이대로 죽는건 억울했다. 총명한 아들인 명과 귀염둥이 딸인 예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명에게 줄 천왕단(天王丹)과 예에게 줄 노리개를 어렵게 구해 놓았지만 전해 줄수도 없게 되었다.
꽈지직.
"커억!"
울컥!
소나무 냄새가 진동했다. 절벽 사이로 자라있는 소나무에 몸이 부딪힌 충격으로 심장이 다시 뛰며 한모금의 피를 뱉어내자 가물가물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온몸의 뼈란 뼈는 조각난듯한 무지막지한 고통이 엄습해 왔다.
위쪽으로 높은 절벽이 보였다. 아래쪽은 얼마나 깊은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대로 이곳에서 죽는다면 날짐승에게 뜯어 먹힌후 뼈조각은 아래쪽을 추락해 산산히 흩어질것이다. 죽더라도 시체만은 온전히 건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번쩍.
'...저곳이다.'
눈이 번쩍 띄였다. 소나무 숲 일부분이 추락한 몸뚱이로 인해 나뭇 가지들이 부러져 나간 탓으로 작은 동굴이 드러났다. 한사람이 겨우 기어 들어 갈수 있을 정도였다.
"...크으으....끄윽...끄..."
주르르.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입가엔 비릿한 냄새가 풍겨 오며 울컥울컥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오른팔이 부러졌는지 힘이 들어 가지도 않고 덜렁거리고 있었다. 양다리도 모두 망가진것 같았다.
흔들흔들.
텅!
소나무 가지의 반동을 이용했다. 단한번의 기회였다. 비명을 질러 대는 몸을 흔들어 나뭇 가지의 반동을 이용해 위쪽으로 반등하자 온전한 왼손으로 내공을 보내 나뭇 가지를 때렸다.
텅.
털썩.
절반의 성공이었다. 상체가 동굴 입구쪽으로 들어 갔지만 허리 아래 부분까지는 들어 갈수 없었다. 내공이 끊긴 탓이었다.
"...으으으..."
급격히 정신이 가물가물 해 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체를 온존하게 보전하기 위해 혀를 깨물어 꺼져가는 정신을 일깨웠다.
스으윽.
왼손으로 바닥을 당겼다. 몸이 조금씩 동굴 안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가슴에 박힌 부대주의 검은 소나무 숲에 부딪힌 충격으로 어디론가 빠져 나갔다. 더이상은 무리였다. 바닥을 짚은 손을 아무리 잡아 당길려고 해도 힘이 들어 가지 않았다. 서서히 눈이 감기고 있었다.
***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생전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였다. 염라 대왕에게 심판을 받는 곳은 이런 냄새가 난다고 생각되었다. 앞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눈을 뜰려고 해도 이상하게 띄이지가 않았다. 아니, 눈을 뜨고 있지만 칠흑같은 암흑만이 펼쳐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밝은 빛이 접근했다. 피할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피할수가 없었다.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의 몸이 온전한 상태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크윽...크아아아아!!!!"
- 작가의말
주인공은 중원에서 부하에게 배신 당해 죽었습니다.
눈을 뜬곳은 어디일까요?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 오타 지적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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