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한국행
88화.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분근착골을 해제하고 아혈을 풀어 주었다.
"거짓말을 하면 고문을 한다고 했었다."
"...끄으윽...큭...학학..."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한다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겠다. 누구 지시였나?"
"이, 일본 의회 의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의장? 그 자가 누구냐?"
PK3를 실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에모토 과장놈이 털어 놓은 사실에 기가 막혔다. 정부의 누군가가의 지시로 자신을 습격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배후에 그런 자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본 의회가 어떤 조직인지 설명을 들은 아메미야는 의장 놈을 살려 둘수 없었다. 고작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고 더러운 피 운운하는 놈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살살 돌려 질문하지 않고 고문부터 했어야 했다. 이 놈은 의장놈의 똘마니에 불과했다.
퍽!
"컥!"
놈의 심장을 내가중수법으로 때렸다. 살려 둘수 없었다. 처음엔 살려주고 그동안 저지른 일을 매스컴에 폭로하게끔 협박할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수인에 불과한 놈은 폭로하지 않고 자살을 택할것이다. 일본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어떤 일에 휘말린 자는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자살을 택한다. 진실은 어둠으로 묻혀 버리는 것이다. 우에모토 과장놈을 죽인 아메미야는 아오마츠엔으로 돌아와 일본 의회 의장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후지야마 소이치로(藤山宗一郎)라는 놈은 85세라는 고령의 나이였다. 정치 학자, 대학 명예 교수, 법학 박사등 저명한 인사였지만 철저한 우파였다. 놈이 살고 있는 주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며칠이나 검색해야 했다. 물론 자신의 폰으로는 검색하지 않았다.
놈이 죽는다면 인터넷 검색 이력을 조사할지도 몰라서였다. 폰이라면 얼마든지 구할수 있다. 밖으로 나가 공원 벤치에서 폰을 조작하고 있는 자의 옆에 앉아 마혈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폰은 공짜나 다름없이 사용할수 있었다.
후지야마 의장 놈이 살고 있는 주소는 대낮에 집을 확인하고 으슥한 새벽 무렵에 다시 찾아 갔다. 잘 정돈된 측백 나무 담장이 전통 가옥을 감싸고 있었다. 꽤 넓은 부지에는 일본 정원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큰집이었지만 달랑 두명만이 살고 있었다. 안으로 숨어 드는건 일도 아니었다. 일반인을 보호하는 경찰도 없었다.
스르륵.
따로 떨어져 감지된 두명중 한명이 있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곱게 늙은 노부인이 자고 있었다. 의장 놈의 부인같았다. 다른 방으로 이동해 문을 열자 사진으로 보았던 의장 놈이 틀림없었다.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의장놈의 면상을 마주하자 갈갈이 찢어 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윽지로 참았다. 놈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스모를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퍽!
이불을 걷어 제치고 놈의 심장쪽 가슴을 가볍게 쳤다. 심장 마비로 위장한것이다.
"컥!"
부르르 떨던 놈이 축 늘어졌다. 복수를 끝냈지만 마치 볼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것처럼 찜찜했다.
***
"얼마나 걸릴거니?"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몰라요."
"자주 연락하거라."
더이상 테러는 할 필요는 없었다. 총리 놈이 버젓이 살아 있지만 그놈까진 처리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총리 자리를 내 놓은 놈이다. 억울한 분노를 달래기 위해 8개월이나 시간을 잡아 먹었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해 유럽으로 갈 예정이다. 원장 선생님은 혼자서 하는 여행을 걱정했지만 이미 해외 여행을 한적이 있어 문제없었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강연희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메미야 신야라고 합니다."
다음날 호텔 로비에서 미리 구해 놓은 통역을 해 줄 한국인과 만났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탓으로 어머니가 살고 있던 주소로 찾아 간다해도 혼자서는 아무 말도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럼 가실까요?"
"그러죠."
택시를 타고 서대문구 봉원동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살고 있던 주소를 찾아 가는 것이다. 택시는 산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본 동경과는 달리 한국 서울은 높은 산들이 도시속에 자리 하고 있었다.
"여기에요."
창밖으로 서울 구경을 하고 있을때 어느새 도착했다. 대학생이라는 강연희는 알바로 통역을 한다고 했다. 일본 여학생들과 달리 화장이 진한 강연희는 큼직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지리를 전혀 몰라 강연희가 안내하는 대로 졸졸 따라 갈수 밖에 없었다.
주택가인지 상점보다는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거리는 그렇게 깨끗하지 않았다. 쓰레기는 물론 말라 버린 흙들이 담장 아래쪽에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였다.
"이 집이에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층짜리 단독 주택앞에 선 강연희의 말에 집을 올려다 보았다. 큰나무 몇그루가 높은 담장위로 뻗어 나와 있는 집이었다. 일본의 단독 주택은 담장이 모두 낮은 편이다. 또한 벽돌로 지어진 담장은 예전에 지은 건물엔 남아 있지만 신축 건물 단독 주택은 아래쪽 30~50센티에만 벽돌을 사용하고 위쪽에는 펜스를 설치한다.
펜스 높이도 1m도 되지 않아 안쪽이 훤히 보이는 구조다. 십여년전에 발생한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으로 인해 담장이 무너져 큰피해를 입은 탓으로 건축 기준법이 바뀐탓이다. 무너진 담장에 보행자들이 깔리지 않게끔 낮은 담장으로 설치해 벽돌은 아래 부분만 사용하게 되었다.
딩동!
강연희가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후 한국말이 들려 왔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다. 다만 화를 내는듯한 말투였다. 왜 그런지는 모른채 강연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강연희에게는 호텔 로비에서 어머니가 살고 있었던 주소를 말해 주며 왜 찾아 가는지도 설명해 주었었다. 강연희가 집 주인과 대화를 한후 뒤돌아 섰다.
"이 집이 맞는것 같아요. 우세연씨 아드님이 찾아 왔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기다리라고 했어요."
"감사합니다."
화를 낸게 아니었지만 마치 화를 내는듯한 말투같았다. 한국어 억양이 강한 탓으로 그런식으로 들렸다.
끼이익.
청색으로 칠해진 큼직한 대문이 열렸다. 늙은 노부인 한명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겉모습만으로는 70대정도로 보였다. 뭐라고 말을 했지만 한국말을 전혀 몰라 멀뚱멀뚱 지켜 볼수 밖에 없었다. 잠시후 노부인과 대화를 나눈 강연희는 자신을 가르키며 소개했다.
"인사하세요. 우세연씨 어머님이라고 하네요."
"안녕하십니까? 아메미야 신야라고 합니다. 한국 이름은 우강우라고 합니다."
일본어로 말하자 강연희가 한국말로 통역해 주고 있었다. 강연희의 말을 들으며 자신을 올려 다 보는 노부인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덥석 잡을려고 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본능적으로 뒤로 한발 물러 났다. 자신을 위협하는건 아니었지만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무안해 하는 노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덥석.
손을 잡고 뭐라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 답답했다. 강연희를 슬쩍 바라 보자 통역해 주었다.
"네가 세연이 아들이라고?"
"그렇습니다."
"일단 들어 가서 이야기 하자꾸나."
노부인이 무슨 말을 하면 곧바로 강연희가 통역해 주었다. 노부인의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 갔다. 일본의 거실과는 달리 꽤 넓었다. 방바닥이 미끄러워 하마터면 넘어 질뻔했다. 누런 바닥이 반들반들한게 굉장히 미끄러웠다.
일본의 집안 바닥은 옛날에는 타타미(畳)를 주로 깔았지만 지금은 합성 목재로 되어 있는 합판을 서로 끼워 맞춰 까는 식이다. 조금 충격을 주면 흠집이 생겨 버리지만 겉모습은 깨끗해 보인다.
거실이 있는 곳엔 양탄자를 깔고 테이블과 소파를 놓아 두는 집안이 대부분이다. 이곳 거실엔 누른 방바닥에 큼직한 직사각형의 낮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벽쪽에는 여러 가지 물건을 장식해 놓았으며 사진까지 걸려 있었다. 손을 잡아 끌며 손짓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외할머니로 생각되는 노부인은 주방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급히 걸어갔다.
"바로 통역해 주세요."
"알겠어요."
노란 쥬스 세잔을 가져와 테이블위에 내려 놓은 외할머니가 테이블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강연희가 곧바로 통역해 주었다.
"세연이는 어떻게 되었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교통 사고로 돌아 가셨습니다."
"사고라고?"
"예. 저만 겨우 살아 남았습니다."
깜짝 놀라는 외할머니였다. 자신이 어머니 아들이라는 증거로 가방에서 주민 등본을 꺼내 설명해 주었다.
"후우...그렇구나."
외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외할머니 집은 아들 부부와 함께 산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는 탓으로 지금은 일하러 간 상태로 손자는 한명뿐으로 대학생이었다.
"전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습니다. 이미 고등 학교 검정 고시로 졸업장을 따 놓은 상태고요. 지금은 보육원에 살고 있어 내년에는 보육원을 나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나가기 전에 해외 여행을 할려고 합니다."
"보육원이라고?"
"예."
현재 어떻게 생활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보육원에 있다는 말에는 놀란 표정으로 안쓰러워했다.
"이곳에서 살거라."
"예? 이곳에서요?"
갑작스런 말에 잠시 당황했다. 일본인은 보통 빙빙 돌리는 식으로 말을 하지만 할머니는 직설적이었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는데 이곳에서 살면 한동안 백수 신세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부담을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일본엔 친척이 있니?"
"모르겠습니다. 교통 사고로 인해 어릴적 기억을 잃어 버렸거든요.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는 바람에 알게 되었습니다."
스모 선수였다는 것까지 설명해 주며 폰으로 넷상에 떠도는 자신의 선수 시절의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에구머니...희멀건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이런 운동이 있단 말이니?"
외할머니나 통역하는 강연희도 폰속의 사진을 보고는 놀랐다. 스모에 대해서 모르는것 같았다. 외할머니와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아버지와 결혼을 한탓으로 서울로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 가실때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며 후회하셨다는 말도 했다. 저녁 무렵 통역인 강연희는 돌아 가야 했다. 계약을 저녁때까지 했기 때문이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해요. 또 통역할 일이 있으면 불러 주세요."
외할머니가 이른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외삼촌 부부와 외사촌은 항상 늦는다며 같이 먹자고 손짓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하며 제스처로 가르키는것을 나름대로 이해해야 했다.
"다녀 왔습니다."
밤 9시경 젊은 청년 한명이 들어 왔다. 대학생이라는 외사촌같았다. 외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 나자 덩달아 아메미야도 일어났다.
"일본에 사는 외사촌이라고요?"
"그렇단다. 한국어를 전혀 몰라 말이 통하지 않는단다."
외사촌은 자신을 보며 놀란 눈치였다. 처음보는 외사촌에게 인사를 했다. 일본어를 아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일본어로 인사를 했다.
"아메미야 신야라고 합니다."
"우강성입니다. 혹시 영어를 할줄 압니까?"
먼저 이름을 말한것 같았지만 그 뒤엔 영어로 말을 했다. 한국어는 전혀 모르지만 영어라면 조금은 할수 있었다. 그동안 영어 회화 학원을 열심히 다녔었다.
"조금 할줄 압니다."
영어로 답해주자 외사촌의 얼굴이 밝아졌다.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외사촌은 영어를 잘 하는게 아니었다. 자신처럼 더듬거린 것이다. 스모 선수였다는 말에는 외사촌도 놀란 표정이었다. 외사촌은 스모를 알고 있었다. 외삼촌 부부는 10시가 넘어서야 피곤에 지친 기색으로 돌아 왔다. 외사촌의 통역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세연이 아들이라고?"
"예."
외삼촌에게도 외할머니와 외사촌에게 했었던 말을 다시 해 주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야기를 나눈후 호텔로 돌아 갈려고 하자 외할머니가 자고 가라고 성화였다. 어쩔수없이 하루밤 묵기로 했다.
"강우야! 이곳에서 살거라. 네 외삼촌도 허락했단다."
"음...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당장 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에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가장 문제였다. 또한 한동안 얻혀 살아야 한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무렵 호텔로 돌아갔다. 내일은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
한국보다는 중국 공기가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텐진 공항에 도착한 아메미야는 먼옛날에 송가장이 자리 하고 있는 곳을 찾아 갔다. 텐진이라는 도시는 너무 많이 바뀐 탓으로 멀리 보이는 산을 보고 찾아 갔다. 산만은 변함없었다. 산을 바라 보며 어느 지점에 송가장이 있었는지 걸어 가면서 찾아야 했다.
비록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송가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찾았지만 그곳은 30층이상의 고층 빌딩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가장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이미 구글 맵으로 찾아 본적이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동안 고층 빌딩을 올려 다 본후 호텔을 찾아 갔다.
"혹시 고고학자나 민속 학자를 알고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요."
체크인을 한후 프런트에 부탁했다.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까지 온김에 송가장 터가 있었던 자리가 어떤식으로 변한것인지 알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알아 보고 연락해 드리겠습니다."
- 작가의말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끼리 하는 대화를 들으면 마치 말다툼하는 듯이 들린다고 합니다. 친해진 일본인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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