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1패의 무게
56화.
"고생했다."
"얼굴 좀 펴세요. 누가 죽기라도 했어요?"
"아무렇지도 않는거냐?"
"물론이죠. 내일 이기면 되잖아요."
밖으로 나가자 아오키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바야상은 같이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패한 탓으로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정말 괜찮아?"
"이제야 말을 하네요. 오늘 시합은 실수였어요. 두번다시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겁니다."
고바야시상이 겨우 입을 열었다. 굳어 있던 얼굴도 풀린 상태였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마쿠우치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더욱 신경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먼저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티를 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오키상은 언제까지 밀착 촬영을 하는 겁니까?"
"흐흐흐, 네가 요코즈나로 올라 갈때까지다. 과장님하고 담판을 지었다."
아오키는 직장 상사인 과장에게 큰소리를 친 상태다. 연승 기록으로 스피드 출세를 이어 가는 나루토류가 초고속으로 요코즈나로 올라 간다며 반드시 촬영을 계속 해야 한다고 우겼다.
과장도 두번의 나루토 베야 방송 시청률을 보고는 허락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만약 마쿠우치에서도 우승한다면 대박이다. 하지만 마쿠우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나루토 베야로 돌아 가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선배님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너어...아무렇지도 않은거냐?"
"뭐가요? 오늘 처음으로 패했다고 울어야 합니까?"
"큭큭큭, 야야! 모두들 얼굴 펴라. 내가 말했지? 크레이지라면 아무렇지도 않을거라고 했잖아."
역시 자신이 패한 탓으로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가장 활달한 토라키오상이 분위기를 띄웠다.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패해선 않된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배님들! 저 배 고픕니다."
"잠깐만 기다려."
선배들이 우르르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일부러 자신 혼자 있게끔 모두 내려 간것이다. 모두 좋은 선배들이다.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아 눈을 감았다. 오늘 시합을 떠올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괜찮냐?"
"물론입니다. 언젠가는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경험을 한것이죠."
오야카타가 늦은 시간에 돌아 와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았다. 한번의 패배로 오야카타는 물론 선배들까지 이렇게까지 걱정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내일 점심 무렵이 되면 오카미상이 찾아와 또다시 걱정할지도 모른다. 다음날은 토라키오상과 사토상의 시합이 잡혀 있다. 두 선배가 돌아 오면 자신은 고쿠기칸으로 출발한다. 돌아 온 선배들 얼굴은 밝았다. 둘 모두 승리한것 같았다.
"으악! 뭐하는 겁니까?"
문을 나설려는 자신의 등쪽으로 뭔가를 뿌리는 선배들이었다. 기겁해 후다닥 물러나 뒤돌아 보자 하얀 소금이었다.
"마요케(魔除け)야."
자신의 몸에 귀신이 달라 붙어 어제 졌다는 것으로 귀신을 쫒아 낼려고 소금을 뿌린 것이다. 갑자기 등뒤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뿌린 탓으로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앞으로 뿌리지 마세요. 놀랐잖아요."
"킥킥킥, 네가 놀라는 얼굴은 첨 봤다."
오늘도 고바야시상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마와시를 착용하고 케쇼마와시도 착용했다. 마쿠우치 도효이리(土俵入り)는 매일 하는 의식이다. 귀찮은 의식이었지만 일종의 관객 서비스다.
오늘은 두번째로 시합이 잡혀 있었다. 상대는 마에가시라(前頭) 17마이메(枚目)인 교쿠슈호(旭秀鵬)다. 어제 대기실에서 노려 보든 교쿠슈호(旭秀鵬)가 쥬료 우승을 다툴때처럼 거칠게 나올지도 모른다.
하리테(張り手) 한방으로 기절한 탓으로 이번엔 다르게 나올지도 모른다. 어제 패한 탓으로 오늘은 절대로 패해선 않된다. 어제처럼 무턱대고 돌진하는 스모는 할수 없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도효위로 올라갔다. 아직 시키리도 하지 않았음에도 교쿠슈호(旭秀鵬)는 마치 원수를 대하듯 죽일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살기를 뿜어 내는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눈알 빠진다.'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는 시코를 밟고 소금을 뿌린후 도효 중앙으로 걸어 갔다. 자신의 눈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는 교쿠슈호(旭秀鵬)였다. 투지가 굉장한 놈이었다. 토라키오상이 교쿠슈호(旭秀鵬)처럼 저런식의 투지를 배워야한다.
제한 시간이 다 되었다. 도효 중앙으로 이동해 무릎 걸음으로 편하게 앉았다. 여전히 교쿠슈호(旭秀鵬)의 눈은 활활 타오르며 죽일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의 모래를 발로 좌우로 쓸어내 미끄러지지 않게끔 조치를 하고는 뒤쪽으로 멀치감치 물러섰다.
"오오오!"
관중석에서 놀라운듯 탄성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스모 선수들은 백색의 시키리센(仕切り線) 바로 뒤에 선채 상체를 숙이고 바닥에 주먹을 댄다. 가끔씩 이런식으로 시키리센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뒤로 이동해 바닥에 주먹을 대는 선수도 찾아 볼수 있지만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쿠슈호(旭秀鵬)는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노려 보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상체를 숙이고 바닥에 양주먹을 대었다. 교쿠슈호와는 멀리 떨어진 상태로 서로 접근할려면 세걸음은 걸어 가야 한다.
이런 상태라면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하리테(張り手)는 물론 강하게 충돌하지도 못한다. 어정쩡한 상태로 서로 대치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게 될것이다. 이런식으로 멀리 떨어져 대치하는 훈련은 평소에 한번도 하지 않는다.
지근 거리에서 백이면 백 모두 머리나 어깨로 서로 충돌해 밀어 내거나 쓰러 뜨리는 식이다. 교쿠슈호는 예상대로 어정쩡하게 일어 섰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경계만 하고 있었다.
타다닥!
교쿠슈호에게로 달려 들었다. 달려 간다고 해도 잔발로 세걸음만에 도달할 거리다. 교쿠슈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달려 가는 자세 그대로 금나수의 수법으로 내민 오른손을 오른손으로 잡고 끌어 당기며 교쿠슈호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오른 발목을 툭 건드렸다.
"허억!"
꽈당.
"와아아~!!"
승부는 순식간에 결정났다. 작은 몸집을 이용한 변칙적인 승리였다.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이런 스모는 정식 스모가 아니다. 교쿠슈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일부러 멀리서 대치한 것이다. 서로 인사를 할때도 교쿠슈호는 분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 선수에게 치카라 미즈(力水)와 치카라 가미(力紙)를 건네 주고 통로로 걸어 나가자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스모였습니다."
"예. 교쿠슈호제키(旭秀鵬関)가 무언가를 할것 같아 변화를 준것입니다."
"이것으로 어제의 패배를 만회했습니다만 이 기세를 계속 이어 갈수 있겠습니까?"
"노력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인터뷰는 끝났다. 인터뷰한 내용은 중계석에도 전해 질것이다. 아마 화제가 될것으로 예상되었다.
"어떻게 한거냐?"
"제 목덜미를 잡는다는 식으로 손을 뻗어 보세요."
휘익.
덥석.
"이런식으로 한겁니다."
"....."
순식간에 오른 손목을 잡힌 고바야시상은 얼떨떨한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한채였다.
"다시 한번 해 볼래요? 이번엔 빠르게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다는 식으로 쳐 보세요."
"뭐? 누가 보면 큰일 나."
"그럼 돌아 가서 해 보죠."
타다닥!
"헉헉! 조금 늦었다."
아오키상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대기실에선 고바야상과 이런 일은 할수 없어 밖으로 나와 시범을 보여 주었다. 오늘따라 아오키상이 없어 왠일인가 싶었지만 급히 달려 온것이다.
"숨 좀 돌리세요."
"헉헉! 그래."
한동안 허리를 숙인채 무릎에 양손을 대고 헥헥거리던 아오키상이 가벼운 숨을 몰아 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시합에서 말이야. 어떻게 한거냐?"
아오키상도 그점이 궁금한듯했다. 직접 보여 주어야 이해할것이다. 고바야시상과 마찮가지로 주먹을 뻗게 하고는 순식간에 덥석 잡아 버렸다.
머엉!
잡힌 손목이 믿기지 않는지 멍한 표정으로 굳어진 아오키상이었다.
"어떻게 한거냐면 일단 눈이 좋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손을 주시하며 손목 스냅을 이용해 이런식으로 살짝 꺾어 잡은겁니다."
아오키상의 손목을 천천히 잡아 보여 주었다. 마주 뻗어 가던 손이 부딪힐려는 순간 교묘하게 꺾여져 손등으로 흘러 가는 식으로 미끄러지며 손목을 잡아 채었다.
"....."
믿기지 않는지 멍한채 굳어진 아오키상이었다. 지켜 보던 고바야시상은 눈이 한끗 커진 상태였다.
"그걸 배울수 있겠어?"
"배운다고 해도 시합에선 사용하지 못할겁니다."
"넌 이런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이미지 트레이닝으로요. 시합에서 어떤식으로 할지 매일 이미지로 연습하거든요."
고바야시상이라면 알것이다. 매일 옥상에서 훈련을 하지만 비가 올땐 방안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같은 녀석이야."
"양파는 끝이 있는데요?"
"......"
"하하하, 썰렁했죠?"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 보는 아오키상과 고바야시상의 얼굴을 보고는 즉시 멋쩍은듯이 웃어 넘겼다. 나루토 베야로 돌아 가자 선배들이 축하해 주며 궁금한듯 물어 왔다.
"어떻게 한거냐?"
또다시 똑같은 설명을 해 주고 시범까지 보여 주어야 했다. 배울수 없느냐는 말에도 실전에서 사용할려면 몇년은 걸린다고 하자 포기하는 선배들이었다.
***
5월 바쇼도 절반이 훌쩍 지나갔다. 요코즈나(横綱) 세명중 하쿠호와 키세노사토는 부상을 핑계로 중도에 결장했다. 8승 전승으로 요코즈나 카쿠류(鶴竜)와 오오제키(大関)인 타카야스(高安)가 우승 다툼에서 일보 리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루토류는 7승 1패를 유지하며 전승 선수들 뒤를 바짝 쫒고 있었다. 반즈케가 낮은 탓으로 그 둘과의 직접 대결은 14일째나 마지막 날인 15일째까지 1패를 유지한다면 서로 대결할수도 있다.
9일째인 오늘은 마에가시라(前頭) 9마이메(枚目)인 류덴(竜電)과의 대전 일정이 잡혀 있었다. 류덴의 스모 스타일은 마와시를 잡고 밖으로 밀어 내는 스모다. 교과서대로 스모를 하는 선수로 평가된다. 양주먹을 바닥에 대었다. 두번째날 이후부터는 시키리센에서 멀치감찌 뒤로 물러나 자세를 취하진 않았다. 류덴은 몸으로 부딪히며 마와시를 잡을려고 할것이다.
스윽!
빡!
머리끼리 서로 부딪히자 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류덴의 손이 허리쪽으로 내려 오는게 감지되었다. 즉시 뒤쪽으로 스르르 물러 났다. 그러자 손을 번갈아 뻗어 오며 밀어 낼려고 했다.
탁탁탁!
뻗어 오는 손을 툭툭 위쪽으로 치며 류덴의 품속으로 재빨리 파고 들었다.
덥석.
오른손으로 마와시를 즉시 잡았다. 허리쪽 마와시보다는 배쪽 마와시를 잡는게 빠르다.
스르륵!
빠르게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잡은 마와시를 끌어 당기며 류덴의 왼쪽으로 이동했다. 마와시를 잡는것과 동시였다. 류덴의 몸이 일순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을려고 했다.
척!
왼쪽으로 이동하자마자 허리를 숙인채 류덴의 왼무릎 안으로 왼손을 비틀며 집어 넣고 오른손으로 마와시를 오른쪽으로 잡아 당기며 왼손으로 무릎을 치켜 올렸다.
쿵!
왼쪽 다리를 든채 오른쪽으로 쓰러진 류덴은 무슨 일이 벌어 졌는지도 모른채 멍해했다. 류덴이 반격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승부가 난것이다.
"와아아!!"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뿜어져 나왔다. 스모 선수들의 기술은 대부분 비슷하다. 요리키리(寄り切り), 오시다시(押し出し), 하타키코미(叩き込み), 츠키오토시(突き落とし), 우와테나게(上手投げ)다. 요리키리(寄り切り)는 상대방의 마와시를 양손으로 잡고 도효 밖으로 밀어 내는 기술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두번째는 오시다시(押し出し)로 상대방의 몸에 밀착시키지 않은채 쯧바리(突っ張り)로 가슴이나 목을 밀어 내는 기술이다. 세번째로 선호하는 기술은 하타키코미(叩き込み)다. 상대의 어깨나 가슴을 밀치며 갑자기 확 끌어 당기는 식으로 상대방의 상체가 앞쪽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술이다.
네번째는 츠키오토시(突き落とし)로 한손으로 마와시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겨드랑이쪽으로 집어 넣어 마와시를 끌어 당기며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옆으로 밀어 쓰러 뜨리는 기술이다.
다섯번째는 우와테나게(上手投げ)다. 양손으로 마와시를 잡고 힘을 주어 쓰러 뜨리는 기술로 스모의 꽃이라고 할수 있는 기술이다. 아메미야가 방금 사용한 기술은 우치무소(内無双)라는 기술로 몸집이 작은 선수들이 상대방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 가끔 사용하는 기술이다. 평소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기술을 선보인탓으로 관중들이 열광했다.
꾸벅.
서로 인사를 하고는 교지상의 승리 선언을 듣고는 도효를 내려 갔다. 스모 선수들의 훈련은 대부분 서로 충돌해 마와시를 잡고 밖으로 밀어내는 요리키리(寄り切り)를 주로 연습한다. 모두 몸집이 큰탓으로 실패하면 반대 급부가 심한 특별한 기술들은 아예 연습조차 하지 않는다. 몸집이 작은 몇몇만이 가끔씩 훈련할 뿐이지만 실전에서 사용하는 일은 드문 기술이다.
"처음부터 우치무소(内無双)를 염두에 두었습니까?"
"아닙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을뿐입니다."
통로로 빠져 나오자 기자들이 몰려와 인터뷰를 했다. 승패에 상관없이 대결이 끝나면 항상 있는 일이다. 선수의 성격에 따라 패한 자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을때도 있다.
"이것으로 8승 1패로 일찌감치 카치코시(勝ち越し)를 하고 우승 전선에 살아 남았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일본에선 마요케로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 오면 집안으로 들어 가기 전에 옷위에 소금을 뿌립니다. 장례식장에서 작은 소금 봉지를 건네 준답니다. 그리고 가게나 일반 주택등 현관 문옆에 작은 소금 산을 만들어 두기도 합니다. 악귀가 들어 오지 못하게끔 만들어 두는 겁니다.
다음화에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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