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습격(1)
75화.
복도에는 경기를 끝낸 선수와 도효쪽으로 이동하는 선수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나루토류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오제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오오제키들은 그런 인사를 받더라도 무시하지만 나루토류는 살짝 고개를 숙여 답례해 주었다. 대기실안에는 마쿠시타(幕下)와 쥬료(十両), 마쿠우치(幕内) 선수들로 붐비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것 같았지만 일부러 일찍 온것이다. 놈들이 언제 습격할지 모른다.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시합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한다. 대기실에서 인사를 받으며 조용히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앉았다. 바쇼 8일째나 9일째까지는 마에가시라(前頭) 상위 지위에 있는 선수들과 대결하고 그 후에는 산야쿠(三役) 이상의 선수들과 대결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강한 선수들과 대결하게 되는 식이다.
"오~스(안녕하십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요코즈나 하쿠호가 대기실로 들어 왔다. 눈을 감고 앉아 있던 탓으로 고바야시상이 슬쩍 몸을 건드려 알려 주었다. 하쿠호는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대기실을 빙 둘러 보며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손짓으로 부르는 하쿠호였다.
"하프라며?"
"그런것 같습니다. 전 소학교 5학년 이전의 기억은 잃은 상태입니다. 하프인지도 잡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왜 그런걸 묻는지 궁금해지만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코즈나 근처에는 누구도 없었다. 모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상태다.
"외국인들은 괴롭다. 물론 하프인 타카야스(高安)나 미타케우미(御嶽海)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힘들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너도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꺼다. 힘들땐 언제든지 찾아와서 상의해라. 이건 선배로써 해 주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도효위에서 살기까지 내 비치던 하쿠호가 왠일로 이렇게 나오는지 이상했다. 오늘 시합은 마에가시라(前頭) 2마이메(枚目)인 아라와시(荒鷲)라는 몽골인 선수였다. 몽골인 선수는 지금까지 모두 마치 원수를 진것처럼 도효위에서 죽일듯이 노려 보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노려 보긴했지만 전번과는 전혀 달랐다.
시합은 물론 이겼다. 아라와시는 무릎 부상을 당한것인지 왼쪽 무릎을 완전히 감싼 상태로 도효위로 올라 온것이다. 하체에 제대로 힘이 들어 가지 않는지 쉽게 도효 밖으로 밀어 낼수 있었다.
1월 바쇼 7일째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대기실에 도착했다. 마와시등 짐이 들어 있는 아케니(明荷)를 들고 앞서 가는 고바야시상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 가고 있을때였다.
"야! 이 새끼 너 때문에..."
퍽!
"큭!"
뒤쪽에서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았을때였다. 머리 모양이 오오이쵸 스타일인 쥬료 선수 한명이 씩씩거리며 화를 내면서 츠케비토로 보이는 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 갈겼다. 갑작스런 행동에 대기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졌다.
"멈춰!"
또다시 주먹을 드는 쥬료 선수를 즉시 소리쳐 제지했다. 하지만 쥬료 선수는 멈추지 않았다.
퍽!
"큭! 죄, 죄송합니다."
피가 튀었다. 츠케비토의 입술이 터져 피가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츠케비토는 굳은채 반항도 하지 않았다.
퍽!
"큭!"
"멈추라고 했잖아."
타다닥.
대기실의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즉시 달려가 쥬료 선수의 손을 잡으며 노려 보았다.
"멈추라는 말이 들리지 않아?"
"오오제키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건 타카노하나 베야(貴乃花部屋) 일입니다. 더이상 끼어 들지 마십시요."
"아무리 다른 스모 베야라고 해도 왜 때리는지 이유나 알자."
"저 놈이 시합 시간을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아 개망신을 당한겁니다."
고작 그런 일로 구타를 하고 있었다. 도효로 올라 가는 시합 시간은 스스로가 관리해야 한다. 모든걸 츠케비토에게 일임하는 선수는 스모 선수로써 자격이 없는 놈이다.
"고작 그런 일로 손을 든거란 말이냐? 폭력 문제가 얼마나 큰지 알기나 해?"
"......."
눈이 살짝 커진 놈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스스로가 어떤 일을 벌인것인지 자각을 한것이다. 대기실의 많은 선수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선수들은 자신의 스모 베야 소속이 아니라고 물 건너 불 구경이었을뿐이다.
"선배님들! 모두 들어 주십시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다른 스모 베야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말려야 합니다. 저희들은 팬들의 사랑속에 스모를 하는 겁니다. 이런 일로 팬들에게 외면 당하면 스모는 위축될겁니다. 모두가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 놈이 나서서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오제키라면 고개를 숙이면 않되었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고개를 숙여도 된다. 이곳에 있는 선수들중 츠케비토 몇명을 제외하면 자신이 가장 어린 나이일것이다. 폭력을 휘두른 타카노하나 베야(貴乃花部屋) 소속 쥬료 선수의 이름은 모른다. 한번도 대결한 적도 없었던 선수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듯 굳어져 있는 놈을 한번 바라 보고는 츠케비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피를 닦으세요."
다른 츠케비토가 티슈를 건네 주었다. 입술이 터지고 턱부분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주먹으로 맞은 탓이다.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앉아 대기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말렸다며?"
시합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아오키상이 대기실에서 있었던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듯한 질문을 했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거든요."
"헉! 어서 가자."
"옛?"
아오키상이 손을 잡아 끌려고 했다. 갑자기 왜 그런지 아오키상이 보고 있는 곳을 바라 보았다.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 오고 있었다. 그들을 피해 이동하기엔 너무 늦었다.
"오오제키! 오늘 사건에 대해서 한말씀 해 주십시요."
"왜 나선 겁니까?"
"그때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달려 온 기자들이 한꺼번에 질문을 했다. 답해 주지 않는다면 나루토 베야까지 졸졸 따라 올것이다.
"지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한명씩 한개의 질문에만 답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미리 선을 그었다. 모든 질문에 답해 줄순 없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곳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아오키상이 눈짓으로 간단하게 답해 주라고 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을때 갑자기 욕설이 들려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 보았을땐 이미 주먹을 휘두른 상태였습니다. 다시 주먹을 들려는 타카요시토시(貴公俊) 제키에게 큰소리로 제지했지만...들리지 않았는지 주먹을 내려 쳤습니다. 급히 다시 제지를 했음에도 여전히 주먹을 휘두르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 갔습니다. 타카요시토시 제키는 자신의 스모 베야 일에는 끼어 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먹을 휘두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들 기자들은 이미 모든것을 알면서도 질문하고 있을것이다. 즉,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츠케비토가 시간을 늦게 알려 준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합 시간 관리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시간에 따라 워밍업을 하며 만전의 태세에서 도효로 올라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전 그런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효쪽으로 이동하기 전엔 반드시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다른 선수들도 몸을 풀고 츠케비토를 상대로 타치아이(立ち合い) 연습을 하거나 충돌하며 마와시를 잡는 연습이나 쯧빠리를 하는 연습까지 한다.
조금 땀을 흘려 굳은 몸을 풀어 주는건 격투기 선수라면 상식적인 일이다. 타카요시토시(貴公俊)는 이번 바쇼에 쥬료로 승급한 선수였다. 마쿠우치때엔 스스로 시간 관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 자가 쥬료로 승급하자마자 츠케비토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다.
"타카요시토시(貴公俊) 제키의 행동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스모 선수로써의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카요시토시(貴公俊) 제키의 츠케비토는 2년 선배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반즈케가 모든것을 우선하는 스모 세계라고 하지만 선배의 가슴을 빌려 훈련으로 강해진 덕분에 출세를 해 세키토리가 된것입니다. 그런 선배에게 주먹을 휘두른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저희 나루토 베야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오야카타에게 파문하라고 건의한다는 말은 차마 할수 없었다. 혹시나 훗날 그런 일이 발생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타카노하나(貴乃花) 오야카타가 스모 협회를 개혁할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 한다는건 알고 있는지요?"
"어떤 개혁을 할려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에 관한 코멘트는 자세히 모르기에 답해 줄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 피곤합니다. 그만 풀어 주십시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한가지만 답해 주십시요. 이번 바쇼 우승할 자신이 있는지요?"
"항상 최선을 다할뿐입니다."
겨우 기자들에게서 벗어 날수 있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갈때까지 기자들은 집요하게 따라 왔지만 질문에는 더이상 답해 주지 않았다.
"너무 자세하게 말한것 같다. 내일 스포츠 신문 일면을 장식하게 될꺼다."
"아오키상도 인터뷰 내용을 녹화하지 않았습니까? 방송으로 내 보내도 되요."
"정말이냐?"
"그럼요. 잘못된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인터뷰로 누군가가 자신을 욕하진 않을 것이다. 기자들이 어떤식으로 편집하느냐에 다르지만 아오키상이 촬영한 영상이 그대로 보도된다면 왜곡된 편집은 할수 없게 된다. 그런 점을 노리고 아오키상에게 보도를 하라고 한것이다.
***
"토라키오상! 이번 바쇼때 전승 우승을 하면 선배가 원하는 물건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물론입니다."
"그럼 난?"
선배들의 시합은 절반 정도가 끝난 상태다. 모두 성적이 좋았다. 토라키오상은 3승 전승이며 다른 선배들도 3승 전승이나 3승 1패의 성적이다.
"고바야시상도 물론 선물해 드리죠. 그리고 사토상과 혼마상은 5승이상의 성적이면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좋았어! 불끈불끈 힘이 돋아난다."
선배들은 월급이 없어 바쇼 출전 수당으로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고바야시상에게는 츠케비토를 하는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고 있지만 다른 선배들은 아니었다. 1월 바쇼 8일째 아침 아오키상이 말한대로 스포츠 신문 일면에는 타나요시토시(貴公俊)의 폭력 문제가 크게 장식되었다. 가장 큰 타이틀은 타카요시토시(貴公俊)가 차지했으며 두번째로 큰 타이틀은 자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오제키(大関) 나루토류(鳴戸龍)! 타카요시토시(貴公俊)에게 모노이이(物言い.이의제기)!!'
라는 타이틀로 어제 인터뷰한 내용이 고스란히 쓰여져 있었다. 오늘 낮시간대의 버라이어티 방송에서도 이 일로 떠들썩할것이다.
부르릉.
택시를 불러 타고 이동했다. 경기장까지는 몇분만에 도착할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정체되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드디어 놈들이 움직이는것 같았지만 도로까지 정체시킬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많은 인원을 동원하면 충분히 할수도 있겠지만 비밀 조직에 많은 사람이 소속되어 있진 않을것이다.
'아! 교통 사고를 내면 정체되겠군.'
일부러 앞쪽 도로에 교통 사고를 내면 사고 처리로 인해 교통을 통제해 정체하게 될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정체였다. 평소보다 일찍 나온 덕으로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정체가 계속된다면 택시에서 내려 걸어 가도 된다.
꾸벅꾸벅.
'응?'
고바야시상이 졸고 있었다. 택시안은 난방이 빵빵해 아침 훈련이 피곤했는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한것 같았다. 다른 스모 베야의 츠키비토가 이런식으로 졸면 크게 혼을 낼것이다. 할일도 없어 등을 기댄채 눈을 감았다.
'하~암!'
자신도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전혀 피곤하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졸음이 몰려 오고 있었다. 내공을 돌려 졸음을 물리 칠려고 했다. 잠시후 또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정말 이상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기 위해 창문을 열려고 했다.
"창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창을 열면 찬바람이 들어 오는 탓으로 록을 해 놓은 겁니다."
"잠시 해제 해 주십시요."
끄적끄적.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운전수가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졸음은 점점 쏟아지고 있었다. 내공을 돌려 다시 졸음을 몰아 내야 했다.
"죄송합니다. 고장 난것 같습니다."
"그럼 문을 열어 주십시요."
"그건 위험합니다."
도로 옆이 아닌 탓으로 함부로 문을 열면 않되지만 이 택시는 대형 밴으로 슬라이드식의 문이다. 열고 당기는 식의 택시문이라면 열면 않되지만 슬라이드식의 문은 옆으로 열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지금이라면 조금 열어도 될것이다.
"조금만 열겠습니다."
"않됩니다."
- 작가의말
일본은 시사 프로그램이 평일에는 많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뉴스같은 시사 프로그램만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방송국도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의 택시 운전수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택시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힙니다. 운전석의 운전수가 열어 주고 닫아 주는 버턴을 조작해 준답니다.
다음화에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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