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빌어먹을 몸뚱아리
3화.
절로 욕설이 베어 나왔다. 신야의 몸이 얼마나 뚱뚱한지 마음먹은대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신장(身長)이 큰것은 마음에 들었지만 마치 포접공(抱摺功)을 수련한 자처럼 불룩한 배와 뒤룩뒤룩 살점이 붙은 몸이었다. 허벅지도 얼마나 굵은지 다리가 올라 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평생 무인으로 살아온 송청에게 있어 이런 몸은 치욕스러울 정도였다. 천천히 몸을 움직일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굳어진 몸을 풀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단전을 만들기 위한 수련을 할려는 것이다.
신야의 기억으로는 이 세상엔 무공이라곤 찾아 볼수 없었다. 신야가 아직 어린 탓으로 지식이 별로 없어 무공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중원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가부좌를 틀려고 했지만 너무 뚱뚱한 허벅지로 인해 가부좌를 틀수가 없었다. 어쩔수없이 편히 앉았다. 송청의 본가인 송가장의 기초 심법인 양월심법(陽月心法)을 운공해 단전을 만들 터를 다져야 한다.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막힌 혈도(穴道)를 뚫어 몸 전체로 기(氣)가 퍼져 나가게 한다. 처음엔 큰 혈도를 시작으로 자잘한 세맥(細脈)까지 모두 뚫어야 제대로 된 무공을 사용할수 있다.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무공을 배울땐 토납법(吐納法)으로 몸속의 불순한 기운을 토해내고 좋은 기(氣)만 받아 들여 단전을 만들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찮가지로 송가장에서는 토납법에 해당되는 양월심법을 운공한다.
양월심법은 일반적인 토납법에 비해 몇배나 더 효율적인 호흡법으로 일가비전(一家秘傳) 심법이다. 양월심법을 12성 대성하면 2단계인 단전을 만들기 위해 월단심법(月丹心法)을 운공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단전을 만들수 있는 심법으로 단전에 둥근 만월이 들어 찰수 있게끔 양월심법으로 몸속에 퍼뜨린 기운을 끌어 당겨 단전을 만들고 안착시킨다.
무사히 단전이 만들어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단전이 흔들리지 않게끔 튼튼하게 자리 잡은 후에는 3단계인 월광심법(月光心法)을 운공한다. 월광심법은 아직 자신도 끝을 보지 못한 상태다. 중원에서는 9성까지만 성취했을뿐 12성 대성까지는 길이 멀었다. 일대 시조(始祖)이신 월인진인(月人眞人)께서 창안하신 월광심법을 12성 대성한 가문 인물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난해한 심법으로 5성부터는 깨달음을 얻어야 성취할수 있는 심법이다.
"후~욱~!!....후~~~!!"
들이 쉰 들숨을 잠깐 멈추고 길게 내뱉었다. 들숨과 날숨을 규칙적으로 행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야 한다. 단전 깊숙히 들어 온 숨을 단전에서 한바퀴 선회한후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고 강하게 의식하며 가늘고 길게 내뱉는다.
아직 단전은 만들어 지지 않은 상태지만 단전이 있는 자리에 보다 쉽게 단전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고요한 병실에 낮은 숨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후우~~!!"
오랜만에 운공하는 양월심법이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신야는 14살이다. 14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몸속에 노폐물이 얼마나 많은지 곳곳의 혈도가 꽉꽉 막혀 있는 상태였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폐물 즉, 탁기(濁氣)를 제거 할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것이다.
"제기랄!"
절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송청은 원래 욕 같은걸 잘 하지 않았지만 부대주 놈에게 배신당한 탓으로 성격이 바뀐것같았다. 뚱뚱한 몸을 어떻게든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부좌를 틀수가 없어 양월심법 운공이 원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침대에서 내려와 송가 태극권을 천천히 시전했다. 태극권은 원래 무당파의 시조인 장삼봉이 창안한 무공으로 서민들의 건강을 위해 널리 퍼뜨렸다. 진본은 무당파가 소유하고 있는 중이지만 각각의 무가(武家)에선 자신들 가문에 맞는 용도로 고쳐 정식으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익히는 기초 무공이 되어 버렸다.
송가장에서도 가문 특유의 무공 수련 기초공으로 태극권을 변형시켜 송가 태극권으로 명명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탄력적인 몸을 만들기 위해 송가 태극권을 시전하고 있지만 이놈의 몸뚱아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음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숨이 차 오르며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론 아무리 송가 태극권을 시전해도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먼저 불필요한 살을 빼고 체력을 길러야 한다. 병실안인 탓으로 달리기를 할수도 없어 마보(馬步)를 시전했다.
자신의 어깨보다 조금 더 크게 다리를 벌려 허벅지가 지면과 수평이 되게끔 무릎을 굽히고 양다리를 평행으로 했다. 발끝이 옆으로 벌어지지 않게끔 주의해야 한다. 굽힌 무릎은 발끝앞으로 나오지 않게끔 쭈그려야 하며 발바닥은 지면에 완전히 닿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체를 꼿꼿히 세우고 양주먹을 가볍게 쥐고 옆구리에 앞꿈치를 붙이고 주먹 쥔 손을 위쪽으로 오게 해 버텨야 한다.
"...끄응."
빌어먹을 몸뚱아리다. 고작 일다경(一茶頃.약15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몸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무공을 익힘에 있어 마보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마보는 최소한 일각(一刻.약30분)이상 해낼수 있어야 하며 본격적으로 무공 수련을 시작하면 일시진(一時辰.약2시간)이상은 기본으로 해낼 체력을 유지해야 그럭저럭 무공다운 무공을 배울수 있다. 중원에 있을땐 마보를 하며 잠을 잘 정도였지만 이놈 아메미야 신야(雨宮真也)라는 놈은 살만 뒤룩뒤룩 찐 저질 체력의 똥돼지놈이었다.
"후우..."
절로 한숨이 베어 나왔다. 자신이 죽지 않고 이놈 몸속으로 빙의한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하필이면 이런 몸뚱아리속으로 들어 와 고생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동안 마보로 고생을 해야 할것 같았다.
마보를 제대로 할수 있어야 그 다음 단계인 궁보(弓步)와 부보(仆步), 허보(虛步), 갈보(歇步)로 연결 지을수 있다. 이런 보형(步型)은 기본중의 기본중으로 무공을 배우는 자들이 가장 처음 배우는 동작이다. 일단 이 몸뚱아리로 마보부터 연계 동작이 이어지는지 실험해 봤다.
마보를 한 자세에서 궁보로 바꾸었다. 정면을 바라 보는 자세인 마보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을 바라 보는 자세를 취하는게 궁보다. 이때에 바라 보는 쪽의 다리 거리는 자신의 발 다섯배 크기로 벌려 바라 보는 쪽의 허벅지를 지면과 수평이 되게끔 무릎을 구부린후 반대편 다리를 곧게 펴면서 발바닥이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바짝 붙여야 한다.
"으윽!"
곧게 뻗은 다리의 허벅지가 당겨 다리를 곧게 펼수가 없었다. 이게 모두 비계 덩어리로 뒤룩뒤룩 살찐 몸통인 탓이다. 부보와 허보, 갈보도 마찮가지였다. 역시 살을 빼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며 다리 째기도 병행해야 한다.
허탈해진 마음을 달래며 마보를 다시 시작했다. 마보를 시전해 버티면 땀이 비오듯 흐른다. 절로 살도 빠질것이다. 살도 빼고 체력도 기르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볼수 있다는 생각에 후덜거리는 다리를 정신력으로 버텼다.
"...으으."
바닥에 주저 않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 났다. 엄격하신 아버님의 지도하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마보를 했었다. 꾀병을 부르면 가차없이 몸둥이가 날아 왔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참을수 있을때까지 참았다.
털썩.
"...헉헉헉."
한계였다. 더이상은 무리였다. 얼마나 마보를 한것인지는 모른다. 입고 있던 옷이 소낙비에 흠뻑 젖은듯 땀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시원하게 등목이라도 하고 싶지만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신야의 기억으로는 이곳에선 수돗물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실밖 화장실이라는 곳에는 세면대라는 것이 있다. 그곳으로 가서 얼굴이라도 씻고 싶었다. 하지만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다면 소동이 벌어질것이다. 몸을 닦을 수건도 보이지 않아 난감했다. 침대에 깔려 있는 천을 사용해 닦아도 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다.
닦을 물건이 있는지 병실안을 찾아 보았다. 커텐이라는 천으로 가려져 있는 입구 옆의 커텐을 들어 올리자 놀랍게도 이 병실엔 세면대라는게 있었다. 세면대 옆 벽에는 하얀 수건도 걸려 있는 상태였다.
스윽슥!
수건은 놀랄 정도로 부드러웠다.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고 수도라는 은색 꼭지를 틀자 물이 뿜어져 나왔다. 중원에 이런 기물이 있었다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것이다. 수건을 적셔 물기를 짜고 다시 몸을 닦기를 반복했다.
시원한 물기가 몸에 닿자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불룩 튀어 나온 똥배를 보고는 굳어 버렸다. 하루빨리 살을 빼겠다는 의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다. 몸을 닦은후 마보로 인해 굳어진 몸을 풀어 주어야 한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져 잘 걷지도 못하게 된다. 양월심법과 마보를 번갈아 가며 시전하고 있을때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커텐으로 가려진 침대옆 창가가 조금씩 밝아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텐을 열자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음...굉장하군.'
신야의 기억으로 이미 알고는 있지만 높은 건물들이 몇개나 눈에 들어 왔다. 자동차라는 신기한 기물이 달리는 도로는 검은색이었다. 아스팔트라는 도로다. 도로위로 자동차라는 기물이 빠르게 달려 가고 있었다. 신야는 자동차 사고후 자동차를 몹시 두려워한다. 걸어 가는 옆으로 자동차가 지나 가기만 해도 움찔하며 벽쪽으로 바짝 달라 붙을 정도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서다.
차르륵.
이런 아침 시간대인 탓으로 돌아 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커텐을 닫고 양월심법을 운공했다. 심법 운공은 해가 뜨기 직전인 묘시(卯時.5:00~7:00)인 이른 아침과 자시(子時.23:00~1:00)가 가장 적당하다. 지금이 바로 묘시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침대에 편하게 앉아 양월심법을 운공하고 있을때였다.
드르륵.
"아메미야군! 꺄아악!!"
갑자기 들려온 뾰족한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송청은 심법을 중단할수 밖에 없었다. 기초중의 기초 심법인 덕으로 언제든지 중단할수 있다. 만약 월광심법을 운공하고 있었다면 비명 소리에 놀라 내공이 역류했을지도 모른다.
내공이 역류하면 제어하기가 쉽지 않아 진다. 겨우 제어를 한다고 해도 큰내상을 피할순 없게 된다. 만약 제어하지 못한다면 역류된 내공이 머리속을 파고 들어 광인(狂人)이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심법 운공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얼굴을 돌리자 신야의 기억에 있는 간호사 복장의 젊은 여자가 입을 막으며 후다닥 밖으로 뛰쳐 나가고 있었다. 왜 달려 나가는지는 모른다. 어리둥절하고 있을때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오며 젊은 의사와 간호사 두명이 달려 들어 왔다.
"아메미야군! 언제 깨어 난건가?"
"...어제...밤..."
의사가 하는 말은 모두 알아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얼떨결에 한어(漢語)가 튀어 나올려고 한걸 겨우 자제하고 신야의 기억을 살펴 적당한 말을 찾아 뱉어냈다. 처음으로 왜놈 말을 지껄인것이다.
"일단 자리에 누워. 검사를 해 봐야 겠어."
말하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젊은 의사가 손가락을 눈앞에 대고는 좌우로 옮기며 눈동자만 따라 이동시켜 보라고 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했다. 손발도 움직여 보라고 하며 아픈곳이 있는지도 물어 보았다.
"정밀 검사를 해 봐야겠어. 이하라(井原)상, 준비를 해 주십시요."
"예. 선생님."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자 의사는 다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고개만 끄덕이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왜놈 말이 익숙치 않아서였다.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정밀 검사를 했다.
침대같은 바닥에 눕자 바닥이 저절로 움직여 둥근 원형 안으로 머리가 들어 가기고 하고 피를 뽑기도 했다. 뽀족한 바늘을 간호사가 팔에 찌를려고 했을때 너무 놀라 간호사의 팔을 후려치기까지 했었다. 신야의 기억으로 피 검사를 하기 위해 뽑는다는걸 알고는 무안해지기까지 했었다.
"신야! 일어 났구나."
덥석.
"미안하구나. 아무것도 몰랐었단다."
정밀 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 오자 신야가 살고 있는 아동 양호 시설의 원장 선생이 와 있었다. 자신을 보고는 급히 달려와 손을 잡고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중원일때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원장이 울먹이자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다고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원장 선생은 뭘 모르고 있었다는지 궁금했지만 물어 보진 않았다. 물을 정도의 왜놈 말인 일본어가 익숙치 않아 말문을 닫고 있었다. 평소에도 신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정밀 검사 결과 모든것이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곧바로 병원을 나갈수는 없었다.
이틀동안 경과를 지켜 본후 퇴원해도 되는지 판단한다고 했다. 원장 선생은 저녁 무렵까지 같이 있었다. 하는 일도 없이 침대에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었다. 눈을 감고 양월심법을 운공했다. 원래는 가부좌를 틀고 해야 하지만 시간을 때울겸 어쩔수가 없었다.
- 작가의말
주인공이 엄청나게 뚱보입니다. 중원 무인으로써 용납할수 없는 일이죠.
즐독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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