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7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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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하나아~ 으으으 두울~ 세에에에엣.”
“어이 1115번. 숫자는 네가 세는 게 아니다.”
옆에 붙어있는 생도의 말에 그렉이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숫자를 안 세주시니까 제가 세는 거 아닙니까?”
“제대로 해야 세 줄 것이 아니냐?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까 제대로 해봐라. 가슴까지 내리고. 그렇지. 이제 팔을 쭉 펴고.”
“끄응...”
그렉은 이를 악물고 바벨을 들어올렸다.
“잘했다. 이제 하나다.”
생도의 말에 인상이 팍 구겨졌다.
앞서 한 세 개는 어디로 날아가고 이제 하나란다.
그래도 그의 말대로 시간은 충분했다. 3분 안에 60개만 하면 되니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문제는 무게였다.
바벨의 총 무게는 50kg.
성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무게다.
보통 지원하는 이들의 나이는 17살에서 19살 사이.
아직 성장기에 있는 이들이란 것이다. 빠르면 15살에도 아카데미 시험을 보는 이들도 있지만 경험삼아라면 모를까 합격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기사가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수련한 이들의 힘이 좋다고 해도 아직 17살인 그에게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3분이라는 시간은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바벨을 내려놓으면 그걸로 끝. 잠깐 내려놓고 쉬었다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는 거다.
아무튼 그렉은 인상을 박박 쓰면서 바벨을 들어올렸다.
수를 세주는 생도가 제대로 안했다고 가끔 하나씩 빼기는 하지만, 연습도 많이 했고 3분 안에 60개는 할 수 있다.
기본점수라도 받으려면 반드시 60개는 해야 했고 그 정도면 만족했다. 60개를 넘은 다음부터는 10개씩 더 할 때마다 가산 점을 받지만 그걸 노릴 생각은 없었다.
코스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25개의 코스를 다 돌려면 체력의 안배는 반드시 필요했다.
첫날 체력시험이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인 이상 계속 힘을 쓰다보면 지치기 마련.
초반에 욕심 부려서 몇 개정도 점수를 잘 받아도, 나중에 힘이 빠져 기본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힘이 덜 들고 자신이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기본점수정도 받아서 1일차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대부분 지원자들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기본점수만 다 받으면 모든 코스를 통과한 것이니 1일차는 합격이란 걸 모두가 안다.
알면서도 여러 명이 모여서 경쟁을 하는 구도이다 보니, 나중을 생각해서 가산 점을 받아두면 좋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입을 다물어라. 말을 하면 그만큼 힘이 빠진다.”
그 말에 바벨을 들어 올릴 때마다 기합을 넣던 그렉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붙어있는 생도는 친절한 편이었다.
원칙대로 까다롭게 평가했지만 그래도 계속 조언과 응원을 해줘서 힘을 낼 수가 있었으니까.
10명씩 동시에 시험을 치르고 있고, 개인별로 생도들이 붙어있기에 사방에서 숫자 세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들으면서 남들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얼마나 앞서거나 뒤처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쟁인 만큼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는 없었다.
초반에는 빠르게 숫자가 올라가지만 점점 힘이 빠지면 속도도 느려지는 게 당연한 일.
그런데 바로 옆에서 들리는 숫자가 무척 거슬렸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 여전히 세는 속도도 장난이 아니고, 자신은 이제 30개가 막 넘었는데 옆에선 80개가 넘어갔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
살짝 고개를 돌려 힐끗 보니 길리안이었다.
바벨을 들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팔.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옆에는 신경 쓰지 말고 네 페이스를 유지해라. 괜히 따라가려고 무리하면 너만 손해다.”
그 말에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었다.
60개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하아... 하아... 하아...”
그렉은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지는 한참 됐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달리고 있는 같은 조에 속한 지원 생들도 다들 힘들어 헥헥거리긴 마찬가지.
지금 코스는 이 넓은 아카데미를 한 바퀴 돌아야하는 것이었다. 넓기는 하지만 그냥 뛰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한 시간도 있고 그보다 큰 문제는 한쪽다리에 10kg씩, 즉20kg나 되는 쇳덩이를 달고 뛴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도 모자라 군데군데 장애물까지 있다는 거다.
아는 기사 말이 아카데미를 한 바퀴 돌고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물론 훈련은 했다. 하지만 했어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오전시험의 마지막 코스였는데 솔직히 제일 마지막에 했으면 했던 거였다.
어떤 조에 속해 어떤 코스부터 하게 될지는 일종의 운.
그러고 보면 오늘 운이 참 없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는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는 있지만 그걸 생각해도 힘을 너무 많이 뺐다.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니고 다들 힘들어하고 지쳤으니 그걸 위안삼아도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바로 같은 조에 속한 한 녀석 때문이다.
17살에 뭘 먹고 키가 그렇게 컸는지 180Cm가 넘어 보이는 키에, 성인기사들 못지않은 근육을 자랑하는 길리안이라는 녀석.
처음 볼 때부터 ‘이 녀석 좀 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게 좀이 아니더라.
길리안은 첫 바벨코스에서 3분 동안 180개를 했다. 1초에 하나 꼴이고 그것도 수를 세는 생도가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십여 개를 뺀 숫자이니 거의 200개는 했다는 말이다.
그때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러다 금방 지치겠거니 했다.
10m가 넘는 밧줄을 타고 올라가 종을 치고 내려오는 코스가 있었다.
남들 반이나 올라갔을까 한 시간에 벌써 종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땅에 내려가 있더라.
시작하고 10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보느라 같이 밧줄을 오르던 이들이 멈칫 했고, 결론적으로 기록만 늦어졌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도 포함돼있고 말이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저게 사람인가 싶었다.
하는 코스마다 기록경신은 물론, 같이하는 이들이 길리안을 의식하며 하다 보니 무리를 하는 것이 보였다.
같은 조에 속한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기차례가 끝나고 쉬는 동안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조들의 상황도 보기마련.
이쪽에서 날아다니는 길리안을 보고 자극을 받은 다른 조의 지원자들도 무리하는 것 같았다.
그렉은 처음 바벨코스에서 생도가 해줬던 말을 되새기며 페이스를 유지하려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길리안의 스타트는 다른 이들에 비해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한명씩 제치고 선두로 나서더니 저만치 앞으로 나가더라. 그러고 지금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이 2/3정도 돌았는데 녀석은 벌써 결승선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있다는 거다.
자극받은 조원들이 속도를 높여 죽어라 달리는 게 보였다.
이런 상황이면 오후코스에서는 다들 힘이 빠져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오전시험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길리안 녀석은 지친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마 오후에도 지금처럼 날아다닐 가능성이 컸다.
저런 녀석과 같은 조에 속했다는 것도 운이 없는 거라 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이게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시기어린 눈으로 그를 보며 따라잡으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거다.
어차피 최종 성적으로 100등 안에만 들어가면 입학이다.
1등을 하겠다, 좋은 성적을 받겠다, 이런 마음 버리면 편한 것이다. 딱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상대를 따라잡겠다고 기를 써봐야 이쪽만 손해다.
길게 보고 가야지 첫날 시험에 힘 다 빼면 남은 시험이 힘든 것이니까.
그런데 다른 녀석들이 괜히 자극받아 무리를 하니, 거기 휘말리지 않고 잘만 조절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제한시간 안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여유 있게 들어가 가산 점을 받으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나름 조절을 하며 열심히 달렸다.
“하아.. 하아... 후욱... 아 나죽어. 아우 죽겠다.”
그렉은 목적지에 도착하지마자 바닥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고생했다.”
들려오는 말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아.. 어... 길리안이구나.”
길리안은 웃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가죽으로 된 물주머니를 그렉에게 건넸다.
“고맙다.”
말을 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렉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무척 시끄럽고 말 많은 투털이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전 내 함께 있어보니 말만 앞서는 녀석은 아니었다.
시험에 임할 땐 사뭇 진지해지는 것도 그렇고 노력하는 것도 보였다. 물론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녀석의 말이 확 줄어들었다는 것이었지만.
그리고 처음이나 지금이나 대하는 태도가 같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있던 몇몇과 인사를 주고받고 대화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이 시작되고 코스 몇 개를 돌고난 다음부터는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뭔가 달랐다.
경계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시기한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주는 눈빛들이었으니까.
그러다보니 말을 붙이기도 뭐했다.
먼저 들어와서 딱히 할 것도 없기에 생도들을 도와 물을 나눠주고 있는데 자신이 주는 건 거절하는 녀석도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경쟁이니 눈치 볼 것도 없고, 그 때문에 설설하거나 할 생각도 없었다.
경쟁이기도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캬아... 아 이제 좀 살겠네. 후아... 아 힘들어. 아고 일어날 힘도 없다. 길리안 나 좀 일으켜주라.”
그의 말에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그런데 길리안 나 궁금한 게 하나있는데.”
“뭔데?”
“너 정체가 뭐냐?”
추천과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이렇게 친구하나 등장.
이래서 시험 언제 끝날 건데?
그러니까요.
본격 거북이 진행 판타지 넘버즈.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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