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넘버즈. 26장(4)

‘아 내가 정말 저 인간을 확! 그냥···.’

라데카는 크리스와 나란히 말에 탄 채로 규칙을 듣고 있는 길리안을 째려봤다.

밤늦게 돌아온 말론의 보고를 듣고 정말 기절할 뻔 했다.

마나폭주로 인한 폭발.

지하통로가 다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히 살아있는 거지, 폭삭 주저앉았으면 정말 죽었을 테니까.

말론을 보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준 것들 중에 마법을 무효화 시키는 주문서도 몇 장 있었는데, 그게 나름 힘을 발휘한 것 같다고 말론이 말했었다.

말론은 마법사는 아니지만 자신의 옆을 지키며 보고 들은 게 있어서 마법에 대해 아는 것은 상당히 많다.

실제로 마나폭주 때 마법 무효화 주문을 썼다는 과거의 기록은 있는데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살아있는 마법사가 있어야지.’

물론 마나폭주를 겪고 살아난 마법사가 있기는 하다.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도망친 경우에만.

옆에서 다른 사람이 써주면 모르겠지만, 직접 쓴다는 건 아무래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법사들이 사이좋게 공동으로 마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혼자 하니까 옆에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마법무효화 주문서가 마나폭주로 모여든 마나를 조금은 분산시킬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했다.

자신도 일부러 마나폭주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걸 확인하겠다고 목숨 걸고 실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말이 좋아 마법 무효화지 마법사의 주문에 의해 모여든 마나를 흐트러트리는 것이 목적. 위력이 약한 마법이야 완전히 무효화 시키겠지만, 상대적인 것.

그래도 위력을 줄일 수는 있으니까 폭발의 위력도 조금 줄기는 했을 거라고 생각만 했다.

그거 말고도 확실하게 도움이 된 것은 있었다.

말론은 탈출하면서 마법실드 주문서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폭발 전에 몇 개 써서 폭발이 통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막고 몇 장은 탈출하며 떨어지는 돌을 막는대 썼다고 했다.

결론은 말론에게 쥐어 보낸 주문서는 다 쓰고나왔다는 것.

그게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게 만들었던 주문서의 전부였다.

마법주문서를 만드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주문을 적는 종이도 특별히 따로 만들어야 했고, 마법잉크로 주문을 적고 마정석을 이용해 만드는 마법가루를 그 주문위에 덧칠하고 각인하고 직접 마법시현도 해서 완성을 해야 한다.

문제는 10장 만들어서 한 장 건지면 운이 좋은 거다.

만들기도 힘든데 위력도 직접 마법을 쓰는 것보다 약하다.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마법을 모르는 사람도 그냥 찢으면 바로 마법이 발현되니 편리하다는 것.

들어가는 재료와 노력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서 별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마법 상점에서 파는 주문서가 엄청나게 비싼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거기에 공격마법 주문서는 만들면 신고도 해야 하고, 마법 상점에서 판매도 못한다.

어쨌든 자신이 마법사가 되고 몇 년 동안 힘들게 만든 주문서를 탈탈 털어 썼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그를 살렸고 미네르바를 살렸다.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라이벌이니 뭐니 해도 미네르바는 정말 친언니 같은 존재니까.

그녀가 죽어 없어지길 바랄만큼 미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이 변하고 있었다.

“아까워.”

라데카의 말에 말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물었다.

“뭐가 아까우십니까?”

“내 주문서들. 소중하게 간직해온 내 새끼들! 미네르바 언니는 몰라도 저 인간한테 쓴 건 아까워.”

“음, 아깝지 않다고 하신 게···.”

“취소야. 아까워, 아까워서 죽을 것 같아. 저 인간을 보라고! 와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또 결투야 또!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데? 하루하루 늙어가는 기분이야. 내가 빨리 죽으면 다 저 인간 때문이라고.”

그 말에 말론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죽다 살아왔으면 좀 쉬어야 할 거 아니야. 피투성이가 됐었다며? 뭐가 급해서 벌써 저러는 건데. 아무튼 아까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하라고! 이 나쁜 인간!”

“그가 알았다면 아마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도움을 받고 그냥 모른 척 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 말에 길리안을 째려보던 라데카가 고개를 획 돌려 말론을 봤다.

“편들지 마. 말론은 누구편이야. 아니 그런데 몰랐다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빠져나와서 저희는 바로 철수 했습니다. 빠져나올 때야 서로 정신이 없었으니 그쪽에서 그냥 지나갔지만···.”

그의 말에 라데카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뒤에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론의 입장에서는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고 빨리 그 자리를 떠야했으니까.

바보같이 그 생각을 못했다.

“아 정말 짜증나!”

라데카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해서든 생색을 냈어야지. 난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 싫다고! 나도 받고 싶단 말이야!”

“저기, 아가씨.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조금만···.”

말론의 말에 라데카는 주변을 둘러봤다.

넘버즈들의 대결을 앞두고 이런 저런 설명과 서약 같은 것이 진행되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조용한 상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었다.

‘되는 일이 없네.’

주변의 눈총에 일어나서 살짝 고개라고 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귀빈석에서 누군가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이베트였다.

그녀를 본 라데카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미소를 지었다.

저 무관심한 인간에게 직접 뭔가를 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방금 떠올라서였다.

라데카는 이베트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인사하기 전에 왕비와 공주들에게 먼저 예를 취했다.

이베트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 앉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예.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겠어요. 며칠 전 일도 그렇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으니까.”

그 말에 라데카가 크게 웃었다.

물론 속으로.

라데카가 손가락으로 길리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쁜 남자 때문에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크리스 경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그 옆에 있는 나쁜 남자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 길리안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놀란 표정으로 길리안과 라데카를 번갈아 보며 묻는 이베트의 말에 라데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결투를 벌이니 제가 정말 살수가 없습니다. 걱정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답니다.”

놀란 듯 라데카를 보던 이베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중에 나와 얘기 좀 해요.”

“물론입니다.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 아이··· 아니 길리안을 믿고 응원해줘요.”

“예.”

길리안을 보며 말하는 이베트에게 대답을 한 라데카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 봤다.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에 보일정도는 아니지만 떨림이 느껴졌다.

라데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떨지 마세요. 제발···.’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도 이런 것을 잘 못 봐서 며칠 전에 기절도 했다.

괜히 이베트 옆에 앉아서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길리안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그녀에게 점수를 딸 목적도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대결을 보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떨고 계신다.

이정도면 자신보다도 심하다.

그냥 인사만 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갈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아~ 자리를 잘못 잡았어. 그런데···.’

아까 엔젤을 본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엔젤의 옆에 앉아있는 길리안의 형.

기사의 신분이라지만 그가 앉아있을 만한 자리가 절대 아니다.

‘하긴.’

이베트가 왕비와 친분이 깊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녀가 그를 귀빈석에 앉혔을 수도 있고 길리안이 요청 했을 수도 있다

이제 넘버즈인 그는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으니까.

‘그보다.’

엔젤과 윌리엄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작게 말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엔젤의 표정이 상당히 밝아 보인다는 것.

물론 슈발리에에서 오랜만에 넘버즈가 탄생했으니 기분이 좋기는 하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할 때 사람들의 환호가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두 사람.

방금은 길리안의 이름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환호 한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포고관들이 새로운 넘버 11의 탄생을 알리고 다녔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탑주의 반란과 그걸 진압한 넘버즈들의 활약은 자세히 적어 공고문을 붙였을 정도.

귀족들은 마탑주의 반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저택이 흔적만 남기고 폭발한 것은 당연히 큰 이야기 거리였고, 그 주변에 살던 귀족들의 저택은 날아온 파편에 꽤 큰 피해도 입었다. 수도에 있는 귀족의 저택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은 정말 경악할 만한 일.

그 미친 노인네 때문에 애먼 마법사들이 고생하게 생겼다.

자신도 마탑에 등록된 정식 마법사.

다행히 슈발리에로 파견 나와 있어서 큰 불똥은 피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큰일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일 소환조사가 잡혀있다.

무척 귀찮은 일.

문제는 기사와 관리들에 이어 마법사들까지 숙청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충격적인 소식보다 평민들은 다른 소식에 더 관심을 보였다.

특히 넘버즈가 된 길리안과 그의 활약에 열광했다.

수도 어딜 가도 그에 대한 얘기뿐.

마탑주의 반란은 미친 마법사가 미친 짓을 벌였다는 정도로 끝이었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귀족의 저택이 폭발을 하건 피해를 입건 상관이 없었다. 마탑이 폐쇄되건 마법사들이 죽든 말든 아무 상관도 관심도 없었다.

몬스터가 튀어나왔다지만 그들이 본 것은 기사들이 모두 처리한 시체가 옮겨지는 것 정도. 그것도 다 가려서 정말 몬스터인지도 몰랐을 테니까.

그들이 더 관심을 가진 것은 기사들에 대한 일차 처형이었다. 기사였던 자들의 죄가 열거되고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래도 왕실 기사였던 자들인데 그들의 처형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왕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걸로 자신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보여줬고, 그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왕에 대한 칭송도 들렸다.

물론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은 길리안의 얘기였다.

넘버즈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여러 가지 별명이 붙었다.

대표적인 두 개가 정의의 기사와 영광의 기사.

앞으로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그가 하는 일은 정의가 되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과 같았다.

마탑주의 반란사건을 왕실에서 오픈했는데, 그가 검을 부러트려 왕을 일깨우고 넘버즈가 된 일화에 그 사건이 묻혀버릴 정도.

오히려 그걸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넘버즈의 대결이 일반에 공개됐지?’

하는 의문이 들어 가만 생각해보니 없었던 것 같았다.

기사들의 대결에 관심은 없었지만, 넘버즈의 대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안다.

지금까진 왕의 주관 하에 왕성에서 벌어졌다.

왕실기사들이야 당연히 볼 수 있지만, 외부 인물 중에는 고위 귀족이나 왕에게 부름을 받은 이나 볼 수 있는 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수도에 있는 마창시합을 위한 경기장에서 왕비의 주관 하에 여러 귀족은 물론 수많은 평민들까지 모여 있다.

귀족들의 자리도 가득 매워졌고, 평민들은 대부분 일어서 있어서 경기장을 가득 매울 정도로 많이 들어와 있는데도 밖에는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가을 무투회에서 넘버즈들의 대결을 가끔 볼 수는 있지만 넘버 승급을 위한 결투가 공개된 것은 처음.

보통사람은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귀한 구경거리였다.

‘왕이 아주 제대로 써먹고 계시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의 힘도 다른 영주들처럼 직영지에서 나온다. 인구가 가장 많고 번화한 수도는 그 힘의 중심.

떠났던 백성들의 마음을 한 번에 다시 돌려놨다.

그리고 왕은 그 중심에 있는 길리안을 제대로 써먹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알려진 승급결투 소식은 사람들의 이목을 또 돌려놓은 효과를 가져왔다.

왕이 상황을 이용하는 수완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도 한몫하고 있을 테지만.

문제는 길리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러고 있다는 거다.

‘하긴.’

알아도 왕의 기사로서 스스로 나설 사람이긴 하다.

명예에 욕심을 낼만한 사람이 아닌데, 넘버 승급을 위한 도전이 너무 빠르다.

그가 이렇게 빠르게 크리스에게 도전한 이유를 알 것 같기는 했다.

자신은 넘버즈들에 대한 것도 많이 알고 있었다.

‘크리스 저인간은.’

넘버즈에는 어울리지 않기는 했다.

여자들에게는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고, 특히 수도방화사건 때 일처리는 엉망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

길리안이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알고 있었고, 그런 그가 크리스에 대한 얘기를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에게 넘버즈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크리스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할 테니까.

이해는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왕이나 도전한 길리안이나 한 가지 생각은 안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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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지면 어쩌긴!! 

완결이지.

어?

설마~ ㅎ ㅔㅎ ㅔ.

[은색의왕]

잘 보고 가요!

[대원(大遠)]

감사합니다.

[kazema]

완결 축하드립니다?????

[대원(大遠)]

감사합니다^^ 어???? ㅋㅋㅋ

[정체무실]

헤헤헤헿

[대원(大遠)]

흐흐흐흫;;;;

[오빠나야나]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오빠나야나]

본격 주인공 죽여 급마무리하는 소설(?)

[대원(大遠)]

그럴리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