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6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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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걸맞게 수도 최고의 베이커리로 만들겠습니다.”
토마스의 말에 길리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세요.”
공사를 마치고 새로 문을 열면서 가게의 이름도 바꿨다.
그 이름은 크라운 베이커리.
빵가게 이름으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지만 길리안에게는 원래 단어가 주는 뜻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바로 작은 형의 이름이 크라운이었다.
큰형인 윌리엄 후버, 작은형인 크라운 후버. 그리고 막내인 길리안 후버.
이게 후버가문의 삼형제의 이름이었다.
작은형은 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먹는 것만큼 만드는 것도 좋아해서 커서 기사가 못되면 베이커가 되겠다고 했었다. 소식이 없는 작은 형 생각도 나고, 옛 생각도 나서 겸사겸사 작은형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간판을 보면서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길리안을 보면서 토마스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토마스도 이 경험 없고 어린 주인이 미덥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장사 경험도 없고, 상인집안도 아니어서 장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 이가 장사에 관여를 하니 걱정이 됐었다. 무시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런 마음이 조금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 며칠사이에 생각이 많이 변했다.
그가 본 길리안은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했다.
가게의 공사가 진행된 3일간 토마스와 베이커들은 거의 저택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 선보였던 것들 말고도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괜찮다 싶은 빵들은 바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즉시 평가를 내리고 판매여부까지 결정해버렸다.
그가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과 그것을 토대로 세운 계획을 말해줬고, 그것에 대해 직원들이 의견을 말하면 반영할 수 있는 것들은 반영했다.
좋은 의견이다 싶은 것은 망설이지 않고 수용하고,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바로바로 실행에 옮겼다.
적어도 그가 아는 가게주인들 중에 직원들의 의견을 이렇게 많이 들어주고 수용해주는 주인은 없었다.
대부분은 좋은 생각을 말해도 무시하기 일 수였고, 시킨 일이나 잘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고용인들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눠준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보통은 가게가 잘 안되면 제일먼저 하는 일이 직원을 줄이는 것이다. 손님이 없고 판매가 안 되니 일손을 놀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지출을 줄이고 규모를 줄이고, 그도 안 되면 업종을 변경하거나 가게를 팔아버린다.
길리안처럼 새로운 것을 추가하고 확장과 투자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요리사와 수습베이커를 추가로 뽑고, 판매와 2층에서 서빙을 전담할 여직원도 6명이나 뽑았다.
거기에 가게주변을 청소하고 심부름을 하는 일꾼도 2명이나 들였다. 주변청소를 하는 이들이 꼭 필요한가 싶겠지만 고급 상점에서는 그런 일을 전담하는 일꾼들을 들였다.
멀리서 본 수도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석조건물들도 많았고, 도로도 모두 돌로 포장돼있어서 다니기도 편했다.
하지만 멀리서 본 외형에 비해 안에 들어서면 조금은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여기저기서 널려있는 오물과 그것이 풍기는 냄새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말과 마차들, 짐수레들이 돌아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거리에서 바지내리고 볼일 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으쓱한 곳에서는 실례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는 말이나 소등의 가축들의 배설물이 문제였다.
말을 타고 가던 기사나 귀족이 말이 응가를 했다고 내려서 그걸 치우겠는가? 아니면 마차를 몰고 가던 마부가 마차를 세우고 그걸 치우겠는가?
당연히 안 치운다. 그냥 가는 거다.
그렇게 가축들이 내지른 분뇨와 집이나 상점에서 내다버리는 오물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퀴퀴한 냄새를 풍겨댄다.
이건 큰 대로의 얘기고 작은 골목이나 빈민가는 가축의 분뇨보다 사람의 그것이 더 문제였다.
아무튼 어딜 가나 오물과 거기서 풍기는 냄새들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지기 일 수였다.
그 냄새들 때문에 향수가 잘 팔린다는 소리도 있고, 길거리에 널려있는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래도 귀족들의 저택가나 고급 상점가에는 더러운 것들이 많이 보이질 않는다. 따로 청소하는 이들을 고용하기 때문이다.
길리안도 빵집에서 빵 굽는 냄새가 나야지, 맛있는 빵 냄새가 똥냄새에 묻혀버린다고 청소하는 이들을 고용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게 규모가 배 이상 커지고 직원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정도면 이미 수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빵가게다.
며칠 전만 해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수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빵가게를 책임지게 됐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늘어났다는 건, 더 많은 수익을 내야 유지가 된다는 것이다.
가게 규모가 수익을 보장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길리안도 단지 유지를 하기위해 이런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주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면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만 그는 주인을 대신해 경영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
그러다보니 투자한 것에 걸 맞는 이익을 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새로 개업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인상 좀 펴세요.”
생각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던 토마스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좋으면서도 부담이 돼서...”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은 새로 온 직원들이 일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하세요. 당장 많은 수익을 바라거나, 이 가게하나로 엄청난 돈을 벌 생각은 없으니까요. 시간은 충분히 드릴 테니 열심히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믿고 맡겨주신 만큼 수도에서 제일가는 가게로 만들겠습니다.”
벌써 몇 번이나 들은 토마스의 다짐에 길리안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는 그런 길리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꼭 성공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이 어린 주인은 생각보다 큰 사람인 것 같았다.
보통 부자 집에서 태어난 저 정도 나이의 또래들은 거만하고 버릇없는 경우가 많다. 평민이지만 집안의 재산을 믿고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이 떠받들어 키워, 마치 귀족가의 자제라도 되는 듯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길리안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그 외에는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절대 말을 놓지 않았다.
부리는 이들이라고 무시하고 심하게 대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예의 있게 대하니 오히려 이쪽에서 더 고개를 숙이게 된다.
장사에 대한 경험은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을 다루는 법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토마스는 밑에 사람들을 믿어주고 겸손한 어린주인이 계속 변하지 않길 바랐다.
“말씀대로 이삼일정도는 제가 직접 나오겠습니다.”
“예.”
이건 그가 직접 부탁한 것이었다.
새로운 메뉴가 나왔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당연이 홍보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길리안이 하려는 방식은 예상 외로 과감했다.
부담가지지 말고 하라고했지만 주인이 아닌 고용인으로서 행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방법이었고, 때문에 직접 나서주길 부탁한 것이다.
“그럼 저는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길리안은 토마스가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간판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처음 인수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생각지도 않던 돈이 많이 생겼고 싸게 살 기회가 있을 때 사는 게 좋아 보여, 계획적으로 라기보다는 충동적으로 산경향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직접 나서서 관여하고 바꿔놓고 보니 이제는 정말 내 것이 된 느낌이랄까?
솔직히 장사에는 소질도 없고, 큰돈을 다루거나 뭔가를 경영해본 경험도 없다.
다만 모르는 것은 부리는 사람에게라도 부끄러워말고 배우라는 아버지 말씀대로 했을 뿐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 누구보다 많은걸 알고 있을 아버지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밑에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부리는 사람의 몫이라고 하셨다.
직원들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겠다는 것도 아버지가 쓰시는 방법을 따라한 것이다.
집에 농사일을 도와주는 일꾼들, 소작을 하는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많은 수확을 거두어들이면 그 일부를 그들에게 지급해줬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셨고, 늘 그 생각대로 실천 하셨다.
뿌린 대로 거두고, 가진 만큼 베풀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많이 벌면 그만큼 베풀 생각이었다.
처음 세운 계획을 세울 때는 이게 될까했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논의하니 확실히 구체화 되고 현실적으로 변했다.
계획대로 다 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어디 장사를 시작해 볼까?”
그러다 피식 웃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두고봐야했지만 일을 하는 과정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잘 되서 많은 돈을 벌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돈의 맛에 너무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나 이러다 장사꾼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길리안은 중얼거리면서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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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이런 제 비축 분까지 생각해주는 우리 친절한 대표팀,..
하아... 한숨밖에 안 나오네요. 전 쪽잠을 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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