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6장(6)
“이렇게 퍼줘도 되는 겁니까?”
걱정스럽게 말하는 직원을 보면서 토마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왜 망할까봐 걱정 되냐?”
“조금은요. 생각해보십시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손해가 엄청날 겁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만... 도련님말씀을 빌리면 투자라고 해야겠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대리인 한스 알지? 그 사람 말이 우리 도련님 재력이 빵빵하다고 하더구나.”
“그럼 다행이지만요.”
토마스가 베이커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자 다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들 해. 항상 맛있는 빵을 만들고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게 우리 일이다. 다들 일에 집중들 하라고.”
그런 토마스의 말에 옆에서 말하던 직원도 입을 다물고 반죽을 시작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토마스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퍼주고 있었다.
물론 막 퍼주는 것은 아니고 미리 계획을 짜놓은 것이긴 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는 거다.
첫날에는 여직원들과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까지 동원해서 길거리에서 앤디 버거를 나눠줬다.
대상은 마차를 모는 이들, 짐수레를 끄는 이들, 각 성문 경비대와 관청까지. 수백이 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먹어보라고 준 것이다.
보통은 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그러기 힘든 이들이 있으니 바로 마부와 수레꾼들이다.
귀족들이나 부유한 이들은 개인마차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수도에는 훨씬 많다.
귀족이라고 모두가 부유한 것은 아니고, 몰락한 귀족들은 신분만 귀족이지만 평민의 생활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오히려 신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과 행동에 더 제약을 받는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비용이 상당했다.
그런 귀족들이나 살만한 평민들은 길가에 대기하고 있는 마차를 타고 돈을 지불한다. 그런 마부들은 관청에 등록을 하고 마차를 대여하거나 사서 일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마차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거나 계속 이동하기에 편히 식사를 할 상황이 못 된다. 그건 짐을 운반하는 수레꾼들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겨오는 이들이 많지만, 바쁠 때는 그냥 한 끼 거르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성문 경비병들이나 관청의 하급 행정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하는 경비병들에게 느긋한 식사는 불가능했고, 항상 많은 일거리에 치이는 하급 행정관들도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앤디 버거는 그런 이들에게 딱 알맞은 식사대용이기는 했다. 이것저것 필요 없이 버거 하나 먹고 목만 축이면 식사가 끝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좋은 것도 알려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
때문에 무료로 나눠주며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홍보는 앤디 버거에 한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 선보인 빵들이 많은 만큼 그것들도 홍보가 필요했으니까.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새로 출시한 메뉴를 홍보하기 위해 시식을 권하고, 일정금액이상 빵을 구입하면 무료로 주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가게 밖에 따로 시식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길리안이 여행 중에 들렸던 도시에서 이렇게 하는 것을 본 것이라고 들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상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론 귀족들을 상대로 하는 향수가게가 그렇다. 하지만 그건 귀족과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장사고 한 병을 팔았을 때 마진도 높다.
하지만 빵은 향수랑은 다르게 팔아도 얼마 남지 않는다. 사치품인 향수와 마진자체를 비교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거기에 평민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다르다.
평민이라고 모두가 먹고살만한 것도 아니고, 도시 빈민들의 삶은 농노보다도 못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의 주머니는 얇다는 말이다.
그래도 적당한 선이라면 새 메뉴를 알리는데 좋을 것 같은 방법이라 다들 찬성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사람의 수였다.
수도의 인구는 30만이 넘는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안에 사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은 외성 밖에서 산다.
마차로 몇 시간은 가야하는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지만 적어도 성 안팎에 20만 이상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게의 위치가 상점가의 동부지구 초입에 위치해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홍보를 시작한 첫날에는 공짜로 나눠주는 앤디 버거나 무료시식을 행하고 있는 빵들을 보고 낯설어하더니, 다음날에 또 한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사람도 많았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갓 구워낸 맛있는 빵이라면 더욱.
공짜라는 소문이 입에서 입을 통해 전달되는 속도는 참 놀라웠다.
둘째 날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몰렸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뭔가 싶어서 모여든 사람들까지 가세하니 가게 앞에 수백 명이 계속 모여 있었다.
거기에 부랑자에, 북부지구에 사는 빈민들까지 가세해서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빵을 하나씩 나눠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
시식이란 것 차제가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 맛만 보는 것이니, 빵 하나면 몇 사람에게 맛을 보이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의 수가 적을 때 얘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먹고 갔던 이가 또 와서 먹고 하다 보니 그 양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행사를 벌이는 덕에 빵을 사가는 사람도 꽤 있기는 하지만, 공짜로 퍼주는 게 많다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새로 고용한 이들에 저택요리사인 앤디까지 나와서 일손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빵을 만들어대는 대도 감당하기가 벅찰 정도였다.
이렇게 빵이 팔려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홍보를 하는 건지,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토마스가 보기에는 이중에서 손님이 될 사람은 몇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길리안은 계속해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거다.
적당히 끊고, 없다고 돌려보내도 될 것 같은데 계획대로 내일까지는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우직한 것은 좋지만 장사에서는 그게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이 그런 경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말려도 주인이 그렇게 하겠다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입소문은 날 것 같았고 가게의 평판도 좋아질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꼭 매출과 연결된다는 법은 없으니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였다.
그저 이렇게 퍼준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차를 드실 때는 먼저 향을 맡아 음미하신다음에 그에 대한 감상을 말씀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물론 대접하는 상대가 듣기에 좋을 만한 평가가 좋겠지요. 그리고....”
집사의 말을 들으며 길리안은 찻잔을 들고 향을 음미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누리시는 사치가 바로 차였다.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 거의 없기에 비싼 차를 구입하는 것을 사치라고 할 것 까지는 없었다.
드시는 차는 딱 한 종류였고, 그 품종을 어렵게 구해 재배를 해보시려했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보면 일의 연장일 수도 있고, 아무튼 좋아하시는 것 같으면서도 자주마시거나 하지는 않으셨다.
가끔 차를 드실 때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으실 때도 많고, 어떤 날에는 너무 엄숙해 보이기까지 해서 아버지가 차를 끓이시면 형제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던 기억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길리안은 차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그의 입에는 별로 맞지가 않았다.
다만 지금 차를 마시고, 또 집사에게 그에 관련된 예절을 배우고 있는 것은 나중을 위해서거도 했지만, 아카데미의 시험 중에도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절들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몸에 밴 것은 다르다. 그래서 집사를 통해 복습하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 차를 마시는 문화자체가 원래는 귀족들의 전유물과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평민들 중에도 부유한 이들이 생겨나고, 또 저렴한 차들이 보급되면서 평민들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에는 차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고, 귀족들에게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오죽하면 교양시험에 포함이 될까.
그렇게 길리안이 차를 마실 때 집사가 테이블에 뭔가를 올려놨다.
“이게 뭡니까?”
“내일이 시험이시지 않습니까. 아카데미에 가서 접수가 된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쓰게 웃었다.
집사가 있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귀족을 모시던 이라 예절도 잘 알아서 그에게 지도를 받을 수도 있고, 지금처럼 자신이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을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를 해주고, 중요한 일은 잊지 않도록 확인도 해주니 정말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꼼꼼하게 신경써주는 것은 좋은데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다.
아카데미에 접수 확인만 3번째 하는 것이었으니까.
“지금보시는 것은 시험 일정표입니다. 삼일 전에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것도 주는군요. 고마워요.”
등록 첫날 잽싸게 가서 등록하고 확인증만 받아서 나왔는데 이런 걸 주는지도 몰랐다.
“별말씀을... 그보다 이번시험은 더 어려워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네. 그렇다더군요.”
길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험일정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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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이제 빵집일은 거의 정리가 됐고... 한두 편 안에 1권 분량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겁니다.
이제 곧 아카데미 시험이....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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