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넘버즈. 30장(10)

“과거의 봉토를 가진 기사들의 횡포가 심했지요. 지금의 체계가 완성된 건 역시 타노스 3세께서 이룬 업적입니다. 힘들게 이룬 것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땅을 주자는 거지요.”

“그냥 땅을 준다? 허허 그럼 누가 그걸 받겠는가?”

에런 왕의 말에 케빈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

“그러니 받게 만들어야지요.”

“말해보라.”

“예. 제가 기사들과 일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 잠시 조사를 했습니다. 300여 명에게 물어봤는데 봉록 대신 땅을 주면 받겠다는 기사가 200여 명이 넘었습니다. 꽤 높은 비율이지요.”

“음?”

“왕께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계신 재산이 바로 토지입니다. 모든 영주 중 가장 큰 토지를 소유하고 계시지요. 현재 수도나 직영지에서 거래되고 있는 토지는 과거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은 자들이나 상으로 토지를 받은 자, 중간에 왕실 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판매한 토지가 거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거래가 되니 당연히 시세가 형성돼 있습니다. 여기 그려진 것은 제가 대략 적으로 조사한 직영지의 토지 시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도와 각 도시에서 가까운 곳은 비싸고 멀어질수록 싸지요.”

“그렇겠지.”

“그리고 봉록 전부를 토지로 지급하면 당연히 안 받겠지요.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면 매월 봉록을 5골드로 줄이고 남은 10골드를 1년으로 하면 120골드. 그만큼의 토지를 원하는 곳에 먼저 지급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봉록의 일부를 토지로 선지급 하신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호.”

“물론 땅만 주어서는 안 됩니다. 땅에서 그냥 돈이 나오지는 않지요. 그 땅을 일굴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행정 관청에서 모집해주면 되겠고, 그들이 정착할 동안 왕께서는 세금 감면 혜택을 주시거나, 경제적 지원을 해주실 경우에는 기사의 봉록에서 제하셔도 될 겁니다.”

“음.”

“이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가문 좋고 돈 많은 집안의 기사보다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기사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평민 출신이나 부유하지 못한 평 귀족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왕실 기사가 된다고 했을 때 그 한 명에게 가족이 거는 기대는 큽니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그 한 명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지요.”

“투자라···.”

“봉록과 세금감면혜택 등을 하면 기사 생활 몇 년이면 그 투자금을 회수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던 자들은 이미 처리가 됐지요. 어쨌든 기사라고 명예를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을 부양해야지요. 그런데 기사가 무슨 일을 당하거나 하면 당연히 돈줄이 끊깁니다.”

“음.”

“예전에 봉토를 줄 때는 그 안에서 기사는 지금의 영주처럼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그냥 지주가 될 뿐입니다. 정리해 드리지요. 기사의 봉록을 땅으로 선지급해서 지출을 줄입니다. 소작농은 관청에서 모아 줍니다. 소작도 하나의 예일 뿐이죠. 어쨌든 그렇게 됐을 때 땅의 관리는 그 가족이 하면 됩니다. 아니면 전담행정관을 두어 관리를 해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괜찮군.”

“그리고 기사가 전사하거나 했을 때도 왕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그 가족의 생계를 챙겨주신다면 기사들의 마음도 조금은 편해질 겁니다.”

“조금 보완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정이 부족해져서 땅을 파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됩니다. 당장 나가는 지출도 줄이고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과 세금도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카라얀이 거들자 에런 왕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혹시 저리하면 토지를 받을 기사가 이곳에 있는가?”

라는 말에 길리안이 손을 번쩍 들었다.

“경은 이미 소작을 많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소작농을 모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지원자가 무척 많습니다. 일하고 싶은 자는 많지만,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음.”

“기사도에 약자를 보호하라 했습니다. 하지만 꼭 검으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를 약자라 하면 가진 자가 그 약자에게 기회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들을 보호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까?”

길리안의 말이 끝나자 넘버즈들이 손을 들었고 다른 기사들도 서로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받더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왕의 곁에 있던 드겔도 손을 들었다.

“은퇴하면 농사나 지어볼까 합니다.”

그 말에 에런 왕이 피식 웃고는 손을 내리라고 했다.

“예전에는 기사에게 봉토만 주었고 지금은 기사에게 봉록만 주고 있지. 그리하다 보니 계속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참으로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내무총관은 좀 더 보완해서 시행할 수 있도록 하시오.”

“예.”

대답을 들은 에런 왕이 케빈을 보며 말했다.

“그게 첫 번째라 했으니 더 있겠지?”

케빈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자 그럼 두 번째로.”

케빈이 종이를 넘기자 거기에는 강과 다리가 그려져 있었다.

“자 이 강은 왕국의 동과 서를 잇는 티모스 강이고 다리는 수도 북쪽에 있는 뮈튼 다리입니다. 타노스 3세께서 건설하셨고 뮈튼은 미들네임에서 따온 것이지요. 당시만 해도 엄청난 역사였습니다. 지금 봐도 이 넓은 강에 다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지요.”

“그 다리가 재정과 관계가 있다?”

“그렇습니다. 수도에서 나고 자란 제가 딱 3번 건너본 이 다리의 통행료는 구리동전 10개입니다. 왕복하면 20개입니다. 선착장에서 하역 일을 하는 자들의 일당이군요.”

그 말에 에런 왕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통행량은 별로 없지요. 당시에는 강의 북쪽을 발전시키고자 이동의 편의를 위해 건설하셨고, 그 동안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방해가 됩니다.”

“방해라?”

“예. 티모스 강은 왕국의 동서를 잇는 큰 강이고, 서로는 베이가 왕국과 동북쪽의 칼마한 왕국과의 교역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강을 통한 물류의 이동이 많아졌다는 건 왕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

“많은 것을 실어야 하니 배도 많이 커졌지요. 뮈튼 다리는 그 큰 강에 있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하지만 이 다리가 물류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다리 때문에 배가 못 지나가서 양쪽에 선착장이 있습니다. 서쪽에서 온 배가 동쪽까지 못가고 하역을 합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가는 배에 옮겨 싣지요. 필요한 것만 내리고 싣는 것이 아니라 전부 내려서 다시 싣는 겁니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그 다리를 부수자는 말인가?”

“예. 아, 물론 위대한 업적인데 다 부수면 안 되겠지요.”

케빈이 종이를 넘기자 다리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가운데 쪽만 잘라 내거나 밑에 그림처럼 두 군데를 잘라내는 겁니다. 물론 건축 기술자와 학자들에게 조언도 구했습니다. 건설 당시에도 마탑의 도움이 있었지만, 지금도 마탑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 할 거라는 의견입니다. 끊어진 다리는 그림에서처럼 들어 올려다 내릴 수 있는 장치를 세우면 됩니다. 그럼 배도 다니고 배가 안 다니면 사람도 다니고 아주 좋겠지요.”

에런 왕이 마탑주를 보자 슐레만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가능할 겝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 말에 케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타노스 3세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을 선주들과 상인들을 위해 왕께서 손을 댄 것이니 통행세를 선박에 징수하는 겁니다. 골드 단위로 받으셔도 됩니다. 1골드씩만 받는다 치고, 하루에 10대만 지나다녀도 1년이면 수천 골드입니다. 구리동전 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지요. 그리고 하루 10대 이상 지나다닐 겁니다. 적당한 통행세는 따로 책정하시면 되겠지요. 물론 골드단위로 말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에게는 통행료를 받지 않는 겁니다. 받아도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마도 다리의 통행량도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기사들에게 강북 쪽의 땅을 주고 소작을 주게 하는 것도 좋겠군요.”

그 말에 자료를 살펴보고 뭔가를 적던 카라얀이 에런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 허락하신다면 해 볼만 한 일입니다. 예상 통행량과 수입은 따로 조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카라얀의 말에 에런 왕은 망설이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왕가의 무덤에서 보물들도 빼다 쓰는데 다 부수는 것도 아니고 일부만 잘라내는 건 못할 것도 없었다.

넘버즈와 몇몇을 제외하고 다들 놀라 에런 왕을 쳐다보자 왕이 웃으며 말했다.

“타노스 3세께서 ‘백성을 생각하라.’라는 유언을 남기셨소. 백성들을 위해 다리 조금 잘라냈다고 나무라시지는 않으시겠지.”

그 말에 다들 웃었다.

“케빈이라 했는가?”

“예. 케빈 폰 에른스트입니다.”

“아직 남았는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조금씩 돈이 더 되는 이야기지요.”

“계속하라. 아, 원하는 날 기사의 작위를 내려주겠다.”

그 말에 환하게 웃던 케빈이 헛기침을 하고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그럼.”

케빈이 종이를 넘기자 그다음 장에는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세 번째는 바로 몸값입니다.”

“몸값?”

“이번 일로 잡아드린 기사 관료 행정관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미 수백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렇지.”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기사, 법관, 관료들의 형이 우선으로 집행됐지요. 사형 첫날부터 구경꾼의 수를 조사해봤습니다. 아, 이건 그냥 제가 궁금해서 했던 겁니다. 어쨌든, 지금은 첫날의 반도 되지 않는 수가 사형 집행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 또한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였습니다. 며칠 사이 큰 사건도 많았고 어쨌든 백성들의 원망과 분도 많이 풀렸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래서?”

“어차피 영주들이 오면 그들과 연관된 귀족들이 하소연을 할 테고 영주들은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왕께 압력을 행사하려 하겠지요. 그러니 왕께서는 적당히 그들의 체면도 세워주시고 실리도 챙기시라는 말씀입니다.”

“흐음.”

솔직히 에런 왕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기는 했다.

다만 칼을 뽑았는데 중도에 집어넣기가 뭐해서 생각이 많을 뿐.

“저도 이자들이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전쟁터에서 서로 죽이다가도 항복하면 몸값 받고 풀어주는 세상입니다. 왕께 손해를 입힌 자들이니 죽어 마땅하지만, 그자들의 해 먹은 것이 재산을 몰수하는 정도로 메꿔지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니 그자들의 가문에서도 당연히 받아내야지요. 본보기는 보이셨으니 실리를 챙기시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넘버즈들을 보던 에런 왕이 말했다.

“그건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그 말에 고개를 숙인 케빈이 계속 말했다.

“다음 네 번째는 도박입니다.”

“도박?”

“예. 이번 길리안 경과 죽은···. 크흠. 어쨌든, 길리안 경의 승급 대결에서 많은 돈이 오갔습니다. 마창 시합에서도 누가 이길지를 가지고 내기를 하는 거야 일상이 돼 버린 지 오래지요. 가을에 있는 무투대회때는 정말 큰돈이 오갑니다. 그런데 이번 넘버즈 승급 대결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큰돈이 오갔습니다.”

“음.”

“그런데 며칠 후에 넘버즈의 대결이 또 잡혔습니다. 이번에도 일반에 공개하실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럴 생각이지.”

“그럼 아주 좋은 돈벌이가 될 겁니다.”

“허허, 나의 기사인 넘버즈들이 목숨을 건 대결을 하는데 돈을 걸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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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케빈타임 한편 더~

[MidD]

연참하셔서 정신없이 읽느라 댓글도 없이 뛰었습니다 ㅎㅎ 넘버즈간의 전투들이 겹겹이 쌓이고 있는걸 보니 벌써부터 기대감에 설레는군요 ㅎㅎㅎ

[대원(大遠)]

ㅎㅎㅎ 감사합니다 ㅎ

[오빠나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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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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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나야나]

감사히 읽었습니다.

[대원(大遠)]

저도 감사합니다^^ㅋ

[오빠나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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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댓글입니다.

[대원(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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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의왕]

세금감면해택→혜택

[대원(大遠)]

사랑합니다 ㅎㅎ 수정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