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25장(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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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도대체 뭡니까?”
“이건 아마도···.”
길리안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드레드는 말끝을 흐리며 자신을 공격하는 녀석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속이 텅 빈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자신도 궁금했었다.
비어있고 생명체도 아닌데 움직이는 기사의 갑옷.
수십의 마법사와 움직이는 갑옷, 생각나는 것이 골렘 밖에는 없었다.
이것들은 움직임도 느리고 공격을 피하지도 못한다.
해머를 크게 휘둘러 때리면 몸통이 날아가고 팔다리도 분리된다. 몇 마리를 그렇게 만들었을 때, 이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처음에 움직이는 걸 보고 긴장했었는데 수만 많을 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떨어져나갔던 팔다리가 몸통으로 날아가 붙더니, 다시 일어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솔직히 웃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이나 길리안에게만 몰려든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와 로렌스를 향해서도 공격을 하려해서 그 사이를 막아서고 놈들을 상대하는 중.
아까 오크들을 상대할 때와는 또 달랐다. 이건 수를 전혀 줄일 수가 없었으니까.
이쪽은 지쳐 가는데 저쪽은 지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위협적이지 않다고 해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상황.
“골렘인 거 같다.”
“크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크지는 않군요.”
“작게 만든 거겠지. 아니 그냥 기사의 갑옷을 골렘화 한 거겠군.”
“골렘은 처음 봅니다.”
왠지 신이 난 듯 웃으며 말하는 길리안을 힐끔 보고, ‘나도다.’ 라고 말하려다 그냥 골렘 한 마리를 날려버렸다.
“백번 넘게 분리시켜도 계속 움직이는 걸 보면 끝도 없겠네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아니 멈추게 할 수 있는 겁니까?”
“아카데미에서 안 배웠나?”
“아직 입니다.”
“하긴.”
올해 슈발리에에 입학했다고 들었으니까.
저 정도 실력을 가지고 왜 아카데미에 들어갔는지가 더 궁금할 정도.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골렘에 대해 배운다고 해도 그리 특별한 처리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알려주고 넘어가는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골렘 자체를 부수거나, 핵을 파괴하거나,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을 처리하면 된다고 말해주자 길리안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 핵이라는 건 안 보이는 겁니까?”
“글쎄. 나도 골렘을 보는 건 처음이니까.”
결국 처음이라고 말해버리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길리안과 이렇게 붙어서 행동해 본 것은 처음.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에 대한 얘기는 좀 들은 것이 있었다.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인데 지금 보면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를 직접 겪어보니 10년은 더 산 자신이 경험적인 측면에서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넘버즈들도 사람이다.
다들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적들을 상대하느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태.
그중 가장 안 좋아 보이는 것은 미네르바.
여유를 가장하고 있지만 힘을 쥐어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그런데 그녀와 같은 거리를 달려온 길리안은 너무도 멀쩡했다.
이곳에 들어와서도 활동이 가장 많았던 것이 그고, 여러 상황에서 가장 좋은 대처를 보인 것도 역시 그다.
자신은 이미 골렘이라는 것을 알고도 딱히 처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힘이 좋고 골렘들의 속이 비어있다고는 하지만, 해머로 통 쇠로 된 두꺼운 갑옷을 부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바닥에 놓고 신나게 칠 수 있다면 또 모르지만.
지금도 여러 번의 타격으로 많이 찌그러트리긴 했어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아직 골렘들을 다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길리안은 벌써 안쪽을 모두 확인해 본 모양.
지금도 골렘 하나를 잡고 아예 손으로 사지를 뜯어내며 일일이 안쪽을 확인하는 걸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길리안은 확인한 부위를 집어던졌다.
팔, 다리, 몸통, 투구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핵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골렘의 머리를 해머로 힘껏 내리쳐봤지만 찌그러지고 분리만 될 뿐, 아무래도 골렘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돌이라면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쇠라서 난감한 상황.
계속해서 골렘들을 쳐내면서 관찰했다.
“그나마 무기는 떨어져도 다시 붙지 않는군.”
옆에서 드레드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움직였다.
“그럼 일단 무기부터 처리해야겠군요.”
그때부터 무기나 무기를 잡고 있는 손만 타격했다.
드레도도 마찬가지.
둘이 마음먹고 움직이자 백여 기의 골렘이 잠깐사이에 맨손이 됐다. 무기가 없어지자 훨씬 상대하기가 편해졌다.
길리안은 무기와 함께 날아갔던 팔이나 손이 다시 날아오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거리가 멀수록 다시 붙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거리가 멀수록 다시 붙기 위해 반응하는 시간도 길었다.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드래드에게 말하고 골렘 한기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자신을 공격 하려고 허우적거리는 녀석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뜯어내 멀리 던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날아오는 팔과 다리.
이번엔 사지를 모두 뜯어내고 팔 하나, 다리 하나, 투구만 빼고는 모두 집어던졌다.
몸통에 다른 팔다리가 날아가 붙었고 녀석은 일어나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신체부위가 녀석의 몸통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힘 때문에 중심을 잃을 뻔 했다.
몸통에 붙으려는 힘이 상당했지만 충분히 붙자고 버틸 만 했다.
신체부위가 날아가서 붙으려고만 할 뿐, 몸통이 이쪽으로 날아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길리안은 씨익 웃으며 골렘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골렘들의 느린 반응 속도는 충분히 경험했고 무기도 없었기에 그 안을 파고들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한 놈의 팔을 뽑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다른 녀석의 팔을 거꾸로 끼워 넣었다.
다른 녀석의 투구를 발로 날려버리고 다리를 꽂고, 다리를 날리고 팔을 꽂아 넣고.
순식간에 십여 기정도 되는 골렘의 팔다리를 이상하게 바꿔놓았다.
‘이렇게 하면···.’
십여 기의 골렘들이 서로 붙어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대충 처리 되겠군.’
그리고 드레드를 보니 그가 자신과 같이 골렘들의 팔다리를 바꾸며 웃어보였다.
‘웃는 표정 되게 어색하시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주 웃어 보이고 몸을 날렸다.
빨리 이것들을 처리하고 마법사를 상대해 보고 싶었으니까.
“하아~ 하아~ 정말 짜증나네.”
거친 숨을 내쉬는 미네르바의 투덜거림.
로렌스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법실드를 부술 수는 있었다.
미네르바가 부수고 자신이 부수고 번갈아 가면서 계속 부수고만 있다는 게 문제였다.
처음 준비해놓은 마법실드는 이미 다 부쉈는데 5명의 마법사 중 두 놈은 계속해서 마법실드만 쓰고 있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중.
문제는 마법실드를 부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이다.
일 검에 모든 것을 담아 전력을 다해야 했다.
미네르바 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슬슬 힘이 들었다.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밖에서부터 시작해서 몬스터들에게까지 적에 대해 하나라도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도 지금도 다섯 마법사의 생각을 번갈아 가면서 읽고 있는 중.
덕분에 그들의 공격은 피할 수가 있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미안, 나 때문에···. 후우.”
“아니다. 나도 지쳐있으니까.”
적들의 생각을 읽으면서도 마법사가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다.
‘알았어도 지금 같았겠지만.’
마법사와 직접 싸워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
마법을 쓰기 전에 죽일 자신도, 그럴만한 실력도 있었으니까.
하나는 몰라도 여러 명은 역시 까다로웠다.
“마법이 온다. 이번엔 너다.”
로렌스의 말에 미네르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말에 몸을 옆으로 날렸다.
몸을 날리자마자 그녀가 있었던 자리에 커다란 불꽃이 생겨났다.
“어떡해야 그 정도 감각을 얻는 거야?”
미네르바의 물음에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너도 집중하면 될 거다.”
라는 말 정도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마법사를 불러 놓고 수련을 하겠다는 미네르바의 말에 피식 웃던 로렌스의 표정이 굳었다.
공격마법이 통하질 않자 마법사들이 다른 마법을 쓸 생각을 하는 중. 어쩌면 지금보다 더 효율 적이고 시간을 끌기에도 좋을 수 있었다.
“미네르바 아무래도 빨리 결착을 내야 할 것 같다.”
“응. 알았어.”
미네르바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이번에 남은 힘을 모두 쓸 거야. 내 검이 멈추면 움직여.”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날렸다.
낮은 자세로 빛살처럼 움직인 미네르바가 검을 쭉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늘어났다.
아니 그렇게 보일 정도로 빠른 극한의 찌르기.
‘역시.’
넘버즈들 중 유일한 여자.
그래서 힘이나 체력이 약할지는 몰라도 저 무지막지하게 빠른 찌르기는 알면서도 피하거나 막기 까다로웠다.
속도만 놓고 보면 드겔이 보여준 것보다 빠른 느낌.
‘하나, 둘, 셋, 넷···.’
속으로 미네르바가 부수는 마법실드를 새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일곱, 하나만 더.’
라는 생각을 할 때.
“지금!”
마지막으로 검을 뻗은 미네르바의 외침에 로렌스가 움직였다.
왼손에 든 검이 허공을 한번 가르고 오른손에 든 검도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어나간 그의 신형.
“크윽.”
“컥!”
텅!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미네르바는 무릎을 꿇고 앉아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은 로렌스의 신형을 쫓았다.
정말 지친와중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은 거라 손가락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부순 마법실드가 여덟 개.
그게 지금의 자신에게는 한계였다.
로렌스가 두 개를 더 부수고 마법사 둘을 베었다.
그리고 다시 허공에 멈춘 그의 검.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쌍검이 무섭도록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뚫을 거면서.’
로렌스의 신형이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본 미네르바가 웃으며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나머지는 로렌스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눈을 감고 자고 싶었다.
그때 로렌스가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어?”
이상해서 몸을 일으켜보니 아직 마법사 둘이 남아있었다.
한 놈이 손을 뻗고 있는 걸 보니 마법으로 로렌스의 몸을 띄운 듯 했다.
손에서 놓았던 검을 다시 잡고 움직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뭔가가 옭아매는 느낌.
몸이 엄청나게 무거웠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마법사가 웃고 있는 걸 보고 이를 악물고 움직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법사들의 바로 앞에 두 자루의 검이 땅에 부딪쳤다 튕겨나가는 게 보였다. 로렌스가 던진 것 같은데 맞추지 못한 것 같았다.
그보다 고개조차 돌리기가 힘들었다.
목도 조금씩은 돌아가고 몸도 조금씩 움직일 수는 있는데 너무나 느려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혼자만 느린 시간 속에 갇힌 느낌.
이런 느낌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라데카가 새로운 마법을 익혔다고 해서 몇 년 전에 한번 경험해본 마법.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법사가 바닥에 있는 로렌스의 검을 집어 드는 게 보였다.
‘젠장!’
기사로서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다만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 식으로 죽는 건 싫었다.
그런데 검을 막 집어든 마법사의 다리에 여러 발의 화살이 푹푹 박히더니 그가 쓰러졌다.
다른 마법사도 마찬가지.
그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와 함께 몸을 옭아매던 힘이 사라지는 것은 느꼈다.
길리안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들이 왔던 통로에 여러 명의 사람이 보였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크로스보우.
모습만 보면 지금까지 상대하던 적들과 같았다.
그보다 갑자기 들리는 신음소리와 위험한 느낌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둥글게 모여 중얼거리던 마법사들의 신음.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주저앉은 모습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
저건 또 뭔가 싶었다.
“마나폭주다.”
로렌스의 목소리.
그 말에 미네르바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나폭주가 일어나려면 엄청난 마나가 필요한 마법을 구현하다 실패했을 때라고 라데카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폭주한 마나는 큰 폭발을 일으킨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 주저앉아있던 마법사들이 중앙으로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허우적거리다가 끌려가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터져 나왔다.
저런 건 처음 보는 것.
“어?”
넋 놓고 그걸 보다가 자신의 몸도 붕 떠오르는 게 느껴져 당황했다.
“모두 피해.”
로렌스의 목소리가 또 들렸지만 피하고 말고 할 힘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쪽으로 끌려가지는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자신을 안아드는 길리안.
미네르바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추천과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본격 글쟁이가 피곤한 판타지 넘버즈!
전 쓰러지러...
한숨 자고 내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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