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넘버즈. 25장(5)

“후우~ 후우~. 하아, 두 분 여기 계셨습니까? 하아.”

달려와 숨을 헐떡이면서 묻는 길리안을 보고 로렌스와 드레드는 피식 웃었다.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 모습.

그 와중에 드레드가 던진 검에 쓰러진 적까지 주워왔다.“미네르바는? 따로 행동했나?”

“오고 계십니다. 후~ 아마···.”

말을 하며 뒤를 돌아본 길리안이 멋쩍게 웃었다.

“조금 있으면 보일 겁니다.”

그런 길리안을 보고 로렌스가 말을 가리켰다.

“레이디를 뛰게 하면 쓰나. 저걸 타고 가라.”

“제가 갑니까?”

“그럼 내가 갈까? 좋은 여자는 양보하는 거 아니다.”

“음···.”

뭔가 말을 하려던 길리안이 그냥 입을 다물고 메고 있던 짐을 풀어 놓고 말에 올랐다.

“천천히 와도 된다.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로렌스가 저택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길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둘을 보고 쫓던 자를 잡은 거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몇날 며칠이고 쫓을 생각이었다.

‘아 정말!’

미네르바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먼 거리를 뛰어보기는 처음.

체력 훈련은 하지만 이건 정말 기사가 할 짓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길리안과 두 명의 적을 처리하고 시작된 추적.

이참에 좀 배워볼까 했는데, 말이 좋아 추적이지 정말 배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가르쳐주는 것이 없어서였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는 하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그냥 냅다 달리는데 쫓아가기 바빴다.

그리고 흔적을 지우려던 적을 발견 하고 부터는 더했다.

순간적인 스피드는 몰라도 체력과 지구력에서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런 스피드를 낼 힘도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솔직히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기로 뛰는 중.

그런 그녀의 눈에 달려오는 말 한마리가 보였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도.

‘길리안?’

거리가 가까워지자 길리안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의 속도는 전혀 줄이지 않은 상태.

미네르바도 멈추지 않고 달리며 손을 내밀었다.

둘이 마주치는 순간 미네르바가 길리안의 손을 잡고 붕 떠올랐다가 돌아서 그의 뒤에 앉았다.

“하아~ 하아~. 너! 하아~”

길리안이 말의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말머리를 돌렸다.

“후아~. 이거, 아 힘들어.”

헐떡이는 미네르바에게 길리안이 물주머니를 건넸다.

그걸 받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머리에도 쏟아 부었다.

“와아~ 이제 살겠네. 이거 로렌스의 말 아닌가?”

“맞습니다.”

“만난거야?”

“네.”

길리안의 대답에 뒷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쪽은 추적 저쪽은 의심되는 곳을 수색하는 거였는데 결국에는 목적지가 일치했다는 것이니, 안 해도 될 일을 힘들게 했다는 말도 된다.

‘하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올 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말을 모는 길리안에게 숨을 고르던 미네르바가 말했다.

“빨리 안가?”

“급할 것이 없으니까요. 좀 쉬십시오.”

“음?”

“도착하면 또 싸워야 할 테니까요.”

“뭐 그렇다면.”

웃으며 말한 미네르바가 길리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럼 조금 쉴게.”

그리고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

생각보다 그의 등이 무척 넓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저택 뒤에서 나온 것들.

그걸 보고 처음엔 놀랐던 루퍼드는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4미터가 넘는 큰 체구, 기사의 갑옷을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모습에 처음에는 골렘인줄 알았다.

마탑에서 만든 골렘이 움직이는 걸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움직이지만 생명체는 아니다.

숨을 쉬지도 않고 괴성을 지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들처럼 빠르지도 않았다.

나타난 것은 그것들만이 아니었다.

수백의 기사와 병사가 몰려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몬스터다! 모두 물러나 전열을 정비한다.”

선두에 있던 아이작의 외침.

저택 어딘가에 숨겨 두었겠지만, 수도의 외성 안에 있는 귀족의 저택에서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왔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기사들이 다시 저택의 입구까지 물러났다.

“밖은 경에게 맡기겠네.”

다시 걸음을 옮기던 드겔이 지나쳐가는 아이작에게 한 말이었다.

아이작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 해보이곤 크게 외쳤다.

“병사들은 입구를 막고 대기한다. 지원을 요청하라. 저런 것들이 수도를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 위로 몇 개의 신호가 올랐다.

아이작이 뒤를 슬쩍 돌아봤다.

돌격으로 득을 보기에는 거리도 그렇고 방해물도 많았다.

“하마.”

말에서 내린 기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챙겨들었다.

아이작이 양 옆으로 손짓을 하자 기사들이 일렬로 넓게 늘어섰다.

“갑옷을 입혀놔도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이다. 사냥을 시작하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방패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막고 밀어내고 무기를 휘둘렀다.

누군가 자이언트 오크라고 소리쳤지만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만한 정신들이 없었다.

대부분이 몬스터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었고 얕잡아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2미터가 넘는 큰 체구에, 몬스터 특유의 힘과 두꺼운 갑옷을 입어 방어력도 상당해서 쉽게 제압할 수가 없어서였다.

거기에 무기를 휘두르는 위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방패로 막을 때마다 팔이 저릿저릿했고, 힘에 밀려나는 기사들도 있었다.

몇몇 기사들은 무기를 휘두르다가 잡혀서 뒤로 던져졌고, 오크들 사이에 떨어진 그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다 목숨을 잃었다.

“경의 칭호에 걸 맞는 모습을 보여라! 오크 따위에 밀리는 자들이 무슨 기사란 말이냐!”

아이작의 호통소리가 전장의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의 기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조금씩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이들보다 앞서서 십여 마리의 오크를 처리한 아이작이 뒤를 힐끔 보고 다시 외쳤다.

“길을 터라!”

그러면서 앞을 가로막는 오크들을 베며 전진했다.

다른 기사들이 뒤를 따르며 양옆으로 오크들을 밀어내자 정말 길이 만들어졌다.

드겔은 아이작과 기사들이 만들어준 길을 뒷짐을 쥐고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 잠깐 멈춘 것을 빼면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느긋하게 걷는 그의 뒤를 루퍼드는 말없이 따를 뿐.

기사들이 적에게 돌격할 때 같이 움직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드겔이 만류했다.

몬스터를 상대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다른 기사들에게 즐길 기회를 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

아까 습격을 받을 때도 처리한 적은 3명.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19호랑 같이 처리했다고 봐야했다.

성에 차질 않아 아까부터 손이 근질근질 했다.

몬스터를 상대로 이정도 규모의 전투는 거의 경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왕에게 임무를 받을 때말고는 항상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 드겔이 있으니 그게 안 되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답답해도 조금만 참게. 밖이 이정도면 안에도 재밌는 것이 많을 테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저택으로 가는 길은 기사들에 의해 완전히 열렸다.

저택 앞에서 아이작이 정체모를 대형 몬스터 4마리를 혼자 끌어내 상대하고 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중 한 마리가 이쪽을 보고 달려들기에 이때다 싶어서 나서려고 했지만 뒤따르던 19호가 날린 화살에 멈칫 했고, 어느새 달려온 기사들이 막아서서 그냥 낮은 한숨을 내쉴 뿐.

저택에 다다른 드겔이 뒤로 돌아 장내를 훑어봤다.

처음 조금 밀리던 기사들은 착실하게 몬스터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아이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작은 상당히 여유 있게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전장을 둘러보며 필요한 명령도 내릴 만큼.

그는 오각형의 방패를 사용하는데, 그 방패를 이용한 공격은 검 못지않게 날카롭고 위력적이었다.

몇몇 기사들이 그를 돕겠다고 달려오자 몸을 높이 띄워 회전하며 방패로 몬스터의 얼굴을 가격했다.

공격당한 몬스터가 쿵쿵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고 달려오던 기사들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상대하는 몬스터가 두 마리가 되자 뒤로 풀쩍 물러나 드겔에게 크게 예를 취해보였다.

그 모습에 드겔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시지요.”

어느새 문을 부숴놓고 재촉하는 루퍼드의 말에 드겔은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이건가 보군요.”

길리안이 벽에 달려있는 촛대를 돌리자 스르릉 소리가 나며 한쪽 벽이 밀려났다.

로렌스는 그런 길리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딱히 자신이 나서서 알려주고 할 필요가 없었다.

저택을 대충 둘러보더니 이곳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다며 일행을 지하로 이끌었다.

내려와서도 조금 살펴보더니 바로 문을 열었다.

어두운 입구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던 길리안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혹시 몬스터도 있었습니까?”

“없었다. 안에 몬스터라도 있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지도 모릅니다.”

“근거는?”

“냄새입니다.”

길리안의 대답에 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 앞에 섰다.

“뭐가 있든 상관없지. 방패가 있는 건 나뿐이니 내가 앞장서겠다.”

“제가 맨 뒤를 맡지요.”

길리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로렌스가 드레드의 뒤에 섰다.

“참나. 나한테는 말할 기회도 안주네.”

미네르바가 투덜거리며 로렌스의 뒤에 섰다.

“그럼···.”

출발하자고 말하려고 할 때 길리안이 뭔가를 던졌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밑으로 떨어졌다.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길리안이 말했다.

“꽤 깊네요. 그럼 가시죠.”

그 말에 다들 피식 웃으며 입구로 들어섰다.

다들 손에 검 대신 횃불을 하나씩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미네르바는 지하로 들어서면서부터 인상을 썼다.

어둡고 음침하고 축축한 것 까지는 괜찮은데 코를 찌르는 쾨쾨한 냄새가 심해져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는데 이제는 코가 마비됐는지 그나마 좀 나은 편.

그래도 기분이 나쁘긴 매한가지였다.

거기에 어둠속을 그냥 걸을 수는 없으니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적들에게 이곳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과 같은 행동.

아니나 다를까, 따다당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레드의 방패에 뭔가 맞고 튕겨나가는 소리.

“환영인사로군.”

드레드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퉁퉁퉁 소리와 함께 뭔가가 스쳐지나가자 뒤를 돌아봤다.

활을 든 길리안이 씨익 웃는 게 보였다.

“흐음.”

길리안은 들어오기 전에 적들이 쓰던 활을 들고 확인하더니 그중하나를 취하고 화살도 다시 가득 채웠다.

아까 밖에서 먼 거리에서 적을 맞추는 것을 보고 활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연사속도도 엄청났다.

“맞았을까?”

드레드의 물음에 길리안은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하긴.”

드레드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길리안의 공격 때문인지 적들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적이 맞든 안 맞든 저쪽의 공격에 반격할 수단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검만 달랑달랑 들고 온 미네르바나 로렌스만 있었다면 지금쯤 적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었을 테니까.

“쓸모없는 것들.”

드레드의 말에 미네르바가 피식 웃었다.

“쓸모없어서 미안. 쓸모없어진 김에 한숨 잤으면 좋겠네. 걸으면서 잘 수 있다면.”

“쓸모없는 내가 업어줄 수 있다만.”

“사양할게. 네 검들 때문에 불편할거 같거든.”

“아까는 누구 등에 기대서 잘만 자더군.”

“너도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보라고. 난 내가 말이 된 줄 알았다니까.”

“어쨌든 아쉽군.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는데.”

“나름 쓸모가 있었어. 로렌스 네 덕에 졸음은 좀 가셨거든.”

미네르바와 로렌스의 대화를 들으며 드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적의 근거지인데 너무 긴장감이 없군.”

“긴장 좀 하게 뭔가 좀 나왔으면 좋겠네. 설마 화살 몇 발 쏘고 끝은 아니겠지?”

“그건 모르지.”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단을 모두 내려왔다.

좁고 가파른 계단에 비해 바닥은 평평하고 꽤 넓었다.

주변을 살펴보던 미네르바가 말했다.

“천정도 꽤 높네? 이런 동굴을 만들어 놓고 도대체 뭘 하는 거지?”

“그야 가보면 알겠지.”

드레드의 말에 일행은 걸음을 옮겼다.

---

추천과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나중가면 호빗 다섯 군대 전투 같은... 상황도 나올 수 있는데

워 그럼 어떻게 쓰지;;;

올해가 4달 정도 남았는데... 120일 잡고 하루 1편, 120편이면...

올해 안에 완결하긴 글렀군요.

몇 분이나 따라오시려나...

[샴셔]

아이고 이제 연재분도 얼마 안남았네요... 추천글 접하고 신나게 읽었는데 다 읽으면 어쩌나 ㅠㅠ....

[은색의왕]

발견 하고 부터는→발견하고부터는

[은색의왕]

풀 쩍→풀쩍

[은색의왕]

부셔놓고→부숴 놓고/부수어 놓고

[은색의왕]

잘 봤어요

[대원(大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ㅋ

[지드]

로렌스 미네르바 조합이 의외로 싱거운 농담을 잘 하는군요. ㅋㅋ

[대원(大遠)]

ㅎㅎ 좀 싱거웠나요 ㅋ

[쟈드린]

이제 미리보기는 설때 결재이벤트 뜨면 한번에 확 몰아봐야징

[대원(大遠)]

흐흐 그전까지 엄청나게 쌓아놓겠습니다!! 는 무슨... 속도가 느려서... 보실 게 없을지도..
일주일에 6편은 풀리니 편하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