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즈. 3장(4)
가면을 쓴 이가 그걸 집어 들고 살펴봤다.
“이건 마정석이군.”
“예.”
“몇 개나 있소?”
“우선은 비슷한 걸로 100개정도 됩니다.”
“이정도면 중상 급은 될 텐데....”
“마력을 느낄 수 있나보군요.”
“뭐 조금은... 그보다 우선은 이라면... 더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길리안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신은 놓치기 싫은 고객이오.”
가면 인이 마정석을 길리안에게 굴렸다.
“팔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환영이오. 수수료는 20%. 최대한 좋은 값을 받아주겠소. 수수료를 받지만 직접 파는 것보다 확실히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건넨 장난감처럼 작은 깃발을 길리안 앞으로 밀었다.
“연락을 하고 싶다면 창가에 놓아두시오. 우리사람이 찾아갈 테니.”
작은 깃발을 집어든 길리안이 그걸 만지작거렸다.
“소개를 받아 의뢰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상당히 호의적이군요.”
“말했지만. 로렌의 친구라면 우리에게도 친구이니까.”
“저도 말했지만 얼굴모르는 사람이랑은 친구 안합니다.”
그렇게 말한 길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어쨌든 그쪽과의 거래가 상당히 편하기는 하니까요. 이건 잘 받아두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의뢰한 사람은 찾았습니까?”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유명 인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뭔가 진척이 있으면 따로 알려주겠소.”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꼭 찾아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를 보던 길리안이 작은 깃발을 품에 넣고 돌아섰다.
“반지는 잘 보관하길 바라오.”
복면인의 말에 길리안은 돌아선 채로 답했다.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빨리 받아 가면 되겠지요.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길리안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있던 이가 가면을 벗었다.
“후우. 이건 너무 답답해.”
가면을 벗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맑은 여자의 음성이었다.
뒤에 있던 이에게 가면을 건넨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지? 열일곱 살 꼬맹이를. 하아 미치겠네. 말론이 보기에는 어때?”
여자의 물음에 뒤에 서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꼬맹이라고 하기엔 꽤 크지 않습니까?”
“장난해?”
“열일곱 살이면 어리다고만은 할 수 없지요. 그리고 곧 열여덟 살이 됩니다.”
“말론. 장난할 기분이 아니야.”
“크흠. 죄송합니다.”
“내가 분명 조사해보라고 한 걸로 기억하는데?”
“말씀하신대로 조사도 했고, 시험도 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실력은 대단합니다. 몇 달 사이 은빛 가면의 악마라는 별명까지 붙어서 직접 지켜본 결과 실력은 특급 이상입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던데?”
“싸울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특급이라도 대단한건 아니잖아? 그 정도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 이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까 둘러보던 것을 보셨지 않습니까? 매복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이를 보면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지요.”
“하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싸움만 잘하는 바보 같은 어린애를... 하아 미쳐버리겠군.”
“그건...”
“그보다 가면을 쓴다고?”
“예.”
“어린 티를 내는군.”
“그리고 아가씨께서도 어린 시절 보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쟤를 봤다고? 언제 어디서?”
“어릴 때 라이라프 영지에 로드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곳출신이니 아가씨께서 보셨을 수도 있겠지요.”
“음... 흐음... 난 기억에 없는데?”
“뭐 그러시다면...”
“그런데 너무 많은 정보를 준거 아냐? 동부에 이름 좀 있는 현상범들이 씨가 말랐잖아. 그중엔 고객들도 있었고.”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라는 로드의 명이 있었습니다.”
“알아. 아는데 그래도 좀 가려서 줬어야하는 거 아냐? 현상범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고 그걸 다줘? 특히 이베트 자작부인과 관련된 건은 아깝단 말이지.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거였는데. 저 바보는 그걸 고작 2천 골드에 넘겼다고. 돈보다 훨씬 좋은 걸 얻어낼 수도 있는 거였는데....”
“죄송합니다.”
“뭐 말론이 죄송할 건 없지. 할아버지 명령이니 따르는 수밖에.”
그래도 계속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말론이 말했다.
“그리 나쁘게 생각하실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자들이었고 슬슬 잘라낼 때도 됐었습니다. 시험도 할 겸해서 정보를 흘린 건데 설마 다 처리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아까워. 그 아까운 정보를 꼬맹이 명성 조금 높여주고 시험하는데 쓰다니. 본명도 아니고 아까 뭐랬지? 은빛가면의 악마? 유치해. 하아... 그래서 말론이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야?”
“추적, 전투력, 상황대처와 판단력. 모든 것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칼 잘 쓰는 무식한 싸움꾼 꼬맹이란 말이네? 뭐 아무튼 말론은 저애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야?”
“제 마음에 들어 무엇 하겠습니까.”
“말론.”
“예 아가씨.”
“저 반지 가져다 줄 수 있어?”
“죄송합니다. 그 명령엔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아... 역시 안 되는 거구나.”
“저자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로드께서도 강요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선은 지켜보시지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쳇. 저걸 언제 키워. 내가 스물네 살이야.”
“어차피 빨리 결혼하실 생각도 없으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남녀사이에 나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로온!”
여자의 목소리가 뾰족해지자 말론이란 이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 도망가? 나와 안 나올 거야?”
하지만 말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음...”
길리안은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갈 때도 그랬지만 나올 때도 안내를 받아서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처음 들어갔던 곳이 아니었다.
지도를 살펴보고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땅굴을 파놓은 것도 아닐 텐데 지금 나와 있는 위치가 처음에 비해 꽤 멀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건물을 이어놓은 듯 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리였다.
“어라?”
거기에 뒤를 돌아보니 방금 나왔던 문은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길리안은 다가가 손으로 벽을 어루만졌다.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냥 보통 벽이었다.
“이건 뭐...”
뭔가에 홀린 기분이랄까?
“이런 게 마법이라는 건가?”
영지에서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거나 겪어본 적은 없었다. 마법이란 것이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티펙트나 마법용품을 취급하는 상점들도 있긴 하지만, 큰 도시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한 것이고, 취급하는 물품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다.
가면 인이 준 마법자루라는 것도 몇 백 골드는 하는 것이었으니까.
고대 마도시대라 불리던 시절에는 마법사들의 세상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마법이란 것이 흔했다는데 아주 먼 옛날의 일이고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기사의 수는 늘고 많이 흔해졌지만 마법사의 수는 점점 줄어 지금은 정말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마법사들은 왕실이나 대 귀족들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최고급 인력이다.
지금 겪은 일이 마법과 관련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럴만한 지식도 부족했고 경험도 없었으니까.
길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든 간에 그리 얽히고 싶지는 않은 집단이었다.
이번에 로렌아저씨의 부탁을 이행하고 원하던 것을 얻으면 더 이상의 거래는 하지 않으려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이미 많은 거래를 주고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얽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의뢰한 일 때문에 계속보기는 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그 의뢰란 것은 바로 사람을 찾는 일.
길리안이 찾는 이는 다름 아닌 작은 형이었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간지가 벌써 3년도 넘었다. 처음엔 며칠 있으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전해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말씀은 안하시지만 이런저런 루트로 작은형을 찾아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계시단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찾아보려고 해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
큰형도 작은형을 찾으려고 몇 달 동안 영지를 떠났던 적이 있었지만 헛수고였다.
동부를 여행하면서 길리안도 수소문을 해봤지만 조그만 단서조차 얻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길드라는 곳에서 사람도 찾아준다고 했다. 꼭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수는 있었으니까.
“이놈에 인간. 어디 있는지만 알면....”
당장 달려가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서 집에 가져다 놓을 텐데 차마 동생이 형에게 그럴 수는 없으니, 집에만 데려다 놓으면 큰형이 알아서 다리는 부러트려 줄 것이다.
“후우... 멀쩡하게 살아만 있어줬으면 좋겠군.”
길리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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